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상 견 례

 

우주27(2020)년 오월도 하순에 접어들면 스텔라이브 사무실 창밖으로는 어느새 초여름 볕이 완연하였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선선한 바람이 남아있었으나 한낮이면 창을 활짝 열어놓아야 할만큼 볕이 따가웠고, 사무실 안 콤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는 그 볕 아래서 유난히 시원하게 들리였다.

나는 그날 아침 일찍 사무실에 나와 앞으로 올릴 내용물 일정표를 들여다보고있었는데, 표 한칸에 적힌 《상견례》라는 세 글자가 유독 눈에 밟히였다. 몇번을 다시 읽어보아도 우스운 낱말이였다. 방송 내용물 한줄에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여도 되는것인가 싶어 나 혼자 피식 웃고말았다.

그로부터 보름 앞선 오월 초엿샛날, 우리는 이미 한차례 어머니를 모시고 《배그》 합방을 한적이 있었다. 그날 어머니는 화면 저편에서 대뜸 《강지 사위감으론 블루가 백점이다》하고 선언하였고, 블루동지는 그 말에 총을 든채로 한참을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 짧은 한마디가 대화창을 뒤흔들고 며칠이 지나도록 강도단과 쁠몬들 사이에서 오르내렸으니, 우리끼리는 그것을 두고 우스개삼아 《사변》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지난해 겨울 한동안 서먹하였던 우리 사이도 새해를 넘기며 어느새 다 풀리여, 그 봄에는 전보다 더 자주 마이크앞에 나란히 앉게 되였다.

그무렵 《우결》은 어느덧 두해째로 접어들며 상당한 고정 시청자층을 갖추고있었다. 만우절 특집으로 파트너를 바꾸어보았던 지난달의 소동도, 어머니를 모신 《배그》 합방도, 모두 이 이야기가 그만큼 오래도록 사람들의 관심속에 살아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였다.

그 사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내 오른팔 미기와 다음 내용물를 의논하며 자연스레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되였다. 《사장님, 이왕 사위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예 상견례를 한번 해보시는건 어떨가요.》 미기가 반쯤은 진담으로, 반쯤은 농으로 던진 그 한마디에 나는 한참을 웃었다.

웃고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이 그리 나쁜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도 이미 한번 《배그》 합방으로 우리 방송의 분위기를 겪어본 터이니, 크게 낯설어하지 않으리라는 짐작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상견례라는 자리에 세울 남자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데 있었다. 블루동지야 이미 어머니에게 백점을 받은 처지였으나, 그 앞서부터 우리 《우결》의 삼각관계를 도맡아온 김박사를 빼놓고 이 자리를 꾸린다는것은 아무래도 도리가 아니였다.

그런데 이 김박사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우결》이 아직 걸음마도 떼기 전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수 없다. 김박사는 애초에 《우결》 초반부터 나의 전 남자친구라는 배역을 맡아, 블루동지와 나 사이에 삼각관계라는 긴장을 붙여주는 역할을 자청한 이였다.

그 삼각관계라는것이 순전히 화면안에서 지어낸 이야기였을뿐인데도, 김박사는 그 배역을 어찌나 진지하게 소화하였던지 한때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정말로 상심한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 인연으로 김박사는 《우결》 초반부터 우리와 자주 합방을 하며 친해졌고, 어느새 이 이야기 속 빼놓을수 없는 조연이 되여있었다.

언젠가 한번은 그가 방송 중 눈물까지 비칠뻔하여 《울지마 김박사...》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간적도 있었으니, 나는 지금도 그 제목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을 참을수 없다. 그런 김박사였으니 상견례라는 자리에서 잠자코 있을 위인이 아니였다.

실은 이 상견례보다 며칠 앞서 이미 어머니에게 점수를 따려는 김박사와 블루동지의 신경전을 담은 영상이 한편 올라간 일이 있었는데, 그 영상 제목마저 《강지 어머님께 점수따려는 김박사와 블루》였으니 두 남자의 경쟁심이 얼마나 로골적이였는지 짐작할만하다. 나는 그 영상을 편집실에서 미리 보다가 두 사람이 서로 어머니 옆자리를 차지하려 은근히 어깨를 밀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그렇게 예열이 다 끝난 뒤에야 정식으로 상견례를 촬영하기로 날을 잡았다. 나는 촬영 며칠 전부터 괜히 마음이 분주하였다. 두 남자와 어머니를 한자리에 앉혀놓는다는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것을 그제서야 실감하였던것이다.

그 며칠 사이 나는 미기와 함께 오늘 방송의 진행 순서를 몇번이고 다시 짜보았다. 두 남자 사이에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질문 순서까지 신경써야 하였으니, 마치 진짜 사돈댁 자리를 준비하는 집안 어른이라도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사장님, 이거 방송 아니고 진짜 상견례 준비하시는것 같아요.》하고 놀렸는데, 나는 그 말에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웃고말았다. 대본 한장을 두고 이렇게까지 골몰한적이 근래에 없었던것이다.

촬영 전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기전 오늘 할 질문지를 몇번이고 고쳐썼다. 잠버릇이 심한 편이라 평소라면 눕자마자 곯아떨어졌을터인데, 그날만은 이불속에서 이런저런 장면을 상상하느라 잠이 얼른 오지 않았다.

상견례를 촬영하기로 한 그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스튜디오에 나가 자리를 정돈하였다. 탁자우에는 다과상처럼 과일과 음료를 조촐하게 차려놓았고, 카메라 세대를 세워 세 각도에서 표정을 놓치지 않도록 미리 점검하였다.

마치 진짜 사돈댁을 맞이하는 집처럼 공연히 방석 위치까지 고쳐놓고서야 나는 겨우 마음이 놓이였다. 창밖으로는 오월 하순의 볕이 스튜디오 유리창에 하얗게 반사되고있었다.

스튜디오 앞 가로수에는 오월 하순의 아카시아꽃이 이미 지고 그 자리에 짙은 나무잎들이 무성하게 돋아나있었다. 그 나무잎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이 창틈으로 희미하게 들어와, 다과상우에 놓인 과일 향과 뒤섞이여 방안을 채웠다.

어머니는 약속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오늘은 또 무슨 자리를 만들어놓은거니》하고 웃음 섞인 핀잔부터 건네였는데, 그 목소리에는 이미 이 우스운 자리를 즐길 준비가 다 되여있다는 여유가 묻어있었다.

본디 우리 어머니는 자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성미였다. 내가 벌이는 방송이라는 낯선 일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선뜻 카메라앞에 나서준것은 다 그런 성정 덕분이였을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상석에 앉혀드리고 오늘 촬영의 대강을 미리 일러드렸다.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나는 그냥 하던대로 할테니 너무 신경쓰지 말아라.》하고 대답하였으나, 정작 그 표정에는 은근한 기대가 감돌고있었다.

블루동지는 그날 평소보다 각을 잡은 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인사를 하러 들어서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저도 모르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안녕하십니까, 어머님.》하고 높임말이 튀여나왔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고 사랑스러웠던지 나와 어머니 둘 다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뒤이어 김박사가 들어섰다. 그는 들어서자마자 어머니앞에 놓인 과일접시부터 살펴보더니 《어머님, 이 과일 제가 오다가 하나 더 사왔습니다.》하며 봉지를 내밀었는데, 그 재빠른 눈치싸움에 블루동지가 옆에서 어이없다는듯 헛웃음을 지었다.

두 남자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은근히 어머니와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려 어깨를 슬쩍슬쩍 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오늘 촬영의 진짜 볼거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기는 그 사이 카메라 뒤에서 조용히 렌즈를 조정하며 머리수화기 너머로 오디오 레벨을 확인하고있었다. 그는 이날의 촬영이 유난히 시간을 잡아먹으리라는것을 진작부터 눈치챈 사람처럼, 여느때보다 여유있게 장비를 매만졌다.

촬영이 시작되고 나는 마이크를 고쳐잡으며 오늘의 자리를 소개하였다. 《오늘은 특별히 두 남자와 저희 어머니를 한자리에 모시고 상견례라는것을 한번 해볼가 합니다.》 화면 저편 대화창에는 순식간에 《드디여》, 《이날이 왔다》 하는 글들이 쏟아져올라왔다.

어머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두 남자를 번갈아 훑어보더니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 둘중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니.》 그 물음에 김박사와 블루동지는 서로 눈치를보며 대답을 미루었다.

먼저 입을 연것은 블루동지였다. 《어머님, 지난번에 저한테 백점 주였잖아요.》 그 말에 김박사가 발끈하여 《아니 그건 《배그》 오락 실력 얘기 아니였습니까.》하고 따지고들었는데, 정작 어머니는 대답 대신 웃음으로만 응수하였다.

나는 그 옆에서 두 사람의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대화창에는 벌써 《진짜 상견례 맞네ㅋㅋㅋ》, 《사위 경쟁 실화냐》 하는 반응들이 줄을 이였다.

후원창에는 《축하드립니다, 상견례 성사를 기념하여》라는 후원문구까지 올라와, 나는 그것을 읽으며 실소를 금치 못하였다. 화면 밖 시청자들까지 이 자리를 진짜 경사처럼 여기고있다는것이 신기하고도 우스웠다.

어머니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김박사를 향해 물었다. 《그럼 자네는 우리 딸한테 뭘 해줄수 있는가.》 김박사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저는... 항상 곁에서 삼각관계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하고 대답하여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블루동지는 당황할수록 말끝에 대구 사투리가 묻어나오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날도 어머니의 갑작스런 질문앞에서 《아니 그기 그런게 아니라카는데예.》하고 무심결에 사투리를 흘렸다. 나는 그 말투가 나올 때마다 그가 얼마나 긴장하였는지를 가늠할수 있었으므로, 속으로 몰래 그 순간을 반가워하였다.

어머니는 그 사투리에 오히려 반색을 하며 《아이고 이쪽 사람 말투가 나오네.》하고 즐거워하였다. 블루동지는 귀끝까지 붉어진채 헛기침만 몇번 하였고,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마이크를 잠시 손으로 가려야 하였다.

어머니는 웃음 끝에 짐짓 정색을 하고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래서 둘중 누가 먼저 우리 딸이랑 살림을 차릴 생각인가.》 그 갑작스런 물음에 김박사와 블루동지는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동시에 헛기침을 하였다.

나는 마이크앞에서 손사래를 치며 《어머니, 그건 방송에서 할 얘기가 아니예요.》하고 서둘러 화제를 돌렸으나, 대화창에는 이미 《사장님 당황하신다ㅋㅋㅋ》, 《오늘 상견례 스케일이 다르네》 하는 글들이 빠르게 올라오고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놀리듯 몰아붙이던 어머니는 문득 표정을 바꾸어 진지하게 말하였다. 《농담은 이만하고, 사실 나는 두 사람 다 우리 딸 옆에서 저렇게 오래 함께 있어준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긴다.》 그 한마디에 방금까지 서로 다투던 김박사와 블루동지도 순간 말을 잃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코끝이 시큰해지는것을 느끼였다. 회사를 차리고 사장이 된 뒤로는 어머니앞에서 방송이라는것을 이렇게 편하게 보여드릴 일이 흔치 않았는데, 이날만은 어머니도 우리와 함께 이 우스운 이야기속에 들어와계신다는것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어머니는 준비해온 곽밥을 꺼내 두 사람앞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이건 내가 아침에 직접 싼거니 골고루 먹어라.》하는 말에 김박사와 블루동지는 서로 먼저 젓가락을 들겠다고 또 한번 신경전을 벌였다.

김박사는 곽밥을 먹으면서도 틈틈이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다. 《어머님, 저는 배그도 잘하고 눈치도 빠른 사람입니다.》하고 은근히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어머니는 그저 《그래 그래.》하고 건성으로 받아넘겨 좌중에 웃음을 자아냈다.

반면 블루동지는 그 옆에서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곽밥을 먹다가, 문득 어머니를 향해 《어머님, 강지 누나 잘 챙기겠습니다.》하고 나직이 말하였다. 그 말은 우스개소리로 시작한 촬영 중에 툭 튀여나온, 뜻밖에 진심어린 한마디였다.

어머니는 그 말에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블루동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래, 믿으마.》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그 짧은 대답속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있었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후날 이 장면을 두고 성원들은 마치 두 왕가 사이에 혼약이 정식으로 맺어지는 자리인양 호들갑을 떨었다. 실은 곽밥 한덩이를 사이에 두고 오간 짧은 문답이였을뿐인데, 력사란 늘 그렇게 사소한 자리에서 큰 이야기를 지어내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그 말이 오간 뒤로 김박사는 잠시 젓가락을 멈추고 억울하다는듯 나를 돌아보았다. 《저는요? 저는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 물음이 하도 진지하여 나와 어머니는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김박사를 향해 《자네는 삼각관계나 계속 잘 만들어주게.》하고 대답하였는데, 그 말에 김박사는 반쯤은 웃고 반쯤은 울상을 지으며 곽밥을 마저 먹었다. 대화창에는 《김박사 불쌍하다ㅋㅋㅋ》, 《그래도 정 붙었나보다》하는 글이 오르내렸다.

촬영은 예정보다 길어져 두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카메라를 끄고나서도 어머니는 자리를 뜨지 않고 두 남자에게 이런저런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더 늘어놓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정말로 사돈어른들이 늦도록 자리를 지키는 풍경 같아 나는 몰래 웃음을 삼켰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가.》, 《잠은 몇시에 자는가.》 하는 물음들이 이어졌고, 블루동지와 김박사는 그때마다 서로 먼저 대답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것이 방송인지 정말 집안 어른을 모신 자리인지 잠시 헷갈릴 지경이였다.

어머니는 이어 블루동지에게 《쉬는 날엔 뭘 하는가》하고 물었다. 블루동지는 잠시 머뭇거리다 《주로 게임을 하거나, 아니면... 강지 누나 방송을 챙겨봅니다.》하고 대답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그 대답에 김박사가 옆에서 《저도 챙겨봅니다!》하고 황급히 끼어들었는데, 어머니는 그저 웃으며 《그래그래, 둘다 착하다.》하고 두 사람을 다독이였다. 대화창에는 《둘다 착하대ㅋㅋㅋ 이게 무슨 상황이야》하는 웃음섞인 글이 올라왔다.

미기는 편집실에서 이 장면을 미리 훑어보고는 《사장님, 이거 조회수 잘 나오겠는데요.》하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하였다. 나는 그 말에 반신반의하였으나, 결과적으로 미기의 예언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편집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며칠 사이, 나는 문득 이 상견례라는 내용물가 어디까지 우스개소리이고 어디서부터 진심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순간이 있었다. 김박사의 너스레는 분명 배역이였으나, 블루동지가 어머니께 건넨 그 한마디만은 배역을 넘어선 무엇으로 느껴졌기때문이다.

며칠 뒤 그 영상은 《두 남자와 엄마를 모시고 상견례를 해보았다》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갔다. 감상글난에는 《이게 나라의 경사지 뭐니》, 《장작이 알아서 탄다》하는 우스갯말들이 줄을 이였고, 개중에는 《이쯤되면 진짜 가족 아니냐》하는 뭉클한 감상글도 적지 않았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을 지켜보던 나는 문득 이 상견례라는 자리가 마치 온 나라의 이목이 쏠린 대사변이라도 되는 양 다루어지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두 남자와 어머니 하나를 모아놓고 곽밥이나 나눠먹은것뿐인데, 사람들은 그 하루를 두고 몇해가 지나도록 두고두고 이야기할 자료로 삼았다.

시부키동지는 그 영상을 어디선가 보고는 합방 중 지나가듯 한마디를 던졌다. 《강지동지네 상견례 봤어요. 진짜 가족 다 되였던데요.》 나는 그 말에 웃어야할지 어쩔줄 몰라 그저 헛기침으로 얼버무렸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도 그 영상을 보고 대화창에다 《사장님 사위 두명이나 있으신거예요?》하고 짓궂은 물음을 남기였다고 미기가 전해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다가, 문득 회사안에서도 이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널리 퍼져있다는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돌이켜보면 오월 초의 그 《배그》 합방에서 어머니가 던진 한마디 사위감 백점이 없었더라면, 이 상견례라는 자리도 아마 열리지 않았을것이다. 사소해보이는 그 한마디가 보름 사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불려놓았으니, 우리끼리는 그것을 두고 《사변은 늘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는 우스개소리를 하고는 하였다.

촬영이 다 끝나고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박사와 블루동지는 또 한번 서로 앞다투어 어머니의 가방을 들어드리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그 모습에 껄껄 웃으며 《되였다, 내 가방은 내가 든다.》하고 두 사람의 손을 다 뿌리쳤다.

나는 어머니를 문앞까지 배웅하며, 두 남자가 그 뒤를 졸졸 따라나서는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광경이 하도 우스워서 나는 문을 닫고 돌아서자마자 한참을 소리내여 웃었다.

촬영이 끝나고 다들 돌아간 뒤, 나는 홀로 스튜디오에 남아 흩어진 방석과 다 식은 다과상을 정리하였다. 창밖에는 어느새 저녁볕이 붉게 물들고있었고, 낮 동안 그렇게 소란스러웁던 방안은 다시 콤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울리는 고요한 방으로 돌아가있었다.

나는 그 고요속에서 문득 오늘 하루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두 남자가 서로 어머니 옆자리를 다투던 모습도, 블루동지가 높임말을 흘리던 순간도, 어머니의 그 짧은 대답도, 하나같이 우습고도 따뜻한 장면들이였다.

그때는 이 하루가 그저 여러 내용물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이 페지를 쓰며 돌이켜보면, 그날은 가족이라는 낱말을 처음으로 이 《우결》이라는 이야기안에 정식으로 들여놓은 날이였다.

이 권의 제목을 《높임말을 벗다》로 삼은 까닭을 나는 이 상견례를 치르며 다시금 되새기였다. 블루동지가 그 몇달 앞서까지도 어머니앞에서만은 자꾸 높임말을 흘렸다는것은, 뒤집어보면 우리 둘 사이의 높임말은 이미 오래전에 벗어던져졌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어머니가 두 남자를앞에 놓고 진심으로 고맙다 말하던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화면 밖의 삶과 화면안의 이야기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는것을 깨달았다. 우스개로 시작한 상견례였으나 그 끝에 남은것은 결코 우습지만은 않은 온기였다.

나는 지금도 그날 탁자우에 놓여있던 곽밥과, 김박사의 능청스런 너스레와, 블루동지의 서툰 사투리와,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의 그 짧은 대답을 잊을수 없는것이다. 그날의 상견례가 앞으로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때의 우리는 아직 다 알지 못하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