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칸 나 와 유 니
우주29(2022)년(2022년)의 십이월도 스무날을 넘어서면서부터 날씨는 다시 한번 매서워졌다. 첫눈 뒤에 따라온 그 겨울의 추위는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사무실 창문에는 아침마다 성에가 뽀얗게 서리였다. 나는 그 성에 낀 유리창 너머로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내다보며 하루를 시작하는것이 그무렵의 버릇이 되여있었다.
사무실은 아직도 아홉 사람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채였다. 벽 한쪽에 붙여두었던 아홉장의 인물 원화가 그때까지도 그대로 붙어있었고, 콤퓨터 랭각기소리만이 그 휑한 방안을 채우고있었다. 나는 그 원화들을 하나씩 떼어내며, 이 방이 곧 또 무엇으로 채워질지 아직 아무런 그림도 그리지 못한채였다.
지난 절에서도 적었듯이, 나는 유니동지와 함께 그만두려던 칸나동지의 손을 다시 붙잡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든것이 끝난것은 아니였다. 손을 붙잡은 다음에는 그 손을 이끌고 어디로 갈것인가를 정해야 하였고, 그 물음앞에서 우리 세 사람은 다시 한번 머리를 맞대여야 하였다.
유메퍼센트라는 이름은 이미 열사흘 전에 세상에서 지워진 뒤였다. 아홉 사람이 함께 방송하던 그 이름을 다시 쓸수는 없는 노릇이였고, 그렇다고 아무 이름도 없이 방송을 계속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나는 그 겨울, 이름 하나를 다시 짓는 일이 이렇게까지 무거운 일인줄은 미처 몰랐었다.
십이월 스무나흘께, 나는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를 다시 그 좁은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창밖에는 성탄절을 앞둔 거리의 불빛이 희미하게 흘러들어왔으나, 그 불빛이 우리 세 사람의 마음까지 밝혀주지는 못하였다. 세 사람 모두 지난 열세달의 피로를 미처 다 씻어내지 못한 얼굴들이였다.
책상우에는 지난 방송에서 쓰다 남은 소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나는 그 소품들을 정리하다 말고, 아홉 사람이 앉았던 빈 의자들을 세개만 남기고 나머지를 창고로 옮겨두었다. 의자를 옮기는 그 짧은 일마저도, 그해 겨울의 나에게는 유난히 힘에 부치는 일로 느껴지였다.
칸나동지는 그 며칠 사이 몰라보게 말수가 줄어있었다. 본래도 낯을 가리는 성미였으나, 그때의 조용함은 낯가림과는 결이 다른 조용함이였다. 나는 그 조용함속에서 그가 아직 스스로의 마음을 다 추스르지 못하였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유니동지는 그와 반대로 평소보다 더 밝은 목소리를 냈다. 《사장님, 우리 이제 뭐 해요?》하고 서툰 조선말로 묻는 그 물음에는, 애써 밝게 꾸민 기색이 역력하였다. 나는 그 물음을 듣고서야, 이 두 사람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그 겨울을 견디고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셋이서 다시 해보자. 아홉이 아니라 셋이니까, 이번에는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해볼수 있을것이다.》 말을 뱉고나서도 나 스스로 그 말에 얼마만큼 확신을 가지고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신이 있건 없건, 이미 물러설 자리는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그 겨울에 처음으로, 사람이란 확신이 다 서지 않아도 발을 뗄수 있는 존재라는것을 배웠다. 오히려 확신이 다 서기를 기다렸더라면 우리는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였을것이다.
세 사람이 다시 뭉치기로 한 다음 맨 먼저 부딪친 문제는 다름아닌 이름이였다. 유메퍼센트라는 이름 석자를 지우고 나니, 우리에게는 정말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업자등록번호도, 방송도, 심지어 부를 이름조차도 새로 지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이 이름을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이틀 앞선 어느 저녁의 회의자리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날 저녁 우리 세 사람은 좁은 사무실 책상에 둘러앉아, 저마다 종이쪽지에 생각나는 이름들을 적어내려갔다. 그 자리의 공기는 무겁고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데가 있었다.
미기는 그날 저녁 회의 내내 종이컵에 커피를 타 나르며 세 사람의 눈치를 살피였다. 이름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일인가 싶으면서도, 나는 그 진지함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진지함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이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지였다.
내가 맨 먼저 종이에 적어낸것은 《라이브12》라는 이름이였다. 열해 남짓 방송이라는 한 우물만 파온 나로서는, 생방송이라는 본업을 이름에 그대로 담고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나 칸나동지가 그 종이를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하였다.
《12는 무슨 뜻이에요?》하고 칸나동지가 묻는말에,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저 수자가 하나 들어가면 그럴듯해 보일것 같다는,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궁색한 리유였을뿐이다. 결국 그 이름은 그자리에서 첫번째로 탈락하였다.
이번에는 칸나동지가 종이에 《클러치》라고 적어보였다. 위기의 순간에 결정적인 한방을 낸다는 그 말의 뜻이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니동지가 서툰 발음으로 그 이름을 몇번 되뇌더니, 《클, 클러, 클러치…》하며 혀를 씹고는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발음하기가 쉽지 않으면 애호가들이 부르기도 어려울것이라는 아주 실용적인 리유로, 《클러치》 역시 그자리에서 두번째로 탈락하였다. 나는 그때 이름이라는것이 뜻만 좋아서는 안되고 입에 붙어야 한다는것을 새삼 배웠다. 회사이름 하나 짓는 일에도 이렇게 여러 조건이 따라붙을줄은 미처 몰랐다.
세번째로 나온 이름은 《플로리스》였다. 꽃을 뜻하는 라틴말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누군가 설명하였는데, 정작 그 이름을 낸 사람이 나였는지 칸나동지였는지는 지금도 가물가물하다. 곱기는 고왔으나 어쩐지 우리 세 사람의 처지와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세 이름을 다 내려놓고도 우리는 여전히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지 못한채였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있었고, 사무실안에는 종이쪽지만 여러장 흩어져있었다. 그때 줄곧 말을 아끼고있던 유니동지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 하나 있어요.》 유니동지는 그렇게 운을 떼고는, 종이에 또박또박 《스텔라이브》라고 적어내려갔다. 서툰 조선말 발음으로 그 이름을 소리내여 읽는데, 어쩐지 그 어색한 발음마저 이름에 착 들러붙는것 같았다.
《별을 뜻하는 스텔라랑, 생방송을 뜻하는 라이브를 합친 거에요.》 유니동지는 그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방금 전까지 머리속에 어지럽게 떠돌던 여러 이름들이 한번에 자리를 잡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칸나동지도 그 이름을 몇번 소리내여 읽어보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예쁘다, 이거. 별이 뜬 밤에 방송하는것 같잖아.》 나는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밝아지는것을 보며, 이 이름이면 되겠다는 확신이 뒤늦게야 찾아왔다.
나는 그자리에서 곧바로 이름을 확정지었다. 《그래, 스텔라이브로 하자.》 그 한마디로, 그날 저녁 우리를 그토록 애태우던 이름짓기 소동은 어이없을만큼 싱겁게 끝이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나라의 국호를 정하는 자리도 아니고 겨우 세 사람짜리 소모임의 이름을 정하는 자리였는데, 우리는 그날 저녁 마치 력사에 길이 남을 국호를 의논하는 사람들처럼 진지하였다. 유니동지는 후날 이 일을 두고 자신이 회사이름을 지은 사람이 되였다며 두고두고 자랑하였다.
다시 그날, 그러니까 십이월 스무여드레로 돌아가면, 우리는 그 이름을 손에 쥐고 정식으로 재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유메퍼센트 시절 함께하였던 아홉 사람 가운데 오직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두 사람만이 이 새로운 이름 아래 다시 나와 손을 잡았다. 나머지 일곱 사람은 저마다 다른 길을 찾아 떠났고, 그 갈라짐에 대해서는 지금도 나는 그저 각자의 선택을 존중할뿐이다.
재계약서라고 해야 대단할것도 없는, 종이 몇장에 지나지 않는 서류였다. 그러나 우리 세 사람은 마치 두 나라의 대표가 마주앉아 조약이라도 맺는듯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어보았는데, 서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니동지가 픽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그 근엄함은채 일분도 가지 못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칸나동지의 서명하는 손끝이 아주 살짝 떨리고있는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나는 그 떨림이 두려움에서 오는것인지, 아니면 다시 시작한다는 설레임에서 오는것인지 굳이 캐묻지 않았다. 사람은 큰 결심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손끝이 정직해지는 존재인가보다.
유니동지는 서명을 마치고나서 펜을 내려놓으며 대뜸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우리 회사 사장님 두명이나 있어요?》 나는 그 서툰 조선말속에 담긴 뜻을 겨우 알아듣고서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사장은 나 하나뿐이라고 대답해주었으나, 그 우스개 덕분에 서명자리의 무거운 공기가 조금이나마 풀리였다.
미기는 그 서류들을 옆에서 하나하나 챙기며 도장이 제대로 찍혔는지 몇번이고 확인하였다. 《이번엔 진짜 잘 될것 같아요, 사장님.》 미기가 그렇게 말해주었을 때, 나는 열세달 전 사업자등록증을 받아들던 그날의 나 자신이 떠올라 잠시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날의 나와 이날의 나 사이에는 열세달이라는 시간과, 아홉 사람에서 세 사람으로 줄어든 인원과, 한번의 실패라는 무게가 고스란히 놓여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나를 짓누르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다잡아주는것 같았다. 한번 넘어져본 사람은 두번째로 일어설 때 다리에 힘을 더 주는 법을 아는가보다.
서명을 마친 뒤 우리 세 사람은 사무실 한켠에 둘러앉아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였다. 아홉 사람을 건사하던 살림을 세 사람의 살림으로 줄이는 일은 서글프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한결 가벼워진 홀가분함도 없지 않았다. 나는 그 홀가분함을 굳이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후날 누군가 우스개로, 우리 세 사람이 다시 뭉친 이 조촐한 시절을 두고 삼국시대라 불러도 나는 굳이 부인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 하나에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둘을 합쳐 셋이니, 나라라기엔 너무 작고 식구라기엔 조금 컸던 그 시절을 달리 무어라 불러야 할지 나 스스로도 아직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였다.
《이번엔 몇명으로 시작하는것니까, 진짜 가족같이 할수 있을것 같아요.》 칸나동지가 그렇게 말하였을 때, 나는 그 말속에서 지난 겨울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는 기척을 느낄수 있었다. 세 사람이라는 수는 작았으나, 그 작음이 오히려 서로를 더 촘촘히 여미어주는 힘이 되여줄것이라 믿고싶었다.
유니동지는 벌써부터 새 방송에 쓸 노래며 코너 이야기를 신이 나서 늘어놓았다. 《저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할거에요.》 서툰 조선말 사이사이로도 그 다짐만은 뚜렷하게 전해져왔다.
나는 두 사람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사장이라는 자리가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 자리인지를 그제서야 어렴풋이 깨닫고있었다. 아홉 사람을 한꺼번에 이끌려다 넘어졌던 나로서는, 이제 세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건사해보자는 마음을 새로 다잡을수밖에 없었다. 크게 벌리는것보다 작게라도 옹골차게 세우는것이 먼저라는것을, 나는 그 겨울에야 겨우 배웠다.
그러나 세 사람만으로 방송사를 꾸린다는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였다. 우리는 그날 저녁 밤늦도록 앞으로 몇 사람을 더 데려와야 방송이라는것이 굴러갈수 있을지를 두고 머리를 맞대였다. 이번에는 해외보다 한국안의 시청자들을 먼저 붙들어보자는데도 뜻을 모았는데, 아홉 사람의 살림을 꾸려본 경험이 있는지라 세 사람만으로는 오래 버틸수 없다는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있었다.
그날 우리는 이 조촐한 세 사람의 모임을 발판으로 삼아, 이듬해 정월에 새 얼굴들을 다시 세상에 내보이자고 다짐하였다. 그 다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얼굴들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다음 권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일이다. 다만 그 밤, 우리 셋은 그 다짐 하나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칸나동지는 그날 밤 오랜만에 노래 한소절을 흥얼거렸다.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모습을, 나는 그 겨울 내내 거의 보지 못하였었다. 나는 그 흥얼거림 하나로, 이 사람이 다시 노래할 힘을 찾아가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칸나동지는 본디 해리 포터 이야기와 호시노 겐의 노래를 즐겨 듣는 사람이였다. 유메퍼센트 시절에는 방송 사이사이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일이 잦았으나, 회사가 무너진 뒤로는 그 흥얼거림마저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 노래 한소절이 다시 흘러나온 그 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유니동지는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 다루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자꾸 풀어놓으려 하였다. 《다루가 되게 사나운데요, 그래도 저한테는 안 그래요.》 그 엉뚱한 자랑에 칸나동지와 나는 오랜만에 소리내여 웃었다.
유니동지는 조선말을 배운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터라, 문장 끝맺음이 늘 조금씩 서툴렀다. 그러나 그 서툰 말투로도 하고싶은 말은 거침없이 다 하는것이 유니동지의 됨됨이였다. 나는 그 됨됨이가 오히려 이 작은 회사를 다시 일으켜세우는데 큰 힘이 되리라고 그때 어렴풋이 짐작하였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그날의 회의를 마무리지었다. 창밖에는 성탄절을 사흘 앞둔 거리의 불빛이 여전히 반짝이고있었으나, 그 불빛을 보는 우리 세 사람의 마음은 며칠 전과는 사뭇 달라져있었다. 나는 그 달라진 마음을 무어라 이름붙여야 할지 몰라 그저 가슴 한켠에 담아두었다.
유니동지는 우리 어머니와도 가족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그 겨울 어머니는 유니동지의 손을 잡으며 《우리 유니, 이번에도 잘 해보자》하고 다독여주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뒤늦게 전해들었다. 낯선 나라에 홀로 건너와있는 유니동지에게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였을지는, 나 스스로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재계약을 마친 다음날부터 나는 새 회사의 껍데기를 채우는 일에 매달렸다. 사업자등록을 다시 하고, 계좌를 다시 트고, 페지를 다시 만드는 일들이 하나같이 낯익으면서도 낯설었다. 한번 해본 일을 두번째로 하는데도, 그 일 하나하나가 새삼스럽게 무겁게 느껴지였다.
그런가하면 이 모든 절차 뒤에는 늘 미기가 있었다. 미기는 서류더미를 끌어안고 이 부서 저 부서를 오가면서도 낯빛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나는 미기를 볼 때마다, 내 오른팔이라는 말이 결코 지나친 표현이 아니라는것을 거듭 확인하였다.
십이월 그믐께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겨우 서류상의 일들을 어지간히 마무리지을수 있었다. 창밖에는 한해의 마지막 눈이 소리없이 내려앉고있었다. 나는 그 눈을 바라보며, 한해를 이렇게 갈무리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밤 자정무렵,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새해를 맞았다. 온 나라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그 소리를, 나는 그해만은 유난히 무겁게 받아들이였다. 세 사람의 작은 회사도 이 종소리와 함께 묵은 실패를 떨쳐내기를,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빌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겨울의 나는, 스스로도 모른채 두가지 마음을 함께 품고있었다. 한켠에는 유메퍼센트를 접었다는 자책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다른 한켠에는 스텔라이브라는 새 이름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가 자라나고있었다. 그 두 마음이 그해 겨울 내 안에서 늘 나란히 걸어다녔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작은 회사 하나가 이름만 바꾸어 다시 문을 연 일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조촐한 재계약서 한장이,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것을 몸소 확인시켜준 첫 증거였다. 나는 그 증거 하나를 붙들고 그해 겨울을 무사히 넘길수 있었다.
후날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이 시절을 두고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우리가 잘할수 있고 좋아하는것을 할것이다.》 담담하게 적힌 그 한문장 뒤에는, 라이브12와 클러치와 플로리스라는 이름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에 다다르기까지의 그 겨울밤이 고스란히 눌려있다는것을, 아마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 가운데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을것이다.
세 사람으로 시작한 이 조촐한 재기가 후날 여러 기수를 거느린 큰 살림으로 불어나리라는것을, 그 겨울의 우리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듬해 정월 새 얼굴들을 세상에 내보이고, 그해 봄에는 정식으로 법인의 문패를 다는 날이 오리라는것도, 그때는 그저 먼 후날의 일로만 여겨졌다. 사람의 앞일이란 이렇게, 눈앞의 눈송이 하나만큼도 미리 헤아리기 어려운 법인가보다.
나는 지금도 그해 십이월 스무여드레를 스텔라이브의 진짜 생일로 여긴다. 세상에 알려진 법인 설립일보다 이 조촐한 재계약의 날짜를 먼저 꼽는 까닭은, 그 하루가 없었더라면 그 뒤의 어떤 날짜도 존재할수 없었을것이기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간판이 걸리는 날만을 기억하지만, 나는 간판을 걸기로 마음먹은 그 조용한 날을 더 오래 기억한다.
그해의 마지막 밤, 나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 새로 걸어놓은 《스텔라이브》라는 종이팻말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직 정식 간판도 아닌, 그저 종이우에 손글씨로 적어 붙여놓은 팻말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그 허름한 종이팻말앞에서, 열세달 전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벅참을 느끼였다.
창밖에는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 대신 이웃한 거리의 성탄절 캐롤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 노래소리를 들으며, 이듬해에는 이 세 사람의 이름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을수 있을지 가만히 그려보았다. 그 그림이 실제로 얼마나 크게 자라날지는, 그때의 나로서는 짐작할 방도가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면, 그해 겨울의 나는 참으로 여러번 무너지고 여러번 다시 일어섰다. 첫 실패에 무너졌다가, 칸나동지의 손을 붙잡으며 겨우 일어섰고, 이름 하나를 짓지 못해 또 한번 헤매였다가,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앞에서 다시 일어섰다. 사람이 다시 일어선다는것은 이렇게, 단 한번의 몸짓이 아니라 여러번 되풀이되는 몸짓이라는것을 나는 그 겨울에 배웠다.
이듬해 정월, 우리는 이 조촐한 세 사람의 이름으로 새로운 얼굴들을 세상에 내보이게 된다. 그 첫 데뷰의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 권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일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 모든 시작이, 우주29(2022)년 십이월의 어느 서느런 사무실에서, 종이쪽지 몇장과 세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였다는 사실만을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