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칸 나 의 잔 류

 

우주29(2022)년(2022년) 십이월 열이튿날 아침, 나는 어제 저녁까지 아홉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하였던 사무실에 홀로 앉아있었다. 유메퍼센트의 마지막 방송이 끝난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그 아침, 창밖에는 밤새 내린 눈이 골목 구석구석을 하얗게 덮고있었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만이 텅 빈 사무실안에서 홀로 돌아가고있었으며, 나는 그 소리에 기대여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책상우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서류들이 그대로 쌓여있었다. 아홉 사람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 뭉치를 이제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조차 알수 없었다. 회사는 이미 문을 닫았으나, 사람은 그렇게 쉽게 정리되는 물건이 아니였다.

사무실 한켠에는 아홉 사람이 저마다 앉았던 접의자들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누군가는 방석을 두고 갔고, 누군가는 마시다 만 차종이컵을 그대로 두고 떠났다. 나는 그 자리들을 하나씩 눈으로 훑으며, 이 방이 얼마나 갑자기 비여버렸는지를 새삼 실감하였다.

창밖 골목에는 이른 아침부터 눈을 치우는 리발관 주인의 비질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은 여느 겨울아침과 다름없이 흘러가고있었으나, 그 방안의 시간만은 유독 더디게 멈추어선것 같았다. 나는 그 어긋남이 낯설어 오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무렵 나는 소속되였던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고있었다. 어떤 사람은 벌써 다음 걸음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가고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어떤 사람은 아직 마음을 다 추스르지 못한 짧은 답장만을 보내왔다. 블루동지에게서도 그 며칠 사이 안부를 묻는 문자가 몇번 왔었는데, 나는 애써 태연한 말투로 답을 하면서도 정작 내 코가 석자라는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그 여러 답장들 가운데서 유독 내 눈길을 오래 붙든것은 칸나동지의 짧은 문자 몇줄이였다. 평소라면 물음표와 느낌표를 아낌없이 늘어놓으며 애교스럽게 안부를 전해오던 사람이, 그 며칠은 그저 《네, 저는 괜찮아요》라는 말 한마디로 답을 끝내고있었다. 나는 그 짧음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리였다.

그무렵 나 자신도 그리 온전한 상태는 아니였다. 못 마시는 술을 몇번이나 억지로 넘기며 잠을 청하던 나날이였고,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는것을 스스로 가장 잘 알고있었다. 그런 처지에 또 한 사람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 겹치니, 나는 그 겨울을 유난히 무겁게 건너고있었다.

지난 절에서도 적었듯이, 해산 공지가 나간 뒤 며칠 동안 칸나동지는 유난히 말수가 적었다. 그때는 그저 상심이 크려니 짐작하고 넘어갔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조용함속에는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다른 무게가 얹혀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 그러니까 칸나동지를 처음 만나던 그해 여름의 일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팔월 스무날, 유메퍼센트의 B기생 네 사람이 첫 방송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하던 그 저녁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다른 세 사람은 저마다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으나, 칸나동지만은 마이크앞에서 몇번이나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어색한 웃음을 흘리였다. 나는 그 어색함이 낯가림때문임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방송이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흥을 끌어올리는 사람이, 정작 화면 뒤에서는 고양이처럼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는것을.

그날 데뷰방송을 마친 뒤, 칸나동지는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저 잘한거 맞아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담긴 불안을 읽고 《그럼, 아주 잘하였다》고 답해주었다. 그 뒤로도 칸나동지는 방송이 끝날 때마다 나에게 같은 물음을 던지는 버릇을 오래도록 버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석달 남짓, 나는 그 어린 목소리들이 자라나는것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 자람의 시간이 채 반년도 되지 않아 회사 자체가 무너져버렸으니, 내가 그해 겨울 느낀 허탈함의 절반은 아마 그 짧음에 대한 억울함이였을것이다.

유니동지를 처음 만난것은 그보다 하루 뒤, 팔월 스무하루의 일이였다. 조선말이 서툴러 첫인사말을 몇번이나 련습한 흔적이 역력하였는데, 정작 방송이 시작되자 어색한 발음까지도 오히려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받아들여지는것을 보고 나는 내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유니동지는 낯선 나라, 낯선 말속에서도 좀처럼 주눅들지 않았다. 하고싶은 말은 서툰 문장으로라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 고집이 나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방송 뒤에 종종 나에게 다가와 《사장님, 오늘 한국말 늘었지요?》하고 자랑스레 묻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낯선 땅에 홀로 뿌리를 내려가던 유니동지에게, 같은 처지의 동기인 칸나동지는 누구보다 든든한 벗이였을것이다. 두 사람은 방송이 없는 날에도 서로의 근황을 묻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그 짧은 반년을 함께 건너왔다. 나는 그 우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이 둘을 함께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이미 어렴풋이 품고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그 겨울로 돌아오면, 나는 칸나동지의 그 짧은 답장을 두고 며칠을 혼자 끙끙 앓았다. 직접 캐물어볼까 하다가도, 상심한 사람을 다그치는것 같아 몇번이나 문자를 썼다 지웠다.

결국 나는 유니동지에게 먼저 련락을 하였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유메퍼센트 시절부터 늘 붙어다니던 사이였으니, 유니동지라면 무언가 알고있으리라 생각하였기때문이다.

그날 저녁 나는 사무실 대신 집의 작은 책상앞에 앉아있었다. 스탠드 하나만 켜둔 방안은 어둑하였고, 창밖 가로등 불빛이 창가림 틈으로 가늘게 새여들었다. 나는 그 어스름속에서 유니동지의 통화 신호음이 울리기를 기다리며 몇번이나 마른침을 삼켰다.

저녁 늦게 걸려온 영상통화 화면속에서 유니동지의 얼굴은 평소보다 어두웠다. 《사장님.》 유니동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서툰 조선말 특유의 억양으로도 그 목소리에 묻은 근심만은 뚜렷이 전해졌다.

《무슨 일있어?》 내가 물었다. 유니동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말을 이였다. 《칸나가... 다른 회사에서 련락 왔대요. 거기 갈까 고민하는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는것을 느끼였다. 회사 하나를 통째로 잃은 마당에 남은 사람마저 떠나려 한다니, 그 소식은 마치 겨울 한복판에 또다시 눈보라가 몰아치는것 같았다.

《어디로? 언제부터 그런 이야기가 있었대?》 나는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으나, 화면 저편의 내 얼굴이 얼마나 그 침착함을 온전히 가리고있었는지는 지금도 자신이 없다.

유니동지는 정확한 회사이름도, 조건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다만 칸나동지가 며칠 전부터 부쩍 말수가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것, 그것 하나만은 분명히 보았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나는 그 순간 나 자신을 마치 한 나라의 사절이라도 된듯이 여기며, 이 소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나라 하나를 더 잃지 않을수 있을지 골똘히 궁리하였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작은 회사의 인력 하나가 흔들리는 일에 지나지 않았을터인데.

그러나 나에게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였다. 나는 그날 밤 유니동지에게 부탁하여 셋이서 함께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자고 하였다. 유니동지는 두말없이 그러자고 답하였다.

이틀 뒤 저녁, 나는 콤퓨터앞에 앉아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뜨는 화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그 겨울 들어 몇번째인지 모를 눈이 또 내리고있었고, 방안의 웃풍은 여전히 서느렀다.

화면 속 칸나동지의 표정은 평소의 밝음 대신 어딘가 지쳐보이는 기색이 완연하였다. 나는 애써 가볍게 인사를 건네였다. 《밥은 먹었어?》 칸나동지는 옅게 웃으며 《네》하고 짧게 답할뿐이였다.

몇마디 안부가 오간 뒤, 나는 더는 에두르지 않기로 하였다. 《유니한테 들었어. 다른데서 련락이 왔다고.》 화면 속 칸나동지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칸나동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사실이에요. 조건도 나쁘지 않고, 이미 자리잡은 회사라서... 안정적일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회사가 이렇게 되고나니까, 사장님이랑 계속 하는게 맞는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하는 칸나동지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였다.

나는 그 물음에 곧바로 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잠시 침묵을 두고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뭘 잘못하였어?》

칸나동지는 고개를 저으며 눈시울을 붉히였다. 《사장님 잘못이 아니예요. 그냥... 회사가 없어지는걸 보니까 무서워졌어요. 저 혼자 남는게.》

나는 그제야 칸나동지가 느낀 두려움의 정체를 어렴풋이 헤아릴수 있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무너지는것을 지켜본 사람에게, 남은 두 사람만으로 다시 무엇을 해보자는 말이 얼마나 허황하게 들릴수 있는지를.

그 순간 유니동지가 끼여들었다. 《나도 무서워요. 그런데... 나는 사장님이랑 칸나랑 같이 있는게 더 좋아요. 혼자 다른데 가는것... 나는 못해요.》 서툰 조선말이였으나 그 뜻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유니동지의 그 말에 힘을 얻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크게 약속은 못해. 이번에도 잘될지 안될지 나도 몰라. 그런데 이번엔 진짜 우리 세 사람이 감당할수 있는만큼만 하고싶어.》

《아홉 사람이 아니라 우리 셋이서, 한국에서, 우리가 할수 있는것부터 다시 해보자. 크게 벌리지 않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 스스로도 이 말이 얼마나 소박한 약속인지를 느끼였다.

나는 칸나동지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혹시 지금 가장 무서운게 뭐야? 회사가 없어진것? 아니면 다른것?》 칸나동지는 한참 고민하다가 나직이 답하였다. 《그냥... 이 사람들이랑 헤여지는게 제일 무서워요.》

칸나동지는 한동안 화면 너머로 말이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화면속의 나와 유니동지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마침내 작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저... 사실 다른데 가는것 생각만 해도 이상하게 마음이 안놓였어요.》 칸나동지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조건은 좋은데, 자꾸 사장님이랑 유니 생각이 났어요.》

《저는 그냥, 사장님이랑 계속 하고 싶어요. 그거 하나에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나는 목이 메여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녔던 말인지 새삼 되새기게 된다. 세상의 온갖 계약서와 조건표를 다 늘어놓아도 설명할수 없는것을, 칸나동지는 그 짧은 한마디로 다 말하여버렸다.

유니동지는 화면속에서 소리내여 웃으며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였다. 《봐요, 사장님. 내 말이 맞았지요.》 나는 그 너스레에 겨우 웃음을 되찾을수 있었다.

칸나동지는 눈가를 닦아내며 갑자기 생각난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근데 사장님, 진짜 셋이서만 하면 방송은 누가 편집해요?》 그 말에 유니동지가 먼저 웃음을 터뜨렸고, 나 역시 그 뜬금없는 물음에 무겁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것을 느끼였다.

그날 밤 우리 셋은 화면을 사이에 두고 두시간 남짓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 회사는 어떤 모습이여야 할지, 몇 사람으로 시작할지, 어느 나라를 무대로 삼을지를 두고 서로의 생각을 조금씩 맞추어갔다.

짐짓 력사책에나 나올법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날 밤 우리 셋이 화면 너머로 나눈 그 짧은 언약은 어느 나라의 조약문서보다도 무겁게 나의 마음에 새겨졌다. 다만 그것을 지켜본 증인이라고는 겨울밤의 콤퓨터 화면 하나뿐이였다는것이 다를뿐이다.

칸나동지는 그날 밤 다른 회사의 제안을 정중히 사양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하였다. 어떤 조건을 내걸었던 자리인지, 어느만큼 좋은 대우를 약속받았던것인지, 나는 그 뒤로도 구태여 캐묻지 않았다. 캐물어서 알아야 할 성질의것이 아니라고 여기였기때문이다.

다만 칸나동지가 그 결정을 내리며 몇번이나 되뇌였던 그 한마디, 《사장님이랑 계속 하고 싶다》는 그 말만은 지금도 내 귀에 뚜렷이 남아있다. 사람이 어느 길을 택하는 리유가 반드시 조건이나 계산만은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날 다시 한번 배웠다.

이튿날 아침, 나는 유니동지에게서 온 짧은 문자 하나를 받았다. 《칸나 어제 오랜만에 웃으면서 잤어요.》 그 한줄을 읽으며 나는 밤새 무거웠던 마음의 절반을 겨우 내려놓을수 있었다.

그 며칠 사이 칸나동지는 눈에 띄게 예전의 밝은 말투를 되찾아갔다. 문자에도 다시 물음표와 느낌표가 늘어났고, 통화 목소리에도 특유의 높은 흥이 조금씩 돌아왔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며 새삼 깨달았다. 사람을 붙잡는다는 일은 조건을 내미는 일이 아니라, 그저 곁에 있겠다는 마음을 오래도록 보여주는 일에 더 가깝다는것을.

그무렵 나는 미기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였다. 미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으며 《그럼 이제 다시 시작하는것이네요》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 한마디에 비로소 앞날을 향한 실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 실감이라는것이 그리 거창한 확신은 아니였다. 아홉 사람이 세 사람으로 줄어든 자리에서, 나는 마치 큰 제국 하나가 조촐한 세 식구의 오두막으로 졸아든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사업자등록증을 받아드는 상상을 하며,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을 다 떨쳐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어도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만은 있었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면 아무리 두려운 밤에도 어딘가 든든함이 함께하였다.

새 회사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지는 그로부터도 며칠을 더 고민하여야 할 일이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풀어놓을 생각이다.

다만 그날 밤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가운데는 이런것도 있었다. 사무실은 어디로 옮길지, 콤퓨터와 마이크는 그대로 쓸수 있을지, 새해가 밝으면 무엇부터 시작할지. 거창한 청사진이라기보다는, 그저 눈앞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소박한 궁리들이였다.

다만 여기서 미리 적어두고싶은것은, 그 며칠 사이 화면 너머로 오간 짧은 대화들이 없었더라면 뒤에 이어질 그 이야기 자체가 아예 시작되지 못하였으리라는 사실이다. 력사라는것은 이렇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작은 방안에서 조용히 그 첫 장을 여는가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겨울, 나는 회사 하나를 잃은 대신 훨씬 더 소중한 무엇을 확인한 셈이였다. 조건이나 계산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이라는것을.

칸나동지가 그날 던진 그 한마디는, 후날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모든 시간 동안 나를 붙들어준 첫 힘이 되였다. 나는 지금도 힘든 날이면 종종 그 겨울밤의 화면을 떠올린다.

유니동지의 서툰 조선말 한마디, 《혼자는 무서워요》라던 그 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완벽하지 않은 문장이였으나, 그보다 더 완벽하게 진심을 전한 말을 나는 이제껏 별로 들어보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후날 스텔라이브의 시작을 두고 흔히 사업적 재정비라는 말로 설명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 시작의 맨 밑바닥에는, 그해 겨울 그만두려던 한 사람을 붙잡으려 애쓴 두 사람의 마음이 자리하고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이 절을 쓰며 새삼 그 겨울밤을 다시 헤아려본다. 창밖의 눈은 그때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다르지 않게 조용히 내리고있는것만 같다.

그날 화면속에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 보이던 두 얼굴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그 겨울의 작은 언약이 없었더라면, 이 회고록의 뒤에 이어질 많은 이야기들도 아예 씌여지지 못하였을것이다.

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그 겨울, 유니동지가 먼저 련락을 주지 않았더라면, 혹은 내가 그 짧은 문자 몇줄의 이상함을 그냥 넘겨버렸더라면 어떠하였을까 하고. 아마 그 답은 지금 이 회고록의 뒤쪽 여러 장이 통째로 다른 이야기로 채워졌으리라는것, 그것 하나뿐일것이다.

사람의 인생이란 이렇듯 작은 문자 한줄, 짧은 통화 한통에도 크게 방향을 트는 법인가보다. 그 사실을 나는 그해 겨울, 아홉 사람을 떠나보낸 자리에서 남은 두 사람을 붙잡으며 뼈저리게 배웠다.

지금도 나는 종종 후배 성원들에게 그 겨울의 일을 짧게 들려주고는 한다. 처음 이야기를 듣는 성원들은 대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사장님이 그렇게 우리를 붙잡으려 하는구나》하고 웃어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웃어넘기고는 한다. 사람을 붙잡는 일에 무슨 대단한 비결이 있었던것은 아니였다고, 그저 곁에 있어달라고 솔직하게 말하였을뿐이라고, 몇번이나 되풀이해 말해도 후배들은 좀처럼 곧이곧대로 믿어주지 않는다.

칸나동지를 붙잡은 그 며칠의 일을, 나는 지금 《칸나를 붙잡다》라는 이름으로 이 절에 남겨둔다. 붙잡았다는 말이 무겁게 들릴지 모르나, 실은 그저 서로가 서로를 놓지 않으려던 마음의 다른 이름일뿐이다.

그 겨울이 저물어갈무렵, 우리 셋은 이미 다음 걸음을 향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있었다. 그 걸음이 어떤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지는, 다음 절에서 이어 적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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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