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유 니 의 리 액 션
우주32(2025)년 늦은 봄, 사무실 창밖에는 벚꽃이 다 지고 신록이 우거지고있었다. 나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콤퓨터앞에 앉아 결재서류와 대화창을 번갈아 들여다보고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훈훈하였고 건물아래 도로에서는 오가는 차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나는 원래 저혈압이 있어 아침이면 몸이 무겁고 정신이 늦게 드는 편이였다. 그러나 그날은 이상하게도 일찍부터 정신이 맑았다. 봄이 되면 으례 그러하듯, 어디선가 새로운 소동 하나가 굴러들어올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성원들의 방송 일정표가 붙어있었고, 그 옆 화면에는 늘 그렇듯 여러 방송의 대화창이 조그맣게 띄워져 흘러가고있었다. 나는 그 화면들을 곁눈으로 살피는 버릇이 몸에 배여있었다. 회사를 맡은 사람의 하루란 대개 그렇게 작은 창들을 번갈아 들여다보는 일로 채워지는 법이다.
이무렵 우리 회사에는 크고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칸나동지가 봉사기안의 부정행위 소동으로 흔들릴 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어준것도, 그 손내밈에서 《아빠》라는 말이 성원들 사이에 퍼져나간것도, 블루동지의 사격 순위표에서 칸나동지가 딸답게 높은 자리에 오른것도 다 그 앞뒤로 있었던 일들이다. 그런데 나는 본래 이 부에서 그런 딸들의 어린 시절 일을 차례로 적어나가야 마땅할것이다. 그러나 회고록을 쓰는 손은 때로 세월의 순서를 거스르는 법이다. 예서 몇해를 건너뛰여 후날에 있었던 한가지 일을 먼저 적어두지 않으면 안되겠다. 그 일을 알아야 이 장의 이름 《아빠, 라고 불리다》가 정말 무엇을 말하는지 온전히 알수 있기때문이다.
미기가 문도 두드리지 않고 사무실로 불쑥 들어왔다. 오른팔이라 부르는 사람답게 언제나 발이 빨랐다. 미기는 콤퓨터화면을 내 앞으로 들이밀며 이것좀 보라고 하였다. 표정이 심상치 않아 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몸을 돌려앉았다.
화면에는 에펨코리아라는 게시판의 글 하나가 떠있었다. 제목만 보아서는 대수롭지 않은 클립 소개글 같았다. 그러나 조회수 자리에 찍힌 수자가 벌써 4만을 넘어서고있었다. 45,646회, 추천은 95였다.
나는 대체 무슨 클립이길래 이렇게 조회수가 뛰였는가고 무심코 물었다. 미기는 대답 대신 웃음부터 터뜨렸다. 그 웃음이 심상치 않아 나는 슬며시 불안해졌다. 회사를 맡아 몇해를 겪다보면 그런 웃음뒤에는 대개 곤란한 사변이 뒤따른다는것을 알게 된다.
화면을 눌러보니 원래 자리는 《치지직》의 클립이였다. 그것을 다시 잘라 올린 사람은 유니였다. 정확히는 유니 자신이 방송중에 무슨 옛 영상을 보다가 반응한 대목을, 누군가 편집하여 게시판에 옮긴것이였다. 나는 그제서야 사태를 짐작하였다.
유니가 보고있던 그 옛 영상이란 다름아닌 나와 블루동지가 함께 하던 그 시절의 《우결》 클립이였다.
이 대목을 말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해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나와 블루동지가 처음 《우결》이라는 이름의 방송을 시작한것은 우주25(2018)년무렵이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강지 님》, 《블루 님》이라 깍듯이 부르며 높임말을 놓지 않았다. 영상 제목마다 물음표와 느낌표가 잔뜩 붙어있었고 시청자들은 두 사람이 정말 그런 사이인지 아닌지를 두고 게시판에서 갑론을박을 벌이군하였다.
그 시절의 영상 제목들을 지금 다시 들추어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 《요즘 한창 물오른 이 커플ㅁㅇㅁㅇ?!》, 《강지 님~ 귀엽기는~》 같은 제목들이 줄줄이 이어져있었다. 그때는 그저 하루하루의 내용물였을 뿐인데, 지나고보니 그 하나하나가 우리 두 사람의 력사였던 셈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 겨울, 사귄지 오백일이 되였다는 자막과 함께 블루동지가 처음으로 나를 《누나》라 불렀다. 나는 그날부터 블루동지를 《바이비》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지금 와서 그 호칭이 어디서 왔는지 굳이 설명하자면 애칭이라는 말밖에 달리 할말이 없다.
호칭이 바뀐 뒤로는 영상 제목도 한결 대담해졌다. 《블루 오빠Yee..!!》라는 제목으로 내가 처음 오빠라는 말을 썼던 날도 있었고, 《귀엽다고 말해!》처럼 서로 귀엽다는 말을 대놓고 주고받는 제목도 늘어갔다. 시청자들은 그런 우리를 두고 강블지루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르며 즐거워하였다.
그뒤로 우리 《우결》은 여러해를 이어갔다. 어머니가 나서서 블루동지에게 사위감으로 백점을 준다는 소동이 있었고, 지인 강수는 자기가 매제가 된다며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불렀다. 실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배그》를 해본 날도 있었고, 두 남자와 어머니를 모시고 상견례라는 이름의 방송을 꾸민 날도 있었다. 이 모든것이 방송이라는 무대우에서 벌어진 일이였으나, 그 무대를 진심으로 사랑해준 시청자들앞에서만은 우리도 마치 진짜인양 성실하게 그 배역을 살았다.
현실에서 손을 잡기까지는 육백일이 걸렸다는 제목이 붙었던 날도 있었다. 그날의 현실 합방은 한때 전 세계 《트위치》 시청자수 이등을 찍었다는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얻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 카메라 뒤에서 손을 맞잡던 그 어색하고도 떨리던 감촉을 잊지 못한다.
그러고보면 그 시절 방송이 끝난 뒤에는 서로의 야식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잦았다. 나는 떡볶이와 뿌링클이라면 사족을 못썼고, 블루동지는 매운것도 단것도 잘 먹지 못해 늘 애를 먹었다. 그런 사소한 차이들까지도 그때는 방송의 소재가 되였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대로 정다운 기억이 되여있다.
《우결》은 우주27(2020)년 10월 6일 저녁에 막을 내렸다. 어이하여 그날 막이 내려야 하였는지, 그 통사정을 나는 지금도 다 풀어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때까지 우리가 할수 있는만큼 해보았고 더 미련을 둘 자리가 없었다는것만은 분명히 말할수 있다.
그러나 막이 내린뒤에도 호칭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두달뒤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조차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였을 정도였으니, 몸에 밴 말버릇이라는것이 얼마나 질긴것인지 알만하였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다시 그 봄날의 사무실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미기가 들이민 클립을 끝까지 눌러보았다. 화면속의 유니는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 옛 영상을 보고있었다.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심드렁한 얼굴이였으나 화면속 블루동지가 나에게 누나라 부르는 대목에 이르자 순식간에 표정이 달라졌다.
유니의 눈매가 접히듯 휘어졌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까지 내며 몸을 뒤로 젖혔다. 나는 그 표정을 몇번이나 되돌려보았다. 딸이라 여기는 사람이 제 엄마의 옛 련애사를 구경하며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이라니, 웃어야 할지 부끄러워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더 우스운 대목은 그다음이였다. 화면속 옛 영상에서 블루동지가 무어라 다정한 말을 건네자, 유니는 마시던것을 그대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입가에 흘리고말았다. 그러고는 황급히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그 장면 하나로 게시판이 뒤집어졌다는것을 나는 감상글을 읽고서야 알았다.
감상글난에는 이런 말들이 줄지어 달려있었다. 《딸들이 계속먹이는 《우결》 ㅋㅋㅋㅋㅋ》, 《유니 눈매 휘어지는것 진짜 ㅋㅋㅋㅋㅋ》, 《침 흘리다가 삼키는건 진짜 찐이네 ㅋㅋ》. 그 가운데 《5년 계약은 신이고 무적이니까》라는 감상글도 있었는데,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나도 다 헤아리지 못하였으나 애호가들 사이의 농담인듯하였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읽으며 새삼 실감하였다. 우리 성원들 사이에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나를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버릇이 굳어져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 말을 손사래치며 부인하였으나, 이날의 소동을 보고나서는 더는 부인할 재간이 없었다.
딸이 엄마의 옛 련애시절을 몰래 훔쳐보며 저렇게 좋아라 웃는것, 그것은 어느 집안에서나 있을법한 다정한 풍경이 아니겠는가. 다만 우리 집안의 그 풍경이 조회수 4만5천을 넘겨 만천하에 공개되였다는 점이 남달랐을뿐이였다.
나는 곧바로 블루동지에게 그 클립을 보내며 메세지를 적어보냈다. 《이거 봤어? 유니가 우리 옛날 영상 보고 아주 뒤집어졌던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ㅋㅋㅋㅋㅋ 봤음. 나도 방금 채팅창에서 란리난거 보고 알았음.》
나는 웃음이 나서 곧장 다시 물었다. 《부끄럽지도 않아? 딸이 아빠 옛날 련애하는것 다 보고있는데.》
블루동지의 답은 한참뒤에야 왔다. 《누나, 그거 옛날 얘기잖아. 근데 유니가 저렇게 좋아하는것 보니까 나도 기분이 묘하네.》 그 한마디속에 《누나》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섞여있는것을 보고, 나는 몇해가 지나도 이 버릇만은 여전하구나 하고 혼자 웃었다.
글을 주고받는 사이에 대화창은 더 시끄러워졌다. 히나동지와 타비동지도 그 클립을 보았는지, 저희들끼리 합방을 켜놓고 아빠가 젊었을 때는 저런 얼굴이였냐며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블루동지에게 아빠라는 말을 처음 붙인 성원이 칸나동지였다는것을 생각하면, 그 아빠의 옛사랑을 놀리는 딸들이 이렇게 하나둘 늘어가는것도 어쩐지 순리처럼 느껴졌다.
그날 오후 늦게 유니가 직접 사무실로 찾아왔다. 문을 열자마자 유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엄마, 저 오늘 사고쳤어요》하고 먼저 실토하였다.
나는 짐짓 엄한 얼굴을 해보이며 물었다. 《무슨 사고를 쳤길래?》
유니는 손가락사이로 눈만 빼꼼 내놓고 대답하였다. 《방송하다가 옛날 클립 보다가... 저도 모르게 그만... 죄송해요, 근데 진짜 너무 웃겨서 참을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제서야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아니야, 뭐가 죄송해. 오히려 반가운데. 우리 딸이 엄마 옛날 련애사까지 챙겨봐주고 말이야.》
유니는 그제야 손을 내리고 마주 웃었다. 《근데 진짜 신기하였어요. 블루동지랑 그렇게 다정하였던 시절이 있었다는게. 지금도 가끔 반사적으로 누나라고 하시는것 보면 그때 버릇이 아직 남아있는것 같아요.》
나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근데 너는 그 영상을 어떻게 보게 된거야?》 유니는 머쓱한듯 뒤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예전부터 팬분들이 채팅으로 몇번 얘기해주였는데, 이번에 진짜 궁금해서 한번 찾아봤어요. 근데 생각보다 영상이 너무 많아서 저도 놀랐어요.》
나는 그 말에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어쩌면 유니의 말이 맞을것이다. 몇해가 지나도 몸에 밴 말버릇이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이니까.
유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근데 엄마, 그때 진짜 좋아하였어요? 아니면 그냥 방송이였어요?》 나는 그 질문에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송이였다고 하기에는 너무 진심이였고, 진심이였다고 하기에는 그것대로 설명할것이 많았기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렇게만 대답하였다. 《그때는 그때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야. 카메라가 있든 없든, 그 순간만은 진짜였어.》 유니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게시판의 감상글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았다. 개중에는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도 있었다. 우리가 굳이 나서서 무엇을 더 보태지 않아도 애호가들 스스로가 옛 추억에 다시 불을 지피고 즐거워한다는 뜻이였을것이다.
나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몇해 전 방송에서 진심으로 살아냈던 그 시절이, 시간이 지나 다음 세대의 성원들에게까지 즐거움을 건네주고있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였다.
후날 우리 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날을 두고 짐짓 거창하게 《옛사랑 부활사변》이라 이름붙여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농담삼아 붙인 이름일뿐, 실상은 딸 하나가 부모의 옛 영상을 보고 자지러지게 웃은것에 지나지 않는 소소한 하루였다.
그러나 나는 그 소소한 하루가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한 회사가, 한 식구가 몇해를 두고 자라왔다는 증거가 바로 그런 자리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처음 스텔라이브를 시작하던무렵에는 딸이라 부를 사람도, 엄마라 불릴 처지도 아니였다. 그저 몇 안되는 성원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던 신생회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해가 지나 어느 봄날, 그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신인 하나가 자라서 나의 옛 련애사를 보며 눈물이 나도록 웃는 어른이 되여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세월이 헛되이 흐르지 않았음을 느꼈다.
유니뿐이 아니였다. 그무렵 이미 여러 성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결》을 알고있었다. 리제동지는 언젠가 내 퍼스널컬러가 블루동지라는 말을 슬쩍 흘린적이 있었고, 시부키동지와 리코동지도 합방 도중 그 사실을 아는듯한 눈치를 은근히 비추군하였다.
성원들이 그 일을 알고있다는것을 알면서도 나는 굳이 먼저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다. 부모의 지난 련애사란 자식들이 언젠가 스스로 알아가는것이지, 부모가 앞장서서 늘어놓을것은 못된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다.
다만 이날만은 사정이 달랐다. 게시판의 추천수가 95를 넘어서고 조회수가 4만을 넘어섰으니, 이쯤되면 우리 집안의 사사로운 옛일이 아니라 거의 하나의 공식 발표문처럼 다루어진 셈이였다. 나는 속으로 우리 옛 련애사가 무슨 대사변이라도 되는 양 취급받는구나 하고 실소하였다.
그러나 실소하면서도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마웠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시청자들 스스로가 몇해 전의 그 시절을 기억해주고, 새로 들어온 성원들에게까지 그 추억을 이어붙여주고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날밤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옛 영상 몇편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보았다. 높임말을 쓰던 초창기의 우리부터, 서로 누나와 바이비라 부르던 한창때의 우리, 그리고 마지막회에서 담담히 인사를 나누던 우리까지.
화면속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앳된 목소리를 내고있었다. 《우결》을 할 때만은 목소리 톤이 유난히 부드러워지고 말도 곱게 가려서 하게 되던 그 시절의 버릇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화면속 블루동지도 여전하였다. 사격을 하다가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 하고 웃던 특유의 흥도, 가끔 당황하면 사투리가 슬쩍 묻어나오던 말투도 그대로였다.
나는 그 영상들을 보며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창밖은 이미 캄캄해져있었고 사무실에는 콤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나직하게 울리고있었다.
나는 원래 밤이 깊으면 저혈압 탓에 어지럼증이 오는 편이라 평소에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그날 밤만은 옛 영상들을 붙잡고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몸이 노곤한것도 잊을만큼, 화면속의 그 시절이 자꾸만 나를 붙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한 해가 지난 만우절에는, 블루동지와 내가 서로 나이 들어 결혼할 사람이 없으면 그때 가서 결혼하자는 우스개소리를 주고받았다는 이야기가 성원들 사이에 한동안 떠돌았다. 정확히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냈는지, 거기에 누나라는 말이 붙었는지는 나도 이제 와서 다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몇해가 지나도 그 시절의 말버릇이 이렇게 문득문득 되살아난다는것만은 분명하다.
이 소동이 있고 다시 얼마쯤 지난 뒤, 나와 블루동지는 새로 《우결》을 시작한 신인 짝 백곰파와 고수달을앞에 앉히고 조언이랍시고 몇마디를 건넨 적이 있었다. 나는 우리 《우결》이 두해 동안 이어졌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을 냈다고 자랑삼아 말하였고, 블루동지는 애매하게 하지 말고 할거면 적극적으로 해버리라고 훈수를 두었다. 그날 우리 옆에서 고수달은 열심히 메모를 하였고 백곰파는 우스개소리로 오십년짜리 계획을 세우겠다고 답하였다.
그렇게 후배들에게 옛일을 들려주는 처지가 되고보니, 유니가 그 옛 클립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던 그 봄날의 소동도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는지 모른다. 옛사랑이란 감추어둘수록 신비로워지는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꺼내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수록 오히려 정답게 여물어가는것이 아닐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우리가 그 시절 카메라앞에서 나누던 그 우스개소리와 그 어색한 높임말과 그 서투른 누나 소리 하나하나가, 몇해뒤 다음 세대의 젊은 성원 하나를 이렇게 웃고 울릴 자료가 되리라고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방송 내용물 하나가 아니였다.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 집안의 래력이 되여있었고, 딸들에게 물려줄 이야기가 되여있었다.
유니가 그날 내앞에서 지었던 그 겸연쩍은 웃음, 그리고 그 웃음뒤에 감추어져있던 반가움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이다.
딸이 부모의 옛사랑을 몰래 훔쳐보고 그것을 놀려대는것, 그것이야말로 한 집안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가장 다정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날의 클립을 지금도 이따금 꺼내본다. 45,646이라는 수자와 95라는 추천수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클립들에 밀려 잊혀지겠지만, 그날 유니의 표정만은 내 기억속에 오래 남을것이다.
옛사랑이라는 말은 원래 부끄럽고 조심스러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딸이 대신 훔쳐보고 웃어준다면, 그 부끄러움은 이상하게도 따뜻한것으로 바뀌는 법이다.
이날의 소동을 적으며 나는 다시 한번 되새긴다. 우리가 함께 웃고 함께 떠들며 지나온 그 모든 나날들이, 결국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또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이야기가 된다는것을.
아빠라 불리는 사람에게도 옛사랑이 있었고, 그 옛사랑을 딸들이 이렇게 다정하게 지켜준다는것. 이 장의 이름을 《아빠, 라고 불리다》라 붙인 까닭도 결국은 여기에 있는것이 아닌가 싶다.
봄이 가고 다시 계절이 몇번 바뀌는 동안에도 우리 집안은 조금씩 더 자라났다. 그리고 그 자란 자리마다 이런 다정한 소동들이 하나씩 더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