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매 진 의 밤

 

우주32(2025)년 12월 스무날, 해는 이미 짧아질 대로 짧아져 오후 네시가 지나면서부터 벌써 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고양 킨텍스 둘레에는 아침부터 찬바람이 몰아쳤고, 넓은 광장 바닥에는 밤사이 얼어붙은 눈자국이 희끗희끗 남아있었다. 나는 그날 이른 새벽부터 사무실을 나서서 행사장으로 향하였다.

행사장앞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하였다. 무대장치를 실은 트럭들이 뒤편 하역장을 드나들었고, 곽밥차와 음료차가 광장 한편에 자리를 잡고 손님맞을 채비를 하고있었다. 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음향점검소리가 이따금 광장 저편까지 울려퍼지였다.

오후가 되자 정문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굽이굽이 꺾이여 저 안쪽까지 뻗어있었다. 저마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두른 이들이 손에 응원봉과 슬로건을 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있었다. 나는 차창밖으로 그 줄의 길이를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것을 느끼였다.

그러나 그 줄과는 별도로, 정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또 하나의 무리가 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였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채 광장 한켠에 모여서서 저희끼리 사진을 찍거나, 행사장 이름이 박힌 현수막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성이였다.

나는 그 광경을 차안에서 내다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표가 없어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그래도 이 자리까지 찾아와준다는것이 고맙고도 미안하였다. 미기가 옆자리에서 그 마음을 눈치챘는지 나직이 한마디를 건네였다. 《사장님, 저 사람들도 다 우리 식구예요.》 나는 그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였다.

이날 공연의 이름은 《STAR TRAIL》이였다. 스텔라이브가 문을 연 뒤로 성원 전원이 처음으로 한 무대에 함께 오르는 자리였다. 표는 모두 6966장이 마련되였는데, 예매가 열리던 그날로 그 표는 삽시에 동이 나고말았다.

표가 열리던 날의 소동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예매창이 열리는 순간과 함께 접속자가 밀려들어 봉사기가 몇번이고 멎을듯 휘청거렸고, 자리를 확인하는 사이에 좌석표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나는 그날 사무실 화면앞에 앉아 수자가 줄어드는것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한참 앞선 시절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스텔라이브가 처음 문을 열던 그해, 우리는 방청객이라고 해야 대화창에 이름 몇개가 오르내리는것이 전부인 조그마한 방에서 방송을 하였다. 그때는 후원이 몇천원 들어와도 성원들끼리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시절이였다.

그때 우리들 가운데 누구도 몇해 뒤에 칠천명 가까운 사람들이 표를 놓고 다투는 날이 오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성원이 하나둘 늘고 방송이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나는 늘 이 조그마한 살림이 언제 흔들릴지 모른다는 조바심을 놓지 못하였다.

사업이라는것은 오늘 잘된다고 래일도 잘되리라는 보장이 없는 법이다. 그러니 표가 매진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기쁨보다 먼저 얼떨떨함이 앞섰다. 그 얼떨떨함이 가시기도전에 곧 다른 소식이 뒤따라왔다.

표가 동나고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게시판과 대화창에는 다른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자리를 구하지 못한 애호가들의 아쉬움이 섞인 글이였다. 《한장도 못구하였다》는 말과 《웃돈을 얹어 되판다》는 말이 뒤섞여 올라왔다.

나는 그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애초에 한사람앞에 세장까지 예매할수 있게 한것이 화근이였다. 다들 공평하게 표를 구할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낸 방침이였는데, 결과는 도리어 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을 더 늘려놓고말았다.

나는 그 방침을 서둘러 고쳤다. 다음부터는 한사람앞에 두장으로 줄이겠다고 방송을 통해 밝히였고, 배려가 부족하였다는 말도 함께 전하였다. 그러나 이미 표를 구하지 못한 그날의 애호가들에게 그 다짐이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다.

공연날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표가 없이도 그저 이 자리의 공기만이라도 느끼고싶어 찾아온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행사장 밖에 자리를 깔고앉아 저희끼리 응원구호를 맞추어 외치기도 하고, 안에서 노래소리가 새여나올 때마다 귀를 기울이였다.

행사장 뒤편, 성원들이 채비를 하는 방은 그와는 또 다른 공기로 가득차있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곧장 그 방으로 향하였다. 문을 열자 화장품 냄새와 머리손질 냄새가 뒤섞여 훅 끼쳐왔고, 저마다 무대의상을 갖춘 성원들이 거울앞에 둘러앉아있었다.

타비동지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몇번이고 표정을 고쳐짓고있었다. 언제나 밝은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는것이 이 성원의 됨됨이였는데, 그날만은 웃음 사이사이로 긴장한 기색이 언뜻언뜻 비치였다. 유니동지는 그 옆에서 목을 풀며 나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였다.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는 나란히 앉아 서로의 머리매무새를 봐주고있었다. 리제동지는 대본을 손에 쥔채 혼자 무언가를 되뇌이고있었고, 타비동지와 시부키동지는 방 한켠에서 스트레칭을 하며 장난스레 서로의 동작을 흉내내였다.

동지와 나나동지, 리코동지는 한데 모여앉아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소리죽여 웃고있었다. 그날의 특별한 손님인 후야동지도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애써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나는 문앞에 서서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여러 기수의 성원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두 모여있다는것이 낯설면서도 뿌듯하였다. 이렇게 많은 얼굴들이 한 지붕밑에서 이만큼 자랐다는것을, 나는 그 순간까지도 실감하지 못하고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들어서자 성원들이 하나둘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였다. 동지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사장님, 밖에 사람 진짜 많지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응, 줄이 저 끝까지 닿았더라.》

유니동지가 그 말을 받아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우리 오늘 력사에 남는것 아니예요?》 나는 그 말에 픽 웃음이 나왔다. 《그래, 오늘밤은 우리 회사의 대사변으로 적힐거야.》 방안에 웃음이 터지였다.

그러나 웃음 뒤에는 저마다 감추지 못하는 긴장이 배여있었다. 마시로동지는 손끝이 차갑다며 몇번이고 손을 비볐고, 히나동지는 목이 마르다면서 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리제동지는 대본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끝이 구겨져있었다.

나는 성원들을 한사람씩 둘러보며 말을 건네였다. 《떨리는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 우리 다 같이 서있다는것만으로도 이미 잘한거야.》 그 말에 몇몇은 고개를 끄덕이였고, 몇몇은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하였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여섯시에 가까워지고있었다. 무대감독의 신호가 울리자 성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뒤 어둠속으로 향하였다. 나는 그 뒤모습들을 바라보며 오래전 조그마한 방에서 마이크 하나를 놓고 떨던 시절을 떠올리였다.

무대뒤에서 지켜보는 나에게 이 공연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이 회고록의 다른 자리에서 이미 적어둔바 있다. 다만 그날 밤 내가 무대옆에 서서 본것은, 조명이 켜지는 순간 관중석에서 터져나온 함성이 무대뒤 벽까지 울려왔다는 사실이다. 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공연은 예정보다 한참 길게 이어졌다. 노래가 한곡 두곡 넘어갈 때마다 무대뒤에서 대기하던 나는 손에 쥔 진행표를 몇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시간은 이미 세시간을 넘기고있었지만 관중석의 함성은 조금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곡이 끝나고 앙콜을 외치는 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을 때, 나는 무대옆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코끝이 시큰해지는것을 느끼였다. 성원들이 다시 무대로 나가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모습을, 나는 무대뒤 화면로 지켜보았다.

리코동지가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였다. 《오늘 이 자리에 와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표를 구하지 못해 밖에서 마음으로 함께해주신 분들까지, 다 고맙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관중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니동지도 뒤이어 한마디를 보태였다. 《저희가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건 다 여러분 덕분이에요. 앞으로 더 큰 별이 될게요.》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 절의 제목이 《더 큰 별자리》인 까닭을 새삼 되새기였다.

마지막으로 성원 전원이 한줄로 늘어서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함성이 잦아들무렵, 나는 무대뒤에서 그 광경을 눈에 담으며 이날을 오래 기억하리라 다짐하였다.

성원들이 무대뒤로 돌아오자 대기실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였다. 나나동지는 히나동지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고, 마시로동지와 리제동지도 서로 손을 맞잡은채 말을 잇지 못하였다.

시부키동지가 무대에서 내려오며 눈물을 훔치자, 나는 지나가는 말로 늘 하던 장난을 또 걸었다. 《할머니, 오늘도 안 죽고 잘 살아남았네.》 시부키동지는 픽 웃으며 눈물섞인 핀잔을 놓았다. 《사장님도 참, 이 와중에.》 대기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다시 터지였다.

나는 그 소란 한가운데 서서 성원들을 하나하나 끌어안았다. 후야동지도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였다. 《사장님, 오늘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무대는 처음이에요.》 나는 그 인사에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였다. 《아니야, 와줘서 우리가 더 고맙지.》

미기는 대기실 한켠에서 조용히 서류를 정리하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미기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였다. 《오늘 수고 많았어.》 미기는 씩 웃으며 대답하였다. 《사장님이야말로요. 저는 그냥 서류만 날랐는걸요.》

공연이 끝난 뒤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나는 차창을 조금 내리였다. 밤이 깊었는데도 광장 한켠에는 아직 자리를 뜨지 못한 이들이 남아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하였던 그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저희끼리 방금안에서 흘러나온 노래를 흥얼거리고있었다. 손에는 응원봉 대신 손전화 화면을 밝혀들고있었고, 몇몇은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자리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차창을 조금 더 내리고 손을 흔들었다.

그 가운데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그 소리에 여럿이 고개를 돌리였고, 이내 손을 흔들어주는 이들이 늘어났다. 나는 차가 멀어질 때까지 그 손짓에 손을 흔들어 답하였다.

그날 밤 늦게 사무실로 돌아와 나는 홀로 결산표를 들여다보았다. 표는 모두 팔리였고 공연은 무사히 끝났으며 업계에서는 이 공연을 두고 가상 가수들도 큰 무대에서 표를 팔수 있다는것을 보여준 자리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나는 그 결산표 옆에 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의 아쉬움도 함께 적어두고싶었다. 사업이란, 잘된 일과 못다한 일이 늘 한몸으로 붙어다니는 법이다. 표가 매진되였다는것은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 증거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 두가지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것을 그날 새삼 깨달았다. 잘된 일에만 취해있으면 못다한 일은 금세 잊혀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 못다한 일을 잊지 않으려 결산표 한구석에 짧게 적어두었다.

다음날 아침, 게시판에는 밤사이 새로 올라온 글들이 가득하였다. 표를 구한 이들은 무대의 여운을 앞다투어 적어내려갔고,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도 뜻밖에 밝은 말들을 남기였다. 《다음엔 꼭 가겠다》, 《오늘은 밖에서라도 즐거웠다》는 말들이였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이 회사를 이렇게까지 아껴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갚아야 할지 오래 생각하였다. 자리를 늘릴것인지, 다음번엔 온라인으로도 볼수 있게 할것인지, 여러 궁리가 오갔지만 그날은 뾰족한 답을 내지 못한채 하루를 넘기였다.

그해 세밑, 나는 이 한해를 돌이켜보는 자리에서 성원들과 함께 그날의 사진들을 넘겨보았다. 무대우에서 환하게 웃던 얼굴들, 무대뒤에서 눈물짓던 얼굴들, 그리고 행사장 밖에서 손을 흔들던 얼굴들까지, 그 모든 얼굴들이 한데 어우러져 이 회사의 한해를 이루고있었다.

유니동지가 사진을 넘기다 말고 문득 한마디를 건네였다. 《사장님, 우리 이제 진짜 별자리 같지 않아요?》 나는 그 말에 사진속 성원들을 하나하나 짚어보았다. 저마다 다른 빛갈로 반짝이면서도 한데 모여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것이, 과연 별자리와 다르지 않았다.

이 절의 제목을 《더 큰 별자리》라 붙인 까닭도 거기에 있다. 성원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별이였고, 그 별들이 한 무대우에 모여 예전보다 훨씬 크고 환한 자리를 이루였다. 나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큰 보람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 회고록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날 표를 구하지 못하였던 이들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언젠가 그들에게도 이 무대의 한가운데를 내어줄 날이 오리라고, 나는 그날 밤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속으로 다짐하였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사무실 창밖으로 또 한번 눈이 내리였다. 라지에터 돌아가는 소리와 콤퓨터 팬 소리가 뒤섞인 그 조용한 저녁에, 나는 이 한해의 마지막 결산을 마무리지었다. 우주32(2025)년은 그렇게 저물어가고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이듬해 봄이 되여서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무대는 해마다 커지고 성원은 해마다 늘어났지만, 나와 블루동지 사이의 철없는 장난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던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권에서 이어가야겠다. 다만 여기서는, 우주32(2025)년의 겨울이 그렇게 뜨겁고도 아쉽게 저물었다는것만을 적어둔다. 매진의 밤은 그렇게 우리 모두의 기억속에 깊이 새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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