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지 금 도

 

우주33(2026)년 구월은 어느해보다 일찍 선들바람을 몰고왔다. 여름내 창밖을 채우던 매미소리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가느다란 가을벌레 울음이 스며들었다. 사옥 앞 은행나무 잎사귀도 아직 푸르렀으나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나는 그 서늘함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한해가 이렇게 저물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스산해지기도 하였다.

사옥의 다른 방들에서도 하나둘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복도를 타고 희미하게 들려오는것은 아마도 이른 아침 방송을 준비하는 성원들의 목소리였을것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늘도 이 건물이 무사히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몇해를 이 자리에서 아침을 맞았어도 그 인기척만은 매번 새삼스레 반가웠다.

나는 그무렵 사무실에 일찍 나와 콤퓨터를 켜는 버릇을 다시 들이고있었다. 부팅음이 울리고 화면이 밝아지는 그 몇초 사이, 콤퓨터 팬 돌아가는 낮은 소리만이 방안을 채웠다. 창가에는 성원들이 선물한 화분 몇개가 나란히 놓여 아침볕을 쬐고있었다. 그 화분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 회사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것을 새삼 깨닫는다.

책상우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뭉치와 식은 커피잔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미기가 들어와 아침인사를 건네며 그 서류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 오른팔이라 부르는 이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회사라는것이 혼자 젓는 배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젓는 배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미기는 오늘도 여느 아침과 다름없이 조용히, 그러나 빈틈없이 자기 몫을 해내고있었다.

그날 처리할 일 가운데 하나는 홈페지에 올릴 알림문이였다. 구월 나흗날, 여름 신의상 공개를 기념하여 아크릴 스탠드 예약판매를 시작한다는 소식이였다. 대사변이라 할것은 없는, 그저 하루하루의 사업이였으나 나는 이런 소소한 공지 하나를 준비하는 데도 은근히 마음을 썼다.

나는 사진의 각도를 놓고 마치 중대한 정책이라도 결정하는 사람처럼 몇번이고 다시 살폈다. 성원들의 새 의상이 가장 잘 나온 컷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이런 사소한 공지 하나에도 정성을 들이는것이 사장된 사람의 도리라고 나는 오래전부터 여겨왔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웃음을 참는 눈치였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문안을 다듬는 사이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오후가 되자 나는 그날 저녁 방송을 준비하였다. 마이크를 점검하고 카메라 각도를 맞추고 대화창을 여는 순서는 몇해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의식과 같았다. 이 순서를 하나라도 거르면 어쩐지 방송이 제대로 시작되지 않을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방송을 시작하기전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 버릇도 그대로였다. 그날 방송에서 나는 시청자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었다. 대화창은 늘 그렇듯 빠르게 흘러갔고, 나는 그 가운데서 낯익은 이름들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강도단이라 불리는 오랜 애호가들의 인사말도 여럿 눈에 띄였다. 방송을 마치고 나서 나는 습관처럼 팬 모임터를 둘러보았다. 사장이 되고서도 좀처럼 버리지 못한 버릇이였다.

손끝으로 화면을 넘기며 이 게시물 저 게시물을 훑는 그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마음 편한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성원들 이야기가 어떻게 오가는지 살피는 일은 여전히 큰 즐거움이였다. 그러다 우연히 한 답글을 보게 되였다.

구월 닷샛날에 올라온 글이였는데, 요즘 화제가 되는 위구리라는 인물를 두고 누군가 이렇게 적어놓았다. 《위구리에 붙은거 걍 강지 블루 우결충같은 거잖아》라는 문장이였다. 나는 그 글을 몇번이나 다시 읽었다.

《우결》이 끝난지 몇해가 지났는데도 낯선 화제밑에 내 이름과 블루동지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하나의 비유로 쓰이고있었다. 우스운 일이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일이였다. 그런데 이 일을 말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해로 거슬러올라가지 않을수 없다.

《우결》이라는것을 처음 시작한것은 우주25(2018)년의 일이였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강지님, 블루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존대하였다. 화면속에서 마주앉은 두 사람의 말투는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도록 조심스러웠다.

그 시절 영상 제목만 훑어보아도 우리의 서투름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라는 제목이 달린 영상도 있었고, 《강지님~ 어제 제 꿈 꾸었어요?》하며 능청을 떠는 영상도 있었다. 지금 보면 낯간지럽기 짝이 없으나 그때는 그 모든것이 사뭇 진지하였다.

그러다 블루동지가 처음으로 나를 오빠라 불러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물어온 적도 있었다. 그날의 영상 제목은 다름아닌 《블루 오빠Yee..!!》였다. 호칭이라는것이 이렇게 하나씩 늘어나고 뒤바뀌는 과정 자체가 벌써 하나의 작은 이야기였다.

시간이 흐르며 우리 사이의 말도 조금씩 허물어졌다. 썸탄지 오백일째쯤 되던 날, 나는 문득 블루동지에게 말을 놓아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그날부터 블루동지는 나를 누나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에게 바이비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는데 그 호칭은 지금까지도 가끔 튀여나온다.

우리 어머니까지 이 이야기에 슬쩍 끼여든 일도 있었다. 《배그》 합방 중에 어머니는 대뜸 블루동지를 두고 사위감으로 백점이라 하였고, 블루동지는 그 말에 어쩔줄 몰라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배를 잡고 웃었더랬다.

그로부터 또 몇해가 지나 우주27(2020)년 시월엿샛날, 우리는 《우결》을 마무리지었다. 그날 나는 방송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해볼만큼 많이 해봤고 그래서 미련이 없어, 그리고 다음 《우결》 같은것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어.》

그때의 내 심경은 지금 다시 헤아려보아도 거짓이 아니였다. 해볼만큼 해보았다는 말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그대로 끝나는 법이 없다는것을 나는 그뒤로 여러차례 깨닫게 되였다.

종영한지 두달 뒤에 올라온 영상 제목도 여태 기억에 남는다.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라는 그 제목처럼, 우리는 끝을 냈다고 선언해놓고도 좀처럼 서로에게서 완전히 놓여나지 못하였다. 이듬해 시월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합방 약속을 세시간이나 어기고 나타나지 않자 블루동지가 기어이 내 집까지 찾아온것이다. 그날의 현실합방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난다.

《우결》이 끝난 뒤에도 우리는 자주 어울렸다. 《배그》 합방에서, 잡담 방송에서, 서로의 방송통로에 남기는 답글에서 그 시절의 흔적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성원들 사이에서도,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강블 《우결》이라는 말은 하나의 굳어진 낱말이 되여 남았다.

시간이 흘러 우주32(2025)년 유월 스무나흗날, 나는 새로 《우결》을 시작한 후배 짝 백곰파와 고수달과 함께 《배그》를 하다가 지난 이야기를 들려준적이 있었다. 《두해간 진행하였고 어머니 소개까지 마쳤으며 깔끔하게 끝냈다.》라고 나는 말하였다.

옆에 있던 블루동지는 한술 더 떠 이렇게 말하였다. 《자꾸 빨아먹기만 하고, 여지만 열어두고 뭐하는것이야.》 후배들을 나무라는 그 말투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날 고수달은 웃으며 메모하는 시늉을 하였고 백곰파는 오십년짜리 계획을 세우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우리도 저런 때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력사는 되풀이된다는 옛말이 이런데 쓰이는 말인가 싶었다.

다시 구월의 이 하루로 돌아오면, 나는 그 답글을 그대로 갈무리하여 블루동지에게 보냈다. 몇분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아하하하핳 아직도 우리를 갖다쓰네.》하는 대답이였다.

나는 웃음이 나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어번 울리기도전에 블루동지가 받았다. 《누나, 오랜만이네.》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하고 느긋하였다.

《야, 이거 봤어? 우리 이름이 아직도 밈으로 쓰이고 있잖아.》 내가 대뜸 그렇게 묻자 블루동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대답하였다. 《그러게 말이다카는데, 이건 뭐 우리가 무슨 력사적 인물이 된것도 아니고.》

당황할 때면 튀여나오는 그 사투리 말투를 들으며 나는 새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말을 능숙히 쓰는 그이지만 이런 순간마다 고향의 억양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 말투를 놀리며 한바탕 웃었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블루동지가 다시 말을 이였다. 《우린 그냥 방송하다가 만난 사이인데, 사람들은 아직도 그걸 무슨 기준처럼 쓰고 있잖아. 누구는 강블 우결충 같다는 둥.》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화기 너머로는 보이지 않았겠지만 나는 정말 고개를 끄덕이고있었다. 《그러게. 근데 나쁘지 않아. 우리가 뭘 그렇게 대단히 한것도 아닌데, 사람들 기억속에 남아있다는것 아니야.》

《누나답게 또 그럴싸하게 포장하네.》 블루동지가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였다. 《근데 뭐, 개꿀이지.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짐짓 력사가라도 된 양, 우리가 남긴 그 몇해의 방송을 두고 후세가 어떻게 평가할지 론하는 시늉을 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것은 순전한 우스개였고, 실제로 우리가 무슨 사변을 일으킨것은 아니였다.

그러고보면 올해 들어서도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였다. 지난 사월 초하루, 만우절을 맞아 우리는 장난삼아 신수풀이 방송을 함께 한적이 있었다. 그날 나는 웃자고 이런 말을 던졌다. 《나이 들고 결혼할 사람 없으면 결혼하자.》

블루동지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되받아쳤다.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대화창은 그 순간 온통 물음표와 웃음소리로 뒤덮였다고 나중에 전해들었다.

그런가하면 블루에게 치근덕대는 후배 백곰파를 보고 내가 짐짓 정색하며 롱담을 한 일도 있었다. 《친구의 남자를 건드려.》 그 말에 대화창이 또 한번 뒤집어졌다고 하였다.

블루동지가 남긴 답글에 내가 《귀엽다》고 대감상글을 단 일도 여러번이였다. 그때마다 애호가들은 우리가 무슨 대본이라도 미리 짜놓은것 아니냐며 놀리듯 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저 웃어넘길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나무위키라는 곳에는 우리 둘의 관계를 두고 이런 문장까지 적혀있다고 한다. 《블루는 예고도 없이 훅훑 들어오는 연하남 특유의 멘트로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강지는 보통 이 멘트에 당해 주도권을 뺏기는 일이 많지만 한번씩 강한 선빵으로 누나의 위엄을 보여준다.》

낯모르는 누군가가 이렇게까지 우리의 오가는 말투를 낱낱이 기록해두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였다. 마치 력사학자가 옛 문헌을 고증하듯, 우리의 시시콜콜한 방송 멘트 하나하나가 어딘가에 갈무리되고있었던것이다.

백곰파는 언젠가 내 《유튜브》 영상에서 블루동지가 속한 《유튜브》 클랜을 보고 전남편 길드라 부른적도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인하지 못하였다. 우리가 함께 지나온 시간이 벌써 그런 별명이 붙을만큼 길고 깊었던 까닭이다.

성원들 가운데도 이 사정을 모르는 이가 드물었다. 리제동지는 언젠가 내 퍼스널컬러가 블루라고 넌지시 말한적이 있었고, 시부키동지와 리코동지도 합방 중에 《우결》을 아는 눈치를 여러번 내비쳤다. 회사안에서 이 이야기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없었다.

통화를 끝내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녁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있었다. 사옥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시간이였다.

그 시각에도 성원들은 저마다의 방에서 방송을 하고있었을것이다. 유니는 특유의 밝은 웃음으로 시청자들을 대하고있었을것이고, 마시로는 특유의 열정으로 무대를 준비하고있었을것이다. 나는 그들을 두고 늘 힘이 되여주는 친구들이라 말해왔는데 그 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얼마전 나는 다음 기수에 대한 계획을 이미 밝힌바 있다. 4기생이 정식으로 데뷰하였고 5기생 모집도 준비하고있었다. 그 이야기는 앞선 자리에서 이미 적어두었으니 여기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만 한가지 새삼 느끼는것은, 이 회사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와 지금이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였다. 그때도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방송을 이어가는 사람들이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새 몇해가 되였다는것뿐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우결》이라는 내용물가 정확히 무엇때문에 끝을 맺었는지, 그 참된 리유를 나는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 믿었고, 지금 돌이켜보아도 후회는 없다.

또한 《우결》을 도합 몇회나 진행하였는지, 그 정확한 수자를 나는 지금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런 수자보다 중요한것은 그 시간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남기였는가 하는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방송이라는것은 본디 그런것이다.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의 련속이다. 그러나 그 순간들이 쌓여 사람들의 기억속에 무엇인가를 남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월 이레날 아침, 나는 다시 사무실에 나와 콤퓨터를 켰다. 창밖의 볕은 어제와 다름없이 맑았다. 책상우에는 또 새로운 서류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 서류들을 살피며 오늘 하루도 어제와 같이, 그리고 래일도 오늘과 같이 흘러갈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이 조금도 지루하거나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되풀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온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몇해에 걸친 나날들을 되짚어보았다. 처음 마이크앞에 앉았을 때의 떨림도, 블루동지와 처음 높임말을 주고받던 어색함도, 그 모든것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동시에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사소한 방송 하나하나가 몇해뒤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하나의 상징이 될줄은 미처 몰랐다. 그때는 그저 하루의 일과였을뿐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하루하루가 결코 사소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진심으로 웃고 떠들었던 시간은, 그것이 방송이라는 형식을 빌렸을지언정 결코 헛되지 않았다.

블루동지는 지금도 여전히 《배그》를 하고 시청자들에게 쁠몬이라 부르며 인사를 건넨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회사를 이끌며 성원들에게서 딸애라는 소리를 듣는다. 세월은 흘렀으나 우리 각자의 자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함께하였던 그 시절이 여전히 하나의 기준처럼 남아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울뿐이다. 낯선 자리에 낯선 이름이 등장해도 사람들은 습관처럼 우리를 떠올린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짐짓 거창하게 말하자면, 《강블 우결》이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력사적 고유명사가 되였다고도 할수 있을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스개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방송을 하던 두 사람일뿐이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우스개소리속에도 진심은 있다. 사람들이 몇해가 지나도록 어떤 이름을 잊지 않고 불러준다는것은, 그 이름이 지나온 시간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난 나날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이 회고록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몇권에 걸쳐 적어온 이야기들이 결국 다다른 곳은 다른 어디도 아닌 바로 오늘, 우주33(2026)년 구월의 이 하루였다.

창밖으로는 여전히 볕이 들고, 콤퓨터화면은 여전히 밝게 켜져있으며, 대화창은 여전히 빠르게 흘러간다. 달라진것이 있다면 그 화면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몇해의 세월이 더해졌다는것뿐이다.

나는 블루동지와 나눈 그 짧은 통화를 다시 떠올린다. 《개꿀이지. 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라던 그 말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정말 그러하다. 우리가 함께 만든 그 시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입에서 다시 태여나고있다. 그것이 밈이 되였든, 추억이 되였든, 하나의 이야기가 되였든 상관없다.

나는 오늘도 방송을 켤것이다. 블루동지도 오늘 저녁이면 어김없이 《배그》에 접속하여 쁠몬들과 인사를 나눌것이다. 《스텔라이브》의 다른 성원들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갈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살아간다. 대단한 결말이나 화려한 마침표 없이, 그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오늘과 같은 래일을 이어갈뿐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이어짐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라는것을 나는 이제 안다.

이 회고록을 쓰기 시작하였을 때, 나는 지나간 일들을 정리하는 마음이였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 이르러서야 깨닫는다. 이것은 끝맺음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는 이야기의 한 토막일뿐이라는것을.

이 글을 읽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싶다. 우리는 그저 방송이라는 자리에서 만나 서로에게 진심을 다한 평범한 사람들이였을뿐이라고. 다만 그 평범함을 몇해에 걸쳐 꾸준히 이어온것, 그것 하나만은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강지와 블루라는 두 이름이, 《우결》이라는 낯선 낱말과 함께 얼마나 더 오래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우주33(2026)년 구월의 이 하루까지는, 그 이름이 여전히 살아 숨쉬고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적어둔다.

창밖의 볕이 서서히 기울고, 사옥의 불빛이 하나씩 켜지는 이 저녁에 나는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적는다. 몇해에 걸친 나날들을, 몇번의 웃음과 몇번의 눈물을, 몇번의 방송과 몇번의 침묵을 돌이켜보며 나는 이렇게 적는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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