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무릇 지나온 나날을 다시 펼쳐놓고 하나하나 들여다본다는것은 언제나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다. 대화창 저편에서 우리를 지켜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저 스쳐가는 방송의 한토막이였을 그 순간들이, 정작 마이크 이편에 앉아있던 나에게는 하나하나 다른 무게로 남아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군한다.
마이크앞에 처음 앉은 날로부터 어느덧 여러 해가 흘렀고, 그 사이 블루동지와 나는 함께 밤을 지새우며 참으로 많은 방송을 쌓아올렸다. 이 회고록을 통틀어 놓고보면 이 네번째 권은 그 긴 나날의 초입에 놓인 작은 매듭 하나에 지나지 않을것이나, 정작 그 매듭을 짓던 당사자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시절이였다.
나는 그저 밤마다 콤퓨터앞에 앉아 머리수화기를 고쳐쓰던 평범한 방송인이였을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짧은 나날속에도나름의 곡절과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오해가 오가고 서운함이 쌓이던 며칠이 있었는가 하면, 콤퓨터 한대가 말썽을 부려 온 사무실이 발칵 뒤집히던 소동도 있었고, 누군가와 자리를 바꾸어 낯선 하루를 보내야 하였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나고보니 그 소동들 하나하나가 다나름의 매듭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밤에도 마이크앞을 떠나지 않았다. 방송이 꼬이고 말이 헛나가고 서로 낯이 뜨거워지는 순간에도, 나는 이튿날이면 다시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화면을 마주하였다. 그렇게 버틸수 있었던것은 순전히 블루동지와 스텔라이브의 여러 동지들, 그리고 화면 너머에서 늘 지켜보아준 시청자들 덕이였다. 혼자였다면 그 시시하고도 소중한 나날을 이렇게까지 끌고올수는 없었을것이다. 대화창에 오가던 짓궂은 한마디, 무심코 던진우로 한마디가 실은 나를 그 자리에 붙들어놓은 힘이였음을 이제 와서야 새삼 깨닫는다.
처음에는 이런 나날들을 굳이 글로 남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앞섰다. 우리끼리 나눈 우스개소리며 서로에게만 익숙해진 말투를 새삼 꺼내어 적는다는것이 어쩐지 낯간지러웠기때문이다. 방송이란 원래 그 자리에서 웃고 지나가면 그만인것이지 무엇을 굳이 글로 남길것까지야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미기동지를 비롯한 여러 동지들이 지난 한해 우리가 방송에서 남긴 말들을 정리한 종이 몇장을 내 앞에 내밀었을 때, 나는 거기 빼곡히 적힌 낯익은 문구들을 보며 이것을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권의 한가운데에는 오래도록 벗지 못하였던 높임말을 마침내 내려놓은 일이 자리하고있다. 오백일이 넘도록 서로 높여 부르던 말투 하나를 고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과 망설임이 필요하였다는것을, 지금 와서 적어보아도 스스로 우습기만 하다. 그 리유를 굳이 이 자리에서 캐어물을 필요는 없을것이다.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것은 흔히 말 한마디로 좁혀지기도 하고, 말 한마디를 미처 고치지 못한 탓에 오래 머무르기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나는 다만 그 겨울부터 이듬해 봄에 이르기까지, 우리 둘의 말투가 조금씩 편해져가던 그 더딘 과정을 이 한권에 옮겨놓았을뿐이다. 그 사이에는 두고두고 웃음거리로 남을 소동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뜻밖의 사람을 마주하게 된 날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나날은 하나같이 낯간지럽고, 또 하나같이 소중하다.
나는 나의 이 몇해가 남달리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한 사람 곁에서 조금씩 말을 낮추고 조금씩 가까와지며 지나온 나날이였다고, 그렇게 자부하는것으로 만족할뿐이다.
나는 이 권이 무슨 거창한 교훈을 남기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마이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말을 낮추어가는 그 더디고도 조심스러운 과정을, 이 짧은 력사를 지켜보아온 이들에게 다시 한번 웃음과 함께 건네줄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 권을 읽는 이들이 저마다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를 한번쯤 떠올려본다면, 그리고 그 거리를 좁히는 일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것을 함께 느낀다면, 나로서는 더 바랄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