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머 리 글

 

무릇 지나온 나날을 다시 들추어본다는것은 그 자체로 가슴이 저릿해지는 일이다. 누구나 걸어온 길이 같지 않고 그 길에서 느낀바가 저마다 다르기에,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심경으로 지나온 나날을 더듬어보게 되는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낸 하루가 시간이 지나고보면 오히려 잊을수 없는 하루로 남아있는 법이며, 그런 하루들을 하나둘 더듬어 가노라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지나온 길 전체를 돌아보게 되는것이다.

나는 특별할것 없는 방송기획사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 성원들과 더불어 마이크앞의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이다. 대단한 력사를 써왔다고 말할 처지는 못 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나만의 걸어온 길이 있고 그 길우에 새겨진 나날들이 있다. 이 회고록을 쓰는 사람이 어느 나라의 지도자도 아니요 력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인물도 아니라는것을, 나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다섯째권이 다루는 나날은 겨우 석달, 우주27(2020)년 유월에서 팔월까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짧은 석달속에는 실로 육백일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있었으니, 그래서 나는 이 권의 이름을 《손잡는데 육백일》이라 지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세월을 어떻게 다 헤아릴수 있을지, 나는 이 절들을 적어내려가며 몇번이고 손을 멈추어야 하였다.

화면으로만 이어지던 사귐이 마침내 한 방안에서 손을 마주잡는 자리로 넘어가던 그날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마이크와 머리수화기 너머로만 알아온 사람의 숨결을 실제로 마주하기까지, 그 육백일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였다. 목소리와 자막으로만 나누던 정이 손끝의 온기로 옮겨가던 그 짧은 순간을 위하여, 우리는 그토록 오랜 나날을 기다려야만 하였던것이다.

그해 여름에는 또한 뜻하지 않게 어느 순위표우에 우리의 이름이 나란히 오르는 밤도 있었고, 갈비 한접시를 건 시시한 내기로 대화창이 온통 떠들썩해지는 저녁도 있었으며, 오래전에 함께 부른 노래 하나가 뒤늦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밤도 있었다. 그 밤들을 여기서 낱낱이 늘어놓지는 않으련다. 뒤이어 오는 절들이 그 사연을 더 소상히 말해줄것이니, 머리글에서는 다만 그런 밤들이 있었다는것만을 적어둔다.

이 모든 일이 나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는 결코 말할수 없다. 블루동지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 다섯째권은 씌여질 리유조차 없었을것이고, 강도단과 쁠몬들의 뜨거운 마음이 없었다면 그 밤들은 그저 여느 밤과 다름없이 조용히 지나갔을것이다. 편집자의 손끝을 거치지 않았던들 손을 맞잡던 그 짧은 몇분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였을것이고, 곁에서 일정을 짜고 대화창을 지켜준 여러 성원들이 없었던들 그 육백일은 애초에 시작되지도 못하였을것이다.

가끔 나는 이 모든것이 마치 나 혼자 애써 이루어낸 어떤 큰 사변인양 우쭐해지다가도, 정작 그 하루하루를 만들어낸것은 화면 저편에 앉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이였음을 깨닫고는 이내 멋쩍어지군하였다. 대표라는 자리가 주는 착각은 이렇듯 종종 사람을 우습게 만드는 법이다.

무릇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란 서두른다고 되는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나는 이 육백일이라는 수자를 통하여 새삼 배웠다. 진심은 언젠가 반드시 가닿게 되여있으되, 그 가닿는 시각만은 사람의 뜻대로 당겨지지 않는다는것, 이것이 그 나날이 나에게 남긴 교훈이다. 방송이라는것이 화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이토록 오랜 기다림을 요구할줄은,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나는 미처 짐작하지 못하였다.

원래 나는 이런 글을 쓸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성원 몇몇과 오래된 시청자들이 지나온 나날을 기록으로 남겨두라고 여러차례 권하였으나 나는 그것을 서두르지 않았다. 지나간 방송 하나하나를 굳이 글로 옮겨적어야 할 리유를 처음에는 찾지 못하였던 까닭이다. 이제 와서 방송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짬이 생긴 김에, 시간이 나는대로 한두절씩 적어놓게 되였다.

새로 들어온 후배 성원들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게 될 어느 시청자에게 나는 한가지만은 전하고싶다. 육백일을 기다린다는것이 결코 헛된 기다림이 아니였다는것을, 그리고 기다림 끝에 마주잡은 손이 그 모든 나날의 값을 넉넉히 치르고도 남았다는것을 전하고싶은것이다.

나는 이 다섯째권의 이야기가 남달리 거창한 사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손을 마주잡기까지 걸린 그 육백일의 나날을, 있는 그대로 적어놓았을뿐이다. 그 나날의 절반은 기다림이였고 나머지 절반은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나날이였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여긴다.

그해 여름 함께 웃고 들뜨던 이들을 생각하며, 우주33(2026)년 가을 스텔라이브 사무실에서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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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