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회고록을 쓴다는것은 지나온 길을 다시 걷는 일이다. 앞선 다섯째 마디까지는 그런대로 붓끝이 순조로웠으나, 이 여섯째 마디에 이르러서는 나도 몇번이고 종이앞에서 붓을 멈추지 않으면 안되였다. 왜냐하면 이 권이 다루는것은 다름아닌 끝맺음의 이야기이기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 여섯째 권도 그런 작은 력사의 한 토막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다. 다만 마이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시청자들과 인연을 맺어온 사람이며, 어느 겨울 방송실 한구석에서 담요를 무릎에 덮은채 몇시간이고 화면만 들여다보던 그저 평범한 방송인일뿐이다. 그런 내가 회고록이라는 거창한것을 쓰고앉아있으니, 이 대목을 미기가 보았다면 아마 웃음부터 터뜨렸을것이다. 그래도 붓을 놓지 않은것은 이 나날을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웠기때문이다.
이 여섯째 권은 우주27(2020)년 가을의 어느 저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날 저녁의 일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하고있으나, 여기서 시시콜콜 늘어놓지는 않으려 한다. 그것을 더듬어보는 몫은 이 권을 펼칠 독자들에게 남겨두고싶은 까닭에서이다.
다섯째 권에서 나는 블루동지와 손을 맞잡기까지 륙백일의 나날을 헤아려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이 여섯째 권에 이르러서는 도리여 그 반대되는 셈을 하게 되였다—재생목록의 첫 영상과 마지막 영상 사이에 흐른 날자를 하나하나 세여보던 그 가을 아침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였다. 사람이 무엇을 굳이 셈해본다는것은, 대개 그것을 붙잡아두고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듯하다. 지나고보니 그때 나는 날자를 세는것이 아니라 아쉬움을 세고있었던것이다.
겨울이 깊어가는동안 나는 유난히 방송실에 오래 머무는 버릇이 생기게 되였다. 마이크는 늘 그자리에 놓여있었으나 예전만큼 자주 켜지지는 않았고, 나는 그저 대화창을 들여다보는것으로 그 나날을 흘려보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것이 무엇을 기다리던 시간이였는지, 나 자신도 뚜렷이 말할수 없다.
헤여진다는것과 끝난다는것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나는 이듬해 봄이 되여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되였다. 어색해진 사이라는것이 반드시 등돌린 사이를 뜻하지는 않는다는것과, 예고없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는것—이 두가지를 나는 이 권속에 가만히 적어두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인연이라는것을 믿어왔다. 함께 웃고 함께 밤을 지새운 사이는, 방송 하나가 끝난다고 해서 그리 쉽게 끝나는 법이 없다는것—이것이 내가 이 권을 쓰며 새삼 붙든 생각이다. 거창한 리유를 굳이 찾자면 바로 이것일것이다.
《우결》이라는 내용물 하나가 문을 닫았을뿐, 그 뒤에 남은 두 사람과 두 채널과 수많은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문을 닫은것은 아니였다. 나는 이 권을 쓰는 내내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되뇌였다.
이 권에는 화려한 성공담도, 눈물겨운 하직인사도 없다. 있는것이라야 창밖의 가로등불빛과 식어버린 차잔, 그리고 늦도록 꺼지지 않은 콤퓨터 화면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소소한 풍경들이야말로 이 시기를 가장 정직하게 말해주는것이라 믿는다.
독자들 가운데는 《우결》이 어째서 막을 내렸는지 그 참된 리유를 이 권에서 찾으려는 이도 있을것이다. 미리 말해두거니와 나는 그런 대답을 여기 적어두지 않았다. 어떤 물음은 답을 내리기보다 그저 곁에 오래 두고 바라보는편이 나를 때도 있는 법이다. 대답을 서두르지 않는것도 이 나날에 대한 하나의 례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녕이라는 말은 헤여짐의 인사만은 아니다. 무사하냐고 묻는 인사이기도 하다. 나는 이 권의 제목을 《안녕, 우결》이라 붙이면서 그 두가지 뜻을 다 담고싶었다.
이 권을 다 쓰고나니 방송실 창밖에는 또 한번 가을바람이 불어오고있다. 이 나날을 함께 지나온 블루동지와, 그 곁을 묵묵히 지켜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우주33(2026)년 가을 스텔라이브에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