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무릇 지나온 나날을 되짚어본다는것은 누구에게나 감회로운 일이다. 걸어온 길이 같지 않고 겪은 일이 저마다 다르니, 사람마다 다른 심경으로 지난날을 더듬어보게 되는것이다.
나는 하나의 평범한 사람으로서, 《스텔라이브》라는 자리에 서서 여러 동지들과 더불어 방송이라는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이 일곱번째 권을 쓰며 나는 다시금 깊은 회포속에 그무렵의 나날을 돌이켜보게 된다.
우주28(2021)년에서 우주29(2022)년에 이르는 이 두해는, 지금 돌아보아도 내 한생에서 가장 큰 굽이였다고 할수있다. 나는 그동안 지녀오던 얼굴을 스스로 내려놓았고, 화면 너머에는 대신 그림 하나가 서서 나를 대신하여 웃고 울게 되였다. 그것은 작은 결심 같았으나, 실은 내 앞의 나날 전체를 뒤바꾸어놓는 일이였다. 얼굴 하나를 바꾸는 일이 이렇게까지 사람의 하루하루를 뒤흔들어놓을줄은, 그 여름밤 창가에 앉아있던 나로서는 미처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 길에는 물론 기쁨과 성취만이 있은것이 아니였다. 밤마다 콤퓨터 랭각기소리만이 방안을 채우던 시절도 있었고, 흰 페지앞에서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몰라 밤을 지새우던 시절도 있었으며, 함께 도장을 찍었던 《유메퍼센트》가 채 한해도 넘기지 못하고 기울어가다 끝내 문을 닫아걸어야 하였던 서느런 겨울도 있었다. 그 겨울, 아홉 사람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 뭉치를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조차 몰라 오래 서있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강아지 귀 머리띠를 쓴 낯선 그림을 마주하고 홀로 렌즈앞에 앉아있던 밤, 사업계획서라는 흰 페지를앞에 두고 무엇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밤을 지새우던 나날, 그리고 아홉 사람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사무실에서 칸나동지의 손을 다시 붙잡던 그 아침을, 나는 이 권에 옮겨적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에서 한번도 완전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데 걸린 시간이 그리 짧지는 않았으나, 나는 결국 다시 일어섰다.
그리 될수있었던것은 오로지 곁을 지켜준 동지들의 덕이였다. 블루동지와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그리고 이름을 다 적을수 없는 여러 동지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 겨울을 혼자 견디지 못하였을것이다. 회사가 문을 닫은 다음날 아침, 그만두려던 칸나동지의 손을 다시 붙잡을수 있었던것도, 텅 빈 사무실 벽에서 아홉장의 원화를 하나씩 떼어내며 다음 그림을 그려볼 엄두를 낼수 있었던것도, 결국은 곁에 남아준 이들이 있었기때문이다. 대화창 너머에서 말없이 지켜봐준 이들에게도 나는 늘 빚진 마음을 지니고있다.
나는 늘 《시청자 없이는 방송도 없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여겨왔다. 그림으로 서든 얼굴로 서든, 화면 저편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사실이야말로 내가 이 일을 이어올수있게 한 가장 큰 힘이였다고 자부해본다 — 라고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어쩐지 낯간지럽다. 실은 좌우명이랄것도 없이, 그저 방송을 끄고 나면 늘 대화창 로그부터 다시 읽어보는 버릇이 있었을뿐이다. 그러니 별수있나,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뿐이다.
이무렵 함께 길을 나섰다가 지금은 곁에 없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 사정이 있었을것이고, 그 사정을 내가 다 헤아릴수도 없거니와 여기 다 옮겨적을 생각도 없다. 다만 그들과 나눈 한철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이 권에 남겨두려한다.
이 권을 쓰며 나는 몇번이고 붓을 놓았다 다시 들었다. 얼굴을 내려놓았던 그날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로 이어준 그 굽이길을 적어두지 않으면, 뒤에 오는 동지들이 딛고 설 자리를 하나 잃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붓을 들었다.
나는 이 글이 거창한 교훈을 남기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넘어진 자리에서도 다시 일어설수있다는것, 얼굴 하나를 내려놓아도 사람은 사람으로 남는다는것, 그 정도를 전할수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함께 그 겨울을 건너온 동지들을 생각하며 우주33(2026)년 가을 《스텔라이브》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