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무릇 사람이 살면서 새 식구를 맞아들이는 일만큼 마음이 바빠지는 일도 드물다. 나는 이 여덟번째 권을 쓰면서 그 바쁜 마음을 다시 한번 고스란히 되겪었다. 앞선 권들에서는 나와 블루동지 두 사람의 나날을, 또 그 사이 얼굴을 내려놓기까지의 사연을 적어왔거니와, 이번 권에 이르러서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로는 도무지 다 담을수 없는 여럿의 얼굴을 함께 불러내야 하였다. 페지를앞에 놓고 붓끝이 유난히 더디게 움직였던것도 아마 그때문일것이다.
나는 원래 한 나라를 세우거나 력사를 뒤바꾼 사람이 아니다. 그저 작은 방송기획사 하나를 맡아 콤퓨터앞에서 밤을 지새운 사람일뿐이다. 그런데도 이 권을 쓰며 나는 몇번이나 짐짓 거창한 말을 입에 올리고싶은 유혹을 느끼였다. 건국이니 창업이니 하는 말들이 자꾸 떠올랐던것인데, 그해 봄 생전 처음으로 도장 하나를 손에 쥐고 서류더미와 씨름하고서야 나는 그 말들이 결코 헛말만은 아님을, 그러나 스스로 입에 담기에는 낯이 뜨거운 말임을 함께 깨닫고 슬며시 도로 내려놓곤 하였다.
이 권이 다루는 그해, 우주30(2023)년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시작되였다. 지난 겨울 한번 문을 닫았던 그 자리에서 다시 새 이름 하나를 걸고 마이크앞에 서기까지, 그 며칠의 사연은 결코 짧게 말할수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그 정월의 이틀만을 넌지시 이르는것으로 그치려 한다.
태여난다는 말을 나는 이 권을 쓰기 전까지 오직 한번뿐인 일로만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해 정월, 넉달 전에 이미 세상에 나왔던 얼굴들이 새 이름을 걸고 다시 한번 세상에 나오는 광경을 지켜보며, 나는 사람도 이름도 한번 이상 태여날수 있다는것을 비로소 배우게 되였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사이, 그 작은 회사에는 새 얼굴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저마다 목소리도 다르고 웃는 모양도 달랐던 그 얼굴들을 하나씩 사무실에 들이며, 나는 식구라는것이 반드시 서로 닮아야만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라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처음에는 세 사람이 전부이던 사무실이 어느새 여럿의 목소리로 채워지였다.
식구가 늘어나면 말버릇도 따라 늘어나는 법인가보다. 그해 어느 저녁 국밥집 한켠에서 싹튼 말 한마디가 어느새 사무실 안팎에서 례사말처럼 오가게 되였다. 성원들은 나를 두고 어떤 때는 엄마라, 또 어떤 때는 아빠라 불렀는데, 나는 그 말버릇이 어디서 어떻게 자리잡았는지 이제 와서는 굳이 캐묻지 않는다. 이 권의 이름을 그리 붙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물론 이 한해가 마냥 순탄하기만 하였던것은 아니다. 크고작은 소동이 여러차례 사무실을 뒤흔들었고, 목이 쉬여 마음을 졸이던 밤도 있었으며, 큰 행사를 앞두고 잠을 설친 밤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 우여곡절들을 여기서 낱낱이 늘어놓지는 않겠다. 다만 그 고비마다 서로 곁을 지켜준 이들이 있었기에 그 밤들을 하나하나 넘길수 있었다는것만은 적어두고싶다.
이 권을 쓰며 나는 자주 웃었고 또 자주 목이 메였다. 딸이라는 말이 이렇게 무거운 말인줄, 나는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피를 나누지 않고도 한 식구가 될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해의 사무실에서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블루동지에게서도 그무렵 짧은 축하의 말이 왔는데,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다 전해지는 사이란 이런것인가보다 하고, 나는 그 몇마디를 오래 들여다보군 하였다.
이 권에 담긴 이야기가 그해 한해로 딱 떨어지게 끝나는것은 아니여서, 어떤 대목은 그 이듬해 봄까지 슬며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이 권은 어느 작은 회사의 성장기이자, 서투르기 짝이 없던 한 사람이 자라난 기록이라 해도 좋을것이다. 나는 이 페지들이 후날 저 딸들에게도, 또 이 글을 읽는 다른 이들에게도 그해 겨울과 봄과 여름을 함께 되새기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다만 한가지, 이 회고를 적으며 나는 몇번이나 실없이 웃었다는 사실만은 미리 밝혀두고싶다. 력사를 적는다는 사람이 이렇게 자주 웃어도 되는것인지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웃음만은 거짓이 아니였다.
그해 딸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모든 이들에게 이 권을 삼가 바친다.
우주33(2026)년 어느 가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