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무릇 지나온 한해를 돌이켜 적어본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쁜 일만 있었다면 붓이 가벼울것이고 슬픈 일만 있었다면 오히려 마음을 다잡기가 수월할것이나, 기쁨과 아픔이 한데 뒤엉켜 지나간 해는 무엇을 먼저 적어야 할지 매번 붓끝이 머뭇거리게 된다. 이 아홉번째 권, 《성장의 굴곡》이 바로 그러한 한해를 담은 책이다. 《우결》을 마치고 회사의 오늘을 적어내려온 앞선 권들이 대체로 순한 걸음이였다면, 이 권에 이르러 나는 비로소 자라난다는 말의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되였다.
이 권이 다루는 우주31(2024)년은 겉으로 보면 우리 회사가 가장 순조롭게 자라나던 해였다. 자정이 넘도록 표 예매 페지를 새로고침하던 밤 끝에 칸나동지의 첫 단독 음악회가 순식간에 매진되였고,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라밖에서 먼저 손을 내미는 회사와 마주앉는 자리까지 마련되였다. 담요를 두르고 회의를 하던 옛 사무실을 생각하면 이제 극장의 좌석수를 세고 매진을 걱정하는 처지가 되였다는것 자체가 력사적인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해 봄에는 새 식구 넷이 새로 무대에 올랐고 성원들의 신곡이 달마다 하나씩 세상에 나왔다. 나는 발매일정표가 벽 한켠을 채워가는것을 보며 회사가 착실히 자라나고있다고 여기였다. 그러나 정작 곁에서 자라나는 딸들의 걸음은 신문에 실릴 사변이 아니여서, 나는 그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문득 뒤돌아보고서야 알아차리군하였다.
자라난다는것은 곧게 뻗기만 하는 일이 아니였다. 오래 다니던 방송자리를 성원 모두가 통째로 옮겨야 하였던 밤이 있었고, 다섯이여야 할 자리에 끝내 넷만 남던 봄이 있었다. 나는 그 봄, 도면우에 그려진 다섯사람의 자리를 손끝으로 짚어보며 그 수자가 흔들릴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였던 나 자신을 오래도록 돌이켜보게 되였다.
그리고 그해 끝머리에는 이 책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붓을 놓고싶었던 장, 《가장 슬픈 장》이 놓여있다. 성원들은 나를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들》이라 불렀다. 나는 그 말을 한사코 부정하여왔지만 딸 하나를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떠한것인지는 그해 겨울에야 비로소 조금 알게 되였다.
나는 이 권에서 그 리별의 참된 곡절을 낱낱이 밝혀 적을 생각이 없다. 누구를 탓하거나 누구의 속내를 함부로 짐작하여 적는것은 내가 가장 삼가는 일이다. 다만 그해 우리를 지나간 굴곡의 결만은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
원래 나는 이 아홉번째 권을 이렇게 서둘러 앉혀놓을 생각이 없었다. 좋은 일만 골라 적어도 여덟권으로 이미 넉넉하다고 여기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일만 남기고 힘겨웠던 일은 지워버리는 기록이야말로 온전한 기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무거운 장을 피하지 않고 이 권속에 그대로 들여앉히기로 하였다.
나는 이 회사를 처음 차리던 날부터 오늘까지 성원들을 믿고 성원들에 의거하는것을 내나름의 신조로 삼아왔다. 몇명 안되는 성원과 콤퓨터 몇대로 시작한 살림이 오늘 이만큼 자라난것은 오로지 그 믿음 덕이였다. 그러니 그 믿음이 시험받던 한해를 빼놓고서야 어찌 이 회사의 자라남을 온전히 적었다 할수 있겠는가.
유니동지의 첫 무대가 하필 그해 세밑에 열린것도 나에게는 결코 례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자리를 비운 뒤에도 무대는 다시 서야 하고 남은 이들은 또 걸어나가야 한다는것을, 나는 그 겨울 화정체육관의 좌석번호를 몇번이고 다시 세어보며 새삼 배웠다.
나는 나의 이 아홉번째 권이 남달리 특별한 이야기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자라나는 회사와 자라나는 딸들 곁에서 함께 흔들리고 함께 버티였던 한해의 기록이라고 여길뿐이다.
이 권을 읽는 이들에게 내가 바라는것은 하나뿐이다. 무대우의 밝은 조명 뒤에는 늘 결재판과 망설임과, 때로 리별의 아픔까지 함께 있다는것을, 그리고 그 모든 굴곡을 지나고도 다음 무대는 또다시 서게 된다는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것이다.
먼저 무대를 내려선 이의 앞길에 부디 밝은 빛만 있기를 바라며 우주33(2026)년 가을 사무실에서 이 머리글을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