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첫 방 송

 

우주19(2012)년 동지달 스무이레, 그날은 유난히 바람이 찼다. 낮부터 흐리던 하늘이 저녁이 되자 아주 가라앉아, 창밖 골목에는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떠 있었다. 나는 그때 살던 좁은 자취방에서 콤퓨터 한대를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방안은 뜨거운 본체 소리와 낡은 온풍기 소리로 웅웅거렸다.

방은 두평 남짓, 책상 하나와 옷장 하나, 그리고 이불 한채가 전부였다. 책상우에는 마우스와 건반, 그리고 그날 새로 들여놓은 마이크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창문에는 성에가 끼여 바깥이 뿌옇게 비치였고, 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

벽에 걸린 달력은 아직 그해의 마지막 장을 넘기지 못한채였다. 나는 그 달력을 볼 때마다 올해도 벌써 다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스물이 되기 전에 무엇이든 하나 벌려놓고 싶다는 조급함이 그무렵의 내 마음 한구석에 늘 있었다.

방문 밖 복도에서는 이따금 다른 방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나는 그 방과 이 방이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 좁고 외로운 방안이, 후날 돌이켜보면 내가 세상과 처음으로 이어지던 자리였다.

스무살이 되기도 전, 겨우 열여덟이 저물어가던무렵의 일이다. 생일이 지난지 며칠 안되였으니 나이를 먹었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오락으로 메우고있었다.

그무렵 나는 오래 만나던 사람과 헤여진 뒤였다. 리유는 여러가지였으나, 지금 와서 하나하나 들추어 무엇하겠는가. 다만 그 리별이 남긴 자리가 컸다는것만은 분명히 말할수 있다.

사람은 마음이 허해지면 무엇으로든 그 자리를 메우려 한다. 나는 그것을 오락으로 메웠다. 《리그 오브 레전드》 판을 밤새 돌리며, 이기고 지는 그 단순한 셈만이 그때의 나를 붙들어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혼자 하는 오락이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 잘하는데, 이것을 나 혼자만 보고있어야 하는가. 실력을 남에게 보여주고싶다는 마음은 그렇게 슬그머니 찾아왔다.

그 시절 콤퓨터 화면앞에는 《아프리카TV》라는것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방송국을 하나씩 차려놓고 오락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떠들었다. 나는 며칠을 그 화면들을 구경만 하다가, 문득 나도 저기 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결심이였다. 실련의 상처를 달래겠다고 시작한 일이 후날 내 삶 전체를 바꾸어놓았으니, 사람의 인생이란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다. 그때는 그저 하루를 견디기 위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마이크를 하나 사기로 하였다. 돈이 넉넉지 않던 때라 오래 망설였다. 인터네트 장바구니에 마이크를 넣었다 뺐다 하기를 며칠, 결국 손끝으로 결제 단추를 눌렀다.

마이크가 도착한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자를 뜯어 마이크를 책상우에 세워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 작은 물건 하나가 목소리를 세상에 내보내는 통로가 된다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방송국 이름을 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그냥 내 닉네임을 그대로 걸었다. 강지 — 그때는 그것이 그저 게임안에서 쓰던 이름일뿐, 후날 그렇게 오래 불리게 될줄은 몰랐다.

본명은 따로 있었으나 나는 그것을 화면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강지라는 이름 석자만 걸어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작은 결정 하나가 후날까지 이어지는 습관이 되였다 — 어디서든 나는 강지로 불리고, 강지로 살아간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집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오락이나 하고 앉아있다고 걱정할것이 뻔하였기때문이다. 그래서 방문을 걸어잠그고 혼자만 아는 비밀을 하나 만든 셈이였다.

방송을 시작하기로 한 날, 나는 하루종일 마음이 붕 떠있었다. 밥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몰랐고, 오락 한판을 돌려도 손끝이 굳어 평소만큼 되지 않았다. 저녁이 되여 방문을 닫고 콤퓨터앞에 앉았을 때에야 비로소 오늘이 그날이라는것이 실감되였다.

나는 머리수화기를 쓰고 마이크 위치를 몇번이나 고쳐잡았다. 손이 떨려 마우스를 쥔 손바닥에 땀이 배였다. 창밖은 이미 깜깜해져 유리창에 내 방 안 풍경이 그대로 비치였다.

방송 시작 단추를 누르기전, 나는 랭수 한사발을 들이켰다. 목이 타는것이 긴장 탓인지 갈증 탓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단추를 눌렀다.

지금 와서 우스개로 말하자면, 그 단추 하나 누르는데 든 결심이 어느 장수가 진두에 나서기전 세우는 결심 못지 않았다. 물론 그 앞에 놓인것은 적진이 아니라 겨우 콤퓨터 화면 하나였을뿐이지만, 그때 내 심장은 분명 그렇게 뛰였다. 사람이 스스로에게는 늘 자기 일이 세상에서 제일 큰 일인 법이다.

화면 한귀퉁이에 대화창이 열렸다. 처음에는 텅 비여있었다. 나는 그 빈칸을 보며 혼자말로 몇마디를 중얼거렸다 —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하고.

몇분이 지나자 이름 모를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대화창에 짧은 인사말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목소리가 커졌다. 열명, 스무명 — 지금 생각하면 우스울만큼 적은 수였지만, 그때 나에게는 그것이 온 세상이였다.

《목소리 좋다.》 누군가 그렇게 적었다. 나는 그 짧은 한줄에 얼굴이 화끈해져 헛기침을 하였다.

《화면이 왜 이렇게 흐려요.》 또 누군가 그렇게 놀렸다. 나는 콤퓨터 설정을 만질 줄도 모르면서 아는체를 하며 《아, 이거 곧 좋아질거예요.》 하고 둘러댔다.

《몇살이세요.》 라는 물음도 올라왔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나이를 밝혔다. 그러자 대화창에는 《동갑이네.》, 《누난가.》 하는 말들이 뒤섞여 올라왔다.

나는 그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꾸하며, 이것이 방송이라는것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느꼈다. 화면 저편에 사람이 있다는것, 그 사람이 지금 이 순간 내 말을 듣고 웃고 있다는것 — 그 실감이 그렇게나 신기하였다.

나는 오락을 켰다. 《리그 오브 레전드》 첫판을 돌리며 손에 익은 챔피언을 골랐다. 그 자리, 그 챔피언만은 유난히 자신이 있었다 — 혼자 오락을 하며 수백판을 돌려본 자리였으니, 적어도 그것 하나만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믿었다.

대화창에서는 저마다 이 챔피언이 어떻고 저 상대가 어떻고 하는 말들이 올라왔다.

오락 초반에 나는 실수를 하나 저질렀다. 라인을 서다가 상대에게 어이없이 죽어버린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거친 말이 튀여나왔다.

《아 진짜 미치겠네, 저게 말이 되나.》 나는 마이크에 대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스스로도 놀랄만큼 격한 말투였다.

대화창이 그 말에 오히려 더 시끄러워졌다. 《ㅋㅋㅋㅋ 성격 봐.》, 《누나 진정하세요.》, 《저도 방금 같이 화났어요.》 하는 말들이 순식간에 겹쳐 올라왔다. 나는 그제서야 아차 싶어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시작이였다. 후날 사람들이 나를 두고 성미가 거칠다, 쌍욕을 퍼붓는다 하고 말할 그 버릇의 첫씨앗이 바로 그 첫 방송 첫판에서 뿌려진 셈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그것이 후날 별명 하나를 얻게 될줄은 몰랐다.

오락은 그럭저럭 이기였다. 이기고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대화창을 향해 어색하게 웃으며 잘봐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였다.

그날 방송은 두시간 남짓 이어졌다. 오락을 몇판 더 돌리고, 중간중간 대화창의 물음에 답하고, 혼자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였다. 시간이 그렇게 빨리 가는줄은 몰랐다.

방송을 끄고나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방금전까지 시끄럽던 대화창이 사라진 화면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정적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방송이 끝난 뒤에도 몇번이나 다시 들어가 시청자 수와 감상글을 확인하였다. 수자 하나 늘어나는것에 그렇게 마음이 들뜰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 수자를 보는 재미를 그날 처음 알아버렸다. 후날 시청자가 몇만명씩 붙는 자리에 서고나서도 나는 그 버릇을 끝내 버리지 못하였다.

그날 나는 자리에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하였다. 머리속에서는 방금전 대화창에 올라오던 말들이 자꾸 떠올랐다. 누군가 나를 보고있었다는것, 누군가 내 목소리를 듣고있었다는것 — 그것이 이상하게 마음을 데워주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한참 앞선 어느 때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나는 어릴 때 제부도라는 작은 섬에서 자랐다. 생후 백일도 안되여 그리로 옮겨갔다니, 내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지만 어머니는 그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바다가에서 자란 아이답게 나는 어려서부터 몸을 움직이는것을 좋아하였다. 중학생 때에는 렌즈를 꼈다가 또래들에게 구박을 받은 일도 있었다. 그런 사소한 일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상하던 시절이였다.

한때는 녀군이 되고싶다는 생각도 하였다. 씩씩하게 살고싶다는 마음이 그 안에 있었던듯하다. 결국 그 길로 가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 남들앞에서 당당히 서고싶어하는 성미만은 그때부터 있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렌즈를 꼈다고 구박받던 그 중학생 아이와, 겨우 열명 남짓한 시청자앞에서 목소리를 떨던 그 열여덟살의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였다. 남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결국은 제가 하고싶은대로 하고야 마는 성미, 그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지니고있었다.

그 성미가 몇해를 돌고돌아 결국 방송이라는 자리에 나를 세운것이 아닌가 싶다. 오락을 잘한다고 자부하던 마음, 남들앞에 서고싶어하던 마음, 그 두가지가 우연히 마이크 하나로 이어진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첫 방송이란 오래전부터 예비되여있던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다시 그날밤으로 돌아가면, 나는 늦도록 잠들지 못한채 다음 방송은 언제 켤가를 생각하고있었다. 하루 방송으로 그친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날도, 또 그다음날도 같은 시간에 콤퓨터앞에 앉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 몇주는 시청자 수가 늘 적었다. 열명 남짓, 어느날은 그보다도 적었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방송을 켰다.

그 시절 나는 방송을 마치고나면 늘 채팅 기록을 다시 읽어보았다. 누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어떤 장면에서 웃었는지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 그것이 그때 내가 할수 있는 유일한 공부였다.

어떤 날은 후원이라는것이 처음 들어왔다. 몇백원 남짓한 작은 액수였지만, 나는 그 화면을 보고 소리를 지를뻔하였다. 누군가 내 방송에 진짜 돈을 썼다는것이 그렇게나 신기한 일이였다.

나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날밤 나는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 비슷한것을 처음으로 얻었다. 작은 액수였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증명서 같았다.

후날 회사를 차리고 수억, 수십억을 헤아리는 돈을 만지게 되였을 때에도 나는 가끔 그 몇백원을 떠올렸다. 큰돈이 오간다고 그때의 감격이 되살아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작고 서투른 몇백원이 내 방송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돈이였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방송을 시작한 그해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방안은 늘 콤퓨터 본체의 열기로 후끈하였지만 창밖은 매섭게 추웠다. 나는 그 두 온도차 사이에 앉아 밤마다 오락을 하고 이야기를 하였다.

방송이라는것을 아직 잘 모르던 그때, 나는 대본이라는것도 없이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떠들었다. 화가 나면 화를 냈고 웃기면 웃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듬어지지 않은 방송이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이였다.

시청자들은 그런 나를 두고 성격이 화끈하다고도 하였고 무섭다고도 하였다. 나는 그런 말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 솔직함이 내 방송의 색갈이 되여갔다.

오락 실력을 보여주고싶어 시작한 방송이였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오락보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좋아졌다. 대화창에 올라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답을 하다보면 어느새 두시간, 세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혼자 하던 오락이 어느 순간 여럿이 함께하는 자리로 바뀌여있었다.

오락이 끝나고 잠깐 숨을 돌릴 때면 나는 화면 저편의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 사는지, 몇살인지, 오늘 하루는 어떠하였는지. 대답이 하나둘 올라올 때마다 나는 그 짧은 글자들속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꼈다.

어느 날은 대화창에 내 오락 실력을 두고 칭찬하는 말이 잇달아 올라왔다. 나는 그것이 쑥스러워 괜히 딴청을 피우며 다음 오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속으로는 오래 자랑스러웠다.

또 어느 날은 손님이 하나도 들지 않아 나 혼자 화면앞에서 두시간을 떠든적도 있었다. 그런 날은 방송을 끄고나서 유난히 허전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나는 또 같은 시간에 마이크를 켰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이듬해 봄이 오도록 나는 방송을 이어갔다. 시청자는 조금씩 늘어났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하나둘 생기였다. 그것이 그때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안이였다.

지금 이 회고록을 쓰며 그 시절을 되짚어보면, 그 첫 방송이 내 방송 인생 전체의 첫 문장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력사라는것을 거창하게 말할 계제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 개인의 력사에서는 그날이 첫 페지였다. 그날 이전의 나와 그날 이후의 나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 되였다.

후날 나무의 백과사전이라는 그 방대한 기록물에 내 이름 석자와 함께 이 날자가 콕 박혀 몇번이고 고쳐 쓰이게 될줄은, 그때의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좁은 자취방에서 겨우 열명 남짓앞에 떨던 그 저녁이, 후날에는 어느 사전에 《첫 방송》이라는 표제어로 오르게 되였으니, 력사라는것은 참으로 우스운 방식으로 사람을 찾아오는가보다.

후날 사람들은 나를 강지라 부르고 또 정사장이라 부르고 여러 이름으로 불렀지만, 그 모든 이름의 뿌리는 그 겨울밤 좁은 방에서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켰던 순간에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무리 자리가 커져도 처음의 그 떨림을 기억해야 한다고 늘 되뇌인다.

그날 방송을 끝내고 창문을 열었을 때,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다는안도감을 느꼈다. 그것이 내가 방송이라는것에서 처음 느낀 홀가분함이였다.

그뒤로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콤퓨터앞에 앉았다. 몸이 아파도, 마음이 무거워도 방송 시간이 되면 마이크를 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것같은 조바심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조바심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온 힘이였는지도 모른다. 시청자 수가 몇명 늘었다고 기뻐하고, 며칠 줄었다고 초조해하던 그 마음. 그런 사소한 등락에 일희일비하던 시절이 지금은 오히려 그립다.

그때 나는 방송이라는것이 이렇게 오래, 이렇게 멀리까지 나를 데려갈줄은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블루라는 사람을 만나게 될것도, 그와 함께 《우결》이라는것을 하게 될것도, 더 나중에는 회사를 차리고 여러 딸들을 거느리게 될것도 — 그 모든것이 그때는 아직 오지 않은 일이였다.

설레임이라는 이름의 그루빠에 들어가 여럿이 방송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것도, 또 그 그루빠를 나와 홀로 서게 되는것도 아직은 먼 후날의 일이였다. 그런 굽이굽이를 거치리라는것을 그 겨울의 나는 알 턱이 없었다. 다만 오늘 하루의 방송을 무사히 마치는것, 그것만이 눈앞의 전부였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 겨울, 실련의 상처를 안고 오락으로 마음을 달래던 열여덟살의 내가, 얼떨결에 마이크를 켠 그 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것이다. 인생이란 참으로 사소한 결심 하나에서 크게 갈라지는 법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의 방송을 떠올린다. 화질도 나쁘고 소리도 지지직거리던, 보잘것없는 첫 방송이였다. 그러나 그 보잘것없음속에 이미 지금의 나를 이루는 모든것의 씨앗이 들어있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날 이후 몇해가 지나 나는 또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그루빠라는것을 이루게 되고, 또 그것을 나오게 되고, 결국 혼자 서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는 뒤에 가서 하기로 하자. 지금은 다만 그 첫 방송의 떨림만을 기록해두고싶다.

지금 나는 스텔라이브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여러 딸들의 이름을 하루에도 몇번씩 부르며 지낸다. 회의를 하고 결재를 하고, 때로는 사과문을 쓰고 방송사고를 수습한다. 그 모든 하루하루의 뿌리를 더듬어올라가면 결국 그 겨울, 열여덟살의 내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켜던 그 저녁에 가닿는다.

그때 나는 그저 실련의 상처를 달래려던것뿐이였다.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리에서 이만큼의 무게를 지게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못하였다. 그러나 력사라는것은 늘 그렇게, 아무도 예상 못한 자리에서 조용히 첫 걸음을 떼는듯하다.

우주19(2012)년 동지달의 그 저녁, 좁은 방안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듯 방송을 시작한 그 순간이 나에게는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그 노래는 오래도록 나 혼자만의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이 후날 얼마나 많은 사람과 함께 부르는 노래가 될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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