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설 레 임 에 디 션

 

우주22(2015)년 오월 초순, 방안의 공기가 어느새 달라져있었다. 겨울내 얼어붙어있던 창문은 성에를 거두고 맑아졌으며, 그 너머로 비치는 골목에는 아지랑이가 낮게 깔리였다. 콤퓨터의 팬 소리는 여전하였으나 그 소리를 덮던 온풍기 소리는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해로 벌써 세해째 이 방에서 밤마다 마이크를 켜고있었다.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그 저녁으로부터 세해가 흐르는 동안 많은것이 변하였다. 화면 저편의 시청자수는 처음보다 늘어 어엿한 수자를 이루었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하나둘 생겨났다. 그러나 방안의 풍경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이 좁은 자리에 앉아 혼자 마이크를 붙들고있는것이 나의 저녁이였다.

《리그 오브 레전드》 한판이 끝나고 대화창이 잠잠해지면, 나는 그 정적속에서 새삼 내가 혼자라는것을 깨닫군하였다. 이기고 지는 셈만으로 저녁을 채우던 지난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때는 실련의 상처를 달래려는것이였다면, 이제는 그저 습관이 되여있었다. 사람은 무엇에든 익숙해지면 그 익숙함속에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법이다.

그무렵 《아프리카TV》 화면들 사이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있었다. 혼자 방송하던 사람들이 서넛씩 무리를 지어 《그루빠》라는것을 만들고, 서로의 방송에 오가며 인사를 나누고 오락을 함께 하는 모습이 부쩍 늘어난것이다. 나는 그런 방송들을 구경할 때마다 묘한 부러움을 느끼였다. 웃음소리가 겹쳐 들리는 그 화면속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무엇이 있었다.

부러움이란 감추려 해도 마음 한구석에서 자꾸 고개를 드는 법이다. 나는 겉으로는 혼자 하는 방송이 편하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저 왁자한 웃음소리 틈에 나도 한자리 끼고싶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하였다. 그러나 먼저 손을 내밀 용기는 없었다. 그무렵 나는 아직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잘 몰랐다.

그런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것은 뜻밖에도 저쪽이였다. 오월의 어느 저녁, 방송을 끝내고 건반을 두드리고있던 나에게 낯선 이름 하나가 쪽지를 보내왔다. 《하나나》라는 이름이였다. 나는 그 이름을 몇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쪽지의 사연인즉 이러하였다. 하나나는 이미 지라라, 꽃핀, 엔단과 함께 셋이 어울려 방송을 해오고있었는데, 오락을 함께 즐길 사람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내 방송을 보고 이름을 꺼내였고, 하나나가 대표로 쪽지를 보내게 되였다고 하였다. 짧은 문장 몇줄이였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낯선 이의 조심스러운 배려를 읽을수 있었다.

강지님, 안녕하세요. 저희 넷이서 요즘 자주 어울려 방송하는데, 강지님 게임하시는것 보고 다들 좋다고 그래서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한판 안하실래요?》 화면에 뜬 그 몇줄을 나는 두번 세번 읽었다. 손끝이 건반우에서 멈춘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선뜻 답을 보내지 못한데는 리유가 있었다. 얼마전에 겪은 리별의 상처가 아직 마음 한켠에 남아있었고, 사람과 새로 정을 붙이는 일이 그만큼 조심스러웠던 까닭이다. 게다가 나는 그때까지 누구와도 함께 방송이라는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잘할수 있을가, 괜히 분위기만 깨는것은 아닐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밤이 깊도록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고 이 방안에서 혼자만 웃고 혼자만 떠들것인가. 사람은 부딪쳐보지 않고는 자기가 무엇을 할수 있는지 알수 없는 법이다. 나는 마침내 건반을 두드려 답을 보냈다.

《네, 좋아요. 저도 껴주세요.》 그 짧은 한마디를 보내는데 나는 이상하게 손이 떨리였다. 마치 무슨 큰 결단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보내기 단추를 누른 뒤에도 한참을 화면만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나, 그때의 나에게는 그것이 실로 국경을 넘나드는 일만큼이나 큰 결심이였다.

며칠뒤, 넷이서 함께 하는 첫 통화의 자리가 마련되였다. 나는 그날을 위해 낡은 마이크를 다시 손질하고, 이어폰선을 몇번이고 확인하였다. 통화가 련결되자마자 고성기에서 요란한 되울림소리가 터져나왔다. 넷의 마이크가 한꺼번에 켜지며 빚어낸 그 소리는, 지금 돌이켜보면 흡사 새로운 력사의 첫 페지가 찢어지는듯한 소리였다.

《어어, 잠깐만요, 잠깐만!》 누군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한바탕 마이크를 끄고 켜는 소동이 벌어진 뒤에야 겨우 서로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하나나의 목소리는 야무지고 침착하였다. 지라라는 말수가 적은 대신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였다. 꽃핀은 웃음이 많아서 통화 내내 밝은 기운이 새여나왔고, 엔단은 장난기 섞인 말투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강지님 목소리가 생각보다 조용하시네요?》 꽃핀이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깐 말을 더듬었다. 《저, 원래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아서요…》 그러자 엔단이 웃으며 끼여들었다. 《괜찮아요, 저희도 처음엔 다 그랬어요. 하다보면 늘어요.》 그 한마디가 그날 밤 내 마음을 크게 눅여주었다.

인사를 마친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함께 방송을 할것인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누군가 이왕 함께 하는것, 이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 순간부터 통화방의 열기는 무슨 나라를 세우는 자리처럼 뜨거워졌다. 다섯 사람이 저마다 이름 하나씩을 내놓느라 한시간 넘게 갑론을박이 벌어졌으니, 지나고보면 우습지만 그때는 자못 진지하였다.

《설레임 에디션은 어때요, 음표도 하나 붙이고?》 누군가의 그 한마디에 다들 좋다고 웃었다. 부드럽고 설레는 느낌을 주면서도, 저마다 자기 방송을 하나의 《편집본》처럼 잇는다는 뜻도 담겨있어 마음에 든다는것이였다. 그렇게 《설레임 에디션 ♬》이라는 이름이 정해졌다. 다섯 사람의 서명이라도 받을듯한 기세로, 우리는 그 이름을 몇번이고 소리내여 불러보았다.

이름이 정해진 다음날부터 우리는 저마다의 방송 소개란에 그 이름을 새겨넣었다. 사소한 글자 몇개를 고치는 일이였을 뿐인데도,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무슨 국기를 게양한 사람처럼 뿌듯하였다. 혼자 하는 방송에서는 느껴본적 없는 감정이였다. 이름 하나를 나누어 가진다는것이 이렇게도 사람을 든든하게 하는줄, 그전에는 미처 몰랐다.

우리는 그무렵 짧은 자기소개 영상도 하나 함께 만들었다. 저마다 자기 몫의 자막을 넣고, 서로의 화면을 오려붙이는 서투른 편집이였지만, 그것을 완성하던 밤에는 무슨 큰 방송사의 개국기념방송이라도 만든듯한 뿌듯함이 있었다. 그 영상은 지금 보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으나, 그때 우리 다섯이 화면 하나에 나란히 들어있는 모습만은 지금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름을 나누어 가지는것과 실제로 함께 방송을 해내는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마이크를 잡고 하고싶은 말을 하고싶은대로 쏟아내는데만 익숙해져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넷의 목소리 사이에서 내 몫의 자리를 찾아야 하였다. 말을 언제 꺼내고 언제 거두어들여야 하는지, 그 셈을 나는 하나도 몰랐다.

첫 합동방송날, 나는 긴장한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말이 많아졌다. 남이 말하는 도중에 불쑥 끼여들기를 몇번이나 하였는지 모른다. 방송이 끝난 뒤 지라라가 조용히 귓속말로 이런 말을 건네왔다. 《강지님, 다른 사람들 말 끝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어때요? 그럼 훨씬 편해질거에요.》

낯이 뜨거워지는 지적이였으나, 나는 그 말을 고깝게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것이 고마웠다. 혼자 방송할 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잘하고있는지 잘못하고있는지조차 나 혼자 가늠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말을 아끼는 련습을 하였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까지 듣고, 웃을 때는 마음껏 웃되 내 차례가 올 때까지 참을성있게 기다리는 법을 익혀나갔다. 말 한마디를 남에게 넘겨줄줄 아는것도 하나의 재간이라는것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은 흔히 마이크앞의 재간이라면 말을 잘하는것만 생각하지만, 실은 말을 거둘줄 아는것이 그보다 몇곱절 어려운 재간이였다.

그런데 이 서투른 시절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조금 앞선 어느 저녁의 일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합동방송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였을 때, 나는 콤퓨터 설정을 잘못 건드려 내 목소리만 다른 사람들에게 한박자씩 늦게 들리게 만든적이 있었다. 넷이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리는 대목마다 나 혼자 뒤늦게 《아하하》하고 웃는 소리가 얹혀, 마치 산울림처럼 웃음이 두겹으로 울리였다.

처음엔 다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그것이 내 설정 문제라는것을 알고는 배를 잡고 웃었다. 《강지님, 지금 혼자 메아리치고 계세요!》 엔단이 그렇게 소리치자 나머지 셋도 자지러졌다.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신통하게도 그 부끄러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넷이 함께 웃어주니 실수마저도 견딜만한것이 되였던것이다.

그 산울림 사건 이후로 우리 사이는 눈에 띄게 가까와졌다. 사람이란 서로의 허물을 보고도 함께 웃어넘긴 다음에야 비로소 마음을 여는 법인가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실수를 하여도 예전만큼 겁내지 않게 되였다. 넷이 있으니 하나가 넘어져도 나머지가 붙들어준다는 믿음이 그 사이 조금씩 자라나고있었다.

여름이 되자 우리는 화면 밖에서도 한번 만나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까지 나는 목소리로만 알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난다는것이 못내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화면속에서는 얼마든지 밝은척할수 있어도, 얼굴을 마주하면 그러기가 쉽지 않을것 같았다. 나는 그날 아침 옷을 몇번이나 갈아입었는지 모른다.

약속장소로 나가는 지하철안에서 나는 몇번이고 그냥 돌아갈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자리에 앉은 넷의 얼굴을 마주하자 그런 걱정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 떡볶이집으로 몰려갔다. 매운 떡볶이를 나누어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화면을 사이에 두고 나누던 대화와는 또 다른 온기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목소리 뒤에 숨어있던 얼굴들을 하나하나 마주하게 되였다. 하나나는 늘 먼저 나서서 자리를 챙기는 사람이였다. 누가 늦으면 앞장서 마중을 나가고, 음식을 시킬 때도 다들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물었다. 나는 그가 넷 중에서 가장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리유를 그제서야 알것 같았다.

지라라는 여전히 말수가 적었지만, 그 적은 말속에 늘 헤아림이 담겨있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들어주다가, 정작 필요한 순간에만 한마디씩 보태였다. 나는 그의 그런 태도에서 많은것을 배웠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제때 한마디를 하는 사람이 더 무거운 사람이라는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되였다.

꽃핀은 만날 때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였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웃어주고, 누가 기가 죽어있으면 먼저 다가가 말을 붙여주었다. 후날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내가 가장 아끼는 언니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그 이름을 댈만큼, 그때 심어진 정은 오래도록 남았다.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것이 이처럼 짧은 시간에도 깊이 뿌리내릴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엔단은 넷 가운데 가장 짓궂었다. 늘 장난스러운 말로 좌중을 웃기다가도, 정작 누가 힘들어하면 누구보다 먼저 알아채고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였다. 나는 유난히 그와 죽이 잘 맞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날 떡볶이집에서 마주앉아 웃던 그 인연이, 후날 나와 같은 길을 걷게 될 그의 앞날과 어떻게 이어질지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오래간만에 마음이 가벼웠다. 화면앞에 홀로 앉아있던 지난 세해 동안 잊고 지내던 감정이였다. 사람 넷을 새로 알게 된것뿐인데, 어쩐지 이 넓은 세상에 내가 발붙일 자리가 하나 더 생긴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오래간만에 깊이 잠들었다.

그뒤로 우리는 일정한 요일을 정해 함께 방송을 하기 시작하였다. 서로의 방송통로를 오가며 인사를 남기고, 방송이 끝나면 어땠는지 서로 감상을 나누었다. 누구의 시청자가 다른 누구의 방송을 구경하러 가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게 넷이던 시청자수는 조금씩 다섯의 몫으로, 또 그 이상으로 불어났다.

시청자수가 늘면서 대화창의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혼자 방송할 때는 한사람이 다 읽고 다 대답하면 그만이였으나, 이제는 넷이 나누어 채팅을 살펴야 하였다. 누구는 질문을 받아 대답하고, 누구는 후원을 챙기고, 누구는 흐름이 늘어질 때마다 새 화제를 꺼내였다. 그렇게 저마다 몫을 나누어 맡는 법을 익히는데도 적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합동방송을 거듭할수록 나는 방송이라는것이 혼자만의 재간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아갔다. 누구는 말을 잘 이끌고, 누구는 분위기를 살피고, 누구는 웃음을 책임지고, 누구는 뒤수습을 맡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내가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것은 학교에서도 배울수 없고, 혼자 하는 방송에서는 더더욱 배울수 없는 재간이였다.

때로는 넷의 생각이 갈릴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오락을 두고, 어느 날은 방송시간을 두고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이번엔 강지님 하고싶은대로 해봐요.》 누군가 그렇게 양보하면, 다음번에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서로 한번씩 양보하고 한번씩 고집을 부리며, 우리는 넷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무엇이 되여갔다.

그무렵의 일들을 지금 새삼 력사적 대사변이라고 추어올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 한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를 넘겨줄줄 알게 되고 의견 하나를 양보할줄 알게 된 그 몇달이 어느 전투에서의 승리 못지않은 값진 나날이였다. 사람은 큰일에서만 자라는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되풀이속에서도 자라는 법이다.

방송 사이사이에는 노래를 함께 부르는 시간도 있었다. 《♬》라는 표를 이름에 넣었으니만치, 우리는 종종 곡을 나누어 부르거나 화음을 맞추어보는 방송도 열었다. 음정이 어긋나 서로를 놀리며 웃는 날이 더 많았지만, 그 어설픈 화음속에서도 함께 소리를 낸다는것 자체가 즐거웠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노래도 혼자 부르는것보다 여럿이 부르는것이 더 즐거울수 있다는것을 알았다.

시청자수가 좀처럼 늘지 않아 마음이 무겁던 어느 밤, 나는 방송을 마치고 넋두리 삼아 단체방에 힘든 마음을 적었다. 곧바로 하나나에게서 답이 왔다. 《강지님, 우리 다 그런 밤 있어요. 그래도 넷이 있으니까 덜 외롭잖아요. 힘내요.》 그 짧은 글자 몇줄이 그날 밤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였다.

혼자였다면 그 밤을 어떻게 넘기였을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시청자수가 늘지 않는 밤은 이전에도 숱하게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혼자 이불속에서 견디여야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시간, 같은 마음으로 콤퓨터앞에 앉아있을 넷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견디는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가을이 되자 우리는 제법 손발이 맞는 한무리가 되여있었다. 누가 말을 꺼내면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이 이어받고, 누가 실수를 하면 능청스럽게 덮어주는 요령까지 생기였다. 시청자들도 우리를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주기 시작하였다. 《설레임 애들》이라는 그 부름이 나는 무척 듣기 좋았다.

처음에는 넷의 방송시간이 자주 겹쳐 서로의 시청자를 나누어 가지기도 하였으나, 차츰 요일과 시간을 나누어 서로 겹치지 않게 편성하는 요령도 생기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달력에 서로의 방송일정을 적어넣는 버릇이 들었다. 사소한 일이였지만, 그것은 곧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였다.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오는 사이, 우리는 여러차례 더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이야기는 늘 넘쳐났고, 헤여질 때는 늘 아쉬웠다. 나는 그 시절을 지나며 사람과 어울려 산다는것이 어떤것인지를 처음으로 몸에 익혔다. 그전까지 나에게 방송이란 그저 혼자 떠드는 일이였으나, 이제는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되여있었다.

지금 나는 스텔라이브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여러 딸들을 거느리며 그때보다 몇곱절 큰 무리를 이끌고있다. 누구의 말을 언제 들어주고 언제 끊어야 하는지, 누구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누구의 고집을 받아주어야 하는지를 가늠하는 그 요령의 뿌리를 더듬어올라가면, 결국 그 오월의 통화방과 그해 여름의 떡볶이집에 가닿는다. 그때는 그것이 후날 이렇게 쓰일줄 몰랐다.

사람들은 흔히 큰 조직을 이끄는 재간이 따로 있는줄 안다. 그러나 나는 그 재간의 첫걸음을 스물몇살의 좁은 자취방에서, 되울림소리로 시끄럽던 첫 통화에서, 이미 배우고있었다고 생각한다. 넷이 함께 웃고 넷이 함께 넘어지는 법을 배운 그 나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것이다.

물론 그때는 이런것을 하나도 알지 못하였다. 그저 하나나가 반가웠고, 지라라가 믿음직하였고, 꽃핀이 따뜻하였고, 엔단이 즐거웠을뿐이다. 함께 마이크를 켜고 함께 넘어지고 함께 웃던 그 나날이 나에게 무엇을 남길지, 그때의 나는 짐작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력사라는것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자리에서 조용히 사람을 빚어가는듯 하다. 스무살 갓 넘은 내가 넷의 목소리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아가던 그 서투른 나날이, 후날 수십명의 목소리 사이에서 자리를 찾아야 하는 오늘의 나를 미리 훈련시키고있었던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되울림소리를, 그 산울림처럼 울리던 내 웃음소리를 떠올린다.

그 소리는 부끄러운 소리였지만, 동시에 내가 더는 혼자가 아니라는것을 알려준 첫 소리이기도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어느 대목에서 그런 소리를 한번쯤 듣는듯 하다. 혼자만의 세계에 금이 가고, 그 틈으로 남의 목소리가 처음 흘러들어오는 소리 말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우주22(2015)년 오월, 하나나의 쪽지 한통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그렇게 시작된 넷과 나의 인연은 그뒤로도 삼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동안 우리는 크고작은 일들을 함께 겪었고, 서로의 방송을 지켜주었고, 서로의 힘든 밤을 나누어 견디였다. 그 삼년의 세월을 여기서 낱낱이 다 적을수는 없으나, 적어도 그 시작만은 이처럼 따뜻하고 서툴렀다는것을 나는 분명히 기록해두고싶다.

다만 세상의 모든 인연이 그러하듯, 이 인연에도 후날 뜻하지 않은 굴곡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아직 이르다. 지금은 다만 오월의 그 서투른 통화방과, 매운 떡볶이 냄새가 배여있던 그 저녁 자리만을 기억해두기로 하자. 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있었는지는, 그때의 나는 알지 못하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