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홀 로 서 기
우주25(2018)년 사월은 봄이 무르익어가면서도 밤이면 아직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는 그런 때였다. 나는 그날 밤에도 어김없이 방송을 마치고 콤퓨터앞에 앉아있었다. 머리수화기를 벗어놓은 자리에 귀가 오래도록 얼얼하였다. 창밖 골목에는 늦은 시각인데도 오가는 발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무렵 나는 이미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그 좁은 자취방을 벗어나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옮겨있었다. 그러나 방 안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책상 하나에 콤퓨터 두대, 그리고 벽에 붙여놓은 그루빠 넷의 사진 한장이 전부였다. 그 사진속에서 우리 넷은 아무 근심도 없다는듯 어깨를 겯고 활짝 웃고있었다. 나는 방송을 마치고나면 가끔 그 사진을 올려다보며 다음번엔 또 무슨 방송을 함께 해볼가 궁리하군하였다.
책상우에 놓인 손전화가 짧게 진동하였다. 화면을 켜보니 그루빠 단체 카톡방이였다. 그무렵 나는 그 방의 알림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는 버릇이 들어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 방은 나에게 즐거움보다 걱정을 먼저 안겨주는 자리로 바뀌여있었다.
그무렵 나는 《설레임 에디션》이라는 이름의 그루빠에 몸담고있었다. 앞서 적었듯이 나는 혼자 방송을 하다가 그 그루빠에 들어가 비로소 여럿이 함께 방송하는 법을 배운 처지였다. 하나나와 지라라, 그리고 엔단 — 이 세 사람과 나, 넷이 한식구처럼 어울려 다니던 때였다.
그루빠라는것이 원래 그러하다. 혼자서는 못할 일도 넷이 모이면 어쩐지 해볼만하게 느껴지고, 혼자서는 못 웃을 일도 넷이 모이면 배꼽을 잡고 웃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 시절을 지금도 따뜻하게 기억한다.
그무렵 우리는 저녁이면 으례 통화를 걸어 그날 방송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어떤 시청자가 왔다갔는지 시시콜콜 나누었다. 하나나는 늘 밝은 목소리로 그날 있었던 우스운 일부터 꺼내였고, 지라라는 그 이야기를 어떻게 편집해 클립으로 만들면 좋을지 벌써부터 궁리하였다. 엔단은 그 사이에서 롱담을 던지며 통화를 늘 웃음판으로 만들어놓았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잊군하였다.
우리는 가끔 넷이서 합방을 하기도 하였다. 화면 네개가 나란히 뜨고 서로의 목소리가 겹쳐 들리는 그 자리가 나는 유난히 좋았다. 혼자 하는 방송에서는 느낄수 없는 든든함이 그 화면 너머에 있었다.
넷이서 그루빠라는 이름을 걸고 처음 방송을 합칠 때, 우리는 마치 작은 나라 하나를 새로 세우는 사람들처럼 들떠있었다. 방송국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규칙을 어떻게 정할지 하나하나 의논하며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나라가 채 일년을 넘기지 못하고 흔들리기 시작하리라는것을, 그때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 그루빠에는 매니저라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회사에서 붙여준 사람으로, 넷의 일정을 잡고 방송국 사이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해주는 자리였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있어 여러가지로 편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매니저와 자꾸 부딪히게 되였다. 무엇을 하나 정하려 하여도 서로 생각이 달랐고, 개인 방송에 쓸 시간과 그루빠 방송에 쓸 시간을 나누는 문제에서도 늘 의견이 갈렸다. 나는 그때 내 개인 방송을 키워보고싶은 욕심이 한창 크던 때였는데, 매니저의 눈에는 그것이 그루빠보다 저 혼자를 앞세우는 일로 비친 모양이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느 한쪽만 잘못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매니저는 매니저대로 그루빠 전체를 챙겨야 할 립장이 있었을것이고, 나는 나대로 내 이름 석자를 걸고 하는 방송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것이다. 다만 그 두 립장이 자꾸 어긋나며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는것만은 분명하다.
갈등이라는것은 처음에는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하는 법이다. 일정을 두고 잠깐 언성을 높인 일, 방송 소재를 두고 의견이 갈린 일, 그런 사소한 일들이 하나둘 쌓여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소하던 일도 크게 부풀어 보이기 시작하였다.
하나나와 지라라는 그 사이에서 난처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넷 중 둘이 부딪히면 나머지 둘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나는 그때 그 두 사람이 나서서 내 편을 들어주기를 은근히 바랐던것 같다.
그러나 하나나도 지라라도 그 갈등앞에서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둘 다 그루빠의 평화를 지키고싶어 몸을 사리는 눈치였다. 나는 그 침묵을 두고 서운함을 쌓아갔다.
사월의 그 밤, 나는 매니저와 또 한번 언짢은 말을 주고받은 뒤였다. 무슨 일로 시작된 말다툼인지는 이제 와서 자세히 옮기기가 어렵다. 다만 그 끝에 나는 더는 이렇게는 못하겠다는 마음을 먹어버렸다.
나는 카톡방을 열어 한동안 커서만 깜빡이는 빈 칸을 들여다보았다. 손끝이 건반우에서 몇번이나 머뭇거렸다. 그러다 마음을 굳히고 한줄 한줄 글자를 쳐넣기 시작하였다.
《나 이제 크루 그만하려고. 개인 채널에 집중하고싶어.》 나는 그렇게 적어 그루빠방에 올렸다. 그 몇줄을 쳐넣는 손끝의 무게가, 무슨 대단한 선언문을 발표하는 사람의 손끝 못지않게 무겁게 느껴졌다.
화면 저편에서 곧바로 대답이 오지는 않았다. 몇분이 지나 하나나에게서 짧은 답이 왔다. 《갑자기 왜 그래.》 지라라도 뒤이어 비슷한 물음을 올렸다.
나는 그 물음들에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손가락은 건반우에 놓여있었으나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한참을 그렇게 화면만 들여다보다가, 결국속에 쌓여있던 말을 꺼내고말았다.
《너희 둘 다 그동안 한번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잖아.》 나는 그렇게 적어보냈다. 적고나서도 이 말이 얼마나 좁은 마음에서 나온것인지 스스로도 알고있었으나, 그날만은 그 좁은 마음을 감출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말이다. 두 사람이라고 늘 편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있었을 리 없다. 그들도 그들나름의 립장에서 조심하고 망설였을것을, 그때 나는 헤아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카톡방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화면우에 뜨는 《읽음》 표시만 하나둘 늘어갈뿐, 누구도 선뜻 다음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 침묵이 그날 밤 나에게는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날 밤, 엔단에게서 따로 련락이 왔다. 그가 그때 전해준 말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정확한 문장까지는 옮길수 없으나, 그 취지만은 뚜렷이 기억난다.
하나나와 지라라가 사실은 나와 함께하는 자리를 부담스러워한다는것이였다. 엔단은 그것을 넌지시 전하며 자신도 이 그루빠에 더는 남아있기가 어렵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것을 느꼈다.
그 말이 어디까지 사실이였는지, 나는 지금도 다 알지 못한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전언 하나로 모든것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날 그 말을 들은 나는, 표면에 내세운 서운함보다 더 무거운 무엇이 그 밑에 깔려있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연을 말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의 일을 하나 더 꺼내지 않을수 없다. 그루빠에 들어간지 얼마 안되였을 때, 넷이서 처음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날이 있었다. 그날 우리는 좁은 식당에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처음 마주보며 어색하게 웃었더랬다.
그날 하나나는 나에게 방송 잘 봤다며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지라라는 서투른 내 편집 솜씨를 보고 이것저것 짚어가며 가르쳐주었다. 엔단은 그 옆에서 실없는 롱담을 던져 자리를 웃음으로 채웠다. 그날의 그 웃음소리를 생각하면, 몇달 뒤 카톡방에서 오간 차가운 문장들과 도무지 같은 사람들이 나눈 말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다.
사람 사이란 이렇게 시작할 때는 다 따뜻하다가도, 어느 지점을 지나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미끄러져가는 모양이다. 그 갈라지는 지점이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 시작의 온기만은 거짓이 아니였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싶다.
다시 그 사월 밤으로 돌아가면, 나는 엔단의 말을 듣고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마음은 그루빠를 나서는 쪽으로 굳어져있었다. 엔단도 나와 함께 나가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때 엔단의 그 결정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안하였다. 나 하나의 일로 다른 사람의 자리까지 흔들어놓은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엔단은 개의치 않는다는듯 담담하게 그 뜻을 밝혔다.
며칠 뒤 나는 카톡방에 정식으로 탈퇴한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혔다. 짤막한 몇줄이였다. 그루빠라는것을 이룰 때는 그렇게 여럿이 모여 왁자하게 시작하더니, 허무는데는 그 몇줄이면 넉넉하였다.
우주25(2018)년 사월 스무이레, 나는 그렇게 《설레임 에디션》을 공식으로 나왔다. 그루빠방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가는 그 손끝의 감촉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화면 하나 넘기는 일이 그렇게 무거울수 있다는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지금 와서 우스개삼아 말하자면, 그 나가기 단추 하나를 누르는 일이 마치 오래 이어온 작은 나라 하나를 접는 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물론 그 자리에 걸린것은 넷이서 만든 작은 방송 모임 하나였을뿐이지만, 그날의 내 마음은 분명 그러하였다. 사람이란 제 앞에 놓인 일을 늘 실제보다 크게 여기는 법이다.
탈퇴를 통보한 뒤에도 나는 며칠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손전화를 들여다볼 때마다 혹시 누가 무슨 말을 남기지 않았을가 하고 몇번이고 카톡방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였다.
매니저와는 그 뒤로 다시 말을 섞을 일이 없었다. 갈등의 처음이 무엇이였는지는 이제 와서 따져보아도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그 갈등 하나가 넷이서 쌓아온 몇해를 그렇게 허물어뜨렸다는 사실만은 남는다.
그루빠를 나온 뒤 나는 한동안 방송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늘 옆에 누군가 있어 함께 웃고 함께 떠들던 자리에서, 이제는 다시 화면앞에 나 혼자였다. 그 헛헛함은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 그 겨울밤의 떨림과는 또 다른 종류의 것이였다.
벽에 붙여놓았던 그 넷의 사진도 한동안은 그대로 두었다. 뗄 때가 되였다는것을 알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기때문이다. 결국 그 사진을 뗀것은 한참 뒤, 새로운 방을 얻어 이사를 하던 날이였다.
방송을 켜면 대화창에서 몇몇이 그루빠의 안부를 물었다. 《오늘은 크루방송 안해요?》 하는 물음이 올라올 때마다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렸다. 그때마다 나는 무언가 큰것을 잃은 사람처럼 마음이 허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무렵 나는 혼자가 된다는것의 무게를 아직 다 모르고있었다. 여럿이 있을 때는 무슨 일이 생겨도 누군가와 나누어질수 있었으나, 혼자가 되고나니 좋은 일도 궂은 일도 오롯이 나 혼자 짊어져야 하였다. 그것을 몸으로 배우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하나나와 지라라는 그루빠에 남았다. 둘이서 그 이름을 이어가는 모습을 나는 멀리서 지켜보았다. 서운한 마음이 다 가시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분명 그 안에 있었다.
그러나 둘만 남은 그루빠도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그해 섣달무렵부터는 그 이름으로 올라오는 영상이 뜸해지더니, 오래지 않아 아주 끊어지고말았다. 넷이서 세운 그 작은 나라는 그렇게 얼마 못가 스러졌으니, 력사책에 적자면 그야말로 단명한 왕조였던 셈이다.
나는 그 소식을 뒤늦게 전해듣고 묘한 심정이 되였다. 내가 나온 뒤에도 그루빠가 오래오래 이어졌더라면 하는 마음과,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였다면 차라리 다행이라는 마음이 한데 섞여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한번에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것인가보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 무엇이 진짜 리유였는지 다 알지 못한다. 매니저와의 갈등이 결정적이였는지, 엔단이 전해준 그 말이 결정적이였는지, 아니면 그저 넷의 길이 처음부터 오래 함께할 길이 아니였는지 — 그 어느 쪽이라고도 딱 잘라 말할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회고록이라는것을 쓰면서도 이렇게 여백으로 남겨둘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다는것을, 나는 이제야 받아들인다.
다만 한가지, 그 사월의 며칠이 내 방송 인생에서 하나의 갈림길이였다는것만은 분명히 말할수 있다. 그때 내가 그루빠에 남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것이다. 그루빠를 나와 혼자 서게 된 그 일이, 뒤에 가서 내가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드는 첫걸음이 되였기때문이다.
그루빠를 나온 뒤 얼마간 나는 방송 소재를 정하는 일부터 일정을 짜는 일까지 모든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몹시 버거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그 버거움속에서 어떤 홀가분함도 함께 느끼게 되였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하고싶은 방송을 내 마음대로 짜볼수 있다는것, 그것은 그루빠안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자유였다. 나는 그 자유를 조금씩 즐기는 법을 배워갔다. 물론 그 자유에는 늘 그만한 무게가 따라붙는다는것도 함께 배웠다.
지금 이 회고록을 쓰며 그 시절을 되짚어보면, 혼자가 된다는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 혼자됨이 있었기에 나는 후날 《유튜브》라는 새 마당에 혼자 힘으로 서볼 엄두를 낼수 있었다. 넘어지고 나서야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것이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사월이 그런 넘어짐의 계절이였다.
하나나와 지라라를 그뒤로 다시 만난적은 없다. 각자의 길에서 서로 무사하기를 바랄뿐이다. 그루빠라는 이름으로 함께 웃던 그 짧은 시절이 나쁜 기억으로만 남지는 않았다고,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히 적어두고싶다.
엔단과는 그뒤로도 이따금 소식을 주고받았다. 함께 그루빠를 나온 사람이라는 유대감 비슷한것이 우리 사이에 오래 남아있었다. 그가 없었더라면 그 사월의 밤이 훨씬 더 외로웠을것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 카톡방을 떠올린다. 넷이서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그 방과, 마지막에 차가운 문장 몇줄만 남기고 닫혀버린 그 방이 같은 자리였다는것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진다. 사람이 만드는 자리란, 사람이 떠나면 그렇게 순식간에 다른 얼굴을 하는가보다.
후날 나는 스텔라이브라는 회사를 차려 여러 딸들을 거느리게 되였을 때, 그 사월의 일을 자주 떠올렸다. 여럿이 한지붕 아래 모여 일한다는것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얼마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인지를, 나는 이미 그 그루빠에서 뼈저리게 배운 뒤였다. 그 배움이 없었더라면 후날 회사를 꾸리면서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루빠를 나온 그해 봄부터 나는 콤퓨터앞에 앉는 시간이 오히려 더 늘었다.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진 자리를, 나는 방송으로 메꾸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첫 방송을 시작하던 그 겨울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때와 달라진것이 있다면, 나는 이제 혼자 방송하는 법도, 여럿이 방송하는 법도 다 알고있는 사람이 되여있었다는 점이다. 그루빠에서 배운것과 그루빠를 나오며 배운것, 그 두가지를 함께 안고 나는 다시 화면앞에 앉았다. 그것이 이 시절이 나에게 남긴 가장 값진 재산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월의 밤, 카톡방의 빈 칸을 오래 들여다보던 그 순간이 내 방송 인생에서 또 하나의 문턱이였다. 첫 방송을 켜던 겨울밤이 세상과 처음 이어지던 문턱이였다면, 그루빠를 나서던 그 봄밤은 온전히 나 혼자 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문턱이였다. 두 문턱 다 떨리기는 매한가지였으나 그 떨림의 결은 서로 달랐다.
나는 그 뒤로 오래도록 누구와 그루빠를 이루는 일에 조심스러워졌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무엇을 이룬다는것이 얼마나 섬세한 균형우에 서있는것인지를 알아버렸기때문이다. 그 조심스러움은 후날 여러 성원들과 함께 회사를 꾸려나가는 자리에서도 늘 내 안에 있었다. 성원들끼리 서운한 일이 생겨 나에게 하소연을 해올 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 사월의 카톡방을 떠올리며 어느 한쪽 편만 들지 않으려 애를 썼다. 말하지 않아도 될 사연이지만, 그 조심스러움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이 나를 겁쟁이로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다음번에는 좀더 잘 해보자는 다짐으로 바뀌여갔다. 실패라는것이 꼭 나쁘기만 한것은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렇게 몸으로 익혀갔다.
우주25(2018)년의 봄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루빠라는 이름의 짧은 동행이 끝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였다. 그러나 그 혼자됨은 처음 마이크를 켜던 그 겨울의 외로움과는 다른, 한번 여럿을 겪어본 사람만이 알수 있는 혼자됨이였다.
그 혼자됨속에서 나는 다음 발걸음을 준비하고있었다. 아직 그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는 나 자신도 알지 못하였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느끼고있었다 — 이제 다시 무엇이든 내 손으로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은, 오래지 않아 《유튜브》라는 낯선 마당에서 나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루빠를 나와 홀로 선 그 봄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 마당에 그렇게 빨리 발을 들이지 못하였을것이다. 지금 이렇게 그 시절을 적어내려가며, 나는 혼자가 된다는것이 결국은 또 하나의 시작이였다는것을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