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마 인 크 래 프 트

 

우주19(2012)년 사월, 인천 앞바다에는 아직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았다. 뭍에서는 벚꽃이 다 지기도 전에 성급한 바람이 불어와 꽃잎을 바다가로 쓸어갔다. 나는 그 사월의 인천을 직접 보지 못하였으나, 그해 그 도시 어느 골목에서 한 소년이 조용히 콤퓨터앞에 앉아있었다는 사실만은 후날 분명히 알게 되였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아직 내가 강지라는 이름조차 세상에 내놓기전, 저 먼 인천땅에서있었던 일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 회고록을 쓰는 자리에서 돌이켜보면, 그 사월의 하루가 없었더라면 후날의 우리도 없었을것이다.

편의상 나는 여기서 그를 블루동지라 부르기로 한다. 그때는 물론 그런 호칭이 있을 리 없었다. 서로 이름도 모르던 사이에 무슨 동지가 있겠는가마는, 이 회고록을 쓰는 지금의 나에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블루동지였으니 처음부터 그렇게 부르는것을 량해해주기 바란다.

블루동지의 고향은 인천이다. 바다를 끼고 자란 사람 특유의 무던함이 그에게는 있었다. 후날 내가 직접 겪어보니, 어지간한 일에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그 느긋함이 바로 이 바다가 도시에서 비롯된것이 아닌가 싶었다.

인천이라는 도시는 예로부터 뭍과 바다가 만나는 자리였다. 크레인이 늘어선 부두와 갈매기 우는 방파제,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아빠트 단지들 사이에서 그는 자라났다. 뒤에 가서 다시 말하겠지만, 이 도시의 이름은 후날 하나의 장 제목으로까지 오르게 된다.

어릴 때부터 그는 유난히 화면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텔레비죤이든 콤퓨터든 화면이 켜지면 그 앞을 떠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나는 후날 그와 가까워진 뒤에야 들었다. 남앞에서 무엇을 보여주기를 즐기는 성미도 아마 이무렵부터 자라났을것이다.

그 시절 블루동지는 이미 오락이라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청년이였다. 《서든어택》이라는 사격 오락의 한 클랜에 몸담고 여러 동료들과 어울려 다녔다. 클랜이라는것이 원래 그러하듯 저마다 별명 하나씩을 달고 활동하였다.

그 클랜에는 만화영화 인물를 본딴 이름들이 많았다고 한다. 블루동지는 그 인물들 가운데 유난히 어떤 빛갈을 좋아하였다. 파랑, 그 서늘하고 깊은 빛갈이 그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후날 그는 이 사연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서든어택 클랜의 애니 캐릭터 색깔과 파란색을 합하여 레인블루라 짓게 되였고, 그것이 지금의 블루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이름 하나 짓는데도 이렇게 오랜 사연이 있는법이다.

이 이름은 그뒤로도 몇번이나 옷을 갈아입는다. 후날 살이 붙었을 때에는 손님들이 《김불룩》이라 놀리였고, 만우절 장난으로 하루아침에 《대천사 블루》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옷밑에는 늘 이 사월에 정한 《블루》라는 속옷 한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레인블루라는 이름은 한동안 클랜안에서만 불리였다. 그러다가 그가 화면 밖 넓은 세상으로 나설 때, 그 이름은앞의 절반을 덜어내고 블루라는 석자만 남기였다. 나는 지금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사연을 함께 떠올리군 한다.

강지라는 이름을 내가 지어 걸었던 그 사연과 이 사연이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을 나는 후날에야 하게 되였다. 둘 다 원래 쓰던 이름에서 다듬고 덜어내여 새 이름을 만들었다. 서로 알지도 못하던 두 사람이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화면 이름을 지었다는것이, 지금 생각하면 묘한 인연처럼 느껴진다.

그무렵 블루동지는 사격 오락 말고도 다른 오락 하나에 마음을 붙이고있었다. 네모난 블로크를 쌓아 세상을 짓는 오락, 《마인크래프트》였다. 총을 쏘는 오락과는 전혀 다른 재미가 거기 있었다.

《마인크래프트》는 그 시절 젊은 방송원들 사이에서 크게 류행하던 오락이였다. 블로크 하나하나를 쌓아 집을 짓고 굴을 파고 탈출맵을 만드는 그 놀이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음은 무엇을 지을가 하는 궁금증을 자아냈다. 블루동지도 그 궁금증에 사로잡힌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미 남들이 만들어 올린 《마인크래프트》 영상을 여러편 구경한 뒤였다. 구경만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도 저렇게 한번 해볼수 있지 않을가.

사람의 마음이란 참 비슷한 구석이 있다. 나 역시 《아프리카TV》의 다른 방송을 구경하다가 저기 나도 낄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마이크를 들었으니, 그와 나는 서로 다른 도시에서 서로 다른 화면을 보며 똑같은 충동을 품었던 셈이다. 그때는 그 충동이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첫걸음인줄 둘다 몰랐다.

블루동지가 첫 영상을 준비하던 그 며칠이 어떠하였는지,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컨대 콤퓨터앞에 앉아 록화프로그람이라는것을 켰다 껐다 하며 사용법을 더듬어 익혔을것이다. 처음 하는 일이란 늘 그렇게 서투른 손끝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그때만 해도 세상에는 편집이라는것을 손쉽게 해주는 도구가 흔하지 않았다. 화면 록화 하나 하려 해도 콤퓨터가 버벅거리기 일쑤였고, 소리와 화면이 어긋나는 일도 례사였다. 블루동지 역시 그런 서투른 장비들과 며칠을 씨름하였을것이다.

단추 하나를 누르면 세상에 무엇이 되돌아올지 알수 없는 그 두려움을, 나는 나의 첫 방송날을 떠올리며 짐작할뿐이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앞에 목소리를 내놓는다는것은, 아무리 대범한 사람이라도 처음 한번은 손끝이 저리게 마련이다. 블루동지라고 그 떨림을 피해갈수 있었을리 없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19(2012)년 사월 열하루, 그는 자신의 화면을 세상에 처음 내놓았다. 특별할것 없는 하루였을것이다. 그러나 그 하루가 후날 몇백만이라는 수자로 돌아오게 될줄은, 그날의 그도 짐작하지 못하였을것이다.

후날 나무의 백과사전이라는 그 방대한 기록물은 이 날자를 정확히 못박아놓았다. 사람 하나가 화면에 처음 나선 그 하루까지 헤아려 적어두는것을 보면, 세상이라는것이 참으로 꼼꼼한 장부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의 첫 방송날 역시 그런 장부책 한귀퉁이에 나란히 적혀있으니, 우리 둘은 그렇게 서로 모른채 같은 장부에 이름을 올려가고있었다.

그날 그가 올린 영상이 무엇을 담고있었는지 지금 하나하나 되짚기는 어렵다. 다만 그것이 《마인크래프트》를 소재로 한것이였다는 사실만은 여러 기록이 한결같이 전한다. 화려한 편집도 없이, 그저 블로크를 쌓고 부수는 화면에 목소리 하나를 얹은 소박한 영상이였을것이다.

첫 영상에 몰린 손님이 몇이나 되였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한다. 아마 열손가락으로 꼽을만한 수였을것이다. 그러나 그 적은 수의 손님들앞에서도 블루동지는 꾸준히 화면앞에 앉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이 대목에서 늘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해 겨울 내가 인천에서 한참 떨어진 방에서 겨우 열명앞에 목소리를 떨던것과, 그해 봄 블루동지가 인천의 어느 방에서 겨우 몇명앞에 마우스를 쥐고있던것 — 이 두 장면은 시기도 장소도 다르지만 놀라울만큼 닮아있다. 력사라는것은 이렇게 서로 모르는 곳에서 비슷한 씨앗을 심어놓는가보다.

블루동지는 그뒤로 《마검탈출맵》이라는 내용물를 꾸준히 올렸다. 미리 짜여진 탈출맵안에서 열쇠를 찾고 문을 열며 빠져나가는 놀이였다.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 긴장감이 그의 방송을 조금씩 알리는데 한몫을 하였다.

이런 종류의 영상은 편집보다 순발력이 더 중요하였다. 막힌 길앞에서 당황하는 목소리, 열쇠를 찾았을 때 터지는 웃음소리 — 그런 생생한 반응이 오히려 영상의 재미였다. 블루동지는 원래 흥이 잔잔한 사람이였으나, 무엇을 찾아냈을 때만은 목소리가 갑자기 튀여올랐다고 한다.

《개꿀!》이라는 그 특유의 말버릇도 아마 이무렵부터 굳어졌을것이다. 평소에는 억양의 굴곡이 크지 않다가도 이 한마디에서만은 톤이 확 올라간다. 후날 나도 그 말버릇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게 되지만, 그 뿌리를 캐고보면 이 시절 《마검탈출맵》의 열쇠 하나에서 시작되였을것이다.

방송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손님들도 하나둘 늘어갔다. 사람들은 그를 그저 《마인크래프트》 하는 사람으로만 알았지, 후날 《배그》의 강자가 되고 또 어느 회사 대표와 몇해에 걸친 《우결》을 벌이게 될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을것이다. 물론 그 자신도 그런 미래를 짐작이나 하였겠는가.

그러던 어느날 구독자 수자가 10만이라는 자리에 이르렀다. 지금이야 몇백만을 헤아리는 방송들이 흔하지만, 그때 10만이라는 수자는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였다. 블루동지는 이 자리를 기념하여 상황극 영상 하나를 준비하였다.

감히 말하건대 이것은 하나의 작은 개선식이였다. 물론 그 개선식이라는것이 성문을 열고 만세를 부르는 그런 거창한 자리는 아니고, 그저 콤퓨터 화면앞에서 동료 몇을 불러다 대본 하나 읽으며 웃고 떠드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곧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사람이란 저마다의 삶에서 저마다의 개선문을 세우는 법이다.

10만 기념 상황극이 정확히 어떤 내용이였는지는 오늘날까지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누어 맡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는것만은 짐작할수 있다. 이런 상황극이라는 형식은 후날 블루동지의 방송을 대표하는 내용물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10만이라는 고비를 넘긴 뒤로 블루동지의 화면은 조금씩 넓어졌다. 《마인크래프트》 하나에만 머물지 않고 《GTA》라는 오락을 끌어들여 더 자유로운 상황극을 벌이기 시작하였으니, 이를 두고 짐짓 거창하게 말하자면 한 정복자가 새 령토를 넓히는 형국이였다. 물론 그 령토라는것이 기껏해야 콤퓨터 화면안의 가상 도시였을뿐이지만, 그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정해진 규칙안에서 놀던 사람이 이제는 규칙 밖의 세상으로 걸어나간 셈이였다.

《게리모드》라는 오락도 그무렵 그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였다. 인형을 세우듯 등장인물을 배치하고 저마다 대사를 붙이는 그 놀이는, 《마인크래프트》의 소박함과는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블루동지는 이런 자유로운 형식의 상황극에서 특히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혼자서 여러 인물을 오가며 목소리와 말투를 바꾸어보이는 재간도 이무렵에 다져졌다. 한사람이 화면안에서 몇사람 몫을 해내야 하니, 상황극이란 본디 그런 부지런함을 요구하는 일이다. 블루동지는 그 부지런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황극이라는것이 본디 그러하다. 대본이 있어도 결국은 그 자리에서 주고받는 말들이 진짜 알맹이가 된다. 블루동지는 이 대본 밖의 말들을 주고받는데 유난히 능하였다고, 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이무렵의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흥을 이야기한다. 평소에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아 차분하고 느긋하였으나, 크게 웃어야 할 대목에서는 누구보다 시원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 하나로 상황극 전체의 분위기가 살아났다고 여러 사람이 증언한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당황할 때면 어릴적 말투가 슬쩍 튀여나온다는것이다. 대구·경북 특유의 《~카는데》라는 어법이 서울말속에 불쑥 섞여드는 순간이 있었다. 평소에는 서울말을 능숙히 구사하다가도 이런 순간만은 고향을 숨기지 못하였다.

나는 후날 《우결》을 하면서 이 버릇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무언가에 당황하거나 급히 둘러댈 말을 찾을 때면 어김없이 그 말투가 슬며시 새여나왔다. 그때마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그 버릇의 뿌리가 이미 이 시절부터 있었던것이다.

방송이 커지면서 그를 따르는 손님들에게도 이름이 생기였다. 처음에는 《블루몬》이라 불렸다. 후날 우주24(2017)년에 이르러서야 그 이름이 줄어들어 《쁠몬》이 되니, 이 시절에는 아직 온전한 이름 그대로였다는 점을 밝혀둔다.

《블루몬》들을 향한 인사말도 이무렵부터 조금씩 그의 색갈을 갖추어갔다. 《안녕하세요 블루입니다》로 시작하여 손님들의 즐거움을 빌어주는 그 인사는, 해가 갈수록 다듬어지고 짧아지면서도 끝내 변하지 않는 그의 표식이 되였다. 짐짓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그의 방송을 여는 일종의 즉위식이였다 — 왕관도 옥새도 없이, 그저 마이크 하나로 치르는 즉위식이였지만 그에게는 그것으로 족하였다. 나는 지금도 그가 방송을 열 때마다 이 인사말을 빠뜨리지 않는것을 본다.

한가지 밝혀둘것이 있다. 블루동지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본명을 세상에 내놓지 않았다. 이름이 특이하여 공개하면 위험해질수 있다는것이 그의 설명이다.

본명으로 그를 부르는 사람은 오직 어머니뿐이라고 그 자신이 밝힌바 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몇해를 함께 방송하고 심지어 《우결》이라는 극중 인연까지 맺은 사이에도, 나는 끝내 그의 본명을 알지 못한채 지금 이 글을 쓰고있다.

아마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가끔 그를 어릴적 이름으로 부를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를 블루라 부르는 그 순간에도, 오직 한 사람만은 다른 이름을 쓰는 셈이다. 그것이 얼마나 진귀한 일인지는 유명해진 뒤에야 비로소 실감하는 법이다.

다시 그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의 방송은 《마인크래프트》로 시작하여 《GTA》와 《게리모드》를 거치며 조금씩 몸집을 불려갔다. 쟝르를 옮겨다니는 그 발걸음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한 우물을 파다가 물이 마르면 옆우물을 파는, 그런 순리를 따르는 걸음걸이였다.

이렇게 몇해가 흐르는 동안 인천의 그 청년은 어느새 제법 이름있는 방송원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정작 큰 물결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 물결은 우주24(2017)년, 온 나라를 휩쓴 어느 총싸움 오락과 함께 밀려오게 된다.

그해 대한민국 게임가에는 《배틀그라운드》라는 새 바람이 불었다. 백명의 사람이 한 섬에 떨어져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 겨루는 그 오락은, 방송이라는것과 유난히 궁합이 잘 맞았다. 긴장과 반전이 매 순간 벌어지니 보는 사람도 손에 땀을 쥐지 않을수 없었다.

짐짓 력사적인 어조를 빌려 말하자면, 이것은 한 시대의 개편이였다. 총싸움 오락 하나가 온 나라 방송가의 판도를 새로 짰으니, 그 앞에서는 어떤 방송원도 이 물결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블루동지 또한 그 큰 흐름앞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블루동지도 이 새 물결에 몸을 실었다. 《마인크래프트》와 《GTA》로 다져온 상황극의 감각이 이 낯선 전장에서도 그대로 빛을 발하였다. 이때부터 그의 방송은 서서히 《배틀그라운드》 중심으로 무게추를 옮기게 되니, 그 자세한 사연은 뒤에 가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붓을 멈추고 그해 봄의 인천을 다시 떠올려본다. 벚꽃이 지고 바다바람이 불던 그 사월, 좁은 방안에서 홀로 화면을 켜던 한 청년의 모습을. 그때 그는 자신이 후날 몇백만의 사람들앞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사람이 되리라는것을, 또 어느 회사 대표와 몇해에 걸친 《우결》이라는 극을 벌이게 되리라는것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였을것이다.

같은 시기, 나 역시 나의 좁은 방에서 첫 마이크를 사들일가 말가 망설이고있었다. 우리 둘은 서로의 존재를 전혀 모른채, 다만 각자의 화면앞에서 각자의 하루를 견디고있었다. 두 강물이 아직 서로 만날 바다를 모른채 저마다의 산골짜기를 흐르고있었던 셈이다.

지금 이 회고록을 쓰며 그 시절을 그려보면, 인천의 그 소년과 어느 도시의 나, 이 두 장면이 나란히 겹쳐 보인다. 어느쪽도 상대의 존재를 몰랐으나, 력사는 이미 두 사람의 길을 조용히 이어놓고있었던것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미리 준비되는가보다.

이 장의 제목을 《인천 소년의 화면》이라 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화면은 처음에는 그저 블로크를 쌓는 소박한 화면이였다. 그러나 그 화면이 몇해를 거쳐 《배틀그라운드》의 전장으로, 다시 몇해를 거쳐 나와 마주앉는 《우결》의 무대로 이어지리라는것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모든 큰 인연에는 반드시 이런 작고 소박한 시작이 있는법이다. 후날의 화려함만 보고 그 시작을 헤아리지 않으면, 사람은 인연의 절반만 아는것이 된다. 나는 이 회고록에서 그 나머지 절반을 기록해두고싶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스운 노릇이지만, 그때 인천의 그 좁은 방과 내가 앉아있던 방 사이에는 아무런 전화선도 인연도 없었다. 그저 같은 하늘 아래 각자의 콤퓨터를 켜고있었을뿐이다. 그런데도 그 두 화면이 몇해뒤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게 되였으니, 세상일이란 참으로 아무도 장담할수 없는것이다.

나는 이 회고록을 쓰면서 몇번이고 블루동지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물어볼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을 새삼 캐물어 무엇하겠는가 하는 마음에 그만두었다. 다만 여러 기록에 남은 조각들을 그러모아 이렇게 한 절을 엮어보았을뿐이다.

우주19(2012)년 사월 열하루, 인천의 어느 방에서 조용히 첫 화면을 올리던 그 청년을 나는 이제 블루동지라 부른다. 그때는 이름도 몰랐던 그 청년이 후날 내 삶에서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될줄, 그 사월의 바람은 알고있었을가. 나는 지금도 가끔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어쩌면 그 바람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사람만이 그것을 모른채 하루하루를 살아갈뿐이다. 력사라는것은 늘 그렇게, 당사자들도 모르는 사이에 조용히 제 갈길을 닦아놓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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