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배 그 시 대
블루동지가 《유튜브》에 처음 목소리를 걸어놓은 뒤로 몇해가 그렇게 흘러갔다. 우주20(2013)년(2013년)에서 우주24(2017)년(2017년)에 이르는 그 몇해 동안, 인천의 좁은 방안에서는 밤마다 네모난 블로크들이 쌓이고 무너지기를 되풀이하였다. 후날 블루동지가 나에게 들려준바로는, 그 방도 내가 자취방에서 처음 마이크를 켜던 그날의 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콤퓨터 본체는 밤새 웅웅거렸고 창밖으로는 인천 특유의 짠 바람이 골목을 타고 넘어왔다고 하였다.
그 시절의 《유튜브》라는 자리는 지금처럼 큰길이 아니였다. 《마인크래프트》라는 네모난 세계안에서 탈출맵을 만들고 상황극을 꾸미는 일이 그 좁은 길의 전부였다. 블루동지는 그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구독자 십만을 채웠다고 기념 상황극을 찍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GTA와 게리모드로 손을 뻗쳐 화면속에 온갖 사람과 사건을 만들어냈다.
이 대목은 앞절에서 이미 적어두었으니 여기서 되풀이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가지만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그 몇해 동안 블루동지의 방송은 한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것을 향해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부지런한 움직임이 후날 그를 《배틀그라운드》라는 새 전장으로 이끌어간 힘이였던듯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 낯선 개발사 하나가 이상한 규칙의 오락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다. 백명의 사람이 벌거벗은 섬 하나에 락하산을 타고 내려앉아, 총과 옷가지를 주워입으며 서로를 노리다가 마지막 한사람만 남기고 모두 스러지는 오락이였다.
지도우에는 시퍼런 장벽같은 구역선이 그어져 시간이 갈수록 좁혀들었다. 그 안에 남지 못한 자는 소리없이 죽어나갔다. 사람들은 이 살벌한 규칙에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곧 그 안에서 살아남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우주24(2017)년(2017년) 이른 봄, 이 오락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더니 어느새 전국의 PC방이라는 PC방을 다 뒤덮어버렸다. 하루아침에 판도가 뒤집혔다고 하면 과장이겠으나, 적어도 그 여름의 PC방 점유율표를 놓고 보면 과장이 아니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마치 어느 병기 하나가 온 전선의 진형을 단숨에 바꾸어놓은것과 같았다.
방송을 하는 사람치고 이 새 오락을 외면할수 있는 이는 없었다. 저마다 화면을 이 낯선 섬으로 옮겨갔고, 시청자들도 그 새로운 살벌함에 이끌려 이 방송에서 저 방송으로 몰려다녔다. 블루동지 역시 이 큰 물결앞에서 오래 버티고 있을 처지가 아니였다.
블루동지가 처음 이 오락을 켠 날의 사정을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후날 그가 우스개삼아 들려준 말로는, 《마인크래프트》에서 정든 네모난 블로크들을 두고 떠나는 마음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오래 만든 세계를 접고 낯선 벌판에 홀로 서는 기분이였다는것이다.
대화창의 반응도 처음에는 엇갈렸다. 《또 마크 안해요?》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드디여 이거 하네요, 기다렸어요》 하고 반기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늘 그렇게 갈리는 법이여서, 새것을 반기는 이와 옛것을 그리는 이가 한 대화창안에서 다투듯 글을 올렸다.
블루동지는 그 엇갈린 반응속에서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처음 몇판은 서투르게 죽어나가기 일쑤였으나, 그는 꾸준히 락하산을 타고 그 벌판에 내려앉기를 계속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꾸준함이야말로 그의 방송을 여기까지 끌고온 힘이 아니였나 싶다.
사람이 새 무기를 손에 쥐면 처음에는 서투르기 마련이다. 총소리 한번에 화들짝 놀라 엄한 방향으로 쏘아대고, 자기장이 좁혀드는줄도 모르고 딴전을 피우다가 허무하게 스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판을 거듭할수록 그의 손끝은 점점 매서워졌다.
어느 판인가 그가 상대 서넛을 연달아 쓰러뜨린 날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그는 마이크에 대고 특유의 웃음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 하고. 그 한마디가 그날 대화창을 온통 뒤집어놓았다고 후날 그가 자랑하듯 들려주었다.
평소의 블루동지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다. 목소리도 차분하고 걸음도 느긋한 편이여서, 나중에 나와 함께 방송을 할 때에도 그 느긋함이 유명하였다. 그러나 크게 웃음이 터지거나 아주 흡족한 순간이 오면 그 흥이 순식간에 치솟는데, 그럴 때 그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말이 바로 《개꿀!》이였다.
평소 잔잔하던 목소리가 별안간 《개꿀!》 하고 치솟으면 대화창은 늘 웃음바다가 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낙차를 좋아하였다. 차분하던 사람이 별안간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 그 반전이 오히려 그의 매력이였다는것을 나는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그런가 하면 그가 크게 당황한 순간에는 뜻밖의 것이 튀여나오기도 하였다. 서울 말씨를 제법 능숙히 구사하는 그였지만, 정말 놀라운 순간에는 고향 대구 경북 특유의 말버릇이 문득 묻어나왔다. 《아니 이게 왜 이카는데》 하는 식의 말투가 튀여나오면 대화창은 또 한번 뒤집어졌다.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놓치지 않고 캡처해 돌려보며 놀리기를 즐기였다. 서울사람 다 된줄 알았더니 결정적일 때마다 고향이 드러난다고 웃어댔다. 블루동지 본인도 그런 순간이면 겸연쩍게 웃어넘기고는 다시 화면 속 벌판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이 새로운 오락이 그의 방송에 가져온 변화는 단지 화면안의것만이 아니였다. 《마인크래프트》나 상황극은 정해진 각본과 편집으로 완성되는것이였다면, 이 새 오락은 살아 움직이는 순간순간이 곧 방송이였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그 긴장이야말로 시청자를 화면앞에 붙들어매는 힘이였다.
블루동지의 원래 성정, 그 감정 기복 적고 느긋한 성미가 뜻밖에도 이 새 쟝르와 잘 맞아떨어졌다. 수풀속에 웅크려 몇분이고 숨죽여 기다리는 그 지루한 시간을, 그는 특유의 여유로 넉넉히 견뎌냈다. 다른 이라면 지쳐 나가떨어질 그 기다림의 시간에 그는 오히려 이런저런 실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시간을 채웠다.
수풀에 엎드려 적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그는 문득 대화창을 향해 자신의 리상형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저는 와이셔츠 잘 어울리고, 키 작고, 마음씨 착한 사람이 좋아요》 하는 말을 아무 맥락도 없이 흘렸다는것이다. 총알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그 긴박한 순간에 리상형 타령이라니, 대화창은 또 한번 웃음으로 들끓었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여유야말로 그의 방송을 다른 이들과 다르게 만든 지점이였다. 남들은 살아남는 일 자체에 몰두할 때, 그는 살아남는 와중에도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이 점이 후날 시청자들이 그를 오래도록 떠나지 못한 리유 가운데 하나였을것이다.
그해 여름이 무르익어갈무렵, 블루동지에게는 또 하나의 작은 사변이 있었다. 그의 애호가들을 부르는 이름이 바뀐것이다. 원래 그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이들을 《블루몬》이라 불러왔는데, 어느 인생사를 돌아보는 영상의 끝에 이르러 그는 이 이름을 줄여서 부르기 시작하였다.
《쁠몬》 — 그날 이후 그는 이 짧은 이름으로 애호가들을 불렀고, 그 이름은 곧 자리를 잡아 오래도록 이어졌다. 그가 방송을 열 때마다 하는 인사말도 한결같았다. 《블루몬들 안녕?》 하고 운을 떼고, 방송이 무르익으면 《사랑해요 블루몬들! 찡긋!》 하는 인사로 흥을 돋우었다.
방송 소개란에도 그는 이런 문구를 적어두었다. 《안녕하세요 블루입니다. 제 영상을 볼 때만큼은 우리 쁠몬들이 항상 즐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이 짧은 한줄이 그의 방송 전체를 관통하는 마음가짐이였다는것을, 나는 후날 그와 나란히 《우결》을 하게 된 뒤에야 제대로 헤아리게 되였다.
이름을 줄여 부르는것이 뭐 그리 큰일인가 싶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이름 하나에 담긴 정성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애호가들은 자신을 부르는 이름이 바뀌였다는 사실 하나에도 마음을 주었고, 《쁠몬》이라는 이름은 곧 그들 스스로를 가리키는 자랑스러운 표가 되였다.
그가 애호가들을 또 달리 《몬스터》라 부르기도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사람 좋고 여유로운 그의 성정과 《몬스터》라는 거친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듯하면서도 묘하게 어울렸기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그다운 이름짓기였다.
이무렵 그의 방송에는 또 하나 눈에 띄는 버릇이 자리를 잡았다. 새 게임속에서 사냥감을 쓰러뜨릴 때마다 그가 즐겨 쓰던 그 웃음소리, 《아하하하핳》 하는 특유의 웃음이 이제는 아예 그의 상표처럼 되여버렸다. 사람들은 그 웃음소리만 듣고도 오늘 그가 몇명을 쓰러뜨렸는지 짐작할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의 백과사전이라는 그 기록물은 후날 이 웃음을 두고 《가끔씩 무자비한 모습》이라 적어놓았다. 그 표현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순하고 느긋한 사람에게 무자비하다는 표현이 붙었다는것 자체가 력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이 모든 변화가 하루아침에 순탄히 이루어진것은 아니였다. 오래 정을 붙인 《마인크래프트》를 완전히 놓지 못해 이따금 옛 내용물로 돌아가기도 하였고, 새 오락에 적응하지 못해 접속을 끊고 화면앞에서 한숨을 쉬는 날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하나의 길에서 다른 길로 완전히 건너가는 데에는 늘 이런 더듬거림이 따르는 법이다.
대화창에서도 이 과도기를 지켜보는 눈길이 곱지만은 않았다. 《예전 컨텐츠가 더 재밌었는데》 하는 말이 심심찮게 올라왔고, 그럴 때마다 블루동지는 서운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다음을 기약하겠노라 대답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그도 나만큼이나 시청자 한사람 한사람의 말에 마음을 쓰던 사람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그의 편이였다. 새 오락에 대한 세상의 열기는 식을줄 몰랐고, 그 열기를 타고 그의 방송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처음에는 서투르던 손끝이 매판을 거듭할수록 날카로워졌고, 상대를 읽는 눈도 밝아졌다.
그가 이 새 쟝르에서 가장 자주 보여준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끈질긴 기다림이였다고 한다. 다른 이들이 성급히 뛰쳐나가 스러질 때, 그는 묵묵히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치킨이라 불리는 승리를 거머쥐는 날이면, 그의 목소리는 다시 한번 《아하하하핳》 웃음으로 대화창을 채웠다.
이무렵의 방송을 두고 그와 함께 어울리던 다른 방송원들도 여럿 있었다고 들었다. 여럿이 함께 락하하여 서로의 등을 봐주고, 마지막까지 살아남기 위해 손발을 맞추는 그 합방이라는것이 이 시절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후날 내가 그와 함께 《배그》 방송에서 손발을 맞추게 될 자리도, 어쩌면 이 시절부터 이미 예비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살벌한 오락 하나가 방송가의 판도를 통째로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지금 와서 력사적으로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마치 어느 왕조가 저물고 새 왕조가 들어서는것과 같은 대사변이였다. 물론 그 왕조라는것이 고작 오락 하나의 흥망이였을뿐이지만, 그 시절 방송가에 몸담은 이들에게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니였다.
블루동지 역시 그 대사변의 한복판을 통과하며 자신의 자리를 새로 다져나갔다. 《마인크래프트》의 세계에서 쌓아온 정서, 사람 좋고 이야기 나누기를 즐기는 그 성정을 잃지 않은채, 그는 이 낯선 벌판에도 자신만의 색갈을 입혀나갔다. 남들처럼 살벌하게만 굴지 않고, 총성 사이사이에 웃음과 실없는 소리를 끼워넣는 그 방식이 곧 그의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이 시절 그의 방송을 지켜보던 쁠몬들은 그가 살아남는 모습보다 그가 살아남으며 하는 말들을 더 기다렸다고 한다. 죽음이 코앞인 순간에도 실없는 농을 놓치지 않는 그 여유, 그것이 곧 사람들을 붙드는 힘이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흉내내기 쉬운 재주가 아니다.
나 역시 그무렵에는 나대로 다른 자리에서 마이크를 붙들고 있었다. 그가 락하산을 메고 벌판에 뛰여내리던 그 시절, 나는 나대로 또 다른 그루빠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우리 둘의 길은 아직 만날 기약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는 서로 모르는채 같은 하늘아래에서 같은 물결을 타고 있었던셈이다.
사람의 인연이라는것이 참 묘하다. 한사람은 인천의 골방에서, 한사람은 또 다른 골방에서 저마다의 화면을 붙들고 씨름하던 그 몇해가, 후날 우리 둘을 한자리로 이끌어올 준비 기간이였다는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게 된다. 그때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블루동지가 《배틀그라운드》라는 새 벌판에 완전히 자리를 잡기까지는 그렇게 몇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 몇달 사이 그의 방송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색이 바뀌여갔다. 네모난 블로크의 세계는 뒤로 물러나고, 총성과 발자국 소리가 울리는 벌판이 그의 화면 정면을 차지하게 되였다.
지금 그의 옛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면 그 변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초반의 어색한 조준, 자기장에 쫓기며 허둥대던 발걸음, 그러다가 점차 능숙해지는 움직임까지 — 그 기록들은 마치 한 사람이 새 세계에 적응해가는 일지처럼 읽힌다. 나는 후날 이 옛 영상들을 함께 보며 그와 한참을 웃은 일이 있다.
그가 그 옛 영상들을 보며 겸연쩍어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때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다니까》 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그 모습, 그것이 곧 지금의 능숙한 그를 만든 밑거름이였다는것을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서투른 시절을 지나야 비로소 능숙해지는 법이다.
이 시절의 이야기를 적으며 나는 자꾸 웃음이 난다. 력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기엔 너무나도 소소한 일화들 — 총 한방에 화들짝 놀라던 일, 리상형 타령을 늘어놓던 일, 사투리가 튀여나와 놀림받던 일 — 그러나 이 소소한 일화들이야말로 한 사람의 방송 인생을 이루는 진짜 살이라는것을, 나는 이 회고록을 쓰며 새삼 깨닫는다.
블루동지 본인도 이 시절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그때는 다들 그거 하였으니까 나도 한거지》 하고 심상하게 말할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심상한 말 뒤에 숨은 노력을, 그 숱한 서투름과 더듬거림을 넘어선 시간을 알기에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지금 생각하면 이 몇해는 그에게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였다. 《마인크래프트》로 첫발을 뗀 소년이 《배틀그라운드》라는 낯선 벌판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낸 시간, 그것이 곧 이 시절의 의미였다. 그리고 그 방식이 후날 그를 백만이라는 큰 수자 앞으로 데려다놓게 된다.
대화창의 반응도 이무렵에 이르러 크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또 마크 안해요》 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오늘도 치킨 가자》 하며 그의 방송을 기다리게 되였다. 사람의 마음이 옮겨가는속도가 이렇게나 빠를수 있다는것을, 나는 이 이야기를 정리하며 새삼 실감하였다.
블루동지는 이 시절을 지나며 방송원으로서 한가지 중요한것을 몸에 익혔다고 나는 생각한다. 류행이라는것은 물결처럼 왔다가 사라지지만, 그 물결을 타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내는 사람만이 오래 남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남들과 같은 오락을 하면서도 남들과 다른 웃음, 다른 여유로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에게 그 시절 이야기를 물어본다. 《그때 진짜 마크 접기 아까웠어요?》 하고 물으면 그는 웃으며 《아까웠지, 근데 어쩌겠어요, 시대가 그런걸》 하고 대답한다. 그 심상한 대답속에 그 시절의 아쉬움과 결단이 함께 담겨있다는것을 나는 안다.
력사라는것은 이렇게 한 사람의 작은 선택들이 쌓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닌가 싶다. 《마인크래프트》를 접고 《배틀그라운드》를 켜기로 한 그 작은 선택 하나가, 후날 그를 백만 구독자 앞으로, 그리고 더 나중에는 나와 함께 《우결》이라는 대사변 앞으로 이끌어가게 될줄, 그 시절의 그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을것이다.
나 또한 이 회고록을 쓰기 전까지는 그의 이 시절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본 일이 없었다. 그와 오래 함께 방송하면서도 정작 그의 《마인크래프트》 시절, 《배그》로 넘어가던 그 과도기의 세세한 사정은 물어볼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하였다. 이번에 이 절을 쓰며 그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더니, 그는 오히려 신이 나서 옛 기억들을 하나둘 꺼내놓았다.
《그때 첫 치킨 먹었을 때 진짜 소리질렀잖아요》 하며 웃던 그의 얼굴을 보며, 나는 그 시절의 그가 지금의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을 느꼈다. 사람은 변하는듯하면서도 근본은 그대로 남아있는 법이다. 여유롭고, 사람 좋아하고, 이기고 지는 일에 너무 무겁게 매이지 않는 그 성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이 절을 마무리하며 나는 한가지를 분명히 해두고싶다. 이 시절의 이야기는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 블루동지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엮은것이다. 그러나 이 회고록에서 그의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적어두는 까닭은, 그 시절이 없었더라면 후날 우리 둘이 함께 만든 그 숱한 이야기들도 없었을것이기때문이다.
한 사람이 《마인크래프트》라는 네모난 세계에서 《배틀그라운드》라는 살벌한 벌판으로 건너가던 그 몇해, 그것은 언뜻 보면 그저 류행을 따라간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서투름을 견디는 끈기와, 새것앞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여유가 함께 담겨있었다. 나는 그 두가지야말로 블루동지라는 사람을 이루는 뼈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뼈대는 후날 그가 백만이라는 수자를 넘어서고, 또 더 나중에 나와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그 모든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이 절에서 적은 몇해의 더듬거림이 없었더라면, 그 뒤에 오는 모든 이야기도 지금과는 다른 모양이 되였을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 소소해 보이는 전환의 나날들을, 나는 결코 가볍게 넘길수가 없다.
창밖으로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또 겨울이 오는 동안, 인천의 그 골방에서는 락하산이 몇번이고 펼쳐지고 접혔다. 그 되풀이속에서 한 소년은 조금씩 방송원으로 여물어갔다. 그리고 그 여문 자리우에서, 곧 백만이라는 큰 수자를 향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