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홍 길 동 의 질 문
우주25(2018)년 시월, 가을이 이슥히 깊어가던무렵이였다. 낮에는 그런대로 볕이 남아있었으나 저녁이 되면 금세 서늘해져서 방문을 닫아걸어야 하였다. 창밖 골목에는 어느새 누렇게 물든 나무잎이 하나둘 떨어지고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여름보다 한결 총총해진듯하였다. 나는 그무렵 저녁마다 콤퓨터앞에 앉아 《배그》 스쿼드 방송을 돌리는 것이 하루의 마감이였다.
그날 저녁 방안에는 아직 가을 저녁의 냄새가 남아있었다. 창을 살짝 열어두면 서늘한 바람이 들어와 방안의 더운 공기를 밀어내였고, 나는 그 바람을 쐬며 머리수화기 줄을 정리하곤 하였다. 사소한 습관이였지만 그렇게 방송을 준비하는 시간이 나는 늘 좋았다.
본체 랭각기소리가 웅웅거리는 가운데 머리수화기 너머로 스쿼드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하루의 피로도 한결 가시는듯하였다. 그무렵의 나는 아직 회사라는 것을 차리기 한참 전이였고, 그저 방송 하나로 하루하루를 벌어먹던 시절이였다. 낮에는 이런저런 볼일을 보고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방송을 켰다. 그때 나에게 저녁 시간이란 곧 《배그》였고, 《배그》란 곧 스쿼드였다.
손끝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그러쥐는 그 감촉이 나는 유난히 좋았다. 화면 속 조준경 너머로 적을 발견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그 짧은 순간의 긴장은, 하루의 다른 어떤 일보다도 나를 몰입하게 하였다. 그 몰입이 곧 방송의 재미였고, 그 재미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가는것이 그무렵 내 삶의 낙이였다.
스쿼드라는 것이 늘 같은 얼굴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였으나, 그무렵 가장 자주 손발을 맞추던 이가 바로 왓구홍길동이였다. 홍길동은 나와 죽이 잘 맞는 스트리머로, 오락 실력도 실력이려니와 입담이 걸걸하여 방송에 올리면 늘 그림이 되는 사람이였다. 시청자들은 나와 홍길동이 나란히 앉아 오락을 하는 모습을 두고 흔히 친남매 같다고 하였다.
후날의 여러 기록들은 이 시절을 두고, 스쿼드에 블루동지가 함께 자리하면 시청자들이 이른바 《우결을 보는 과몰입 트수 모드》로 단숨에 전환된다고 적어놓았다. 그 표현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이 그다지 틀린 말도 아니였다. 같은 스쿼드라도 블루동지가 낀 날과 끼지 않은 날 대화창의 온도가 확연히 달랐던 것을, 나 자신도 부인할수 없다.
그 시절 방송판에는 이른바 《케미》라는 것이 하나의 류행어처럼 번지고있었다. 시청자들은 방송원 둘이 나란히 있는 모습만 보아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붙이기를 즐겨하였다. 우리 스쿼드도 례외는 아니여서, 누구와 누가 잘 어울린다는둥 하는 우스개소리가 대화창에 자주 오갔다.
실제로 우리 둘 사이에는 그런 편안함이 있었다. 서로 놀리고 타박하면서도 정작 위급한 상황이 오면 누구보다 먼저 서로를 엄호하러 뛰여드는 것이 우리 스쿼드의 오랜 손발이였다. 그렇게 몇달을 함께 구르다보니 남들이 보기에도 그 손발이 례사롭지 않아 보였던 모양이다.
그 시절 《배그》 방송판에는 스쿼드끼리 티격태격하는것이 하나의 볼거리로 통하였다. 진지하게 싸우다가도 죽고나면 이내 낄낄대며 서로를 놀리는 것이 그 바닥의 인심이였다. 홍길동과 나 사이의 그 짓궂은 실랑이도 따지고보면 그런 풍토속에서 자연스레 자라난 것이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홍길동과 내가 처음 스쿼드를 맺게 된 사연은 사실 별것 아니였다. 어느 방송에서 서로의 방송통로를 오가며 인사를 나누다가, 마침 사람이 비여있던 자리에 서로를 끼워넣은 것이 그 시작이였다.
처음에는 그저 낯선 얼굴 하나가 자리를 채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몇번 함께 착지를 하고 몇번 함께 자기장에 쫓기다보니, 어느새 서로의 말투와 습관을 훤히 꿰게 되였다. 홍길동은 위급할 때일수록 목소리가 차분해지는 사람이였고, 나는 반대로 다급할수록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이였으니, 그 상반된 성미가 오히려 손발을 잘 맞추게 하였다.
그렇게 몇달을 함께 구르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서로를 편하게 대하는 사이가 되여있었다. 홍길동은 나를 스스럼없이 누나라 불렀고, 나 역시 그를 동생 다루듯 아무렇게나 대하였다. 방송 밖에서도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된 것도 그무렵부터였다.
다시 그해 시월로 돌아가면, 그무렵 내 《유튜브》 방송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있었다. 시월 초사흗날 올린, 블루동지에게 리상형을 묻는다는 영상 하나가 뜻밖에 화제를 모았던 것이다. 《블루님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제…제가 아마 누나일 거에요…?》 하는 그 영상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우결》이라는 것이 세상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순간이였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 영상이 앞으로 얼마나 큰 물줄기를 이루게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저 시청자들이 재미있어하니 좋은 일이다, 하는 정도로만 여기였다. 블루동지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다는 말이 대화창에 오갈 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였다.
그런데 그런 웃음거리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였던 모양이다. 스쿼드에서 함께 뛰던 이들도 그 영상 이야기를 심심찮게 꺼내였다. 홍길동도 례외는 아니였다.
시월 스무엿새 되던 날 저녁, 나는 여느 때처럼 방송을 켜고 스쿼드를 불러모았다. 그날따라 자기장이 유난히 매섭게 좁혀들어서 우리는 초반부터 정신없이 자리를 옮겨다녀야 하였다. 파밍을채 마치기도 전에 총소리가 들려오는 통에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몇차례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서야 우리는 겨우 안전권 안쪽에 자리를 잡을수 있었다.
다른 스쿼드원들도 각자 자리를 잡느라 분주하였다. 무전기 너머로는 총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서로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한동안 뒤섞여 들려왔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서야 사방이 겨우 잠잠해졌다.
잠시 숨을 돌리던 홍길동이 문득 마이크를 고쳐잡더니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투로 말을 걸어왔다. 《누나.》 하고 부르는 그 목소리가 하도 낯설어 나는 순간 무슨 사고라도 났나 하고 긴장하였다. 《왜.》 하고 대수롭지 않게 되물으니, 그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누나 나는…?》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알아듣지 못하였다. 《뭐가.》 하고 되묻자, 홍길동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시 말을 이였다. 《아니, 요즘 보니까 블루님이랑 그렇게 잘 지내던데, 나는 뭐냐고. 나는 그냥 스쿼드원이야?》 하는 그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화면 저편의 그 능청스러운 얼굴을 상상하니 더욱 우스웠다.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받아넘기면서도 웃음을 그치지 못하였다. 대화창은 그 순간 삽시에 들끓기 시작하였다. 《ㅋㅋㅋㅋㅋ 질투하네》, 《홍길동님 서운하였구나》, 《누나 대답 안 해줘요?》 하는 말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올라왔다.
홍길동은 물러서지 않고 짐짓 더 서운한 투를 꾸며냈다. 《아니 진짜로, 나도나름 오래 같이 뛴 사인데. 요즘은 블루님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더라고.》 능청스러운 그 말투에 스쿼드안의 다른 사람들까지 폭소를 터뜨리였다. 나는 그 빠른 채팅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그저 웃으며 손사래만 쳤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반박에 나섰다. 《야, 홍길동. 너랑 블루님이랑 같니? 너는 전우고 블루님은…》 하다가 나 스스로도 말끝을 어떻게 맺어야 할지 몰라 잠시 멈칫하였다. 《블루님은 뭔데?》 홍길동이 놓치지 않고 되물었다. 그 되물음에 나는 또 한번 말문이 막혔다.
대화창은 그 짧은 침묵을 놓치지 않고 《저 침묵 뭐야》, 《누나 당황하였다》 하는 말들로 뒤덮였다. 나는 결국 《몰라 그냥 게임이나 해》 하고 화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오락은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우리는 몇번 더 교전을 치르고, 몇번은 살아남고 몇번은 허무하게 낙오하였다.
그러나 그 판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사실 지금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저녁의 기억에서 남은 것은 오로지 홍길동의 그 한마디, 《누나 나는…?》뿐이다. 사람의 기억이란 이렇게 얄궂은 것이여서, 정작 승패는 잊혀지고 우스운 말 한마디만 오래도록 남는것이다.
그날 방송을 끄고 나서 나는 잠시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전까지 시끄럽던 대화창이 사라지고 나니 방안은 다시 콤퓨터 랭각기소리만 남아 고요하였다. 나는 그 고요함속에서 홍길동의 그 한마디를 혼자 되뇌여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 장면은 곧 홍길동의 방송에 따로 편집되여 올라갔다. 제목도 그가 물은 말 그대로였다. 나는 처음에 그 영상이 올라온 줄도 모르고있다가, 며칠 뒤 시청자 하나가 대화창에 그 소식을 전해주는 것을 보고서야 알았다.
영상을 직접 찾아 돌려보면서 나는 또 한참을 웃었다. 화면속의 나는 그 순간 진심으로 당황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편집한 사람이 자막까지 짓궂게 달아놓아서, 내 표정 하나하나가 우스꽝스럽게 강조되여있었다.
감상글난을 내려보니 반응이 례사롭지 않았다. 《이건 뭐 대놓고 견제 아니냐》, 《홍길동님 마음 리해합니다》, 《강지님 표정 봐 진짜 당황함》 하는 감상글들이 줄줄이 달려있었다. 그중에는 《이러다 진짜 홍길동님 라인도 생기는 거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까지 있었다.
후원도 그날따라 유난히 많이 들어왔다. 누군가는 후원 문구에 《누나 나는 뭐야 나도 알려줘》라고 적어보내며 홍길동을 편들었고, 또 누군가는 《홍길동님 힘내세요》라는 짧은 글귀만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그 짧은 문구 하나하나에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 홍길동이라는 사람을 그려보자면, 그는 늘 그런 식이였다. 정색을 하고 던지는 말속에 늘 장난기가 섞여있었고, 정작 진짜로 서운한 일이 있을 때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그가 그 자리에서 던진 물음이 진심 반, 장난 반이였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원래 《배그》 방송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였고, 스쿼드안에서는 늘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편이였다. 앞장서서 자기장을 재고 아이템을 나누고, 위급할 때는 몸을 던져 시간을 벌어주는 식이였다. 그런 그가 짐짓 서운한 척 던진 그 한마디는, 어쩌면 스쿼드라는 이 작은 자리에서 자기 몫을 확인받고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였을가 싶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런 깊은 뜻까지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저 하루 방송에서 일어난 우스운 소동 하나로만 여기고 넘어갔다. 다음날에도 나는 여느 때처럼 방송을 켰고, 스쿼드를 불러모았고, 홍길동도 아무 일 없었다는듯 다시 자리에 앉아 파밍을 시작하였다.
그무렵부터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방송이라는 것이 이제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지켜보고 함께 짐작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되여가고있다는 것을. 홍길동의 그 물음도 결국은 그렇게 여럿이 함께 이야기를 엮어가던 흐름속의 한 조각이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날을 다시 짚어보면, 그 물음이 례사로운 것이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홍길동만이 아니였다. 그무렵 나를 아는 여러 사람들이 은연중에 비슷한 낌새를 느끼고있었던 모양이다.
블루동지와 나 사이의 그 무엇,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았던 그 무엇을,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채고 짓궂게 놀리기 시작한것이 바로 그무렵이였다. 나 자신은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채 정리하지도 못한채로, 남들의 놀림속에서 그 실체를 어렴풋이 짚어가고있었던 셈이다.
블루동지가 그날의 영상을 직접 보았는지는 나도 지금 확실히 말할수 없다. 그무렵 우리는 아직 서로의 방송을 그렇게 자주 챙겨보는 사이는 아니였던듯도 하고, 또 어쩌면 벌써 누군가 그 영상을 전해주었을수도 있다. 이런 자잘한 앞뒤 사정은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캐물어도 서로 기억이 다르니, 여기서는 그저 짐작으로 남겨둘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닷새 뒤인 시월 서른하룻날, 블루동지의 방송에는 《사실 귀여운 유명 유튜버분과 《우결》 중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그 영상이 홍길동의 그 물음과 직접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날짜가 겹친 것인지, 나는 지금도 다 알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수 있다. 홍길동의 그 한마디가 던져진 뒤로 며칠 사이, 나와 블루동지 사이의 그 묘한 기류를 두고 주변에서 오가는 말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쩍 늘어난 말들이 어느 순간 하나로 뭉쳐, 마침내 세상에 공표되는 자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짐짓 력사적인 투로 말해보자면, 시월 스무엿새 그날 저녁 《배그》 안전권 한켠에서 던져진 홍길동의 그 물음이야말로 《우결》이라는 대사변을 향한 마지막 도화선이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과장된 말이다. 진지한 력사가라면 이런 억지스러운 인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대의 젊은 사람들 말로 하자면 《나는 뭐임》이라는 물음이, 시월의 어느 저녁 《배그》판에서 남매 같은 스쿼드원의 입을 통해 이미 던져졌던 셈이다. 다만 그때는 아무도 그 말에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뿐이다.
그러나 회고록을 쓰는 사람에게는 그런 억지스러운 인과 하나쯤 그려보는 재미도 허락되는 법이다. 세상의 큰 일들도 따지고보면 늘 사소한 물음 하나, 우스운 소동 하나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 않던가. 홍길동의 그 질문이 없었다고 해서 《우결》이 없었을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질문이 그 흐름의 한 매듭이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홍길동이라는 사람을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그는 나와 스쿼드를 맺은 뒤로 오래도록 내 방송에 드나든 사람이다. 그가 등장하는 방송이면 시청자들은 으례 반가와하였다. 우리 둘이 나란히 앉아 오락을 하는 모습이 그 자체로 하나의 볼거리가 되였기때문이다.
어떤 시청자들은 우리 둘의 궁합를 두고 지나치게 과몰입한 나머지, 홍길동이 등장하는 방송을 마치 다른 이야기의 한 장면처럼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나무의 백과사전이라는 그 방대한 기록물도 후날 이런 모습을 두고 친남매 같은 궁합라 적바림해놓았다. 그 표현이 나는 지금도 마음에 든다.
그날의 소동 이후로도 홍길동은 종종 나를 놀리는 재미를 붙였다. 방송 중에 블루동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슬쩍슬쩍 《또 저 얼굴이네》 하며 짓궂게 끼여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짐짓 화를 내는 시늉을 하였지만, 속으로는 그 장난스러운 놀림이 싫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주변 사람들의 놀림이야말로 그 시절 《우결》이라는 것을 키워낸 자양분이였다. 나와 블루동지 둘만의 힘으로는 결코 여기까지 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홍길동처럼 옆에서 짓궂게 찔러주고, 대화창에서 부추겨주고, 감상글로 놀려주던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그 이야기가 그렇게 자라날수 있었다.
스텔라이브라는 회사를 차리고 딸들을 여럿 거느리게 된 지금에 와서도, 나는 가끔 그 시절의 스쿼드 문화를 그리워한다. 지금이야 방송 하나를 켜는 데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지만, 그때는 그저 마이크 하나 켜고 아무나 불러다 오락을 하면 그만이였다. 그 소박함이 오히려 그 시절 이야기들을 더 오래 남게 한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 우리 회사의 젊은 성원들에게 이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면 다들 신통해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는듯, 사장이 그런 소박한 시절을 거쳐왔다는 것을 신기해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너희들이 지금 겪는 일들도 후날에는 다 이런 옛말이 될 것이라고 일러준다.
그무렵 나는 아직 그런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저 매일 저녁 방송을 켜고, 오락을 하고, 놀림을 받으면 웃어넘기는 하루하루를 보낼뿐이였다. 그러나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뒤에 가서는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엮이게 되였다.
그때는 몰랐다. 홍길동의 그 짧은 물음 하나가 후날 이렇게 오래도록 회자될줄은, 그리고 그 물음이 던져진지 닷새 만에 또 다른 물음 하나가 세상에 던져질줄은, 그 저녁의 나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금 이 회고록을 쓰며 그날의 대화창을 다시 떠올려보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소한 순간 하나에 함께 웃고 함께 놀라고 함께 짐작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화면 저편의 얼굴 모를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그 물음도 그저 스쿼드안의 시시한 농담 하나로 그쳤을 것이다.
홍길동에게는 아직도 가끔 그날 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그때마다 자기가 그런 력사적인 질문을 던진줄 몰랐다며 너스레를 떤다. 나는 그럴 때마다 웃으면서, 네가 그날 나를 아주 제대로 당황시켰다고 타박을 준다.
돌이켜보면 그 시월의 저녁은 내 방송 인생에서 그리 큰 사건으로 기록될만한 자리는 아니였다. 총성이 오간것도, 대단한 승부가 갈린것도 아니였다. 그저 안전권 한켠에서 스쿼드원 하나가 무심코 던진 물음 하나였을뿐이다.
이날의 일을 두고 후날 누군가 나에게 《그때 그 질문이 조짐이였다는 걸 알고계였어요?》 하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그때마다 솔직하게 몰랐다고 대답하였다. 사람이 자기 삶의 어느 순간이 후날 어떤 자리로 이어질지 미리 알고 사는 경우는 매우 드문 법이다.
그러나 그 작은 물음이 남긴 파문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무엇을, 세상이 처음으로 소리내여 물어본 순간이였다.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끝내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채 얼버무리고 말았으니, 어쩌면 그 얼버무림 자체가 이미 하나의 대답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저녁마다 콤퓨터앞에 앉아 방송을 켰다. 다만 그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블루동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 스스로도 어쩐지 마음이 술렁거렸다는 것이다. 홍길동의 그 물음이 남긴 것은 어쩌면 나 자신에게 던진 물음이기도 하였다.
그 시절 나는 아직 그 술렁임의 정체를 다 알지 못하였다. 다만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술렁임이 세상앞에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될 날이 다가오고있었다.
사람의 력사도 나라의 력사와 다르지 않아서, 큰 대목만 추려놓고 보면 매끈하게 이어진듯 보이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이런 자잘하고 우스운 뒤안길들이 무수히 끼여있는 법이다. 이 절 하나를 굳이 따로 떼여 적어두는 것도, 그 뒤안길 하나쯤은 남겨두어야 후날 온전한 그림이 되리라는 생각에서다.
이 장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다》라고 붙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후날의 나 자신이지만, 돌이켜보면 세상에 알리는 일이란 이미 이 홍길동의 그 물음에서부터 슬그머니 시작되고있었던 셈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자리에서 이어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