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잘 못 된 만 남 》
우주25(2018)년 십일월 초여드레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낮게 가라앉아있었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에 선 그 며칠은 볕이 짧고 바람이 매웠다.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방송실에 앉아 콤퓨터를 켜놓고 편집 프로그람을 열었다. 창밖에서는 늦도록 매달려있던 나무잎 몇장이 바람에 날려떨어지고있었다.
방안은 본체 돌아가는 소리와 머리수화기 줄이 책상 모서리에 스치는 소리로 조용하지만은 않았다. 화면 두대가 나란히 켜져있었는데, 하나는 어제 찍은 화면을, 하나는 대화창 기록을 띄워놓고있었다. 나는 그 두 화면을 번갈아 보며 자막을 넣었다뺐다 하기를 되풀이하였다.
그무렵 나는 여드레 남짓 정신을 차릴수 없이 바빴다. 여드레전, 그러니까 시월 마지막날 블루동지의 방송에 올라간 그 영상 하나로 온 대화창이 뒤집혔던 까닭이다. 《사실 귀여운 유명 유투버분과 《우결》 중입니다..》라는 그 한마디가 몰고온 파문은 여드레가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았다.
구독자수가 하루에도 몇백씩 늘었고, 옛 영상까지 파고들어와 감상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줄을 이였다. 나는 그 수자들을 볼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얼떨떨하였다. 어제까지 나 혼자 떠들던 자리에 갑자기 온 세상이 몰려와 창문을 두드리는 기분이였다.
블루동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소 흥이 낮고 좀처럼 들뜨지 않는 사람이였는데, 그 며칠은 통화를 할 때마다 목소리에 웃음기가 묻어있었다. 《강지 님, 이거 무슨 일이 난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좋은 일이겠지요.》 하고 그는 심상한 말투로 눙쳤다.
밀당이라는 말을 나는 그 시절에 처음으로 들었다. 시청자들이 우리 둘 사이를 두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밀고 당긴다는 그 세글자가 우리의 몇마디 안되는 높임말 대화에마저 붙어다니기 시작하였다.
나와 블루동지는 그때까지도 서로 높임말을 놓지 않았다. 《강지 님》, 《블루님》 — 우리는 그렇게 부르는것이 당연하다는듯 지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높임말 뒤에 숨어 서로를 슬쩍슬쩍 떠보던 시절이였다.
열흘 사이 우리는 각자 자기 방송에 올릴 영상을 준비하고있었다. 나는 나대로 편집실에 앉아 화면을 오려붙였고, 블루동지는 블루동지대로 자기 화면을 손보고있었다. 서로 무엇을 준비하는지 자세히 묻지 않는것이 그때 우리 사이의 어떤 례의였다.
그런데 이 례의라는것이 그날 뜻하지 않은 소동을 불러왔다. 십일월 초여드레날 저녁, 나는 내 영상을 올릴 시간을 여느때처럼 잡아두었다. 그런데 같은 시각, 블루동지도 자기 영상을 올릴 채비를 마쳐두고있었다는것을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방송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것도 아니고, 우리 둘 다 손수 예약단추를 누르던 시절이였다. 그러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후날 회사를 차려 내용물 일정표라는것을 만들고나서야 나는 그 시절이 얼마나 주먹구구였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저녁 여덟시 즈음이였다고 기억한다. 내 방송에는 《잘못된 만남 -2편-》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갔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각에 블루동지의 방송에는 《블루:제가 섹시해요?》라는, 제목부터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영상이 함께 올라갔다.
두 영상이 나란히 올라온것을 처음 알아챈것은 시청자들이였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에는 이내 《이게 뭔 일이냐》, 《둘이 짜고 이러는것냐》 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마치 두 나라가 약속이나 한듯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무슨 포고문이라도 내건것처럼, 사람들은 그 우연을 대단한 사변으로 받아들였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큰 나라의 사신 두명이 같은 날 같은 대문앞에 나란히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는 그에 견줄 계제도 못되는 소소한 일이였으나, 그날 저녁의 소란만은 못지 않았다. 시청자들은 마치 력사적인 사변이라도 만난듯 두 영상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잘못된 만남》이라는 제목은 사실 내가 지은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오래전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에서 따온 이름이였는데, 원래 노래속에서는 친구에게 배신당한 사람의 기막힌 사연을 담고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 무거운 제목을 빌려다가 대수롭지 않은 우리 이야기에 붙였으니, 마치 옛적 어느 장수의 격문을 빌려다가 동네 씨름판 방문에 붙이는 격이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며칠을 아니 말할수 없다. 《잘못된 만남 -2편-》이라 이름을 붙였으니 응당 1편이라는것이 그전에 있었을 터이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이제 와서 그 1편을 언제 무슨 사연으로 찍었는지 뚜렷이 기억해내지 못한다.
다만 짐작하기로는 그 며칠 전 어느 합방 자리에서 블루동지와 내가 게임속에서 서로 어긋나며 엉뚱한 길로 갈라졌던 장면이 있었던듯하다. 팀을 짜놓고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뛰여가는 바람에 결국 둘 다 낭패를 보았던 그런 날이 분명 있었다. 그날의 우스운 장면이 편집자의 손을 거쳐 《잘못된 만남》이라는 제목을 얻었으리라고, 나는 그렇게 짐작할뿐이다.
아무튼 2편은 그 뒤를 이은 셈이였다. 이번에도 게임속에서 우리는 서로 딴 곳을 헤매였고, 애써 만나기로 한 자리에서도 어긋나기 일쑤였다. 화면속의 우리는 번번이 엇갈렸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엇갈림을 재미있어하였다.
블루동지는 그 영상속에서 평소답지 않게 당황한 기색을 자주 보였다. 원래 그는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여서, 킬을 하고도 심상하게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하고 웃어넘기는것이 보통이였다. 그런데 그날은 몇번이나 말이 헛나오고 걸음이 엉키였다.
그러다 정신이 없어지면 그는 저도 모르게 사투리가 튀여나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이쪽으로 가야 카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는 그를 보며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서울말을 늘 능숙하게 구사하던 사람이 당황하면 고향 말투로 돌아간다는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블루님, 지금 사투리 나왔어요.》 나는 그렇게 놀렸다. 그러면 그는 귀까지 붉어져서 《아, 아닙니다. 잘못 들었을거예요.》 하고 억지로 말을 고쳐잡았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방송이 끝난 뒤에도 몇번이나 그 장면을 되돌려보며 혼자 웃었다.
다른 한편, 블루동지의 방송에 올라간 《제가 섹시해요?》라는 영상은 그것대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평소 감정 기복이 크지 않던 그가 불쑥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장면이 담겨있었으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대체 무슨 흐름에서 저런 말이 나왔느냐》는 물음이 한동안 오갔다. 나로서도 그 장면을 보고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내여 웃었던 기억이 난다.
《강지 님, 저... 그... 섹시해요?》 화면속의 블루동지는 그렇게 물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마터면 마시던 랭수를 뿜을뻔하였다. 화면 밖에서 지켜보던 나는 순간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얼어붙었다.
《아니 그건 갑자기 왜 물어요?》 나는 웃음을 겨우 참으며 그렇게 되물었다. 그는 특유의 차분한 얼굴로 《그냥... 궁금해서요.》 하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는데, 그 태연함이 오히려 더 우스웠다. 그 짧은 주고받음이 후날 두고두고 시청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장면이 될줄은 그때는 몰랐다.
대화창은 그 몇마디로 온통 뒤집혔다. 《귀여워》, 《이게 무슨 흐름이야》, 《저 질문 각본이지》 하는 말들이 정신없이 올라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는 웃어넘기였지만, 방송을 끄고나서는 그 질문의 의도를 두고 한참을 혼자 곱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저 블루동지 특유의 심심풀이 장난이였을것이다. 그의 성미로 미루어보아 무슨 깊은 뜻을 담아 던진 말은 아니였으리라고 나는 짐작한다. 그러나 그 시절 시청자들은 우리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큰 의미를 붙이기를 좋아하였다.
두 영상이 같은 날 나란히 올라온것을 두고 어떤 이는 우리가 미리 짜고 벌인 합동작전이라고까지 하였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손사래를 쳤다. 실은 그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할 여유도, 그럴 재간도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날 저녁 나는 블루동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블루님, 우리 오늘 영상 같이 올라간거 보았어요?》 하고 물으니 그는 대뜸 껄껄 웃으며 《저도 방금 보았습니다, 강지 님. 이거 완전히 짜고친것처럼 보이겠는데요.》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능청스러운 대답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말았다.
《그러게요, 저도 몰랐어요. 이러다 사람들이 우리가 뒤에서 다 짜놓고 하는줄 알겠어요.》 나는 그렇게 대꾸하였다. 블루동지는 《뭐, 나쁠거 있나요. 재미있으면 그만이지요.》 하고 대범하게 넘기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별일 아니라는듯 웃어넘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말이 그때는 그저 심상한 위로처럼 들렸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블루동지라는 사람의 됨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한마디였다. 그는 크게 웃거나 《개꿀!》을 웨칠 때가 아니면 좀처럼 격한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였다. 무슨 일이 겹쳐도 그는 늘 그 느긋한 걸음으로 지나갔다.
반면에 나는 그무렵까지도 성미가 급하고 말이 거칠기로 이름이 나있었다. 방송을 오래 하다보니 욕이 입에 붙어버린 탓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블루동지앞에서만은 그 거친 말들이 저절로 누그러들었다.
후날 내 친구 악녀가 나에게 진지하게 부탁한적이 있었다. 《야, 너 블루앞에서는 그렇게 곱게 말하면서 내 앞에서는 왜 그러냐, 나한테도 좀 그렇게 말해봐라.》 하고 그가 눙치듯 따졌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스스로도 놀라, 아 내가 그렇게까지 달라졌던가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십일월 초여드레날의 그 소동도 결국 그런 성미 차이에서 비롯한것이였는지 모른다. 나는 조급하게 예약단추를 누르고, 블루동지는 태연하게 자기 할 일을 하였을뿐인데, 그 둘이 우연히 겹쳐 사람들 눈에는 무슨 큰 사변처럼 비치였다. 서두르는 사람과 느긋한 사람이 나란히 서면 늘 이런 우스운 그림이 나오는 법이다.
그날 밤 늦도록 나는 두 영상의 감상글을 번갈아 읽었다. 어느 쪽 감상글난에서든 우리 둘의 이름이 나란히 오르내렸다. 《강지랑 블루 저러다 진짜 사귀는것 아니냐》는 말과 《에이 그냥 컨텐츠지》하는 말이 뒤섞여 하루밤 내내 대화창을 채웠다.
사람들은 마치 조정 대신들이 나라의 큰 일을 의논하듯, 그 소소한 우연 하나를 두고도 자못 진지하게 갑론을박을 벌였다. 나는 그 광경이 우습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하는것은 어디까지나 방송을 위한 극이였으나, 그 극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그것이 어느새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엇이 되여있었다.
그 경계를 처음 눈치챈것은 아마 그무렵이였을것이다. 우리가 짜는 장면 하나하나가 단순한 웃음거리를 넘어, 어떤 사람들에게는 저녁마다 기다려지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여가고있었다. 나는 그 무게를 그때는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이튿날 아침 나는 다시 편집실에 앉아 다음 영상을 구상하였다. 두 영상이 하루 사이 큰 소동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그것으로 무슨 결말이 난것은 아니였다. 그저 밀고 당기는 그 긴 이야기의 한 장면이 하나 더 보태졌을뿐이였다.
블루동지 역시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그는 다음날 통화에서 《어제 일은 그냥 웃고 넘기죠, 뭐.》 하고 심상하게 말하였다. 그 심상함이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이를 오래도록 지탱해준 힘이 아니였나 싶다.
그무렵 우리 사이에는 아직 《누나》니 《바이비》니 하는 말도, 《오빠》라는 말도 없었다. 오직 《강지 님》과 《블루님》뿐이였다. 그 높임말 두마디가 후날 그렇게 여러 이름으로 불어날줄은, 그때의 우리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금 이 페지를 쓰며 그날을 되짚어보면, 그것은 겉보기에는 그저 두 영상이 우연히 겹친 자그마한 소동에 지나지 않는다. 력사라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작은 일이다. 그러나 그 작은 겹침 하나가 시청자들의 마음속에서 우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가는 실오리 하나를 더 놓은것은 분명하다.
나는 그 시절 우리가 하던 일을 두고 스스로 대단한 사업이라 여긴 일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웃음거리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즐거워하는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소소한 나날들이 쌓이고 쌓여 후날 《우결》이라는 석자로 불리는 하나의 력사가 되였으니,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다.
그날 저녁의 소동이 특별한 결말을 낸것은 아니였다. 우리는 사과문을 쓸 일도, 해명을 할 일도 없었다. 그저 시리즈의 한 장면으로 남아, 다음 영상이 올라올 때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조용히 다음 이야기에 자리를 내주었을뿐이다.
그러나 나는 그 조용함이야말로 그 시절의 미덕이였다고 생각한다. 큰 사건이 없어도 사람들은 우리를 지켜보아주었고, 우리는 또 그만큼 부담없이 다음 장난을 궁리할수 있었다. 지금처럼 하나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는 시절이 아니였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십일월의 찬바람은 그 뒤로도 며칠 더 이어졌다. 나는 그 바람을 맞으며 다음에는 또 무슨 장난을 쳐볼가 하고 궁리하였다. 블루동지도 저쪽에서나름대로 다음 수를 구상하고있었을것이다.
우리는 그때 서로의 계획을 자세히 나누지 않았다. 그런데도 신통하게 이야기는 늘 맞아떨어졌다. 마치 누가 뒤에서 각본을 써주기라도 하는것처럼, 우리의 밀고 당기는 장난은 저절로 다음 장면으로 이어지고는 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은 각본이 아니라 그저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익숙해져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였다. 높임말 뒤에 숨은 서투른 배려, 게임속에서 자꾸만 어긋나던 발걸음, 당황하면 튀여나오는 사투리 한마디 — 그 모든것이 쌓여 하나의 리듬을 이루고있었다.
나는 그 리듬을 그때는 그저 즐거움으로만 여기였다. 어느 시청자가 우리를 두고 《장작이 알아서 탄다》고 말한것도 후날의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그 십일월의 소동에서부터 이미 그 장작에 불씨 하나가 옮겨붙고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이야기가 절로 굴러가는 신기한 자리에 서있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오래갈지, 또 어디로 흘러갈지 그때의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다만 하루하루 영상 하나씩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함께 웃는것 — 그것이 그 시절 우리가 아는 전부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지함이 오히려 자유로웠다.
십일월 초여드레날 저녁의 그 소동을 나는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서로 다른 방송에서 약속도 없이 겹쳐올라간 두 영상, 그것을 두고 온 대화창이 들썩이던 그 저녁 말이다. 대단한 사변이라 할것은 없었으나, 우리 두 사람의 서투른 밀당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던 무수한 저녁들 가운데 하나로, 나는 그날을 여기에 적어둔다.
그 뒤로도 이런 겹침과 엇갈림은 여러차례 되풀이되였다. 우리는 그때마다 놀라고 웃고 또 넘어갔다. 지금 이 회고록을 쓰며 그 하나하나를 다 헤아려보면, 결국 그것은 크고작은 우연들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이룬 세월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밤 나는 편집실 불을 끄고 나오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찬바람에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고있었다. 나는 그 불빛을 보며, 래일은 또 어떤 장난을 쳐볼가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지나고보면 그 웃음 하나하나가 결국 우리 이야기의 벽돌이 되였다. 크게 내세울것 없는 하루였으나, 그 하루가 없었다면 뒤이어 올 수많은 밀당의 장면들도 없었을것이다. 력사란 이렇듯 소소한 저녁들이 쌓여 이루어지는것인가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는 아직 서로를 《강지 님》, 《블루님》이라 부르는 사이였을뿐, 그 이상의 무엇도 섣불리 이름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높임말속에서도 이미 무언가가 조용히 자라나고있었다. 밀고 당기는 그 장난스러운 나날들이 후날 어떤 모양으로 여물어갈지, 그때는 나도 블루동지도 알지 못하였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십일월의 그 소소한 소동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무수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로 조용히 남았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결말도 없이, 그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다리 하나로 남았을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다리들이 하나둘 놓여 결국 긴 강을 건너게 해준것이 아니였나 싶다.
그 겨울의 문턱에서 우리는 아직 우리 앞에 얼마나 많은 장면들이 기다리고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높임말은 머지않아 반말로 바뀔것이고, 《강지 님》은 《누나》로, 《블루님》은 《바이비》로 불릴 날이 올것이였다. 그러나 그 모든것은 아직 먼 뒤의 일이였다.
십일월 초여드레날의 그 저녁을 나는 이렇게 기록해둔다. 두 편의 영상이 나란히 세상에 나선 그날, 우리는 그것이 무슨 큰일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채 그저 하루를 마감하였다. 그러나 그 사소한 하루가 있었기에, 우리의 밀당은 다음 장면으로, 또 그다음 장면으로 끊임없이 이어질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며칠 뒤, 우리는 또 다른 모양으로 사람들앞에서 노래 한곡을 부르며 새로운 장면을 열게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페지에 적어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