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 O n e S t e p C l o s e r 》

 

지난 절 끝에서 나는 그 며칠 뒤 우리가 노래 한곡을 부르며 새 장면을 열게 된다고 적어두었다. 그러나 이제 와 다시 생각해보면 그 표현은 옳지 않다. 노래를 부른것은 우리가 아니였다. 노래가 어디선가 저 혼자 걸어와 우리 곁에 슬며시 앉은것에 가깝다.

십일월 초여드레날의 소동이 가라앉을 즈음이니 열흘께였을것이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그무렵 하늘은 매일같이 희끄무레하였고, 오후 네시만 되여도 창밖이 어둑해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날도 방송실에 앉아 콤퓨터 두대를 켜놓고 클립들을 뒤적이고있었다.

머리수화기를 목에 걸친채 마우스휠을 굴리는것이 그 시절 내 하루의 태반이였다. 화면 한쪽에는 대화창 기록이, 다른 한쪽에는 시청자들이 남긴 링크들이 줄지어 떠있었다. 그 링크들 가운데 하나가 그날 나의 눈길을 붙들었다.

책상우에는 식어버린 믹스커피 한잔이 놓여있었다. 나는 그 잔을 홀짝이며 그날 올릴 영상의 마지막 자막을 손보고있었다. 편집 프로그람의 재생창을 이리저리 넘기다보면 손끝이 시려올 때가 많았는데, 그날도 례외는 아니였다.

방문 밖 복도에서는 이따금 위생실 물내리는 소리와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시절 나는 혼자 살림을 꾸리며 방송을 하고있었으므로, 그런 사소한 소리 하나하나가 오히려 방안의 적막을 덜어주는 벗과 같았다. 콤퓨터 본체의 랭각기소리만이 한결같이 웅웅거리고있었다.

《목소리 월드컵》이라는 말은 그때 나도 처음 듣는 말이 아니였다. 그무렵 인터네트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의 목소리만 따로 오려붙여 겨루게 하는 영상들이 심심찮게 나돌았다.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 하나로 등수를 매기고 우승자를 가리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심심풀이다운 놀음이였다.

그런 영상은 대개 이러하였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짧게 오려붙여 나란히 세워놓고, 마치 시합의 대진표처럼 이 사람과 저 사람을 겨루게 하여 한쪽을 떨어뜨리는 방식이였다. 마지막까지 남는 목소리가 우승을 차지하는 셈인데, 그 우승이라는것도 그저 시청자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정도의 우스운 감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그 대진표 하나를 두고 마치 어느 나라의 개표방송을 지켜보듯 진지하게 갑론을박하였다. 누구는 이 목소리가 이겨야 한다고 우기고 누구는 저 목소리가 이겨야 한다고 우기였다. 목소리 하나를 두고 사람이 이렇게까지 열을 올릴수 있다는것이 그때는 그저 신통하기만 하였다.

그날 누군가 대화창에 올려놓은 링크는 《남성 스트리머 목소리 월드컵》이라는 제목을 달고있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 링크를 눌렀다. 여러 스트리머들의 목소리가 차례로 지나가는 가운데, 어느 대목에 이르러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블루동지의 목소리였다. 화면에는 예전에 우리가 함께 방송하던 자리에서 나온 짧은 대목 하나가 오려붙여져있었다. 《강지 님, 제꺼잖아요. 그렇지요?》 — 그 한마디가 고성기를 타고 방안에 울렸다.

나는 순간 마우스를 쥔 손을 멈추었다. 어느 날 어느 방송에서 오간 말인지 그때는 뚜렷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그 말투와 억양으로 미루어, 우리 둘이 무람없이 주고받던 여느 농담 가운데 하나였으리라고 짐작할뿐이였다.

문제는 그 말 뒤에 얹힌 노래였다. 편집한 이가 그 대목밑에 잔잔한 곡 하나를 깔아놓았는데, 피아노 소리로 시작하여 점점 부풀어오르는 그 선률이 례사 노래가 아니였다. 나는 그 노래를 그때 처음으로 제목까지 찾아보았다.

《One Step Closer》. 아카시 간디라는 외국 음악가가 만든 곡이라 하였다. 나는 그런 이름을 그날 처음 들었으나, 그 선률만은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시절 우리 같은 사람들의 영상밑에는 이런 종류의 곡들이 흔히 깔리군하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시절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무렵 유투브에는 저작권에 걸리지 않는 곡들만 따로 모아놓은 서고 같은것이 있었다. 우리처럼 매일 영상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은 그 서고를 뒤적여 자기 영상에 맞을만한 곡을 골라 쓰는것이 일상이였다. 몇 소절 듣고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그만, 곡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다보니 같은 곡이 이 사람 저 사람의 영상에 겹쳐 쓰이는 일이 흔하였다. 어느 곡은 리별 장면에, 어느 곡은 반전의 장면에 약속이나 한듯 붙어다녔다. 《One Step Closer》도 그렇게 여기저기서 조용히 쓰이던 곡들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을것이다.

그런 곡이 하필 블루동지의 그 한마디밑에 얹혔다는것, 그것이 그날의 사변이라면 사변이였다. 피아노가 잔잔히 흐르다가 현악이 밀려들어오는 대목에 정확히 《제꺼잖아요》라는 말이 걸리게 편집되여있었다.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절묘하였고, 노린것이라기에는 또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대목을 몇번이고 되돌려보았다. 볼 때마다 그 짧은 몇초가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이런 감정을 그때 나는 뭐라 이름붙여야 할지 알지 못하였다.

편집한 이가 누구인지는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느 이름 모를 시청자였는지, 또는 그런 편집영상을 전문으로 만드는 방송이였는지 뚜렷한 기억이 없다. 다만 그 사람이 무심코 얹은 노래 한곡이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에 이토록 오래 붙어다닐줄은, 그 사람 자신도 짐작하지 못하였을것이다.

나는 그 링크를 블루동지에게 곧장 보냈다. 《블루님, 이거 보았어요?》 하고 짧게 적어 보낸 다음, 나는 다시 화면을 들여다보며 대화창의 반응을 살피였다.

대화창은 그 대목이 지나갈 때마다 뒤집어졌다. 《저 노래 뭐임》, 《미쳤다 저 타이밍》, 《저거 누가 편집한거야 천잰데》 하는 말들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나무위키에도 후날 이 장면을 두고 《포텐이 제대로 터졌다》고 적어놓았다는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포텐이 터졌다는 말을 나는 그때 처음 실감으로 알았다. 마치 오랫동안 눅눅하게 젖어있던 화약심지에 마침내 불이 옮겨붙어, 소리도 없이 타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굉음을 내며 터지는 그런 느낌이였다. 그런데 그 화약을 누가 놓았는지는, 앞서 말하였듯이 지금도 알수 없는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블루동지에게서 답장이 왔다. 《저도 방금 보았습니다, 강지 님. 이거 뭔가 부끄러운데요.》 그는 그렇게 적어보냈는데, 글자만으로도 귀 끝이 붉어진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듯하였다.

나는 웃음이 나서 곧장 통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어번 울리자 그는 여느때처럼 심상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네, 강지 님.》

《블루님, 그 영상 보았어요? 목소리 월드컵.》 나는 대뜸 그렇게 물었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 그거요...》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날 그 말은 그냥 장난으로 한거였는데, 저렇게 노래까지 붙으니까 뭔가 이상하게 되였네요.》 블루동지는 그렇게 대답하였다. 평소 좀처럼 흥분하지 않던 그가 그 대목에서만은 목소리에 옅은 웃음과 옅은 당혹이 뒤섞여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왜요, 노래 좋기만 하구만.》 하고 나는 능청스럽게 대꾸하였다. 그러자 그는 《강지 님도 참...》 하며 말끝을 흐리고 웃어버렸다.

《그나저나 강지 님, 저 이제 밖에 못 나가겠어요. 사람들이 다 그 노래 흥얼거릴것 같아서요.》블루동지는 웃으며 그렇게 엄살을 부렸다. 나는 그 말에 《에이, 설마 그러겠어요.》하고 대꾸하였으나, 속으로는 어쩐지 그 말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겠다 싶었다.

《아무튼 저는 이만 다음 영상 준비하러 가야겠습니다.》그가 그렇게 말하여 우리는 몇마디 더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짧은 통화였으나 그 안에서 우리 둘 다 같은 노래를 마음에 다시 한번 새겨넣은 셈이였다.

전화를 끊고나서도 나는 한참을 그 대목만 되돌려 들었다. 피아노 소리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이상하게 가슴 한켠이 간질거렸다.

그날 저녁 나는 편집실 한구석에 앉아 그 노래의 나머지 부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았다. 삼분 남짓한 짧은 곡이였다. 제목처럼 〈한걸음 더 가까이〉라는 뜻을 담은 곡이라 하였는데, 그 뜻을 알고나니 그 대목에 그 노래가 걸린것이 새삼 신통하게 느껴졌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나라에는 전쟁에 나가는 군사들을 북돋우려 지은 노래가 있고, 어느 왕조에는 즉위식에서 반드시 울리는 정해진 곡조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를 거기에 견주는것은 우스운 일이나, 그날 이후로 그 노래가 우리에게 지닌 무게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짧은 피아노 선률 하나가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을 상징하는 곡조로 자리를 잡아가고있었다.

그 뒤로 이 노래는 우리 영상 여기저기에 조용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강블이 달달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장면마다 이 곡이 약속처럼 깔리였다. 편집을 맡은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그 노래를 이런 장면의 전용곡처럼 여기게 되였다.

나 자신도 그 노래를 례사로 흘려듣지 못하게 되였다. 방송 편집을 하다가 무심코 그 선률이 흘러나오면 손을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기였다. 노래 한곡이 사람의 버릇까지 바꾸어놓을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블루동지도 사정은 비슷하였던듯하다. 그는 평소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가도 크게 웃거나 《개꿀!》을 웨칠 때만은 톤이 급격히 올라가는 사람이였는데, 그 노래가 화제가 된 그 며칠은 통화 중에도 몇번인가 그렇게 톤이 올라가는 순간이 있었다. 후날 어느 방송에서 무심코 이 곡이 흘러나오자 그는 《아, 이 노래...》하며 말끝을 흐린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다 안다는듯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 노래가 우리 두 사람만의 것으로 굳어져가는 동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무슨 대단한 계획을 세워 이런 상징을 만들어낸것이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그저 어느 이름 모를 시청자 한 사람이 무심코 얹은 노래 한곡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이야기의 한 조각이 되여버린것이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이렇게 알수 없는 데가 있다. 큰 결심을 하고 벌인 일은 흐지부지 잊혀지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 생각없이 지나친 순간 하나가 오래도록 사람들 마음에 남기도 하는것이다. 《One Step Closer》도 그런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이야 회사에 편집을 전담하는 성원들이 여럿 있어 곡 하나를 고르는데도 여러 사람의 의견을 거치지만, 그 시절에는 그야말로 손대는 사람 마음대로 편집이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러고보면 오히려 그런 허술함속에서 이런 우연이 더 잘 태여났는지도 모른다. 너무 반듯하게 다듬어진 자리에서는 오히려 이런 뜻밖의 일이 일어나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이 노래를 두고 나는 또 하나 되새기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이 곡이 우리 《우결》이 끝난 뒤에도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결》이 끝나고도 우리가 서로 다정한 장면을 찍을 때면, 편집자들은 어김없이 이 곡을 다시 꺼내들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던 날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배그》를 하던 날에도, 이 노래는 어김없이 편집자의 손끝에서 다시 불려나왔다. 그때마다 나는 열흘날의 그 오후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한번 태여난 노래는 이렇게 두고두고 우리의 크고작은 장면마다 따라붙는 그림자가 되여있었다.

후날 시절이 한참 지나 이따금 옛 인연들이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누군가 그 노래를 배경에 슬쩍 얹어놓으면 시청자들은 대번에 알아채고 대화창에 그 노래 제목을 적어넣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신기하면서도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노래 하나가 이토록 긴 세월을 건너 우리를 따라다닐줄은, 열흘날 그 링크를 눌러보던 그날의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그저 우연히 걸린 배경음악 한곡이였을뿐인데, 그것이 어느새 강블이라는 두 글자를 대표하는 소리가 되여버린것이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방송에서 주고받은 수많은 말들 가운데 어느것이 오래 남고 어느것이 스러질지는 아무도 미리 알수 없다. 다만 그 순간에 진심을 담아 웃고 떠들었다면, 그것으로 족한것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날 저녁 늦게까지 나는 그 영상의 감상글을 읽어내려갔다. 《이 노래 나만 소름돋음》, 《강블 테마송 확정》, 《이거 몇번째 우려먹는것이야 ㅋㅋ》하는 말들이 줄을 이였다. 몇몇은 벌써 이 노래를 우리의 《전용곡》이라 부르고있었다.

나는 그 표현이 재미있어 몇번이나 소리내여 읽어보았다. 전용곡이라니, 마치 어느 나라의 국가나 되는듯한 거창한 말이였다. 그러나 그 거창한 말이 싫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솔직히 고백해둔다.

그 영상이 퍼진 뒤로 며칠, 내 방송 구독자수는 또 한번 껑충 뛰였다. 열흘전 소동으로 이미 놀란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노래 한곡이 또 한번 사람들을 불러모은것이다. 나는 그 수자를 보며 세상일이란 참으로 종잡을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튿날 나는 방송을 켜고 그 이야기를 잠깐 언급하였다. 《여러분, 어제 그 목소리 월드컵 영상 보았어요?》하고 물으니 대화창은 곧바로 그 노래 제목으로 도배되였다. 나는 그 반응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참을 낄낄거렸다.

《그 노래 진짜 누가 골랐는지 몰라도 대단하네요.》나는 그렇게 말하였다. 시청자 하나가 채팅으로 《사장님이 직접 고른거 아니예요?》하고 물어와, 나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곡의 이름을 방송중에 소리내여 읽었다. 《원 스텝 클로저》. 발음이 서툴러 몇번이나 더듬거렸는데, 그 서투름마저 대화창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였다.

블루동지도 자기 방송에서 비슷한 반응을 겪었다고 후날 나에게 말해주었다. 《저도 채팅창이 그 노래 이야기로 란리가 났었어요.》그는 그렇게 전하며 겸연쩍게 웃었다.

우리는 그 뒤로 가끔 통화를 할 때마다 그 노래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그거 완전 우리 노래 되였어요.》블루동지가 그렇게 말한적도 있었다. 나는 그 말에 《그러게요, 누가 만들어준것도 아닌데.》하고 대꾸하였다.

만들어준것도 아닌데 저절로 생겨난 노래, 그것이 이 절의 제목을 《우리의 노래》로 붙인 까닭이다. 나라의 국가도 처음에는 어느 한 사람이 흥얼거리던 가락에서 비롯하였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의 노래 또한 그렇게, 누구의 손도 아닌 우연의 손에서 태여났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이 노래가 앞으로 몇해를 두고 우리를 따라다닐지 알지 못하였다. 그저 재미있는 우연 하나가 생기였다고만 여기였을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페지를 쓰며 돌이켜보면, 그것은 우연치고는 참으로 질긴 우연이였다.

《우결》이 한창일 때에도, 《우결》이 끝난 뒤에도, 심지어 여러해가 지나 우리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있는 지금까지도 이 노래는 여전히 우리 이름과 함께 불리운다. 나는 가끔 방송 편집을 하다가 이 곡을 다시 꺼내들 때마다, 그 열흘날의 오후를 떠올리군한다.

창밖은 그때도 어둑하였고 지금도 이따금 어둑하다. 다만 그때는 그 어둠속에서 노래 하나가 막 태여나던 참이였고, 지금은 그 노래가 이미 오래 자란 나무처럼 우리 곁에 서있다는것이 다를뿐이다. 나무 한그루가 자라는데도 세월이 걸리듯, 노래 하나가 사람들 마음에 뿌리내리는데도 그만한 세월이 필요한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그무렵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높임말을 쓰던 사이였다. 《강지 님》, 《블루님》하고 부르던 그 사이에, 이런 노래 한곡이 슬며시 끼여들어 우리를 대신하여 무언가를 말해주고있었던것이다. 말로는 다 하지 못하는 마음을, 노래가 대신 실어날라준 셈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날의 대화창을, 그날의 통화를, 그리고 그 뒤로 몇해를 두고 되풀이하여 이 노래가 흘러나오던 수많은 장면들을 한꺼번에 떠올린다. 노래란 참으로 신기한것이여서, 몇초의 선률만으로도 오래된 기억 전체를 통째로 불러온다.

후날 사람들은 이 노래를 두고 《장작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도 하였다. 그 말이 과하다면 과한 말이겠으나, 적어도 그 시절 우리 이야기가 타오르는데 이 노래가 적잖은 몫을 하였다는것만은 부인하지 않겠다. 노래 하나가 사람의 마음에 불을 놓을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해 십일월에 처음으로 배웠다.

이 노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누가 처음 그 대목에 얹었는지 나는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다. 어쩌면 그것을 굳이 알아낼 필요도 없을것이다. 어느 이름 모를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우연이, 이렇게 긴 세월을 건너 우리의 노래로 남았다는 사실 하나로 족하다.

그해 겨울, 나는 방송실 불을 끄고 나서면서도 그 노래를 흥얼거렸다. 가사도 모르는 외국곡을 흥얼거린다는것이 우스운 일이였으나, 그 선률만은 이상하게도 입에 붙었다. 창밖 가로등밑을 지나며 나는 그 노래를 몇번이고 되뇌였다.

블루동지도 어디선가 같은 노래를 흥얼거리고있었을지 모른다고, 나는 그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서로 다른 방에 앉아 같은 선률을 각자 흥얼거리는 두 사람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림이다. 노래란 이렇게 멀리 떨어진 두 사람을 소리없이 이어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지금 이 페지를 쓰는 이 순간에도, 문득 그 선률이 귀에 들리는듯하여 손을 멈추게 된다. 열흘날의 그 오후로부터 벌써 여러해가 흘렀건만, 노래라는것은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 마음속에 그대로 살아있는 모양이다. 나는 그것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맙게 느껴진다.

이제와 이 절을 마감하며 나는 이렇게 적어둔다. 우주25(2018)년 십일월 열흘께, 이름 모를 누군가 우리에게 노래 한곡을 건네주었다. 우리는 그 노래를 받아든것만으로도 충분하였고, 그 뒤의 세월은 그 노래가 알아서 우리를 대신하여 흘러갔다.

다음 이야기는 이 노래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벌어진 또 하나의 소동이다. 시청자들의 놀란 반응이 초성 넉자로 굳어져 오래도록 우리를 따라다니게 되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다음 페지에 적어두기로 한다. 노래로 열린 이 장은, 그렇게 또 다른 류행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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