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ㅁ ㅇ ㅁ ㅇ
그해 십일월도 다 저물어가던무렵이였다. 우주25(2018)년의 늦가을은 유난히 바람이 매서워, 나는 방문을 겹으로 닫아걸고 콤퓨터앞에 홀로 앉아있었다. 화면 두대가 나란히 빛을 내뿜었는데, 오른쪽 화면에는 편집이 끝난 영상의 미리보기가, 왼쪽 화면에는 그 영상에 달린 채팅과 감상글의 목록이 떠있었다. 본체의 랭각기소리만이 조용한 방안을 채우고있었으나, 정작 내 마음은 그 소리처럼 조용하지가 못하였다.
그보다 며칠 앞서 이른바 《남성 스트리머 목소리 월드컵》이라는 이름의 영상 하나가 올라간 일이 있었다. 그 영상 가운데 블루동지가 《강지님, 제꺼잖아요. 그렇지요?》라 말하는 대목에 원스텝클로저라는 곡이 깔려나온 순간이 있었는데, 그 대목에서 시청자들의 반응이 여느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다시보기의 그 시각대에 감상글이 강물처럼 밀려들었고, 대화창을 다시 돌려보아도 그 몇초 사이에 유난히 글이 촘촘하게 몰려있었다.
나는 처음엔 그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방송을 오래 하다보면 어느 한 장면에 시청자들의 눈길이 유난히 쏠리는 일이야 드물지 않은 법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그때 미처 알지 못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 노래가 깔린 장면 뿐 아니라 우리 둘이 조금이라도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 대목마다 대화창에 똑같은 넉자가 반복해서 올라오기 시작한것이다. 《ㅁㅇㅁㅇ》. 처음엔 오타인가 하였는데, 한번이 아니라 열번 스무번씩 되풀이해서 올라오니 오타로 볼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편집을 맡은 직원이 하루는 나에게 메신저로 화면을 캡처해 보내며 물었다. 《강지 님, 이 넉자가 대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요즘 채팅에 자꾸 이게 올라옵니다.》 나는 화면을 확대해 들여다보았으나 그 넉자의 뜻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나는 그 넉자를 소리내여 읽어보았다. 미음이응미음이응. 아무리 읽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결국 블루동지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로 하였다.
《블루 님, 혹시 채팅에 자꾸 뜨는 이 넉자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저도 봤습니다, 강지 님. 이응이 두개나 붙어있길래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려던 참이였습니다.》
《설마 안좋은 뜻은 아니겠지요.》
《다들 웃는 표정과 함께 쓰는걸 보면 나쁜 말은 아닌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서로 짐작만 주고받다가 통화를 끊었는데, 답은 뜻밖에도 시청자들 자신이 가져다주었다. 어느 감상글엔가 친절한 사람이아래에 풀이를 달아놓았던것이다. 《뭐야뭐야를 줄인 말입니다》라는 한줄이였다. 그 한줄을 읽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뭐야뭐야. 애정표현이랄지 그 비슷한 대목이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이 놀라서 저도 모르게 내뱉는 말, 그 말의 초성만 따서 넉자로 줄인것이 바로 《ㅁㅇㅁㅇ》였던것이다. 풀어놓고 보면 별것 아닌 말이였으나, 그 별것 아닌 넉자가 그토록 빠르게 퍼져나간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블루동지와 나는 그무렵까지도 서로를 깍듯하게 대하는 사이였다. 그는 나를 부를 때 반드시 《강지 님》이라 하였고 나 또한 그를 《블루 님》이라 불렀다. 합방을 시작한지가 이미 여러달이였으되 말투만은 처음 만난 그날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다보니 방송 중에 어쩌다 다정한 말 한마디가 튀여나오면 그 락차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높임말을 깍듯이 쓰던 사람의 입에서 문득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 하는 말이 나오니, 그 격식과 다정함 사이의 틈이 시청자들에게는 몹시도 낯설고 또 재미있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락차가 클수록 놀람도 큰 법이니, ㅁㅇㅁㅇ이라는 말은 바로 그 락차에서 태여난 소리였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둘 다 그때는 그 락차를 계산하고 말을 건넨것이 결코 아니였다. 그저 방송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였을뿐인데, 그 말 한마디가 락차를 타고 넘어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것은 이렇듯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뜻하지 않은 사소한 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 넉자의 뜻을 알고나니 그제서야 그동안의 일들이 하나씩 다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영상을 편집하는 직원들도 어느새 그 말을 제목에 슬쩍 끼워넣기 시작하였던것이다.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 요즘 한창 물오른 이 커플 ㅁㅇㅁㅇ?!》 하는 제목의 영상이 그렇게 올라갔다.
처음 그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낯이 화끈거렸다. 아무리 방송이 내용물라지만 제목에까지 그런 말을 대놓고 박아넣다니, 이래도 되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러나 그 영상의 시청회수가 다른 영상보다 확연히 높게 나오는것을 보고는 그 생각을 곧 접었다.
방송이라는것이 원래 그렇다. 부끄러움을 따지기 전에 시청자들의 반응을 먼저 헤아려야 하는 법이니, 그 넉자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표가 된다면 마다할 리유가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제목에 그 말이 들어가는것을 굳이 말리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자 비슷한 제목이 하나둘 뒤를 이였다. 《강지님~ 어제 제 꿈 꾸었어요? 대본이 써놓고 ㅁㅇㅁㅇ 찍는듯한 과몰입 《우결》 커플..》 하는 제목이 그중 하나였다. 시청자들은 우리가 무슨 대본이라도 짜놓고 연기를 하는것 아니냐며 우스개를 하였는데, 그 우스개 자체가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되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본 같은것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그날그날 오락을 하며 오간 말들이 우연히 겹치고 쌓여 그런 흐름을 이룬것일뿐, 누구도 미리 짜놓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그 즐거운 오해를 굳이 풀어줄 필요는 느끼지 못하였다.
그무렵 또 하나의 사변이 있었으니, 서로를 향해 대놓고 귀엽다는 말을 주고받게 된 일이였다. 《강지 님~ 귀엽기는~💞 어어..?! 이젠 대놓고 서로 귀엽다고 하네?》라는 제목의 영상이 그것이다. 그전까지는 어쩌다 스치듯 나오던 말이 이제는 아예 제목에 대문짝만하게 박히게 된것이다.
그 방송을 하던 날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뚜렷하다. 《배틀그라운드》를 하던 중이였는데, 블루동지가 무심코 《강지 님, 그거 귀엽네요》라 하였다.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혀 머리수화기 너머로 잠깐 침묵하였다.
침묵이 흐르는 그 몇초 사이 대화창은 이미 아우성이였다. ㅁㅇㅁㅇ이라는 넉자가 화면을 가득 메우다시피 하였고, 그 사이사이 웃음을 나타내는 표시들이 쉴새없이 올라왔다.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귀엽기는요》하고 겨우 대꾸하였는데, 그 어정쩡한 대꾸마저도 또 한번 대화창을 뒤흔들어놓았다.
방송을 마치고 나서 나는 그 장면을 다시 돌려보았다. 화면속의 나는 분명 당황한 기색이 력력하였는데, 그 당황함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진짜처럼 느껴졌던 모양이였다. 꾸며낸 표정이 아니라 진짜로 놀란 얼굴이였으니, 그것이야말로 ㅁㅇㅁㅇ이라는 말이 겨냥하는 정확한 표적이였던것이다.
이리하여 ㅁㅇㅁㅇ이라는 넉자는 삽시에 우리 방송판안에서 하나의 상징적인 표어로 자리를 잡아갔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새 낱말 하나가 태여나는 순간을 나는 그 겨울 목격한 셈이다. 력사에 이름을 남기는 표어들은 대개 위대한 인물의 붓끝에서 나온다지만, 우리의 표어는 애정표현에 놀란 시청자들의 즉흥적인 아우성에서 태여났으니 이 또한 새로운 형태의 표어탄생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이렇게 늘어놓고보면 마치 그것이 무슨 대단한 사변이라도 되는것처럼 들릴가 걱정스럽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우리는 그저 그 넉자를 보며 함께 웃었을뿐이다. 방송을 마치고 블루동지와 통화를 하며 그날의 채팅 반응을 두고 한참을 낄낄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블루 님, 오늘도 ㅁㅇㅁㅇ 나왔던데요.》
《봤습니다. 이제 이 말 안나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입니다.》
《우리가 무슨 말만 하면 이 말부터 나오니 원.》
《그만큼 우리가 요즘 물이 올랐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물이 올랐다는 표현 자체가 실은 시청자들이 먼저 쓰기 시작한 말이였는데, 블루동지가 그 말을 태연히 자기 입으로 옮겨 쓰는것을 들으니 새삼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하였다. 시청자들이 만들어낸 말이 어느새 우리 자신의 말이 되여 되돌아오고있었던것이다.
그런 일이 몇번 되풀이되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였다. 방송 중에 대화창이 조용하다가도 그 넉자가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하면, 아 지금 무슨 다정한 말을 주고받았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오히려 우리 자신의 거울이 되여준 셈이였다.
채팅을 통해 스스로를 되비쳐본다는것은 묘한 경험이였다. 방송원이란 늘 자기 표정과 말투를 스스로 살피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그 넉자 하나가 마치 표지판처럼 우리의 순간순간을 짚어주었던것이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것은 참으로 편리하고도 우스운 신호였다.
그해 겨울 내내 그 넉자는 잦아들 줄을 몰랐다. 오히려 갈수록 더 자주, 더 빠르게 올라왔다. 다른 방송원들과 합방을 할 때도 누군가 우리 둘 사이의 대화를 흉내내며 《이러다 또 ㅁㅇㅁㅇ 나오는것 아니냐》하고 놀리는 일마저 생기였다.
나는 그 놀림을 딱히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놀림이 방송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것을 그무렵 조금씩 깨달아가고있었다. 방송이라는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반응을 주고받는 일이라면, 그 반응을 하나의 표어로 압축해 공유하는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였다.
그러나 그 표어가 이렇게까지 오래 살아남으리라고는 그때로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그저 그해 겨울의 한때 잠깐 류행하다 사그라들 말이려니 여기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언제나 짐작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해가 바뀌어 우주26(2019)년이 되여서도 그 넉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해 어느 영상은 아예 《이것이 말로만 듣던 ㅁㅇㅁㅇ...?!》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왔다. 표어의 명맥이 해를 넘겨서도 끊이지 않았으니, 이 또한 하나의 진기록이라 이를만하였다.
또 다른 영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공주님은 1명뿐이야~ 점점 더 달달해지는 강블지루의 ㅁㅇㅁㅇ?!》라는 제목이 붙었는데, 강블지루라는 말은 강지와 블루를 하나로 묶어 부르던 애칭이였다. 애칭과 표어가 한 제목안에서 나란히 어우러지는것을 보며 나는 묘한 감회에 젖었다. 그 짧은 넉자가 이제는 우리 둘의 이름과도 떼려야 뗄수 없는 사이가 되여있었던것이다.
이쯤 되니 나는 슬며시 궁금해졌다. 대체 이 넉자는 누가 처음 대화창에 올렸을가. 아무리 기억을 뒤져보아도 그 첫 사람을 짚어낼 도리는 없었다.
본디 그러한 법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여러 사람의 입을 타고 번져나가면, 정작 그 말을 처음 지어낸 사람은 뒤로 묻혀버리고 만다. 표어는 남되 그 표어를 처음 외친 사람의 이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것, 이것이 방송판이라는 세계의 한 리치였다.
나는 가끔 그 이름 없는 첫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전하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한마디가 없었더라면 우리 두 사람의 《우결》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색깔로 기억되였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인연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은 이렇듯 뜻밖의 손에서 이루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표어라는것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자라나는 모양이였다. 처음엔 그저 대화창의 넉자였던것이 나중에는 영상 제목이 되고, 또 나중에는 우리 둘 사이의 은어가 되고, 또 나중에는 다른 방송원들까지 따라 쓰는 말이 되여갔다. 하나의 낱말이 이렇게 여러 겹의 옷을 갈아입으며 자라나는것을 지켜보는 일은 신기하고도 즐거운 경험이였다.
물론 그 사이에 우리 두사람의 사이도 조금씩 달라지고있었다. 높임말은 여전하였으나 말과 말 사이의 틈이 조금씩 좁아지고있다는것을 나 스스로도 느낄수 있었다. ㅁㅇㅁㅇ이라는 말이 그 좁아지는 틈을 따라오며 매번 확인해주는 표지 노릇을 하였던 셈이다.
그해 하반기의 방송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유난히 서로의 말끝이 부드러워지는 대목마다 그 넉자가 어김없이 따라붙어있다는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나는 이 페지를 쓰며 그 옛 방송들을 다시 돌려보았는데, 화면속의 젊은 우리 둘이 낯설고도 반가워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때는 《우결》이라는 이름이 이미 붙어있었던지 아직이였던지, 지금 와서는 그 경계마저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무렵 나는 아직 회사를 차리기 전이였고, 블루동지 또한 지금과는 다른 자리에서 방송을 이어가고있었다. 우리 둘 다 그저 하루하루의 방송에 골몰하던 처지였을뿐, 후날 이 만남이 몇해에 걸친 하나의 이야기로 불리게 될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그 넉자 하나가 그 몇해를 관통하는 표어가 되리라는것은 더더욱 알수 없는 일이였다.
되짚어보면 그 표어가 오래간 데는나름의 리유가 있었던듯하다. 우리 둘의 만남이 어느 한순간에 뜨겁게 타올랐다가 식어버린것이 아니라, 이렇듯 조금씩 조금씩 온도를 높여가는 식이였기때문에, 그 온도가 오를 때마다 시청자들이 반복해서 같은 반응을 내놓을수 있었던것이다. 표어란 결국 되풀이될 장면이 있어야 되풀이해 쓰일수 있는 법이다.
만일 우리가 처음부터 화끈하게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이였더라면, 아마 이런 표어는 생겨나지도 않았을것이다. 높임말 뒤에 숨겨두었던 다정함이 문틈으로 새여나오듯 조금씩 비칠 때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짚어내는 시청자들의 눈썰미가 있었기에 ㅁㅇㅁㅇ은 한번의 류행어로 그치지 않고 《우결》 내내 살아남을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시청자와 방송원이 함께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옛 감상글난을 열어보는 버릇이 있다. 그 안에는 여전히 그 넉자가 곳곳에 박혀있다. 세월이 흘러 화질도 낮고 화면비률도 지금과 다른 그 옛 영상들속에서, 그 넉자만은 하나도 낡지 않은채 그대로 남아있는것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블루동지와 나는 후날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이 표어를 화제로 삼군 하였다. 그때마다 그는 으례 웃으며 그 넉자만큼은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하였다. 우리 둘 사이에 그 넉자는 그렇게 하나의 공통된 추억으로 굳어져있었다.
《우결》이 끝난 뒤에도 그 표어를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볼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나는 그것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 짧은 넉자 하나가 우리가 함께 보낸 그 많은 나날을 압축해 담고있다고 생각하면, 고맙다는 마음이 앞선다.
물론 이 모든것을 지금에 와서 거창하게 풀어놓고보니, 마치 우리가 무슨 위대한 문화현상이라도 만들어낸 사람들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그저 카메라앞에서 서로에게 조금 다정하게 굴었을뿐이고, 그것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놀라움을 표현하였을뿐이다. 거기에 넉자짜리 이름이 붙어 오래 남았다는것,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라면 전부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늘 이렇게 사소한 데서 뜻밖의 크기로 자라나는 법이 아니던가. 만경대의 어린 백양나무 세그루가 자라 지경을 넘어설만큼 커졌듯이, 대화창의 넉자 하나도 자라나 《우결》 전체를 상징하는 표어가 되였다. 처음 심을 때는 아무도 그 크기를 짐작하지 못하는 법이다.
나는 이 페지를 쓰며 새삼 궁금해진다. 그 수많은 ㅁㅇㅁㅇ 가운데 정말로 시청자들이 놀라서 쓴것은 몇이나 되고, 그저 재미삼아 따라 쓴것은 몇이나 될가. 그 비률을 가려낼 방도는 없으나, 어느 쪽이든 그 넉자에 담긴 마음만은 한결같이 따뜻하였다고 나는 믿는다.
블루동지도 이 대목에서만은 나와 생각이 같았다. 언젠가 그가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강지 님, 우리가 뭘 대단하게 한것도 아닌데 이렇게 오래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대답을 하지 못한것은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품고있었기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오락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을뿐인데, 그 평범한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넉자로 압축될만큼 인상깊은 순간으로 남았다는것이 새삼 신기하고도 감사하였다. 방송이라는것이 이렇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뜻하지 않은 자국을 남긴다는것을 그때 다시금 깨달았다.
지금도 나는 그 넉자를 볼 때마다 그해 늦가을의 방안 풍경이 떠오른다. 콤퓨터 랭각기소리, 두대의 화면, 그리고 화면 가득 밀려오던 낯선 넉자. 그 낯섦이 어느새 반가움으로 바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 넉자가 《우결》이 끝나고도 한참 뒤인 오늘까지 이렇게 다시 꺼내여 이야기할 만한것이 되리라고는. 력사라는것은 언제나 그 순간이 지나간 뒤에야 제 무게를 드러내는 법인가보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ㅁㅇㅁㅇ이라는 넉자는 단순한 초성체 하나가 아니라, 우리 두사람이 높임말의 격식속에서도 조금씩 다정함을 키워가던 그 과정 전체를 담아낸 하나의 증표였다. 격식과 다정함 사이의 그 좁은 틈을, 시청자들은 넉자의 웃음으로 메워주었던것이다. 그 넉자 없이 그 시절을 설명하려 한다면 오히려 더 많은 말이 필요할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 류행어가 왜 그토록 오래 살아남았는지 그 리유를 다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둘만의 힘이 아니라, 그 넉자를 즐겨 써준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의 힘이였을것이다. 표어라는것은 결국 그것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표어로 남는 법이다.
그해 겨울이 다 가고 새해가 밝아올 때까지도 그 넉자는 우리 방송 곳곳에 남아있었다.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그해 늦가을 콤퓨터앞에서 어리둥절해하던 나 자신을 떠올리며 혼자 웃음짓군 하였다. 그 어리둥절함이 결국은 우리 둘의 이야기를 더 오래 붙들어준 힘이 되였다는것을, 지금에 와서야 나는 넉넉히 헤아릴수 있다.
이 페지를 닫으며 나는 다시 한번 그 넉자를 소리내여 읽어본다. 미음이응미음이응. 이제는 그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그 겨울밤의 나와는 달리, 그 넉자에 담긴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수 있게 되였다. 뭐야뭐야, 그 말은 결국 우리 두사람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지켜봐준 이들의 다정한 놀람이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