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 스 타 나 들 이
앞서 탄약 프로포즈의 소동을 적으면서 나는, 다음번 나들이 이야기는 뒤에 가서 따로 하겠다고 적어두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나들이를 이야기하려니 한가지 고백하지 않을수 없는 사정이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 나들이는 탄약 소동보다도 며칠 앞선, 그해 십일월 중순의 일이였다. 회고록의 순서가 이렇게 뒤바뀌는것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사람의 기억이라는것이 어디 날자 순서대로만 얌전히 줄을 서서 떠오르는 법이던가. 이 페지를 쓰며 나는 그 순서를 굳이 바로잡지 않기로 하였다.
우주25(2018)년의 십일월 중순은 늦가을과 초겨울이 서로 자리를 다투는무렵이였다. 아침 창을 열면 서늘한 공기가 먼저 밀려들었고, 가로수는 이파리를 반쯤 떨구어 앙상한 가지 사이로 하늘이 훤히 드러나보이였다. 나는 며칠째 짐가방을 꺼냈다 도로 넣었다 하며 콤퓨터앞에 앉아 그해 지스타의 일정표를 들여다보고있었다. 화면 옆 고성기에서는 방송을 켤 때마다 나는 낮은 신호음이 이따금 울렸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문득 이 겨울이 참으로 빨리도 다가온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스타》는 해마다 십일월이면 남녘의 어느 도시에서 열리는 이 나라 최대의 오락전시회였다. 부산, 아마 벡스코였을것이다. 오락회사들이 새로 만든 프로그람과 오락들을 한자리에 모아 시연하고, 방송원들과 관람객들이 며칠 사이 몰려들어 그 일대를 온통 인파로 뒤덮는 자리였다. 나는 그 며칠 동안 전시대마다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며 화면을 담아오는 일을 방송 시작 전부터 해마다 해오고있었다.
그무렵 나는 블루동지와 《우결》이라는 이름의 내용물를 시작한지 이제 겨우 한달 반 남짓 되였을 때였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우리 둘의 이름이 벌써 나란히 오르내리고있었으나, 정작 우리 두사람의 말투는 처음 만난 그날과 조금도 달라진것이 없었다. 나는 그를 《블루 님》이라 불렀고 그는 나를 《강지 님》이라 불렀다. 방송 밖에서 따로 만나거나 련락을 주고받는 일도 아직은 드물었다.
지스타에 가기로 한것은 딱히 거창한 계획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였다. 나는 례년처럼 혼자 내려가 전시대 몇군데를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방송에 쓸 화면이나 담아올 생각이였을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블루동지와 통화를 하다가 지나가는 말로 그 이야기를 꺼낸것이 일의 시작이였다. 《강지 님, 이번주에 지스타 가십니까.》 하고 그가 묻기에 나는 갈 생각이라고 대답하였고, 그러자 그는 자기도 갈까 하던 참인데 그럼 같이 내려가는게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그때까지 방송 밖에서 그와 단둘이 먼 걸음을 함께 한 일이 없었기때문이다. 게임속에서야 하루에도 몇시간씩 마이크를 마주하고 지냈지만, 화면 밖에서 나란히 걷는다는것은 어쩐지 결이 다른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같은 날 같은 곳으로 가는 사람이 굳이 따로 갈 리유도 없었으므로, 나는 좋다고 대답하였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지스타가 열리는 그 며칠 가운데 하루를 정해 함께 내려가기로 하였다. 나는 그날치 표를 예매하며 늘 하던대로 일반실 자리를 골랐다. 그때만 해도 나는 방송 수입이라는것이 넉넉하지 못하여 표 한장 끊는데도 가격표부터 먼저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었다. 특실이라는것은 그저 텔레비죤 화면에서나 보던 자리이지 내 몫이라 여겨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며칠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해 십일월 십오일은 내 생일이였는데, 공교롭게도 그날이 바로 지스타의 개막일과 겹치였다. 나는 그것을 미리 알고있었으나 딱히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았다.
나는 원래 생일을 요란하게 챙기는 성미가 아니였다. 어릴 때부터 그러하였고, 방송을 시작한 뒤로도 그날이 되면 대화창에서 축하 인사 몇마디 받고 조용히 넘어가는것이 나의 방식이였다. 케이크 한조각과 짧은 인사말이면 충분하였고, 그 이상을 바란 일이 없었다. 그러니 그해에도 나는 지스타 일정에 생일이 겹친다는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쳤다.
블루동지가 그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는 지금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아마 방송 어느 대목에선가 내가 무심코 흘린 말을 귀담아들었을것이다. 나는 그때 그가 그토록 세심하게 그 하루를 기억해두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사람이 무심코 흘린 말 한마디를 다른 사람이 몰래 주워담아 마음에 새겨둔다는것, 지금 생각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까지 내 생일이라는것은 대개 대화창에 올라오는 짧은 축하글 몇줄과, 어머니가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 밥은 챙겨먹었느냐고 묻는것으로 지나가는 하루였다. 함께 방송하는 동료라 해도 그날이 며칠인지까지 새겨두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러니 그해에도 나는 별다른 기대없이 그저 짐이나 챙기고 있었던것이다.
약속한 날 아침, 나는 짐가방 하나를 메고 서울역으로 나갔다. 이른 시각이였는데도 대합실은 벌써 사람들로 붐비였고, 전광판에는 이곳저곳으로 떠나는 렬차들의 시간표가 쉴새없이 바뀌며 떠올랐다. 매점앞에는 아침 대신 김밥이나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고, 대합실 한켠의 커다란 시계는 정확히 몇분 몇초가 남았는지를 쉬지 않고 세고있었다.
나는 개찰구앞에서 블루동지를 기다렸다. 이른 아침의 서울역은 유난히 춥게 느껴졌는데, 나는 목도리를 한번 더 여미며 그가 오는쪽을 살펴보았다. 그는 늘 그렇듯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강지 님, 일찍 나왔네요.》 하기에 나도 마주 웃으며 블루 님이야말로 일찍 왔다고,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그는 《제가 늦으면 안되지요, 오늘 같은 날.》 하고 짐짓 심상한 얼굴로 말하였는데, 나는 그 말이 그저 지스타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뜻인줄로만 알았다. 그때는 그 말속에 다른 뜻이 숨어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하였다.
개찰을 마치고 렬차에 오를 때 그는 내 표를 대신 받아들더니 자리 번호를 확인하고 앞장서 걸었다. 나는 그저 그가 짐이라도 들어주려는가보다 하고 뒤를 따랐을뿐이였다. 승강장을 따라 걷는 그의 뒤모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태평해보였다.
그런데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내가 예매하였던 일반실 칸이 아니였다. 렬차 앞쪽, 문우에 《특실》이라는 표지가 붙은 칸이였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블루 님, 여기가 아닌것 같은데요. 제 자리는 뒤쪽 칸입니다.》
《강지 님 자리, 여기 맞습니다. 표를 좀 바꿔놓았습니다.》
《바꾸다니요, 언제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강지 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승강장의 소음도, 옆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소리도 그 몇초 사이 다 멀어진듯하였다. 나는 그저 그의 얼굴만 멀거니 올려다보고있었다.
블루동지는 내가 생일 이야기를 무심코 흘렸던 그날의 말을 기억해두었다가, 며칠 앞서 몰래 내 표를 특실로 바꾸어놓았던것이다. 그러고도 그는 그 사실을 승강장에 다다를 때까지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어느 틈에 그런 일을 벌였는지 짐작도 못한채 그저 놀랄뿐이였다.
나는 어찌할바를 몰라 손사래를 치며 그냥 일반실도 충분하니 이러실것까지야 없다고 말렸다. 그러나 그는 벌써 바꿔놓은걸 다시 무를수도 없으니 그냥 타고 가시라고, 강지 님 생일에 이정도도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그의 말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담담하였으나, 그 담담함 뒤에 숨은 마음씀씀이가 오히려 더 크게 느껴졌다. 나는 결국 못이기는척 그 자리에 앉았다.
특실 칸은 확실히 달랐다. 좌석은 두배는 넓어 보였고, 등받이는 뒤로 훨씬 깊이 젖혀졌으며, 칸안은 일반실보다 한결 조용하였다. 창가에는 작은 창가림까지 달려있어, 이런 사소한것 하나에도 마음이 쓰인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나는 태여나서 그런 자리에 앉아본 일이 몇번 없었으므로, 앉고서도 한동안 어색하여 등을 꼿꼿이 세우고있었다.
블루동지는 그런 나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강지 님, 편히 좀 앉으십시오. 특실인데 그렇게 앉아있으면 특실 값을 못합니다.》 나는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렇다고 겸연쩍게 대답하였는데, 그는 그럼 오늘 익숙해지면 되지 않느냐고 웃으며 받아넘기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우습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력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도 처음 타보는 마차나 처음 앉아보는 귀빈석앞에서는 몸둘바를 몰라 어색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그날의 나 또한 그 대렬에 슬며시 끼여넣어도 좋을만한 몰골이였다. 표 한장의 등급이 바뀌었을뿐인데 사람의 자세까지 이렇게 뻣뻣해질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렬차가 서울을 벗어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안, 창밖으로는 들판과 산기슭이 차례로 스쳐지나갔다. 단풍이 거의 다 진 늦가을 산들은 거뭇하고 쓸쓸한 빛을 띠고있었으나, 칸안의 공기만은 이상하게도 따뜻하였다. 이따금 지나가는 승무원의 발소리와 옆칸에서 새여나오는 낮은 말소리만이 그 조용함을 채워주었다.
우리는 그 몇시간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방송에 어떤 내용물를 더 해보면 좋을지, 지스타에 가면 어느 전시대부터 돌아볼지, 그런 시시한 이야기들이였다. 그러다가 나는 참지 못하고 이 표는 대체 얼마짜리를 바꾸신거냐고 물었는데, 그는 그런건 안물어보시는게 강지 님 답다며 웃어넘기고, 값은 비싸지 않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나는 더 캐묻지 않기로 하였다. 값을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그 마음의 무게는 값으로 헤아릴수 있는 성질의것이 아니였다.
부산에 다다르니 하늘은 서울보다 한결 밝고 따뜻하였다. 역을 나서자마자 지스타로 향하는 사람들의 물결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들 손에 안내책자며 기념품 가방을 들고 밝은 얼굴로 걷고있었다. 택시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언뜻언뜻 바다가 보이였고, 갈매기 몇마리가 낮게 날아드는 모습도 스쳐지나갔다.
전시장안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곳곳에서 신작 오락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와 시연대의 함성이 뒤섞이였고, 전시대마다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며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이런저런 인물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였다. 나는 그 규모에 새삼 놀랐다. 해마다 온다고는 하나 올때마다 규모가 더 커지는듯하였다.
블루동지와 나는 함께 전시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는 시연대앞에 줄이 길게 선 오락을 보면 꼭 한번 서보자고 하였고, 나는 그가 조종간을 잡고 골몰하는 모습을 옆에서 카메라에 담았다. 어느 전시대에서는 신형 머리수화기를 써보라 권하기에 둘이 번갈아 써보며 서로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 웃기도 하였다.
어느 전시대앞에서는 블루동지가 시연하던 총쏘기 오락에서 순식간에 쓰러지는 바람에, 옆에서 지켜보던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배그》로는 그렇게나 침착한 사람이 낯선 오락앞에서는 영 맥을 못춘다고 놀렸더니, 그는 억울한 얼굴로 조종이 손에 안맞아 그런것뿐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런 실없는 입씨름을 주고받으며 다음 전시대로, 또 다음 전시대로 옮겨다니는 사이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다가 우리를 알아본 시청자 몇몇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어, 강지 님이랑 블루 님 아니세요? 둘이 같이 오신거에요?》 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였더니, 《우결》 잘 보고있다며 사진 한장만 부탁드려도 되겠느냐고 하였다.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블루동지는 조금 쑥스러운듯 웃으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 또한 그 자리에서 함께 웃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무슨 이름난 짝이라도 되는 양 취급받는다는것이 여전히 낯설고도 신기하였다. 시청자들이 지나가며 건네는 그 짧은 인사 하나하나가 그날 하루를 더 밝게 만들어주었다.
전시장을 반나절쯤 돌아보고 나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왔다. 우리는 근처 식당가로 나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는 오늘은 자기가 산다며 메뉴판을 이리저리 뒤적였다. 표도 바꿔주었는데 밥까지 사면 어떡하느냐고 말렸으나, 생일인 사람이 밥값까지 낼 필요는 없다고, 그냥 드시라고 그는 또 한번 태연히 눌러앉혔다. 나는 결국 또 그의 뜻을 꺾지 못하였다. 그날 하루 나는 몇번이나 지갑을 꺼내려다 도로 집어넣어야 하였는지 모른다.
식사를 하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방송에서야 늘 웃고 떠들며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 사이였지만, 방송 밖에서 이렇게 마주앉아 밥을 먹는것은 그날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카메라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가 나에게 이렇듯 마음을 쓴다는 사실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화면속의 다정함과 화면 밖의 다정함이 다르지 않다는것을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오후에는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가 남은 전시대들을 마저 둘러보았다. 어느 전시대에는 《배틀그라운드》와 관련된 볼거리도 나와있었는데, 블루동지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이러다 오늘안에 다 못돌아보겠다고 하자, 그는 그래도 이건 봐야 한다며 우리 밥줄이 아니냐고 능청스럽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밥줄이라는 말이 그렇게 정직하게 들릴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진지한 얼굴로 화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우스웠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무렵에야 우리는 전시장을 나섰다. 하루종일 걸어다닌 다리가 뻣뻣하였으나, 마음만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서울로 올라가는 렬차 시간이 가까워, 우리는 걸음을 재촉해 역으로 향하였다.
서울로 올라오는 렬차안에서 나는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남녘의 들판을 내다보며 그날 하루를 되짚어보았다. 낯선 특실 자리, 인파로 가득하던 전시장, 마주앉아 먹은 점심. 어느것 하나 대단할것 없는 일들이였지만, 그 하루 전체가 묘하게 따뜻한 색으로 남았다. 나는 블루동지에게 오늘 즐거웠느냐고 물었다.
《예, 즐거웠습니다. 강지 님은요.》
《저도 즐거웠습니다. 표까지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다음에도 같이 오시지요.》
나는 그 말에 그러자고 대답하였다. 그때는 그저 지나가는 말로 여기였을뿐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한마디에도나름의 무게가 실려있었던듯하다.
그날밤 늦게 집에 돌아와 짐을 풀면서, 나는 표 한장때문에 하루종일 마음이 들떠있었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그날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보는데, 어느 사진에도 유난히 밝게 웃고있는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혼자 실없이 웃고 말았다.
후날 이 하루의 일은 어느 결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훈훈한 일화로 전해지게 되였다. 정확히 언제 누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나, 우리 두사람의 발자취를 기록해놓은 페지 한켠에 《여담》이라는 이름으로 그날의 일이 짧게 적혀 남아있다고 들었다.
그 페지를 처음 발견하였을 때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끼리만 알고 지나갔을법한 그 작은 하루가 누군가의 손을 거쳐 기록으로 남아있다는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하였다. 지나가는 옛 사관들이 궁중의 사소한 언행 하나까지 낱낱이 적어두었다더니, 우리 시청자들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눈썰미를 지녔던 셈이다.
블루동지에게 그 페지를 보여주며 물은 일이 있다. 《블루 님, 이거 보았습니까. 우리 지스타 갔던 이야기가 여기 적혀있습니다.》 그는 저도 보았다며, 별것도 아닌데 이렇게 남는게 신기하다고 웃었다. 별것도 아니라는 그 말에 나는 반쯤 동의하고 반쯤 동의하지 못하였다. 값으로 따지면 표 한장 값에 지나지 않는 일이였으나, 그 표 한장에 담긴 마음만은 결코 별것 아니라 할수 없었기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일을 두고 력사에 남을 대사변이라 부르기는 어렵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종종 생각한다. 큰 나라의 흥망도 결국은 이런 작은 마음씀씀이들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물론 이 비유가 지나치게 거창하다는것은 나 스스로도 잘 안다.
짐짓 력사적인 사변처럼 말하자면, 후날 《우결》의 년대기를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날을 두고 《특실칙령의 날》이라 부를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조약도 아니고 겨우 표 한장을 바꾸어놓은 일에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인다는것이 스스로도 우스웠으나, 그때 나에게는 그만큼이나 큰 사변으로 여겨졌던것도 사실이다.
이 장의 이름이 《작은 선물들》인 까닭도 아마 여기에 있을것이다. 지스타의 그 표 한장은 그 뒤로 이어질 여러 작은 선물들 가운데 첫 자리에 놓일만한 일이였다. 그때는 그것이 시작이라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표 한장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을줄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그날 좀더 얌전히 앉아있었을것이다.
그 겨울이 다 가기도 전에 우리 두사람 사이에는 이와 비슷한 작은 주고받음이 몇차례 더 있었다. 그 하나하나를 여기서 다 늘어놓을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시작이 다름아닌 이 지스타의 표 한장이였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적어두고싶다.
지금 와서 그날의 자세한 시각과 어느 렬차 편이였는지를 되짚어보려 하면 기억이 흐릿하여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 다만 그날의 분위기와 그가 건넨 한마디만은 세월이 흘러도 뚜렷이 남아있다. 사람의 기억이란 큰 일보다 오히려 이런 사소한 장면을 더 오래 붙들어두는 모양이다.
나는 그 뒤로도 오랫동안 특실을 탈 때면 이따금 그날 생각이 났다. 넓은 좌석에 앉을 때마다 어색해하던 그해의 내 모습이 떠올라 혼자 웃음짓고는 하였다. 세월이 흘러 특실이라는것이 더는 낯설지 않게 된 뒤에도, 그 첫 자리만은 유난히 각별하게 남아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작은 표 한장이 그 뒤로 몇해에 걸친 우리 두사람의 이야기 가운데 오래도록 기억될 장면 하나로 남으리라고는. 사람의 인연이라는것은 이렇듯 작은 자리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자라나는 모양이다.
지금 이 페지를 쓰며 나는 다시 한번 그날의 서울역 승강장을 떠올려본다. 서늘한 늦가을 공기, 특실이라 적힌 표지, 그리고 담담한 얼굴로 생일을 축하한다 말하던 그의 목소리. 그 하루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 두사람의 시간속에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