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밈
우주26(2019)년 사월도 하순에 접어들무렵이였다. 봄바람이 아직 찬기운을 다 걷어내지 못한 저녁, 나는 방문을 닫고 콤퓨터앞에 앉아 그날 올라간 영상의 채팅 기록을 다시 훑어보고있었다. 화면의 푸른 빛이 어두운 방안을 은은하게 비추었고, 창밖으로는 가로등 불빛에 흩날리는 벚꽃잎 몇장이 유리창에 잠깐 붙었다가 떨어지곤 하였다. 본체의 랭각기소리만이 고요한 방안을 채우고있었다.
책상우에는 식은 랭수 한잔과 그날치 편집본을 담은 저장장치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나는 이따금 화면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골목 어귀의 벚나무는 이미 꽃잎을 절반 넘게 떨구어 봄이 저물어가고있음을 알려주고있었다. 그 저물어가는 봄과 함께 무언가도 서서히 저물고, 또 무언가는 새로 돋아나고있다는 느낌이 그날따라 유난히 짙었다.
며칠 전 올라간 《귀엽다고 말해!》라는 영상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있었다. 나는 그 여진이 가시기도 전에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고있었다 — 우리 둘 사이에 오가는 말과 장면들 가운데는 이미 저마다 정해진 자리를 차지한것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였다.
한번 웃고 지나가면 그만인 우스개가 있는가 하면, 어느 순간부터 방송을 켤 때마다 으례 나오는것처럼 굳어져버린 말투와 장면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그때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그러나 채팅 기록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다시 읽어보니, 그 대수롭지 않던것들이 실은 이미 하나의 흐름을 이루고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꼽을만한것은 블루동지의 웃음소리였다. 《배그》를 하며 상대를 쓰러뜨릴 때마다 그가 내뱉는 한마디가 있었다.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 하는 그 웃음 섞인 대사였다.
그날도 례외는 아니였다. 《배그》 결승원안에서 마지막 두 사람만 남은 팽팽한 순간, 블루동지가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였다. 화면우에 처치 표시가 뜨는것과 거의 동시에 그 웃음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터져나왔다. 나는 옆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따라 웃고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승전보를 전하는 흔한 감탄사려니 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대사가 나올 때마다 대화창의 반응이 유난히 커진다는것을 나는 눈치채게 되였다. 사람 하나를 쓰러뜨렸을뿐인데 그 짧은 웃음소리 하나에 대화창은 마치 큰 사변이라도 벌어진듯 들썩거렸다.
편집을 맡은 직원이 어느 날 나에게 짧은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강지 님, 이거 보십시오. 블루 님 이 대사만 따로 모아둔것입니다.》 화면속에는 여러 방송에서 뽑아온 그 웃음소리가 몇번이고 이어붙여져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같은 웃음소리, 같은 말투가 몇번이고 되풀이되는데도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웃긴다는것이 신기하였다. 사람이 한번 웃는 소리도 이렇게 모아놓으면 하나의 표가 될수 있는가보다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블루동지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더니 그는 처음엔 낯을 붉히며 손사래를 쳤다. 《강지 님, 저 이런거 좀 그만 만들어주십시오. 제가 무슨 개그맨도 아니고.》 나는 그 말에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말았다.
《블루 님이야말로 이 대사 없이 배그를 하는 모습을 상상할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꾸하였다. 블루동지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내 부인하지는 못하였다.
실상 그 자신도 그 대사가 언제부터 입에 붙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사람의 입버릇이란 본디 그런것이다.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굳어지고, 남들이 짚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제 것이였음을 깨닫게 되는 법이다.
이 웃음소리는 우리 방송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얼마 뒤 다른 진행자들이 어울리는 합방 자리에서도 누군가 장난삼아 그 대사를 흉내내는 장면이 나왔다. 《아하하하핳》 하고 짐짓 흉내를 내보이자 대화창은 대번에 그 출처를 알아보고 환호하였다.
블루동지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강지 님, 저 이제 어디 가서도 이 웃음소리를 못 벗어나는것 아닙니까.》 나는 그 말에 웃으며 대답하였다. 《이왕 이렇게 된것, 상표로 등록이라도 하시지요.》
나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무렵 나에게 붙은 낙인 아닌 낙인은 바로 목소리였다. 《우결》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방송에서 성미가 거칠기로 이름이 나있었다.
오락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욕설이 서슴없이 튀여나왔고, 그것이 오히려 내 방송의 색갈이라고 스스로도 여기고있었다. 그런데 《우결》을 시작한 뒤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색갈을 하나둘 지워가고있었다.
블루동지앞에서만은 목소리가 절로 낮아지고 부드러워졌다. 험한 말이 나올법한 순간에도 나는 어느새 입을 다물거나 순화된 말로 돌려 말하고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얼마 앞선 어느 날의 일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그날 나는 오랜 친구 악녀와 오래간만에 술자리를 가졌다. 악녀는 나의 거친 성미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였다.
술이 몇순배 돌자 악녀는 문득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하였다. 《야, 너 요즘 방송 봤는데 사람이 왜 이렇게 되였냐.》 나는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목소리가 아주 다르잖아. 블루앞에서는 아주 얌전한 사람이 다 되였던데.》 악녀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나는 그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악녀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새삼스레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한테는 한번도 그렇게 말해준 적 없으면서. 나도 좀 그렇게 대해주라.》 그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네가 무슨 블루 님이라도 되냐.》 나는 그렇게 받아쳤으나 속으로는 뜨끔한 데가 있었다. 나 자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한 변화를 가장 가까운 사람이 먼저 짚어낸 셈이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조금 더 의식하게 되였다. 방송을 마치고 다시보기를 켜서 예전 영상과 견주어보면, 확실히 블루동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만은 말끝이 눅어져있었다. 사람이 누구앞에서 어떤 얼굴을 하는지는 본인보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인가보다.
시청자들도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방송에서는 걸쭉한 입담으로 이름난 내가 《우결》 방송에서만 유독 다소곳해지니, 그 락차 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되였다. 대화창에는 심심찮게 《강지 님 목소리 왜 이렇게 다정해요》 하는 말이 올라왔다.
나는 그런 감상글을 볼 때마다 애써 모른체하였다. 그러나 모른체한다고 사실이 달라지는것은 아니였다. 목소리라는것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법이다.
이렇게 사람의 성미까지 은근히 바꾸어놓았으니, 력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작지 않은 사변이라 이를만하였다. 나라의 정책 하나를 고치는데도 여러 해가 걸리는 법인데, 사람의 입버릇 하나를 고쳐놓는데는 단 몇달이면 족하였던 셈이다.
물론 이렇게 거창하게 말해놓고보니 스스로도 우스운 노릇이다. 실상은 그저 좋아하는 사람앞에서 조금 얌전해진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소한 변화가 시청자들에게는 매번 새롭게 놀랄만한 구경거리였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었다.
목소리와 웃음소리 말고도 그무렵 굳어진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를 겨루는 순서였다. 처음에는 방송중에 심심풀이로 던진 물음 몇마디에 지나지 않았다.
《블루 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아십니까.》 하고 내가 물으면 블루동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을 내놓았다. 《떡볶이 아닙니까. 그리고 요즘엔 뿌링클도 즐겨 드시는걸로 압니다.》
그 대답이 신통하게 맞아떨어질 때마다 대화창은 또 한번 들썩였다. 《어떻게 저렇게 잘 알아》 하는 말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나는 그 반응이 재미있어 다음 방송에서도 비슷한 물음을 또 던지게 되였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이 물음과 대답의 순서는 우연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방송의 한 순서로 굳어져버렸다. 편집을 맡은 직원도 이제는 아예 그 대목만 따로 골라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기 시작하였다. 《나에 대해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그렇게 나온것이다.
그 영상에서 나는 블루동지에게 여러 물음을 던졌다. 어릴 때 살던 동네, 좋아하는 수자, 심지어 그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까지 하나하나 캐물었다. 블루동지는 매운것도 단것도 잘 못 먹는 사람이였는데, 그 사실을 내가 순서대로 읊자 그는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터뜨렸다.
《강지 님, 저를 무슨 조사 대상으로 삼으신것 아닙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시치미를 떼며 대꾸하였다. 《블루 님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뿐입니다.》
그 말에 대화창은 다시 한번 요란해졌다. 이런 식의 문답이 몇차례 되풀이되자 시청자들은 이제 방송을 켜기도 전부터 이 순서를 기대하게 되였다. 감상글난에는 《오늘도 서로 잘 아는지 좀 물어봐주세요》 하는 요청이 심심찮게 달렸다.
정해진 대본도 없이 시작된 순서가 시청자들의 요청에 힘입어 하나의 고정된 코너로 자리잡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묘한 감회에 젖었다. 방송이라는것은 이렇듯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함께 빚어가는것이였다. 어느 한쪽만의 힘으로는 결코 이런 흐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것이다.
블루동지의 흥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수 없다. 평소의 그는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은 사람이였다.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도 않고 크게 화를 내지도 않는, 이를테면 물이 잔잔한 강 같은 성미였다.
그런 그가 유독 목소리 톤이 급격히 올라가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개꿀!》을 웨칠 때였다. 《배그》에서 뜻하지 않은 물건을 줍거나 위기를 벗어날 때마다 그 한마디가 터져나왔다.
평소의 차분함과 그 순간의 들뜬 목소리 사이의 락차가 워낙 크다보니, 그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대화창에는 웃음의 표시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 사람도 저렇게 흥이 오를 때가 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느끼곤 하였다.
《블루 님은 꼭 그 순간에만 딴사람이 되는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놀리면 블루동지는 겸연쩍은듯 뒤통수를 긁적이며 대답하였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겁니다. 그만큼 반가운 순간이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우리 둘 사이에는 이미 저마다의 말버릇과 저마다의 몸짓이 굳어져있었다. 웃음소리 하나, 물음 하나, 감탄사 하나가 저마다 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으니, 이것을 두고 사소하다고만 할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력사를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큰 사변과 큰 인물의 말을 기록하는 법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이 페지에다 굳이 그런 큰 말 대신 이런 자잘한 버릇들을 적어놓는다. 어느 나라의 흥망도 결국은 사람들의 자잘한 하루하루가 쌓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웃음소리 하나, 감탄사 하나도나름의 무게를 지닌 기록이 될만하였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그 봄, 우리만의 작은 표시들을 하나둘 세워가고있었던 셈이다. 물론 그 세움에는 어느 위원회의 의결도 없었고, 오직 대화창의 반응만이 유일한 표결이였다.
이 말버릇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방식도 눈여겨볼만하였다. 처음에는 방송 중에 우연히 튀여나온 말이나 몸짓이였다. 그것을 시청자들이 알아보고 반가워하면, 편집자가 그것을 영상 제목이나 미리보기에 슬쩍 끼워넣었다.
그러면 그 말이나 몸짓을 모르던 사람들까지 그 제목을 보고 찾아와 함께 웃게 되고, 다음 방송에서 그것이 다시 나오면 이제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가 되여있었다. 이런 식으로 몇 순배를 돌고나면 그 사소한것 하나가 어느새 굳건한 관습으로 굳어져버리는것이다.
미리보기를 만드는 직원은 아예 그 말버릇들을 따로 적어둔 목록을 만들어놓고 새 영상을 올릴 때마다 거기서 하나씩 골라 글자로 박아넣었다. 《이번엔 어느것을 쓸가요, 강지 님.》 하고 물어오면 나는 그날의 방송을 되짚어보며 가장 반응이 컸던 대목을 짚어주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우리 둘의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가 어느새 방송을 알리는 하나의 간판처럼 쓰이고있었다.
나는 이 순환을 지켜보며 방송이라는 세계의 한 리치를 깨달았다. 방송원과 시청자 사이에는 이렇듯 서로가 서로를 완성해가는 관계가 있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엇을 만들어 보여주는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하나의 언어를 빚어가는 셈이였다.
그무렵 나는 가끔 다른 방송원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우리 둘 이야기가 화제로 오르는 소리를 듣곤 하였다. 《강지랑 블루는 요즘 뭐만 하면 그거 나온다며.》 하는 식이였다. 그 《그거》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말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어쨌든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 반복되는것이 있다는 사실만은 다들 알고있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쑥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하였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시작한 방송이 어느새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저마다의 색갈을 갖추게 되였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무언가를 함께 쌓아간다는것은 이런것인가보다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블루동지와 통화를 하다가 이 이야기를 나눈적도 있었다. 《블루 님, 요즘 우리 두고 하는 말들 들어보였습니까.》 내가 그렇게 물으니 그는 낮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저도 들었습니다. 어디 가서 《배그》 좀 하였다 하면 다들 그 웃음소리부터 흉내내더군요.》 나는 그 말에 크게 웃었다. 《블루 님도 참, 그 웃음소리 하나로 이름을 날리실줄은 몰랐습니다.》
《강지 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목소리 부드러워진것 갖고 다들 한마디씩 하던데요.》 그 말에는 나도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처지를 두고 한참을 웃다가 통화를 끊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무렵의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어가고있었던것 같다. 웃음소리를 흉내내고, 말투를 눈여겨보고, 서로에 대한 물음에 답을 맞혀가는 그 모든 순서들이 실은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고있다는 증거였다. 그때는 그 사소한 반복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깊이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그 반복들이 쌓여가는속도만은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처음에는 한달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던 장면들이 어느새 방송을 켤 때마다 으례 등장하는것처럼 되여있었다.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는속도를 재는 잣대가 있다면, 아마 이런 반복의 빈도가 그 잣대의 하나가 될것이다.
나는 이 페지를 쓰며 그 봄의 채팅 기록들을 다시 한번 열어보았다. 화면 가득 같은 말들이 되풀이해서 올라와있는것을 보노라니, 그 시절의 소란스러움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듯하였다. 지금은 화질도 낮고 대화창의 글자체도 낡아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웃음소리만은 하나도 바래지 않았다.
어느 영상에는 《주변에 좋은 사람이 너무 많다 ㅎㅎ》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방송 내용에 그런 제목이 붙은 사연을 굳이 캐고들자면, 그것은 상대의 관심을 은근히 시험해보려는 짓궂은 장난에서 비롯된것이였다. 그런 장난마저도 그무렵에는 이미 하나의 놀이처럼 자리잡아있었다.
블루동지가 다른 사람 이름을 슬쩍 흘리면 나는 짐짓 토라진 척을 하였고, 그러면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해명을 늘어놓았다. 그 실랑이가 몇번 되풀이되자 시청자들은 아예 그 장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또 질투 유발 들어간다》 하는 감상글이 미리부터 달릴 정도였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보며 우리가 어느새 서로의 각본 없는 각본을 시청자들과 함께 짜고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상대의 반응을 예상하고, 그 예상에 맞추어 다시 반응하는 이 순환이 참으로 묘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밀고당기기라는것이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이루어질수도 있다는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한번은 블루동지가 방송 도중 무심코 다른 녀성 진행자의 이름을 입에 담은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뜸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블루 님, 지금 그 이름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블루동지는 당황한 기색이 력력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둘러댔다. 《아, 그게 아니라 그냥 합방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어정쩡한 변명이 오히려 대화창을 더 요란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 모든것을 지금 와서 력사적 사변인양 부풀려 말하는것은 나 스스로도 낯간지러운 일이다. 실상은 그저 좋아하는 사람과 장난을 치고, 그 장난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함께 웃었을뿐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되풀이들이 몇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그 숱한 되풀이 가운데 어느것이 맨 먼저 씨를 뿌린것이였을가. 웃음소리가 먼저였는지, 물음과 대답의 순서가 먼저였는지, 아니면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먼저였는지 이제 와서는 그 순서를 가려낼 도리가 없다.
다만 분명한것은, 그 여러 갈래의 되풀이들이 한데 뒤섞여 그 봄 우리 두 사람만의 언어를 이루어갔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우스운 짤막한 말들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우리 두 사람에게는 그것이 서로를 알아가는 하나의 방식이였다. 낱말 하나, 웃음소리 하나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담기는 법이다.
편집을 맡은 직원은 그무렵 아예 따로 목록 하나를 만들어 우리 둘 사이에 반복되는 장면들을 정리해두기 시작하였다. 《강지 님, 이러다가 우리만의 사전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가 우스개삼아 그렇게 말한 일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니였다.
실제로 후날 사람들은 우리 《우결》을 이야기할 때마다 이 시절의 말버릇들을 하나씩 꺼내들며 추억하곤 하였다. 웃음소리 하나만 흉내내도 서로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는 사이가 되였으니, 그것이야말로 그 봄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이였는지도 모른다. 말이 필요없이 통하는 사이, 그것을 사람들은 흔히 정이라 부른다.
사월이 다 가도록 그 되풀이는 그칠줄을 몰랐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그 종류가 늘어나고, 굳어지는속도도 빨라지는듯하였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무언가 새로운 흐름이 다가오고있다는 예감을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사변으로 현실이 되였으나, 그 이야기는 뒤에 따로 적어야 할것이다. 다만 그 사변이 있기까지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이렇듯 여러 겹의 되풀이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는 사실만은 여기 미리 적어두고싶다. 큰 사변은 언제나 작은 되풀이들의 끝에서 태여나는 법이다.
지금 이 페지를 닫으며 나는 그 봄의 웃음소리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아하하하핳 하던 그 웃음, 얌전해졌다고 놀리던 악녀의 목소리, 서로에 대한 물음에 답을 맞혀가던 그 문답들. 그때는 그것들이 그저 하루하루의 소소한 우스개인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헤아려보면 그 소소한것들이야말로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지어온 하나의 언어였다. 거창한 말 한마디보다 이런 자잘한 되풀이들이 오히려 더 오래, 더 깊이 사람의 마음에 남는다는것을 나는 그 봄을 지나며 배웠다.
후날 력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흔히 큰 전쟁의 승패나 큰 인물의 결단만을 두고 시대를 가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두 사람의 그 봄만은 웃음소리 하나, 목소리의 락차 하나로도 넉넉히 갈라 말할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 사이의 력사란 본디 이렇듯 작은 자리에서 조용히 쓰여지는 법이다.
나는 이 배움을 이 회고록의 한 페지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