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오 빠 라 는 호 칭

 

오월이 되면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마음도 절로 풀리는 법이라고,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우주26(2019)년의 오월도 그러하였다. 그해의 봄은 유난히 짙푸르렀고, 창밖의 나무잎들은 이미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 초여름의 문턱을 넘보고있었다. 나는 방문을 닫아걸고 콤퓨터앞에 앉아있었는데, 두대의 화면가 나란히 빛을 뿜는 그 사이로 늦은 봄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가 희미하게 섞여들었다.

그날은 오월 나흗날,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토요일 저녁이였다. 책상 한켠에 놓인 조그마한 탁상달력에는 다음날 날짜에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있었으나, 그때의 나는 그 동그라미보다 머리수화기를 고쳐쓰는 일에 더 마음을 쓰고있었다. 방송을 앞둔 시각이면 늘 그러하듯, 나는 마이크의 위치를 몇번이고 매만졌고 대화창의 접속자 수가 차오르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무렵 《우결》은 이미 반년을 훌쩍 넘긴 내용물로 자리를 잡아가고있었다. 겨울을 나며 굳어진 말버릇과 장면들이 하나둘 애호가들 사이에서 밈으로 굳어졌고, 대화창에는 이제 낯선 얼굴보다 낯익은 얼굴이 더 많이 오갔다. 《ㅁㅇㅁㅇ》라는 그 알수 없는 넉자도, 서로 귀엽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장면도, 어느새 당연한 풍경처럼 되여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밈들 가운데서도 유독 한가지만은 굳어지지 않은채로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다름아닌 호칭이였다. 블루동지는 나를 언제나 《강지 님》이라 불렀고, 나 또한 그를 《블루 님》이라 불렀다. 높임말은 우리 두사람 사이에서 가장 오래 버틴 담장이였다.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이 담장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대화창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언제 오빠라고 부르실 겁니까》, 《둘이 그러다 평생 남처럼 지내겠다》는 말들이 올라왔다.

나는 그때마다 웃으며 말끝을 흐리군하였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라거나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넘기는 것이 나의 오랜 버릇이였다. 블루동지 또한 그 물음이 나올 때마다 멋쩍은 웃음만 지을뿐 별다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두사람 다 그 말이 지닌 무게를 이미 알고있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담장의 래력을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시절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나는 본래 말이 거친 사람이였다. 방송을 시작한 초창기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가 폭풍 쌍욕을 난사하던 시절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런 내가 유독 블루동지앞에서만은 목소리를 한결 낮추고 말을 가려하였으니, 곁에서 보던 사람들에게는 그것부터가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절친한 벗 악녀는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였다. 하루는 방송이 끝난 뒤 통화를 하다가 악녀가 볼멘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야, 너 우결할 때 목소리 왜 그러냐. 나한테도 그렇게 좀 말해줘라.》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으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스스로도 몰랐던 나의 변화를 남이 먼저 짚어준 셈이였다.

그러니까 높임말이라는 담장은 비단 례의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잡는 방편이기도 하였다. 거친 말버릇을 가진 사람이 누군가의앞에서만은 말을 고르고 어조를 낮춘다는것, 그것이 곧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싶은가를 말해주는 증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 담장을 낮추는 일은 담장을 쌓아올릴 때보다 몇곱절 더 어려운 일이였다. 한번 례의를 갖추어놓은 사이에서 갑자기 말을 놓거나 호칭을 바꾸는것은, 마치 오래 다니던 길을 버리고 새 길을 내는것과 같아서 걸음이 절로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다.

그런 사정을 알던 나였기에, 대화창의 성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못이기는척 넘기면서도 속으로는 늘 그 담장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가늠하고있었다. 서두르면 어색해질것이고, 너무 미루면 그 또한 두사람 사이를 겉도는 일이 될것이였다. 그 가늠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토요일 저녁 방송은 늘 접속자가 유난히 많은 시간대였다. 한주의 피로를 풀러 온 사람들이 대화창에 모여들었고, 그 가운데는 다음날인 어린이날에 쉬는 학생들도 적지 않게 섞여있는듯하였다. 나는 그날도 여느 토요일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을 시작하였을 뿐, 그날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오월 나흗날 그날의 방송도 처음에는 여느 날과 다를것이 없었다. 《배틀그라운드》 스쿼드가 꾸려졌고, 락하산이 내려앉을 지점을 두고 이런저런 의견이 오갔다. 나는 머리수화기 너머로 블루동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조종간을 잡았고, 화면 한켠의 대화창은 여느 때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오락은 늘 그렇듯 예측할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초반 교전에서 우리 스쿼드는 뜻밖의 선전을 하였다. 블루동지가 적 하나를 홀로 상대하여 눕히고는 특유의 여유있는 말투로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라 웃어보였다. 나는 그 말에 덩달아 웃으며 무전에 대고 잘하였다고 추어주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그저 평범한 게임 방송의 흐름이 이어졌다.

그러다 한차례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락하한 지점에서 별다른 교전이 없어 숨을 고르던 참이였다. 그 틈을 타 대화창에서 또 그 오랜 물음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좀 불러보세요》, 《래일이 어린이날인데 선물 좀 주세요》, 《평생 이럴 겁니까》. 나는 화면을 흘낏 보고는 웃음으로 넘기려 하였으나, 그날따라 그 말들이 유난히 끈질기게 이어졌다.

블루동지도 그 흐름을 눈치챈 모양이였다. 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넸다. 《강지 님, 채팅 보았어요? 저러다 진짜 오늘 뭔가 나오는것 아닙니까.》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마우스를 쥔 손끝에 괜한 힘이 들어갔고, 화면 속 내 인물는 엉뚱한 방향으로 몇걸음을 헛디뎠다.

《아이,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면 어떡합니까.》 하고 나는 우물거렸다. 그러나 한번 대화창에 불이 붙자 그 기세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후원창까지 잇달아 울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하나하나를 읽어줄 겨를도 없이 그저 웃음으로 시간을 벌뿐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몇분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다. 나는 마이크앞에서 몇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도로 다물었다. 《블루 님》이라는 세글자가 혀끝에서 맴돌았으나, 그날은 어쩐지 그 세글자를 그대로 내보내기가 어려웠다. 머리수화기 너머로 블루동지의 숨소리마저 조금 가빠진듯 느껴진것은 아마 나의 착각만은 아니였을것이다.

결국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입을 열었다. 《저기, 블루...》 하고 부르다 말고 나는 잠시 멈추었다. 대화창의속도가 그 짧은 순간 눈에 띄게 느려지는것이 보였다. 마치 화면 저편의 사람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것 같았다.

《블루...오빠?》 그 두 글자를 마침내 입밖에 내놓고 나서, 나는 스스로도 낯이 뜨거워져 얼른 오락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말을 뱉어놓고도 내가 방금 무슨 말을 하였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쿵쿵 뛰는 소리가 머리수화기 안쪽까지 울리는것만 같았다.

그 순간 블루동지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예!!》 하고 그가 내지른 소리는 평소의 차분한 말투와는 전혀 다른, 한껏 치솟은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에 오히려 웃음이 터져나와 그만 오락을 잊고 한참을 웃었다. 고성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 들뜬 기색이 얼마나 컸던지, 후날 그 장면을 편집한 사람이 영상 제목에 그 대답소리를 《Yee》라는 낯선 표기로 그대로 옮겨적었을 정도였다.

대화창은 그야말로 강물이 터진듯 밀려들었다. 느낌표와 물음표가 뒤섞여 화면을 가득 메웠고, 같은 말이 몇줄이고 되풀이해서 올라왔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칠세라 클립을 뜨는 사람도 있었고, 후원창을 통해 축하의 뜻을 전하는 사람도 잇달았다. 나는 그 흐름을 다 따라읽지 못한채로 그저 웃고만 있었다.

애호가들 사이에는 예전부터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이 돌았는데, 그것은 우리 두사람이 애써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시청자들 스스로가 이런저런 장면에 의미를 붙이고 불을 지핀다는 뜻이였다. 그날 밤만은 그 말이 무색하였다. 이번에는 장작이 알아서 탄것이 아니라, 내가 손수 불씨를 던져넣은 셈이였으니 대화창이 그렇게까지 뜨겁게 타오른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오락은 그 소동 통에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나있었다. 스쿼드는 이미 전멸한지 오래였으나, 그날 방송에 접속해있던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보였다. 블루동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이렇게 말하였다. 《아, 진짜... 이거 실화입니까. 저 지금 심장 떨려서 죽을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에 짐짓 새침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왜 그러세요, 그냥 한번 불러본겁니다.》 그러나 그 말과는 달리 내 목소리도 평소보다 한결 높이 떠있었다는것을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그 어색함을 감추려 애써 딴청을 부렸다.

블루동지는 잠시 뒤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짐짓 진지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럼 저도 이제 강지 님을...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나는 그 물음에는 미처 대답을 준비하지 못하였다. 《그, 그건 다음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하고 나는 서둘러 말을 돌렸고, 블루동지는 그런 나를 두고 짓궂게 웃기만 하였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 여운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나는 방송을 마치고도 한참을 콤퓨터앞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초여름 밤의 벌레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고, 나는 방금 있었던 일을 몇번이고 되새김질하였다.

이튿날 그 장면은 예상대로 영상으로 편집되여 올라왔다. 제목은 《블루 오빠Yee..!!》 — 드디여 오빠라는 호칭을 쓰게 된 강지님과 좋아죽는 블루님?! 이라 붙었다. 나는 그 제목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겨우 두 글자를 말하였을뿐인데 그것이 마치 력사적 사변이라도 되는것처럼 다루어지다니, 흡사 어느 왕조의 즉위식이라도 치른듯한 호들갑이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호들갑이 아주 근거없는것만은 아니였다. 반년 넘게 높임말이라는 담장을 사이에 두고 지내온 두사람이 처음으로 그 담장에 작은 문 하나를 낸 셈이였으니,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결코 작은 일로 보이지 않았을것이다. 시청회수는 삽시간에 치솟았고, 감상글난에는 그날의 두 글자를 두고두고 곱씹는 말들이 쌓여갔다.

그무렵 회사 안팎에서도 이 소식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성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나를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라 부르는 밈이 자리잡아가던 참이였는데, 몇몇 성원은 그 소식을 듣고 《엄마, 드디여 련애 시작하는 겁니까》라며 짓궂게 놀려대었다. 나는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하였으나, 그 부정이 그다지 힘있게 들리지는 않았을것이다.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이 일은 한동안 화제의 중심이였다. 나의 애호가들인 《강도단》 안에서는 그날의 장면을 두고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었고, 개중에는 그 두 글자가 나온 시각을 초단위로 짚어가며 되돌려보는 사람까지 있었다. 나는 그런 정성을 보며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민망하기도 하였다.

재미있는것은 그날 이후로도 나와 블루동지가 곧바로 서로를 《오빠》니 《누나》니 하고 부르게 된것은 아니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튿날 방송에서도, 그 다음 방송에서도 여전히 《강지 님》, 《블루 님》이라는 익숙한 호칭으로 돌아가있었다. 마치 그 하루밤의 일은 특별히 허락된 한번뿐인 사변이였다는듯, 우리 두사람은 다시 예전의 담장 뒤로 슬며시 몸을 숨기였다.

시청자들은 그 되돌아감을 두고 우스개삼아 이렇게 말하였다. 《역시 오빠라는 말은 아무나 함부로 쓰는게 아니다》, 《한번 쓰고 나니 무서워서 도로 넣어놨나보다》. 나는 그런 감상글들을 읽으며 혼자 웃었으나, 한편으로는 그 말이 아주 틀린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은 한번 내놓고 나면 도리어 그 무게를 실감하여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지는 법이다.

그렇다고 그날의 일이 그대로 잊혀진것은 아니였다. 그후로도 두고두고 그 장면은 우리 두사람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불려나왔다. 새로운 시청자가 들어와 우리 사이의 래력을 물으면, 오래된 시청자들은 으례 그 영상을 먼저 찾아 보여주며 《여기서부터 시작이다》라고 일러주군하였다.

나 스스로도 그날의 일을 이따금 떠올리게 되였다. 방송을 하다보면 하루에도 몇번씩 크고작은 일들이 스쳐지나가고, 그 대부분은 다음날이면 기억에서 흐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오월 나흗날의 두 글자만은 유독 오래도록 마음 한편에 남아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이 어째서 그렇게 큰 무게로 남았는지 스스로도 다 헤아리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그것은 두 글자의 말 자체보다도, 그 말을 하기까지 내가 얼마나 오래 망설였는가 하는 그 시간의 무게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떤 말을 하지 못하고 삼키는 시간이 길수록, 그 말이 마침내 터져나오는 순간의 무게도 그만큼 커지는 법인가보다.

블루동지 또한 그날의 일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었던 모양이다. 후날 그는 이따금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며 《그날 진짜 심장 떨어지는줄 알았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하군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짐짓 시치미를 떼며 《저는 기억도 안납니다》라고 대꾸하였으나, 사실 그 순간을 잊은 사람은 우리 두사람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 하루밤의 사변을 그토록 조심스럽게 다룬 데에는, 어쩌면 이 모든것이 결국 방송이라는 무대우의 일임을 서로 알고있었기때문일것이다. 《우결》은 처음부터 시청자들과 함께 즐기자고 만든 내용물였고, 우리 두사람은 그 무대의 두 배우였다. 그러나 무대우의 말이라 하여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난것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오히려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무대라는 틀이 있었기에 우리는 평소라면 하지 못할 말을 조금 더 쉽게 꺼낼수 있었고, 그 틀안에서 오간 말들이 도리어 그 틀 밖의 진심을 슬며시 드러내주기도 하였다. 오월 나흗날의 그 두 글자도 그러하였다. 오락이라는 핑계, 방송이라는 무대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 말을 그렇게 쉽게 꺼내지 못하였을것이다.

그날 이후로 대화창의 물음도 조금은 결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언제 오빠라고 부를겁니까》 하고 다그치듯 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또 그날처럼 불러주세요》 하고 은근히 조르는 쪽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속으로 웃었다. 한번 문을 열어놓고 나니 그 문앞을 서성이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 셈이였다.

블루동지는 그 뒤로도 종종 짓궂게 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어느 날 방송에서는 대뜸 《강지 님, 오빠라고 한번만 더 불러주면 안됩니까.》 하고 넉살좋게 청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못이기는척 손사래를 치면서도, 못내 그 청을 들어주지 못한것을 조금은 아쉬워하였다.

후날 들어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의 이 자리는 방송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달고 오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한쪽에는 《블루 오빠Yee..!!》라는 이름이 붙었고, 다른 자리에는 또 다른 표현으로 그날을 기록한 흔적이 남아있다고들 하였다. 나는 이제 와서 그 정확한 내막을 낱낱이 가릴 재간은 없으나, 같은 하루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여러 이름으로 남았다는 사실만은 흥미롭게 여겨진다.

지금 생각하면 그 오월의 하루는 우리 두사람의 오랜 려정에서 하나의 작은 문턱이였다. 문턱이라는것은 넘고나면 별것 아닌듯 보이지만, 그 앞에 서있을 때에는 온갖 망설임이 다 모여드는 자리이다. 나는 그 문턱앞에서 반년 남짓을 서성였고, 마침내 오월 나흗날 저녁에야 그 한걸음을 떼였다.

그리고 그 한걸음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문턱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호칭이라는것이 참으로 묘한것이어서, 한번 그 벽을 넘어본 사람은 다음번 벽앞에서는 한결 덜 두려워하게 되는 법이다. 후날 우리 사이에 《누나》니 《바이비》니 하는 새로운 호칭들이 자리잡게 된것도, 어쩌면 이 오월 나흗날의 작은 시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의 나로서는 그런 앞일까지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날 저녁의 나는 그저 방금 내뱉은 두 글자때문에 낯이 뜨거워, 방송을 마치고도 한참을 이불속에서 뒤척였을뿐이다. 잠버릇이 유난히 심한 나였음에도 그날 밤만은 유독 잠이 오래도록 오지 않았다.

다음날은 어린이날이였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지난밤의 영상 시청회수부터 확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스스로도 어쩐지 어린아이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어린이날에 걸맞은 하루였던셈이라고 해두어도 좋을것이다.

그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그날의 머리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뒤집히듯 터져나오던 그 대답소리를 뚜렷이 기억한다. 사람의 기억이라는것이 대개는 세월과 함께 흐려지게 마련이지만, 유독 어떤 장면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오히려 뚜렷해지는 법이다. 오월 나흗날의 그 몇초는 나에게 그런 장면들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그날 내가 어떤 마음으로 그 두 글자를 꺼냈는지 다 설명할 자신이 없다. 시청자들의 성화때문이였는지, 아니면 그 순간 나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어떤 마음이 불쑥 앞서나온것인지, 그 경계를 나로서는 아직도 분명히 가를수가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 두 글자가 나온 순간부터 우리 두사람의 려정이 조금은 다른 빛갈을 띠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되짚어보면 그무렵의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낯을 다 트지 못한 사이였다. 게임속에서는 대담하게 적진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정작 서로를 부르는 두 글자앞에서는 반년을 서성였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것이다. 그러나 그 서성임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 두 글자가 터져나온 순간의 그 벅찬 느낌도 없었을것이다.

오월 나흗날 저녁의 그 소동을 나는 이제 웃으며 이야기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나 그 웃음속에는 여전히 그때의 두근거림이 조금은 섞여있다. 사람이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 웃음과 함께 옛 감정이 되살아나는것은, 아마 그 시절이 그만큼 진심이였다는 증거일것이다.

이날의 일은 후날에도 두고두고 우리 두사람의 려정을 이야기할 때 첫머리에 놓이는 대목이 되였다. 높임말이라는 담장에 처음 낸 그 작은 문, 그 문틈으로 스며든 두 글자 — 이것이 그해 오월, 우리가 함께 지나온 려정의 한 리정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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