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대 표 곡

 

그해, 우주26(2019)년 초여름이라 부르기엔 아직 일렀던 어느 밤이였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에 어른거렸고 방안에는 콤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나직이 울렸다. 화면 한귀에서는 며칠전에 올린 영상의 재생수가 조용히 늘어가고있었다. 나는 그 수자를 별생각없이 바라보다가 마우스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우에는 마시다 만 차 한잔과 머리수화기이 놓여있었고 화면 불빛만이 어두운 방을 희미하게 밝히고있었다. 나는 그 불빛에 기대여 앉은채 며칠전 밤의 일을 떠올려보았다. 록음실이랄것도 없이 그저 각자의 방에서, 서로 다른 마이크를앞에 두고 부른 노래였다.

온유와 이진아의 그 노래를 우리 둘의 목소리로 다시 부른 영상은 이미 세상에 나가있었다. 록음하던 밤의 긴장과 웃음은 이미 지나간 일이 되였고 이제 남은것은 그것을 들은 사람들의 몫이였다. 나는 그저 다음 방송을 준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낼뿐이였다.

그런데 다음번 방송을 켜자 대화창의 흐름이 여느때와 달랐다. 인사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래 이야기부터 올라왔다. 《그 노래 또 들었어요》, 《자기전에 틀어놓고 잤어요》 하는 말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대화창에는 그무렵부터 낯익은 초성들이 자주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ㅁㅇㅁㅇ》 하는 글자들이 줄지어 올라오면 나는 처음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으나 나중에는 그것이 우리 둘을 놀리듯 축복하는 시청자들만의 암호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처음엔 그저 인사치레인줄 알았다. 방송을 하다보면 그날그날 화제가 바뀌는 법이고 노래 하나쯤 반짝 이야기되다 마는 일은 흔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대화창에는 어김없이 그 노래 이름이 올라왔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방송 중에 그가 문득 《강지 님, 저 요즘 아침에 그 노래 틀어놓고 일어나요》 하고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마이크에 대고 짐짓 놀란 척하였다. 《진짜요? 오빠 원래 그런거 잘 안하는 사람 아니예요?》

블루동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니 그게, 자꾸 귀에 남아서 그렇다카는데예》 하고는 이내 말투를 고쳤다. 《아니 진짜로요. 신기하더라고요, 저도.》 나는 그 모습이 우스워 한참을 웃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무렵부터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크게 자라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사람이란 원래 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의 크기를 제대로 재지 못하는 법인가보다.

방송이 있는 날이면 대화창 한켠에 늘 그 노래를 다시 청하는 말이 올라왔다. 나는 처음 몇번은 웃어넘기였으나 나중에는 못 이기는 척 마이크를 붙잡고 후렴 한소절을 흥얼거리게 되였다. 그러면 대화창은 온통 별표시로 뒤덮이였다.

후원 문구에도 그 노래 제목이 오르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노래 들으러 왔어요》 하는 후원 문구가 하나 둘 늘더니 나중에는 방송을 켤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되였다.

블루동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노래는 어느새 우리 두 방송의 간판곡 같은것이 되여있었다. 방송을 열 때마다 신청곡 목록 맨 앞자리를 다투듯 이 노래가 올라왔고 나는 못 이기는척 그것을 받아주는것이 어느새 하나의 절차처럼 되였다.

가끔은 그 절차가 반갑고 가끔은 짐짓 귀찮은척 흉내를 내보기도 하였으나 속으로는 늘 그 신청을 기다리고있었다는것을 이제 와서는 솔직히 고백한다. 그것이 우리 두 사람만의 작은 의식이 되여가고있다는것을 그때는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블루동지 방송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그의 시청자들 역시 노래를 청하였고 그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몇소절씩 따라 부르곤 하였다. 서로 다른 방송, 다른 대화창인데 같은 노래가 두 곳 모두에서 되풀이된다는것이 신기하였다.

시청자들은 스스로를 《장작》이라 부르며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에 부지런히 불을 지폈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장작이라니 우리가 무슨 모닥불이라도 되는가 싶어 웃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꽤나 적절한 비유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말하자면 그보다 앞서 잠깐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는 대목이 있다. 우리가 그 곡을 골랐을 때만 해도 나는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이미 그전에도 몇번 커버곡을 올린적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그저 한때의 화제로 지나갔을뿐이였다.

그때마다 나는 다음번에는 어떤 곡을 골라야 좀 더 반응이 좋을가 하는 고민을 되풀이하였다. 그런데 이번 곡을 고를 때는 이상하게도 그런 고민이 크지 않았다. 그저 밤하늘을 노래한 그 곡의 선율이 마음에 들었을뿐, 반응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온유와 이진아의 원곡은 밤하늘과 별을 노래하는 조용한 곡이였다. 화려한 후렴도 없고 큰 소리로 내지르는 대목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그 점이 걱정스러웠다. 시청자들이 심심해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나의 걱정과 반대로 나타났다. 화면 저편과 이편에서 각자의 콤퓨터를 마주하고 부르는 두 목소리가 한곡안에서 만난다는것, 그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광경이였던 모양이다. 나는 뒤늦게야 그 리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였다.

우리는 한번도 같은 방에서 마주앉아 방송을 한 일이 없었다. 늘 화면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도시의 밤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을뿐이다. 그런 우리가 별을 노래하는 곡을 함께 부른다는것은 어쩌면 우리의 처지 그 자체를 노래하는 셈이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 방송을 하는 사이가 아니였다. 두 대의 콤퓨터와 그 사이를 잇는 회선 하나가 우리 관계의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우리에게 밤하늘의 별을 노래하는 곡이 이렇게 잘 어울릴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별은 아무리 가까워보여도 실은 아득히 멀리 떨어져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먼 별을 보며 이야기를 짓고 소원을 빌고 노래를 부른다. 우리 두 사람의 사이도 어쩌면 그 별과 같은것이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을 나는 이따금 해본다.

시청자들도 그것을 눈치챈듯하였다. 어느 감상글은 《두분이 진짜 밤하늘 사이로 이야기하는것 같다》고 적어놓았다. 나는 그 감상글을 보고 오래도록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 노래는 또 다른것도 남기였다. 원래 블루동지의 시청자들과 내 시청자들은 서로 겹치는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그 노래가 퍼지면서 서로의 방송을 오가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블루동지의 시청자 하나는 내 방송에 처음 들어와서 이런 말을 남기였다. 《저 원래 블루님 팬인데 노래 듣고 넘어왔어요, 강지 님도 뵙게 되서 반가워요.》 나는 그 말을 읽으며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도 반가움을 느꼈다.

나의 시청자들 중에도 그렇게 블루동지의 방송으로 넘어간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블루동지는 그 이야기를 전하며 《강지 님 팬분들 되게 다정하시더라고요》 하고 웃었다. 나는 그 말에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방송의 시청자들이 그렇게 서로를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는것은 뜻밖의 즐거움이였다. 노래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장을 슬며시 낮추어준 셈이였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노래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아니였을가 생각한다.

여름이 깊어가면서 그 노래는 방송 바깥에서도 조금씩 이름을 얻어갔다. 다른 방송에서 우리 이야기가 나올 때면 으례 그 노래 제목이 함께 언급되였다.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으나 블루동지는 사뭇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강지 님, 이거 무슨 국가행사도 아니고 노래 하나로 이렇게까지 되네요》 하고 그가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나는 《그러게요, 마치 력사에 남을 사변이라도 난것 같네요》 하고 짐짓 엄숙한 말투로 맞장구를 쳤다. 우리는 마이크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말이 아주 틀린 농담은 아니였다. 다만 그때는 우리 둘 다 그것을 그저 우스개로만 여기였을뿐이다. 시청자들이 남긴 말들속에서 그 노래가 조금씩 우리 두 사람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굳어져가고있다는것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여름 방송 중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합방 도중 시청자 하나가 그 노래를 신청곡으로 올렸는데 마침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다른 이도 아는 곡이라며 반가워하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 노래가 방송 바깥에서도 알음알음 퍼지고있다는것을 실감하였다.

블루동지는 그 자리에서 《아이고 이거 어디까지 퍼진거에요》 하고 놀란 얼굴을 하였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오빠, 이러다 우리 방송 접고 가수 데뷔하는것 아니예요》 하고 농담을 던졌다. 다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 뒤로도 방송 중에 누군가 노래를 청하면 나는 마이크를 고쳐잡고 첫소절만 살짝 흥얼거리는 버릇이 붙었다. 블루동지도 자기 방송에서 그렇게 하였다는 말을 전해들었을 때는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서로 다른 화면안에서 같은 노래의 같은 소절을 흥얼거리고있다는것이 새삼 신기하였다.

어느 밤 합방 중에는 아예 즉석에서 후렴을 함께 불러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처음엔 쑥스러워 손사래를 쳤으나 블루동지가 먼저 나직이 첫소절을 띄우자 나도 모르게 뒤를 따라 부르고말았다. 대화창은 그 몇초 사이에 또 한번 별표시로 뒤덮이였다.

강지 님, 이거 완전 즉석 공연인데요》 하고 블루동지가 웃으며 말하였다. 나는 《오빠, 이러다 정말 노래로 먹고살아야 되는것 아니예요》 하고 되받아쳤다. 그날 대화창에는 누군가 《이쯤되면 정규 음반을 내야 하는것 아니냐》는 우스개까지 남기였다.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도 나는 방문을 닫아걸고 콤퓨터앞에 앉아 방송을 하였다. 선풍기 바람 소리와 콤퓨터 팬 소리가 뒤섞이는 그 방안에서 나는 몇번이고 그 노래를 다시 틀어보곤 하였다. 더위에 지친 밤일수록 그 조용한 선율이 유난히 반가웠다.

그무렵 나는 밤마다 콤퓨터앞에 앉아 다음 방송을 준비하면서도 가끔 그 노래 영상의 재생수를 열어보는 버릇이 생기였다. 처음엔 몇백에서 몇천으로, 다시 몇천에서 몇만으로 수자가 늘어가는것을 보면서 묘한 심정이 되였다. 내 목소리가,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많은 이의 밤을 지나간다는것이 낯설었다.

후날 이무렵을 돌아보면서 나는 종종 그해 여름을 《노래의 여름》이라 불러본다. 거창한 이름을 붙일 일도 아니건만 나는 이따금 그렇게 부르고싶어진다. 어쩌면 그것은 그 계절이 우리 둘에게 남긴 뜻을 조금이라도 붙잡아두고싶은 마음에서일것이다.

그 여름이 다 가기전에 나는 문득 이 노래가 다른 커버곡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였다. 다른 곡들은 한두달 화제가 되다가 이내 잠잠해졌으나 이 노래만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가을이 되어도, 겨울이 되어도 대화창에는 여전히 그 노래 이름이 오르내렸다.

우주27(2020)년 8월, 그러니까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지 한해하고 석달이 지난 어느날, 나는 대화창에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그 영상의 재생수가 200만을 넘어섰다는것이였다. 나는 그 수자를 몇번이나 다시 확인하였다.

블루동지도 그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강지 님, 우리가 그냥 재미로 부른 노래였는데예》 하고 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는 《그러게요, 이럴줄 알았으면 좀 더 잘 부를걸 그랬나봐요》 하고 웃으며 대꾸하였으나 속으로는 나도 적잖이 놀라고있었다.

그날 방송에서 나는 시청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였다. 대화창은 순식간에 축하 인사와 별표시로 가득찼다. 누군가는 《이 노래는 우결의 국가라고 해도 되겠다》는 우스개를 남기였고 나는 그 말을 보며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그렇다면 나라의 노래를 만든 두 사람이 되는건가요》 하고 받아쳤다.

블루동지는 그 말을 듣고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거수경례라도 하듯 마이크에 대고 큰소리로 웃었다. 우리는 그날밤 마치 무슨 훈장이라도 받은것처럼 한참을 시시덕거렸다. 지금 생각해도 참 철없고 즐거운 밤이였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우주33(2026)년 가을에도 나는 가끔 그 영상을 다시 열어본다. 재생수는 어느새 385만을 넘어 지금도 조금씩 늘어가고있다. 칠년이 넘는 세월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 그 밤하늘 노래를 듣고있다는 뜻이니 새삼 마음이 뭉클해진다.

《우결》이 끝난 뒤에도,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도 사람들은 우리 두 사람을 이야기할 때면 으례 그 노래를 함께 떠올렸다. 옛 영상들을 다시 찾아보는 이들은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을 남기며 스스로 그 노래를 다시 틀어놓고는 하였다. 나는 그 말이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날 각자의 방에서 서로 다른 마이크에 대고 부른 노래 한곡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들 마음에 남을줄은 몰랐다. 방송이란 원래 그날그날 흘러가고 잊혀지는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떤 노래는, 어떤 목소리는 그렇게 쉬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이따금 그 리유를 생각해본다. 아마도 그것은 노래 자체의 좋고나쁨보다 그 노래가 불려진 자리, 그 노래를 부른 두 사람의 사이가 지니고있던 어떤 진실함때문이 아니였을가 짐작해본다. 정답은 나도 알수 없다. 다만 짐작할뿐이다.

그해 여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그 노래 덕분에 전에 없이 자주 서로의 방송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되였다. 다른 방송원들과의 합방에서도 누군가 《그 노래 두분이 부른거 맞죠》 하고 물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겸연쩍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블루동지는 오히려 그런 관심을 즐기는 눈치였다. 《저 이제 가수 블루라고 불러주셔도 돼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가 시청자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저 사람 참 여전하다고 생각하였다.

여름밤 방송이 끝나고나면 나는 종종 콤퓨터를 끄지 않은채로 그 노래를 혼자 다시 들어보는 버릇이 생기였다. 대화창도 없고 마이크도 꺼진 조용한 방안에서 듣는 그 노래는 방송 중에 듣던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 시간을 남몰래 좋아하였다.

어느 밤은 블루동지에게 전화를 걸어 그 이야기를 하였다. 《저 요즘 혼자 그 노래 자주 들어요》 하고 말하니 그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저도 그런데예》 하고 나직이 대답하였다. 화면도 없는 전화기 너머로 서로 웃는 소리만 오갔다.

그런 밤이면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만난것도, 《우결》이라는 이름으로 묶인것도 다 콤퓨터 화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일이였다. 그런데 그 화면 너머에서 부른 노래 하나가 오히려 그 화면보다 더 오래, 더 멀리 사람들 마음에 가닿았다는것이 새삼 신기하였다.

늦여름이 되면서 방송 편성도 조금씩 바빠졌다. 새 내용물를 준비하느라 서로 통화하는 시간도 줄고 함께 방송하는 날도 뜸해졌다. 나는 그것을 그저 계절이 바뀌는 자연스러운 일로만 여기였다.

가을로 접어들며 창밖의 나무잎도 하나둘 빛을 바꾸어갔다. 초록이 짙던 나무들 사이로 노랗고 붉은 빛이 섞여들기 시작하였고, 저녁이면 해가 지는 시각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나는 그 변화를 무심히 바라보면서도 별다른 감상에 잠기지는 않았다.

대화창에서는 여전히 그 노래를 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예전만큼 자주 부를 기회는 없었다. 나는 어쩌다 한번씩 짧게 후렴만 흥얼거리고 넘어가는 날이 늘어갔다. 그때는 그것이 그저 일정 탓이라고만 생각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무렵부터 우리 사이에 미묘한 결이 조금씩 달라지고있었던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뚜렷이 짚어낼수 있는 사건은 아니였다. 사람 사이의 일이란 대개 그렇게, 뚜렷한 금 하나 없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법이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무렵에도 그 노래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방송을 켤 때마다 습관처럼 그 노래 재생수를 확인하였고 그 수자는 언제나 조금씩 늘어있었다. 변하지 않는것이 하나쯤 있다는 사실이 그무렵의 나에게는 묘한 위안이 되였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강지 님, 요즘 이것저것 바빠도 저 노래만 들으면 마음이 좀 놓여요》 하고 그가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듯 웃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때 우리 둘 다 알지 못하였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우리 사이에 어떤 흔들림이 조용히 다가오고있다는것을. 노래 하나로는 다스릴수 없는 근심이 머지않아 우리를 찾아오리라는것을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해 여름과 그해 가을 사이를 다시 걸어보면 나는 묘한 심정이 된다. 노래가 그렇게도 환하게 우리를 비추던 계절 바로 뒤에 흔들림의 계절이 이어졌다는것이 새삼스럽다. 사람의 일이란 늘 그렇게, 환한 뒤에 그늘이 따라오는 법인가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노래를 원망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지금도 가끔 그 곡을 들으면 그해 여름의 콤퓨터 팬 소리와 대화창의 별표시들, 그리고 서투르게 화답하던 블루동지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노래란 그렇게 사람을 데리고 시간을 거슬러가게 하는 힘이 있는 모양이다.

나는 지금도 방송을 시작하기전 이따금 그 노래를 틀어놓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신기하게도 그 선율을 듣고나면 어떤 날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떤 날은 오히려 뭉클해진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노래 하나가 지니는 힘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 모양이다.

후날 누군가 우리 두 사람의 《우결》을 두고 무엇이 가장 오래 남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노래를 꼽을것이다. 《우결》이라는 이름은 언젠가 끝을 맺었지만 그 노래만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재생수는 오늘도 어디선가 조금씩 늘어가고있을것이다.

짐짓 력사적인 사변처럼 말하자면, 후날 《우결》의 년대기를 정리하는 이가 있다면 아마 이 곡을 두고 《별노래동맹》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지도 모를 일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조약도 아니고 겨우 노래 한곡을 두고 그런 이름을 붙인다는것이 스스로도 우스웠으나, 그무렵 우리에게는 그만큼이나 대단한 사변으로 여겨졌던것도 사실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해 여름은 나에게 충분히 값진 계절이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저 밤하늘을 노래한 곡 하나를 함께 불렀을뿐인데 그것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들 마음의 밤을 밝혀주게 될줄은 몰랐다. 이것이 노래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지켜본 모든 이들에게 남긴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노래가 남긴 환한 자리 바로 다음에, 우리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흔들림을 맞이하게 된다. 가을이 깊어가던 그 어느 밤,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에게 낯선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 물음이 무엇이였는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넘기였는지는 다음 장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는 분명히 적어두고싶다. 노래가 남긴 그 환한 여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그 가을의 흔들림을 그렇게 담담히 넘기지 못하였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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