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달 라 진 재 회

 

그해 겨울은 유난히 일찍 찾아왔다. 우주26(2019)년 십이월 첫주부터 밤바람이 매서워 사무실 창가에는 이른 서리가 앉았고, 나는 그날도 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한채 콤퓨터앞에 앉아 밀린 문서들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창밖으로는 가로등불빛이 하나둘 꺼져가는 골목이 내려다보였고, 사무실안에는 오직 콤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와 난방기 웅웅거리는 소리만 낮게 깔려있었다. 방 한구석에 놓인 캘린더에는 그해 남은 날들이 며칠 되지 않는다는것을 알리듯 마지막 장이 넘겨져있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으례 그해 가을에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리군하였다.

사무실 벽에는 그동안 성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며 상패며 하는것들이 어지러이 붙어있었는데, 그 가운데 유독 낡아보이는 사진 한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결》 초기 어느 합방날 찍었던, 서로 높임말로 어색하게 웃고있는 나와 블루동지의 사진이였다. 나는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서류더미로 눈을 돌리였다.

그무렵 나는 저혈압 탓에 아침이면 늘 몸이 무거웠고, 밤늦게까지 일하는 날에는 뿌링클과 떡볶이를 시켜다 허기만 겨우 달래고는 하였다. 술은 본디 약한 편이라 소주 서너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지니, 회식자리에서도 늘 잔을앞에 놓고 눈치만 보는 처지였다.

시월 스무하루, 우리는 《우결》 중 처음으로 위기라 부를만한 순간을 지나왔다. 그날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 길을 계속 가자고 다짐하였으나, 다짐이라는것이 늘 그렇듯 말로 매듭을 지었다고 마음까지 저절로 풀리는것은 아니였다.

다짐을 한 뒤에도 우리는 저마다의 궤도로 바쁘게 돌아갔다. 나는 회사일로, 블루동지는 자신의 방송일로 하루하루를 소화하기에 급급하였고, 그 사이 《우결》 촬영은 자연스레 뜸해졌다.

후날 수자를 세어보면 그 간격이 채 두달이 되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때는 그 몇주가 마치 반년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으니, 이것이 바로 이 회고록이 즐겨 말하는 부풀림의 진실이다.

스텔라이브 사무실에는 그무렵 새 성원들의 데뷰를 앞두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사장으로서 계약서와 방송장비와 데뷰일정을 놓고 내 오른팔 미기와 밤늦도록 회의를 하는 날이 잦았다.

그무렵 나는 유니동지와 칸나동지를 볼 때마다 속으로 대견해하였다. 유니동지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 성원이였고, 칸나동지는 언제나 밝은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는 성원이였다.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내가 힘을 얻는다는 생각을 하였다. 우리는 기술보다 요령가 더 중요하다는것을 그 몇해 사이 몸으로 배워온 터였고, 앞으로도 빠른속도로 다양한 시도를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고는 하였다.

그러나 그런 대견함과는 별개로, 성원 하나하나의 방송장비와 계약과 일정을 챙기는 일은 결코 만만한것이 아니였다. 밤 늦게까지 서류를 들여다보다 문득 시계를 보면 자정을 넘긴 날이 부지기수였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사장님, 오늘도 이러다 밤새겠어요.》하고 걱정스레 말을 건넸는데, 나는 그때마다 《조금만 더 보고 갈게요.》하고 대답하며 서류를 붙들고 놓지 못하였다.

새로 들어올 성원들의 방송장비를 고르고 내용물 방향을 잡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을 거쳐야 하였다. 마이크와 카메라의 성능을 비교하는 표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나 자신이 방송하던 사람에서 방송을 만드는 사람으로 완전히 넘어가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블루동지 쪽도 사정은 비슷하였다. 《배그》 랭킹전이며 새 내용물 기획이며, 자신이 몸담은 그루빠의 여러 사람들과 얽힌 일정이 그를 붙잡아두었고, 그러다보니 우리 둘이 나란히 마이크앞에 앉는 날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대화창의 성원들, 이른바 쁠몬들과 강도단들은 그 뜸함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마치 나라의 안위라도 걸린양 《둘이 요즘 왜 안나와요》, 《설마 진짜 위기임?》 하는 물음이 후원창에 다급하게 올라왔다.

나는 그런 물음들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우리는 그저 바빴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 침묵조차 력사적 사변으로 읽어내는 재주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물음들이 은근히 마음에 걸려, 블루동지에게 먼저 련락을 넣어볼가 며칠을 망설이기도 하였다.

십이월 중순의 어느 날, 마침내 블루동지에게서 콜이 왔다. 《강지 님, 이번주에 시간 좀 비나요? 오랜만에 얼굴 좀 볼가 하는데.》

나는 수첩을 펼쳐 그의 이름 옆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 동그라미 하나를 치는데도 괜히 손끝이 조심스러웠던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되지요. 몇시가 좋겠어요?》

《저녁 여덟시쯤이요. 오랜만이라 뭔가 콘텐츠 하나 잡아볼가 하는데.》 블루동지의 목소리는 여느때처럼 차분하였으나, 어딘가 조심스러운 기색이 묻어있었다. 나는 전화기를 붙든채 잠시 대답을 미루다가, 그 조심스러움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캐묻지 않기로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며칠 뒤 저녁, 오래간만에 같은 화면속에 나란히 앉게 되였다. 나는 그날을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채비를 하였고, 옷장앞에서 무엇을 입을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평소 입던 옷을 그대로 걸치고 나섰다. 별것 아닌 방송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스스로도 우스웠다.

방송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블루동지가 먼저 와 마이크를 손보고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 손을 들어 인사하였는데, 그 인사가 평소보다 한박자 늦게 나온다는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책상우에는 그가 미리 준비해온듯한 대본메모가 한장 놓여있었는데, 그우에 적힌 글씨가 평소보다 꾹꾹 눌러쓴것처럼 보였다.

《오랜만이네요.》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딱딱하게 나와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 《오랜만이네요.》 블루동지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는데, 그 억양 어딘가에 옅게 대구 사투리가 묻어나는것이 도리어 낯익어 반가웠다.

그 짧은 되풀이속에 우리 둘 다 같은것을 느끼고있다는것을 나는 알았다. 몇주 못 본 사이에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 묘한 서먹함이였다. 늘 편하게 오가던 농담 한마디조차 선뜻 나오지 않아, 우리 둘은 애꿎은 마이크 위치만 몇번이고 고쳐잡았다.

콤퓨터 화면에는 이미 방송 시작을 알리는 자막이 떠있었고, 대화창에는 벌써 《둘이 진짜 오랜만이다》, 《드디여 나왔다》 하는 글들이 쏟아지고있었다. 우리는 서로 눈짓으로 준비가 되였는지를 확인하였다.

방송이 시작되자 블루동지는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쁠몬 여러분. 오늘은 오랜만에 강지 님을 모였습니다.》

나도 마이크에 대고 대답하였다. 《네, 오랜만입니다. 다들 잘 지내였어요?》 그러나 그 오랜만이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스스로도 놀랐다. 정말 오랜만인가, 겨우 몇주일뿐인데.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먼 친척이라도 대하듯 서로에게 존대의 말이 유난히 깍듯하게 나오는 우리 둘을 보며, 화면 뒤에서 미기가 픽 웃는 소리가 들리는것도 같았다.

그런데 이 서먹함을 말하자면 그보다 한해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25(2018)년 그 시절, 우리는 서로를 《강지 님》, 《블루님》이라 부르며 거의 매주 얼굴을 마주하였다.

그때는 촬영이 있는 날이면 서로 먼저 방송실에 들어와 다음 내용물를 무엇으로 할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였다. 화면 밖에서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시간이 길었다.

촬영이 끝나면 곧잘 근처 식당에서 떡볶이나 뿌링클 같은것을 시켜놓고 저녁을 함께 먹었고, 그런 날들이 쌓이며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 그해 여름 즈음엔 이미 《블루 오빠》라는 말이 방송 중 튀여나올 정도로 가까워져있었다.

물론 그 호칭이 그날부터 정식으로 굳어진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아직 어느 한쪽도 다 믿지 못한채, 조심스레 내밀어본 손끝 같은 말이였다.

그때 우리는 《배그》를 함께 하다가도 별것 아닌 일로 낄낄거렸고, 킬을 하나 잡을 때마다 블루동지는 특유의 톤으로 《아하하하핳 너무 많이 죽여버렸네-》하고 웨쳤다. 나는 그 말투가 우스워서 마이크도 잊은채 한참을 웃어젖히군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우리는 시간이 남아돌아 가까워진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주었기에 가까워질수 있었던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줄만 알았지, 그 당연함을 지키는데도 노력이 필요하다는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가까워졌던 사이가 우주26(2019)년 하반기에 접어들며 조금씩 벌어진데는 다른 리유가 없었다. 그저 회사가 커지고, 각자 짊어질 일이 늘어난것뿐이였다. 누구를 탓할수도 없는, 그야말로 살아가는 일이 빚어낸 자연스러운 틈이였다.

나는 그날 방송 중 그 생각을 하며 잠시 말을 잃었다. 블루동지가 옆에서 《강지 님, 무슨 생각 하세요?》하고 물어왔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대답하였다. 《아뇨, 그냥 요즘 너무 정신없이 산것 같아서요.》 화면 저편에서 대화창이 빠르게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였다.

블루동지는 잠시 마이크를 내려놓고 이쪽을 보았다. 《저도 그래요. 정신을 차려보니 강지 님하고 이렇게 마주앉은게 되게 오랜만이더라구요. 어쩐지 좀 달라진것 같기도 하고.》

《달라졌다구요?》 나는 되물었다. 마이크 너머로 내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뭐가요.》

《모르겠어요. 그냥 예전보다 말투도 조심스러워진것 같고, 표정도 좀 어른스러워졌다고 해야하나.》 블루동지는 겸연쩍은듯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뜨끔하였다. 그 몇달 사이 사장으로서 결정해야 할 일들이 부쩍 늘어, 방송 밖에서도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있었던것이다. 예전처럼 실없는 말을 던지다가도 문득 이건 회사 이미지에 해가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먼저 앞서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나조차 낯설었다.

《제가 요즘 좀 딱딱해졌나봐요.》 나는 솔직히 인정하였다. 《회사일이 늘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것 같아요.》

《아니 딱딱해졌다는게 아니라...》 블루동지가 손사래를 쳤다. 《그냥, 강지 님이 저 몰래 혼자 어른이 되고있는 기분이랄까요. 나만 제자리인것 같고.》

그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매운것도 단것도 잘 못먹는 사람이 어른 타령을 하니 그것도 우스웠다. 《블루님도 이번에 《배그》 랭킹 많이 올랐다면서요. 혼자 어른 되고있는건 그쪽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렇게 서로의 달라진 점을 하나씩 꺼내놓다보니 어색함은 어느새 누그러지고, 예전처럼 시시덕거리는 말투가 돌아와있었다. 대화창에는 《역시 《우결》 궁합 죽지 않았다》는 반응이 줄줄이 올라왔다.

그 시각 마침 개인방송을 켜고있던 히나동지가 우리 방송을 보고있었는지, 자신의 대화창에 《우결 오랜만에 떴다》고 알리는 바람에 우리쪽 시청자수가 갑자기 부쩍 늘어나기도 하였다. 나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전해듣고 히나동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였다. 시청자수가 느는 통에 대화창속도는 더 빨라졌고, 낯익은 아이디들 사이로 《아빠 어디갔었어요》하는 글까지 섞여들어와 블루동지가 머쓱하게 웃던 일도 있었다.

방송 중간, 블루동지는 문득 진지한 얼굴로 마이크를 고쳐잡았다. 《근데 진짜로, 강지 님. 제가 요즘 너무 소홀하였던건 아닌가 싶어서요.》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대답하였다. 《소홀하였다기보단... 우리 둘 다 각자 살아가느라 바빴던거지요. 그게 나쁜건 아니잖아요.》

《그래도요.》 블루동지는 고집스레 말을 이였다. 《저는 강지 님이 저랑 이렇게 앉아있는 시간을 제일 편하게 여겨줬으면 좋겠거든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마이크앞에서 대답을 미루었다. 진심이 담긴 말앞에서는 늘 우스개소리로 받아치던 버릇이 그 순간만은 나오지 않았다.

《네, 저도 그래요.》 결국 나는 짧게 대답하였다. 화면 저편 대화창이 갑자기 조용해졌다가, 이내 하트 표시로 뒤덮이는것이 보였다.

그날 방송실 한켠에서는 미기가 머리수화기를 낀채 음향장비를 조율하고있었다. 그는 이 장면을 보고도 못본척 콘솔의 손잡이만 만지작거렸는데, 후에 나는 그가 마치 력사의 증인이라도 된듯 그날 유난히 오래 콘솔앞을 지켰다는것을 전해들었다.

방송이 끝난 뒤 우리는 곽밥을 시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늦은 저녁의 사무실은 고요하였고, 창밖에는 어느새 그해 첫눈이 희끗희끗 날리고있었다. 뜨거운 국물에서 오르는 김이 창유리에 서리듯 뿌옇게 앉는것을 보며, 나는 방송 내내 굳어있던 어깨가 그제서야 조금씩 풀리는것을 느끼였다.

《올해 첫눈이네요.》 블루동지가 젓가락을 멈추고 창밖을 보며 말하였다. 《그러네요.》 나도 따라 창밖을 보았다.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눈 내리는 창밖만 바라보았다. 그 침묵은 방송 시작 전의 서먹한 침묵과는 전혀 다른, 편안한 침묵이였다. 창유리에 어린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겹쳐 보이는것을, 나는 문득 신기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곽밥을 반쯤 비웠을 때 블루동지가 문득 생각난듯 물었다. 《강지 님, 근데 아까 방송에서 한 말 진심이지요? 저랑 앉아있는 시간이 편하다는것.》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그를 보았다. 《그럼요. 그게 아니면 제가 여기 왜 앉아있겠어요.》 블루동지는 그 말에 그제서야 안심한듯 웃음을 지었다.

후날 이 저녁을 두고 몇몇 성원들은 마치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이 반년만에 다시 열린 력사적 사변인양 떠들어댔다. 실은 그저 두 사람이 곽밥을 나눠먹으며 첫눈을 구경한것뿐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 소문을 들을 때마다 손사래를 쳤지만, 한편으로는 그 부풀림이 싫지만은 않았다. 우리 둘 사이의 사소한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나 큰 사변으로 읽힌다는것이 신기하기도 하였다.

그 방송분은 며칠 뒤 《반년만에 본 그녀가 뭔가 달라졌다.. 내가 소홀하였던걸까?》라는 제목을 달고 올라갔다. 반년이라는 수자는 물론 과장이였다. 실제로는 두어달, 길어야 석달 남짓한 간격이였다.

마치 두 나라의 정상이 공동성명이라도 발표하는듯 거창한 그 물음표 붙은 제목앞에서, 정작 우리 둘은 진지하기보다 웃음을 참기 바빴다. 그러나 나는 그 제목을 보고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 과장속에는 서로를 향한 미안함과 반가움이 담겨있었으며, 그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였기때문이다. 영상이 올라간 뒤 감상글난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우스개소리와 함께, 《둘이 진짜 안 헤어졌구나 다행이다》 하는안도의 말들이 줄을 이였다. 개중에는 우리보다 더 절절한 사연을 상상해 붙이는 감상글도 있어, 나는 그것을 읽으며 몇번이고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끼리는 그저 바쁜 일상을 나눈것뿐인데,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오랜 리별 끝의 재회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시부키동지는 그 영상을 보고 합방 중 지나가듯 한마디를 던졌다. 《강지동지랑 블루동지는 진짜 천살은 산것같은 사이네요.》 나는 그 말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랐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의 일정은 여전히 바빴다. 나는 계속 사장으로서 회사일에 매달렸고, 블루동지도 자신의 방송을 꾸려나가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날 나눈 몇마디는 오래 남았다. 소홀하였다는 말, 편하였으면 좋겠다는 말, 그 짧은 문장들이 그 뒤로도 서로를 다시 챙기게 만드는 힘이 되였다. 바쁜 와중에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문자 한통씩은 꼭 주고받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기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해 겨울의 그 서먹함은 위기라 부르기에도 민망할만큼 작은 틈이였다. 몇주 못 만났다고 사람이 정말로 달라지는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그 작은 틈을 두고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있었다는것, 그것이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증거였음을 나는 그때는 미처 다 알지 못하였다.

사람 사이란 늘 그런것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당연하게 여기다가도, 잠깐 멀어지면 그 당연함이 얼마나 귀한것이였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그해 겨울, 곽밥 한그릇을 사이에 두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그해 시월의 위기를 지나 십이월의 서먹함을 또 한번 넘기며,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는 법을 배운것 같다. 그것이 그 겨울이 우리에게 남긴것이였다.

돌이켜보면 회사를 키워가는 사람과 자신의 방송을 키워가는 사람이 몇해에 걸쳐 나란히 걸어간다는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저마다 짊어진 짐의 무게가 다르고 흘러가는 시간의속도가 다르니, 가끔은 서로가 낯설게 보이는 순간이 찾아오는것도 당연한 일이였다.

다만 그 낯섦을 마주하였을 때 피하지 않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는것, 그것이 우리를 다시 가깝게 만든 힘이였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란 결국 그렇게 몇번이고 다시 좁혀나가는 수밖에 없는것이다. 회고록을 쓰는 지금까지도 나는 그날 저녁의 곽밥냄새와 눈발을 뚜렷이 기억하고있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오래가는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날 창밖에 날리던 첫눈을 잊을수 없는것이다. 반년이라는 말은 과장이였을지언정, 그 순간 우리가 나눈 마음만은 조금도 부풀려진것이 아니였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있다.

그해가 저물어가는 마지막 몇주를 앞두고, 우리는 아직 이 이야기의 매듭이 다 지어지지 않았다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서먹함은 풀렸으나 위기의 그림자는 완전히 걷히지는 않은채, 조용히 우리 뒤를 따라오고있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