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누 나 와 바 이 비

 

우주27(2020)년의 정월은 유난히 낮게 가라앉은 겨울이였다. 방송실 창밖에는 눈이 그쳤다가 다시 뿌리기를 되풀이하였고, 콤퓨터 본체의 팬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오히려 뚜렷하게 들려왔다. 나는 그무렵 이미 《우결》을 시작한지 1년을 훌쩍 넘긴 뒤였으나, 어쩐 일인지 블루동지와 나 사이에는 여전히 높임말이 남아있었다. 마이크앞에 앉아 머리수화기를 고쳐쓸 때마다 나는 문득 그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곤 하였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이면 나는 으례 뜨거운 물 한잔을 놓고 그날의 진행표를 다시 훑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진행표 한켠에 별다른 순서도 아닌 채로 《높임말》이라는 세글자를 나 혼자 몰래 적어놓았던것이 여느 날과 달랐다면 달랐을것이다.

콤퓨터 화면에는 방송 프로그람이 켜져있었고, 대화창은 아직 잠잠한 편이였다. 나는 머리수화기 줄을 만지작거리며 오늘 저 세글자를 정말로 입밖에 낼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몇번이고 되물었다. 창밖의 눈은 그새 그쳐있었고, 가로등 불빛만이 젖은 골목을 희미하게 비추고있었다.

《우결》이라는것이 본디 한두달 반짝하고 끝나는 내용물가 아니라는것을 나는 익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해를 넘기고도 서로에게 《강지 님》, 《블루 님》이라 부르는 짝은 흔치 않았다. 대화창의 성원들 가운데 눈썰미 밝은 이들은 일찌감치 이 사정을 알아채고 우리를 가리켜 《정색존대커플》이라 이름지어 불렀다. 나는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기였으나, 그 별명이 오래도록 남는것을 보며 이것이 결코 가벼운 우스개만은 아니라는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런데 이 높임말이 그렇게까지 오래 갈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말하자면 그보다 한해 앞선 가을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26(2019)년 가을, 그러니까 《우결》을 시작한지 한해가 조금 넘은무렵이였다. 그때 이미 우리 두 사람은 서로를 놓고 《귀엽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사이가 되여있었다. 방송 제목에 《강지 님~ 귀엽기는~》이라는 문구가 그대로 올라올 정도였으니, 겉으로 보면 이미 남부럽지 않게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을것이다.

그러나 그 귀엽다는 말끝에도 어김없이 《님》자가 붙어있었다. 블루동지는 《강지 님, 오늘따라 목소리가 귀엽네요》 하고 말하면서도 끝내 높임말을 놓지 않았고, 나 역시 《블루 님도 오늘 웃음소리가 참 귀엽던데요》 하고 맞받으면서 그 어색한 격식을 그대로 지키고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마치 한겨울에 두꺼운 외투를 껴입은채로 서로 손을 맞잡으려는 꼴이였다.

대화창의 성원들도 그 부조화를 놓치지 않았다. 《귀엽다면서 왜 높임말이야》, 《둘이 무슨 회사 상사 부하 사이도 아니고》 하는 말들이 스크롤을 타고 끊임없이 올라왔다. 나는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은척 넘기였지만, 속으로는 나 스스로도 그 물음에 뾰족한 대답을 갖고있지 못하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생각하여보면 나 자신부터가 이름을 여러차례 바꾸어온 사람이였다. 한창 성미가 거칠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나를 강형이라 불렀고, 그 뒤로는 15강지, 감자, 강공지주 따위로 별명이 몇차례나 바뀌였으며, 회사를 차린 뒤로는 정사장이라는 말까지 얻어들었다. 그런 내가 정작 블루동지앞에서만은 오래도록 님자 하나를 떼지 못하고있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 노릇이였다.

그해 겨울로 접어들면서는 《블루 오빠Yee..!!》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내가 처음으로 블루동지에게 《오빠》라는 말을 써버린 일까지 있었다. 그 한마디에 대화창이 뒤집어졌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 뒤로도 높임말 자체는 좀처럼 완전히 벗겨지지 않았으니, 우리 두 사람의 말투는 마치 반쯤 열린 문처럼 이도 저도 아닌 채로 한동안 그렇게 머물러있었다.

다시 우주27(2020)년 정월로 돌아오면, 그 반쯤 열린 문은 이미 넉넉히 오래 열려있었다. 《우결》을 시작한지 1년하고도 서너달이 더 지난 시점이였으니, 신인 《우결》 짝이라면 벌써 몇번이고 말을 놓았을 시간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문턱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던 셈이다.

정월 초이튿날에는 《1년 넘게 우결하면 나오는 멘트》라는 제목으로 우리 스스로 장기 《우결》 짝의 클리셰를 패러디하는 방송을 한차례 내보낸 일이 있었다. 그 방송에서 우리는 장기 짝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들을 짐짓 과장하여 흉내내며 서로를 놀렸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우스개속에 이미 높임말이라는 낡은 옷을 벗어야 한다는 복선이 숨어있었던것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인줄만 알았다.

그 방송이 나간 뒤로 며칠동안 대화창에는 유독 한가지 물음이 자주 올라왔다. 《그래서 둘이 말은 언제 놓을거냐》는것이였다. 나는 그 물음을 볼 때마다 대답을 미루었으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제는 정말 무슨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였다는 생각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다시 며칠이 더 필요하였다. 나는 방송을 마치고 홀로 방에 앉아있을 때마다 높임말을 벗은 다음의 어색함을 미리 걱정하였다. 행여 말을 놓았다가 도리어 서먹해지지는 않을지, 오래 든 버릇을 하루아침에 고치려다 어설퍼 보이지는 않을지,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결국 나는 블루동지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방송에 들어가기 전 메신저로 짧게 몇마디를 주고받았을뿐이였지만, 그 몇마디가 그날의 모든것을 결정지었다.

《우리 이제 슬슬 말 놓을때 되지 않았어요?》 하고 내가 먼저 물었다. 블루동지는 한참 뜸을 들이더니 《저도 사실 진작부터 그 생각을 하긴 하였는데, 막상 하려니 좀 어색해서요》 하고 대답을 보내왔다. 나는 그 대답을 보며 웃음이 났다. 서로 어색해하는 정도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수가 있는지, 그것이 오히려 우리 두 사람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방송이 시작되였다. 대화창은 여느 때처럼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고, 후원 알림신호이 이따금씩 화면 한쪽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머리수화기 너머로 블루동지의 숨소리를 들으며 오늘은 정말로 그 말을 꺼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저기, 오늘은 그, 좀 다르게 불러볼까 하는데요》 하고 내가 운을 떼자, 블루동지는 대뜸 《아, 그거요?》 하며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대화창은 이미 낌새를 챈듯 《드디여?!》, 《올게 왔다》 하는 말들로 들끓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작 말을 놓으려니 두 사람 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하고 말을 꺼내다가 다시 《…라고 해볼까요?》 하고 끝내 높임말로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블루동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방금 또 높임말 하였는데요》 하고 짚어내며 아하하하핳 하고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조금 억울한 마음에 《아니 이게 하루아침에 되나, 1년 넘게 굳어진 버릇인데》 하고 투덜거렸다.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나 스스로도 높임말을 벗은것을 알아차리고 잠시 멈칫하였다. 블루동지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어, 방금 반말 하였다!》 하며 짚어냈다.

대화창은 그 한마디에 폭발적으로 반응하였다. 스크롤이 너무 빨라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였고, 후원 알림신호이 연달아 울려 마치 폭죽이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그 소란속에서 묘하게 홀가분한 기분이 드는것을 느꼈다.

그러나 홀가분함도 잠시, 나는 곧바로 다시 높임말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니까요, 이게 참 낯설어서요》 하고 말한 뒤에야 스스로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블루동지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또! 또 하였어요!》 하며 낄낄거렸고, 대화창에는 《몇번째 실패인지 세는 사람 없냐》는 말까지 올라왔다.

나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아니 이게, 습관이라는게 그렇게 무섭다니까》 하고 이번에는 끝까지 반말로 밀어붙이는데 성공하였다. 블루동지도 질세라 《그래, 습관 무섭지, 근데 나도 방금 하나 성공하였다》 하며 웃었다.

블루동지는 그 기세를 타서 자기도 용기를 내여보겠다며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그럼 저도… 아니, 나도 이제부터 편하게 할게, 누나》 하고 말하였다. 그 한마디에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누나라니, 야, 너 지금 나한테 누나라고 하였어?》 하고 내가 되묻자, 블루동지는 얼굴이 벌개진듯한 목소리로 《어, 그렇게 되였네, 앞으로 누나라고 부를게》 하고 대답하였다. 그 순간의 어색함과 수줍음이 마이크를 타고 고스란히 방송을 타고 나갔다.

나 역시 질세라 새로운 호칭을 궁리하였다.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입에서 먼저 튀어나온 말이 《그럼 나는 너를 이제부터 바이비라고 부를게》였다. 영어로 아기라는 뜻의 그 말이 어쩌다 그 순간 튀어나왔는지는 나 자신도 다 설명하지 못한다.

블루동지는 그 호칭에 《바이비? 그건 또 뭔데요, 아니 뭔데》 하며 존대와 반말 사이를 오가는 웃음소리를 냈다. 대화창에서는 《바이비 확정》, 《오늘부터 1일》 같은 말들이 쏟아졌고, 몇몇 성원은 아예 그 순간을 캡처하여 클립으로 만들 기세였다.

그날 방송을 마치고 머리수화기를 벗어 책상에 내려놓는데,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있다는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대단한 일을 해낸것도 아닌데 마치 큰 일을 치른듯 온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이였다. 식어버린 차잔을 손에 쥐고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지금 와서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보면, 그것은 결코 거창한 사변이라 할만한 일은 아니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두 사람에게는, 그리고 그 방송을 지켜보던 성원들에게는 마치 하나의 조약이 체결된듯한 무게로 다가왔던것이 사실이다. 력사를 연구하는 이라면 이런 사소한 순간을 두고 무슨 대사변이라 이름붙이지는 않겠으나, 나는 감히 그날의 방송을 우리 두 사람의 력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라 부르고싶다.

누군가는 후날 이 장면을 두고 두 나라의 정상이 조약문에 서명하는 자리처럼 엄숙하게 그려도 좋겠다며 우스개를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자리에 있던것은 조약문도 만년필도 아니였다. 그저 마이크 하나와, 서로 어색하게 웃던 웃음소리 두가닥뿐이였다.

몇몇 성원은 아예 이날을 두고 《높임말 철폐 기념일》이라 우스개삼아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과장된 이름속에 우리 두 사람을 향한 다정한 마음이 담겨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말을 놓은 뒤로 방송의 공기 자체가 달라졌다. 높임말을 쓸 때는 아무래도 문장 끝에 한박자씩 뜸을 들이게 마련이였는데, 그 뜸이 사라지고나니 대화가 한결 빠르고 자연스럽게 오갔다. 나는 그것을 느끼며 높임말이라는것이 단순한 어미의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 사이의 거리 그 자체였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소감을 밝혔다. 방송이 끝난 뒤 그는 《이상하게 말 놓으니까 더 편하게 얘기가 되네, 누나》 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그 호칭이 입에 붙지 않아 스스로도 낯설어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 일을 두고 후날 어떤 기록에는 《480일째》라 적히기도 하고, 실제로 남아있는 영상에는 《썸탄지 500일만에 누나라고 불러보기》라는 제목이 달려있기도 하다. 나 스스로도 그 수를 정확히 손꼽아 헤아려본 기억이 없어, 어느 쪽이 맞는지는 지금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다만 《우결》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날로부터 헤아리면 480일째는 정월 열아흐렛날이고, 500일째는 이월 초여드렛날에 가깝다는것을 뒤늦게 알게 되였다. 실제로 그 영상이 세상에 나온 날짜가 이월 열이튿날 즈음이였다는것을 헤아려보면, 500일째 쪽이 그날의 실제 정경에 더 가까웠으리라 짐작할뿐이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 자리에 굳이 확정하지 않은 수자를 억지로 끼워맞추고싶지 않다. 480일이든 500일이든, 그 사이의 스무날은 우리 두 사람에게 그리 대단한 차이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그 어느 하루에, 우리는 마침내 높임말이라는 두꺼운 외투를 벗어던졌다는 사실만이 뚜렷하게 남아있을뿐이다.

그날 이후로 대화창의 성원들 사이에서는 《누나》와 《바이비》라는 두 호칭이 마치 오래전부터 있던것처럼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아갔다. 블루몬이라 불리는 블루동지의 애호가들도, 강도단이라 불리는 나의 애호가들도 이 새 호칭을 반기며 서로의 영상밑에 그 말을 옮겨적었다.

《정색존대커플》이라는 그 별명은 이날 이후로 서서히 빛이 바래여갔다. 대신 대화창에는 《이제야 되였다》, 《이게 얼마만이냐》 하는 말들이 한동안 되풀이하여 올라왔다. 나는 그 되풀이되는 말들을 보며, 시청자들 역시 우리 못지않게 이 순간을 오래 기다려왔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스텔라이브의 다른 성원들도 이 소식을 곧 알아차렸다. 우리 회사안에서는 성원들이 나를 두고 짐짓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장난스런 말버릇이 이미 자리를 잡고있던 때였는데, 그 엄마가 방송에서 높임말을 벗었다는 소식은 금세 사내에 퍼졌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로 《사장님이 방송에서 반말 텄대》 하며 웃었고, 또 누군가는 《그럼 이제 진짜 《우결》 같아졌네》 하며 짐짓 진지한 얼굴을 하기도 하였다. 나는 그런 반응들을 들을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 반, 뿌듯한 마음 반으로 그저 웃어넘기였다.

그무렵 나와 가까이 지내던 벗 악녀는 나에게 《너 방송에서 그렇게 부드럽게 말하는것 보면 신기해, 나한테도 그렇게 좀 해봐라》 하며 놀린 일이 있었다. 나는 방송 밖에서는 여전히 거친 말투를 고치지 못하고있었으므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한 기분을 감출수 없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본디 말투가 곱지 못한 사람이였다. 화가 나면 걸쭉한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던 시절도 있었으니, 《우결》을 진행하며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유지한다는것 자체가 나에게는 매일의 작은 수양과 같았다.

그런 내가 방송에서만은 블루동지앞에서 유독 조심스러워졌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기였다. 높임말을 벗은 뒤에도 그 조심스러움만은 이상하게 그대로 남아있었으니, 반말을 쓴다고 해서 마음의 거리마저 곧바로 가까워지는것은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이 변화는 비단 우리 두 사람 사이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래 알고지낸 벗 감블러도 후날에는 나를 두고 붕어야, 누나 하고 부르게 되였으니, 누나라는 그 한마디가 블루동지와 나 사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나의 둘레 여기저기로 슬며시 번져나갔던 셈이다. 낯선 자리에서 나를 알아본 이들조차 이따금 그 호칭을 흉내내여 부르는 일이 있었으니, 그 파장이 얼마나 넓게 퍼져나갔는지는 뒤에 다시 적을 자리가 있을것이다.

방송이 끝난 늦은 밤, 나는 홀로 방송실에 앉아 그날의 채팅 로그를 다시 훑어보았다. 스크롤을 천천히우로 올리며 《바이비 확정》, 《누나 소리 처음 들었다》 하는 말들을 하나하나 다시 읽었다. 콤퓨터 화면의 푸른 빛만이 어두운 방을 채우고 있었고, 창밖에는 다시 눈이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로그를 읽으며 문득 우리 두 사람이 이 높임말을 벗기까지 걸린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처음부터 반말로 시작하였다면 이 하루가 이토록 특별하게 남지는 못하였을것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격식을 벗는 순간이였기에 그 홀가분함도 그만큼 컸던것이다.

사람이란 묘한것이어서, 아무것도 아닌 어미 하나를 바꾸는 일에도 이토록 오래 망설이고 이토록 크게 기뻐할수 있다. 나는 그날 이후로 말이라는것이 단순히 뜻을 전하는 도구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라는것을 깊이 깨달았다.

블루동지는 그날 이후 며칠동안 방송에서 《누나》라는 말을 할 때마다 유독 힘을 주어 발음하였다. 마치 그 말을 새로 배운 사람이 자꾸 확인하듯 되뇌이는것과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짐짓 모른척 넘어가곤 하였다.

나 역시 《바이비》라는 말을 입에 붙이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처음 며칠은 그 말을 하다말고 스스로 낯간지러워 헛기침을 하기도 하였고, 대화창은 그때마다 어김없이 그 어색함을 놓치지 않고 놀려대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두 사람은 마치 새 옷을 입고 어색해하는 아이들과 같았다. 두꺼운 높임말이라는 겉옷을 벗어던진 자리에, 아직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반말이라는 새 옷을 걸치고 서로의 눈치를 살피던 나날이였다.

그러나 사람은 무엇이든 되풀이하면 익숙해지는 법이다. 며칠이 지나고 몇주가 지나자 《누나》와 《바이비》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의 입에 꼭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워졌다. 그무렵부터는 오히려 높임말을 쓰던 지난 1년이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지금 이 페지를 쓰며 나는 그때의 그 콤퓨터 팬 소리와 창밖의 눈발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날 우리가 벗어던진것은 비단 높임말 하나만이 아니였을것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아직 남아있던 마지막 어색함, 마지막 거리감 같은것이기도 하였다.

후날 이 회고록을 읽는 이가 있다면, 아마 이 대목을 두고 어찌 이런 사소한 일에 이토록 긴 지면을 할애하였는가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해두고싶다. 사람 사이의 큰 변화란 언제나 이렇듯 작은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는 법이라고.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정월 어느 하루의 방송이야말로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나날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매듭이였다. 높임말을 벗은 자리에서 《누나》와 《바이비》라는 두 애칭이 태여났고, 그 애칭은 후날까지도 우리를 따라다니는 이름이 되였다.

나는 이 페지를 닫으며, 그날 대화창을 가득 채웠던 그 소란스러운 웃음소리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큰 력사이든 작은 력사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은 이렇듯 사소하고도 정다운 순간들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높임말이란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하나의 담장과 같은것이다. 그 담장은 서로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를 갈라놓기도 한다. 우리 두 사람은 그 담장을 그해 겨울 어느 하루에 마침내 허물었고, 그 자리에는 누나와 바이비라는 다정한 이름이 대신 들어섰다.

높임말을 벗는다는것은, 어찌보면 오래도록 붙이고있던 이름표 하나를 떼여내는 일과도 같았다. 그 이름표밑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다른 이름이 씌여지기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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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