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애 칭
우주27(2020)년 이월은 눈이 유난히 잦은 겨울이였다. 방송실 창밖으로 함박눈이 소리없이 쌓이는 밤이면 나는 콤퓨터 팬 소리만 나직이 울리는 방안에 홀로 앉아 그날의 대화창을 다시 들여다보군하였다. 책상 한켠에는 먹다 남긴 떡볶이 곽밥이 식어가고 있었고 화면의 푸른 빛만이 어둑한 방을 밝히고있었다. 히터 돌아가는 소리와 콤퓨터 팬 소리가 뒤섞여 방안은 늘 나직한 웅웅거림으로 가득하였다.
그무렵 나는 블루동지와 마침내 높임말을 벗어던진 뒤였다. 오백일이 넘도록 서로 높여부르던 말투를 버리고나니 사무실 공기마저 무언가 달라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며칠은 낯이 설었다. 나는 방송을 끝내고도 습관처럼 존대의 말꼬리를 붙였다가 스스로 어이없어 웃어버리군하였고, 블루동지 역시 대화창에는 《누나》라고 곧잘 쳐놓고도 정작 마이크앞에서는 우물쭈물하기 일쑤였다.
우리 둘 다 오래 신어온 신을 벗고 새 신을 신은 사람들처럼 발이 편치 않았다. 나는 그것이 마치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넘어질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일단 페달을 밟고나면 오히려 서있을 때보다 덜 흔들리는것과 같았다. 말을 놓는다는것도 그러하였다. 막상 트고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원래 저혈압에 잠버릇이 심한 사람이여서, 방송을 늦게 끝낸 날이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잦았다. 그런 밤이면 나는 괜스레 지난 방송의 클립들을 다시 돌려보며 우리가 나눈 말들을 하나씩 곱씹어보군하였다. 블루동지 쪽도 사정은 비슷하였던 모양인데, 그는 원래 매운것도 단것도 잘 못먹으면서도 야참으로는 꼭 무언가를 시켜먹는 버릇이 있어, 밤늦게 통화를 하면 늘 곽밥 씹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러나 사람의 말버릇이란 참으로 묘한것이여서, 한번 트인 물꼬는 이내 제자리를 찾아 흘러갔다. 《누나》와 《바이비》라는 두 마디가 자리를 잡자, 그 뒤를 따라 크고작은 애칭들이 봇물 터지듯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라, 이미 오백일 넘게 쌓여온 시간이 마침내 말이 되여 흘러나온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 사무실을 드나들던 미기동지조차 어느 날 나에게 《요즘 두분 말투가 부쩍 편해지였네요》라고 넌지시 귀띔해줄 정도였다.
그 첫 자리를 차지한것이 《귀엽다》는 말이였다. 방송 중에 블루동지가 무슨 실수를 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면 나는 예전 같으면 그저 웃어넘기였을것을, 이제는 서슴없이 《귀엽다》고 말해버리는 버릇이 생기였다. 대화창은 그때마다 뒤집어졌다. 《누나, 지금 저더러 귀엽다고 하신겁니까?》 블루동지가 헛기침을 하며 되물으면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그럼 안귀여운데 귀엽다고 하겠니》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대화창에는 《ㅁㅇㅁㅇ》 초성이 도배되듯 올라왔는데,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채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 짐작하고있었다. 블루동지도 지지 않고 되갚아주었다. 언젠가 내가 방송 도중 머리수화기 줄에 발이 걸려 넘어질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날 블루동지는 놀란 얼굴을 하다가도 이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누나, 그렇게 넘어질뻔한것도 참 귀엽네요》하고 놀려대였다. 나는 분한 마음에 삿대질을 하였지만 속으로는 그 말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날의 방송분은 후날 《강지 님~ 귀엽기는~💞》이라는 자막을 달고 올라갔다. 시청자들은 그 영상밑에 《이젠 대놓고 서로 귀엽다고 하네?》라는 글을 남기였는데, 나는 그 답글을 읽으며 우리도 모르는새 서로에게 조금씩 물들어가고있었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런 답글이 하나둘 늘어날 때마다 나는 묘한 감정에 사로잡히였다. 남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렇게 마음이 드러나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이것이 우리 두 사람만의 즐거움이니 상관없다는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
애칭이라는것은 한번 생기면 자꾸 새끼를 친다. 《귀엽다》는 말이 자리를 잡자 이번에는 《오빠》라는 소리가 등장하였는데,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우결》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무렵, 블루동지는 늘 나를 《강지 님》이라 불렀고 나 역시 그를 어렵게 대하였다.
세월이 흘러 말을 놓은 뒤에도 나는 좀처럼 그를 손위 삼아 부르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하였는데, 그것은 순전히 내 성미탓이였다. 나이로 보나 방송 경력으로 보나 내가 먼저 그런 말을 꺼내기가 겸연쩍었던것이다. 성원들 사이에서는 내가 《동지들》을 챙기는 손위라는 자리가 이미 굳어져있었으니, 나 스스로 누군가를 오빠라 부른다는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배그》 방송 중 블루동지가 나 대신 위험한 자리에서 총알을 받아내고 살아남은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외쳐버렸다. 《오빠, 나이스!》 말이 입밖으로 나가고서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깨달았다. 화면 저편의 블루동지도 잠시 대답을 잃은채 머리수화기만 만지작거렸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 한마디는 두고두고 화제가 되였다. 대화창은 그 장면이 나온 시각을 서로 짚어가며 《ㅁㅇㅁㅇ》 소리를 냈고, 그 방송분은 곧 《블루 오빠Yee..!!》라는 제목을 달고 편집되여 올라갔다. 나는 편집본을 처음 보았을 때 낯이 화끈해졌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되돌리려야 되돌릴수 없는 말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블루동지는 그뒤로 한동안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우려먹었다. 방송 중에 조금이라도 내가 곤란한 처지에 놓이면 그는 짐짓 딴청을 부리며 《누나, 방금 저를 뭐라고 부르였지요?》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못들은척 화제를 돌렸지만, 블루동지의 그 능청스러운 웃음만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의 실수를 잡아내고 좋아라 웃는것과 같은 웃음이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 사이에는 《누나》, 《바이비》, 《오빠》, 《귀엽다》는 말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비여있던 방에 하나둘 가구가 들어차는것과 같았다. 처음에는 휑하던 방이 어느새 정이 붙은 살림집이 되여가는 그런 느낌이였다. 방송을 오래 하다보면 그런 말들이 쌓여 결국 그 방송만의 살림살이가 되는법이다.
그리고 이 새 애칭들은 우리 둘 사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그것은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에게로 번져나갔다. 극중에서나 오가던 말들이 실제 사람들의 입에 붙어 굳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것은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였다. 나는 그때마다 우리 《우결》이 이제는 우리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니라는것을 실감하였다.
그 소동의 한복판에 내 오랜 벗 강수가 있었다. 강수는 예전부터 나와 허물없이 지내온 사람이였는데, 《우결》이 길어지자 자기도 모르게 극중 설정에 젖어들어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블루동지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였다.
《저기, 저는 아직 매형이 될만한 일을 한적이 없는데요》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강수는 태연하게 대꾸하였다. 《누나의 《우결》 상대면 매형이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 말에 나는 그만 배를 잡고 웃었다. 강수는 늘 이런 식으로 태연하게 남을 놀리는 재주가 있었는데, 정작 놀림을 당하는 블루동지의 낯빛을 보는 재미로 그러는것 같기도 하였다.
강수는 내가 《우결》 중이니 자기는 자연히 처남의 자리에 서게 되였다는 론리를 펴며, 앞으로도 계속 매형이라 부르겠노라고 선언하였다. 블루동지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은 그 호칭을 받아들였다. 이 매형 소동은 방송에서도 몇번이나 되풀이되여 화제가 되였다. 나는 그때마다 강수의 능청과 블루동지의 당혹스러운 낯빛을 번갈아 보며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극중의 설정이 실제 사람의 입에 붙어 굳어지는 모습을 보는것은 참으로 묘한 경험이였다. 나는 언젠가 강수에게 《너는 정말 그 호칭이 진심이냐》고 물어본적이 있는데, 강수는 웃으며 《진심 반, 장난 반이지》라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이 오히려 더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번져나간 애칭은 강수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나와 감자님, 낑깡님 하고 서로를 부르던 감블러동지는 우리가 말을 놓았다는 소문을 듣자 자기도 질세라 나에게 말을 놓기 시작하였는데, 그러면서 붙인 호칭이 《붕어야》였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내가 왜 붕어냐》고 따져물었으나, 감블러동지는 태연하게 《눈이 붕어눈이잖아》하고 대꾸하여 나를 말문막히게 만들었다.
그뒤로 감블러동지는 나를 만날 때마다 《붕어야, 누나》하고 불렀고, 나 역시 그 호칭이 싫지 않아 그냥 받아넘기였다. 생각해보면 그무렵 나에게는 이미 강형이니 감자니 하는 별명이 여럿 붙어있었으니, 붕어라는 별명 하나가 더 늘어난다고 크게 다를것도 없었다. 별명이 많다는것은 그만큼 나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 나는 그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였다.
그런데 이무렵 일어난 일가운데 가장 큰 사변은 따로 있었으니, 다름아닌 어머니의 한마디였다. 《배그》 합방으로 어머니를 모신 방송이 있던 날, 대화창은 시작부터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머니는 오락에는 서투른 편이였으나 말솜씨만은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방송 초반부터 어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대화창은 웃음소리로 가득하였다.
한창 오락을 하던 중 누군가 채팅으로 사위감 이야기를 묻자, 어머니는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딸 사위감으로는 블루가 백점이지.》 그 한마디에 방송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대화창은 삽시에 도배되였고, 블루동지는 머리수화기를 붙잡은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어, 어머님… 그런 말씀은 좀…》하고 더듬거리는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나는 그 옆에서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마디를 더 보태였다. 《왜, 내 말이 틀렸니? 성실하고 착실하고, 나는 진작부터 마음에 들었다.》
방송이 끝난 뒤에도 그날의 발언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런 말씀은 방송에서 삼가달라고 부탁하였으나, 어머니는 도리여 웃으며 사실을 말한것뿐이라고 하였다. 나는 결국 두손을 들고 말았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는 후에도 성원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며 《사위감 백점》이라는 우스개소리로 남았다.
이렇게 극중의 우리 이야기는 나의 어머니에게까지, 나의 벗에게까지 번져나가 저마다의 말투와 애칭을 얻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한낱 우스개였으나, 그 우스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놀아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결》이라는것이 그토록 오래 이어질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혼자서는 만들수 없는 분위기라는것이 있는데, 우리 주위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 이들이였다.
애칭의 물결은 사무실안에서도 멎지 않았다. 스텔라이브의 성원들 사이에서는 어느샌가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저희끼리는 《딸내미들》이라 칭하는 말이 돌기 시작하였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을 한사코 부정하였다. 《내가 무슨 엄마냐, 그냥 사장이지》하고 손사래를 쳤지만, 성원들은 들은체도 하지 않고 저희끼리 《엄마가 오늘도 잔소리하신다》며 낄낄거렸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억울해졌으나,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이 밈은 더 굳어질뿐이였다. 나는 나중에서야 그 억울함을 호소하는것 자체가 오히려 밈을 키우는 거름이 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성원들은 더 재미있어하였다.
그무렵 블루동지에게도 뜻밖의 호칭이 하나 붙었다. 《배그》 무기스킨 가챠 방송 중에 칸나동지가 채팅으로 블루동지를 두고 무심코 《아빠》라 부른것이 그 시초였는데, 그 한마디가 어찌나 절묘하게 들어맞았던지 이내 히나동지와 타비동지까지 합방마다 그를 아빠라 불러대였다. 블루동지는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다가도 나중에는 반쯤 체념한 얼굴로 그 소리를 받아들였다.
《내가 언제부터 아빠가 되였지…》하고 혼자말을 하는 그 모습을 나는 옆에서 지켜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시청자들도 이미 그를 아버지 취급하는데 익숙해진 뒤였다. 칸나동지는 원래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여서 이런 롱담을 즐겨 하였는데, 히나동지와 타비동지도 그 흐름에 자연스레 합류하였다.
나는 그때 우리 방송국안에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딸내미들》이 있는 한집안이 통째로 들어앉은 셈이 되였다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짐짓 력사적인 사변을 서술하는 투로 말하자면, 이는 실로 한 왕조가 새로 성립된것과 다를바 없는 대사변이였다. 다만 그 왕조의 국사라는것이 《배그》 한판과 후원 한건으로 결정되는것이 다를뿐이였다. 후날 이 왕조의 계보를 정리한다면 아마 몇장의 그림으로도 다 담지 못할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별명이라는것도 원래 한둘이 아니였다. 한때는 강형이라 불리다가, 다시 15강지라 불리다가, 감자라 불리다가, 나중에는 강공지주라는 말이 대화창 금지어로 지정될 정도로 퍼진 적도 있었다. 거기에 이번 겨울 새로 붙은 붕어니 엄마니 하는 말들까지 더하면, 나를 부르는 이름만 모아도 한권의 책을 엮을수 있을 지경이였다. 나는 그 사실이 우습기도 하고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였다.
성원들 사이에는 이밖에도 우리 《우결》을 눈치채고 슬쩍슬쩍 건드리는 말들이 돌았다. 리제동지는 언젠가 자기 방송에서 넌지시 《강지동지의 퍼스날컬러가 블루》라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말을 전해듣고 뜨끔해하면서도 딱히 부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시부키동지와 리코동지도 합방 때마다 은근한 눈빛으로 나와 블루동지 사이를 살피는 눈치였으나, 누구도 대놓고 캐묻지는 않았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아는듯 모르는듯 지켜봐주는 그 침묵이야말로, 우리끼리만 아는 농담을 오래도록 지킬수 있게 해준 울타리였다. 어쩌면 우리가 그렇게 오래도록 이 놀이를 이어갈수 있었던것도, 곁에서 짐짓 모르는척 해준 사람들 덕분이였는지 모른다.
이런 우스개가 오갈 때마다 나는 성원들에게 정색을 하며 《동지들, 그런 밈은 그만 좀 퍼뜨리라》고 타일렀으나, 정작 나 자신도 방송 중에는 그 호칭에 슬쩍 웃어버리기 일쑤였다. 사람이란 겉으로 부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즐기는 구석이 있는법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가운데 하나였음을 이제는 순순히 인정한다.
내 애호가들인 강도단 사이에서도 이무렵의 변화는 놓치지 않고 화제가 되였다. 검은 두건을 두른 상징 그림밑에는 《우리 사장님 말투가 부쩍 편해졌다》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고, 개중에는 《누나》, 《바이비》 하는 호칭이 나올 때마다 시각을 정리해 목록으로 만들어놓는 이들까지 있었다. 나는 그런 목록을 발견할 때마다 우리가 하는 방송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세세히 지켜보여지고있다는것을 새삼 느꼈다.
애칭이 하나 생길 때마다 나는 새삼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의 두께를 실감하였다. 높임말을 쓸 때는 결코 나올수 없던 말들이, 말을 놓은 뒤로는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마치 오래 얼어있던 강물이 봄을 만나 소리없이 풀리듯, 우리 사이의 말들도 그렇게 풀려가고있었다. 겨울 한복판에서도 나는 이미 봄의 조짐을 느끼고있었던 셈이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방송을 마치고 홀로 앉아 그날의 채팅 록음을 다시 훑어보는 버릇이 생기였다. 《누나》, 《바이비》, 《오빠》, 《귀엽다》, 《매형》, 《엄마》, 《아빠》 하는 말들이 화면 가득 지나가는것을 보고있노라면, 이것이 과연 방송인지 한집안의 족보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였다. 나는 그 목록을 종이에 하나하나 적어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방송이 끝난 뒤 그는 문득 이런 말을 하였다. 《누나, 우리 이러다가 진짜 한가족 되는것 아니예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내 웃으며 대답하였다. 《한가족은 무슨, 그냥 방송 잘하고있는것지.》
그러나 속으로는 그 말이 마냥 우스개소리로만 들리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는 그저 즐거워서 서로를 부르는 말을 이리저리 바꾸어보았을뿐이였다. 그 말들이 후날 얼마나 오래 남아, 《우결》이 끝난 뒤에도 몇해가 지나도록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후날 《우결》이 끝나고도 서로 《누나》라는 호칭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는것을, 나는 뒤에 가서야 알게 되였다. 몇해가 지나 예전 방송을 돌이켜보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그때 그 말투로 돌아가 서로를 놀렸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월의 그 겨울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한번 생긴 말버릇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와서 헤아려보면, 그 겨울 두어달 사이에 생겨난 애칭만도 열 손가락으로는 다 꼽을수 없다. 누나, 바이비, 오빠, 귀엽다는 말, 매형, 붕어, 엄마, 딸애들, 아빠까지, 저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다른 상황에 얹혀 태여난 말들이 어느새 우리를 둘러싼 하나의 언어가 되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두고 우리만의 사전이 새로 편찬된것이나 다름없다고 우스개삼아 말하곤 하였다.
애칭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재는 자와 같은것이다. 높임말로 지낼 때는 결코 잴수 없던 거리가, 말을 놓고 애칭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눈에 보이듯 가까워졌다. 나는 그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지내온 그 겨울을, 지금도 가장 따뜻한 기억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사람들은 흔히 큰 사변만이 력사에 남는다고 여기지만, 나는 이런 자잘한 말버릇 하나하나야말로 우리 《우결》의 진짜 력사였다고 생각한다.
이월도 저물어갈무렵, 사무실 창밖의 눈은 어느새 그치고 찬바람만 매섭게 불었다. 우리는 여전히 그날그날의 방송에 매달려있었고, 새로 생긴 애칭들을 시험삼아 불러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콤퓨터앞에 나란히 앉아 서로를 놀려대던 그 나날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때는 그저 웃고 넘기던 사소한 말버릇들이 이렇게 오래 남아 회고록의 한 절을 채우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의 일이란 그런것이다. 큰 결심이나 대단한 사변만이 남는것이 아니라, 이런 시시한 말장난들이야말로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그 시절을 통째로 되불러오는 힘을 지니고있다. 그런데 그 평온한 나날 뒤에 또 다른 소동이 조용히 기다리고있다는것을, 그때 우리 가운데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