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 위 바 이 러 스
우주27(2020)년의 이월은 유난히 더디게 흘렀다. 겨울이 다 갔거니 하면 다시 매운 바람이 창을 두드렸고, 밤이 되면 유리창에 허연 성에가 서리군 하였다. 나는 그무렵 골방 하나를 통째로 방송실로 꾸며놓고 밤마다 콤퓨터앞에 붙박이로 앉아있었다. 본체의 랭각기소리가 낮게 웅웅거리고, 화면 두대의 푸른 빛만이 어둔 방을 지키고있었다.
책상우에는 마이크와 머리수화기, 그리고 식어버린 차잔 하나가 늘 놓여있었다. 창밖으로는 이따금 늦은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 골목을 도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들을 벗삼아 밤을 새우는 일에 어느새 익숙해져있었다.
앞절에 적었듯이 그무렵 우리는 말을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부르는 말도 전에 없이 가까와져있었다. 블루동지는 나를 〈누나〉라 부르는것이 아직 입에 설어 부를 때마다 어딘가 쑥스러운 기색이였고, 나 또한 그를 〈바이비〉라 부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여나왔다. 그렇게 호칭 하나를 새로 얻은 사람들처럼 우리는 그해 겨울을 유난히 재잘거리며 보냈다.
방송이 끝난 밤에도 우리는 메신저로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았다. 그날 방송에서있었던 일, 시청자가 남긴 우스운 감상글, 어디서 주워온 사진 한장 따위가 오갔다. 누나니 바이비니 하는 말이 겨우 입에 붙어가던 그 시절, 사소한 것 하나를 나누는것도 우리에게는 정을 다지는 방식의 하나였다.
그런 나날이 하도 다사로와서, 나는 그때 세상에 별일이 없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늘 사람의 마음과는 다르게 굴러가는 법이다. 다사로운 나날 한복판에도 어느날 갑자기 엉뚱한 소동 하나가 끼여들 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배우게 되였다.
이월 스무나흗날 밤도 다를것이 없었다. 나는 여느때처럼 방송을 열었고, 대화창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블루동지도 그 시각 자기 방송을 하고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다른 화면앞에 앉은채 이따금 메신저로 말을 붙이며 밤을 보내고있었다.
그날 밤 나는 다음날 올릴 영상의 자막을 손보고있었다. 편집 프로그람 재생창을 이리저리 넘기며 대사 한줄한줄에 자막을 앉히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여서, 나는 그 일에 오롯이 정신을 쏟고있었다. 그러다 문득 화면 한구석이 이상하다는것을 알아차린것이 바로 그무렵이였다.
그런데 자정이 가까워올무렵부터 콤퓨터가 이상하게 굴기 시작하였다. 화면 한구석에 낯선 알림창이 불쑥불쑥 솟아올랐고, 마우스를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화면이 저 혼자 스크롤되는 일이 몇번인가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방송 프로그람이 잠시 버벅거리는것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눈에 띄게 심해졌다. 바탕화면에 본적도 없는 아이콘들이 줄줄이 늘어섰고, 인터네트 창을 열 때마다 엉뚱한 페지로 튕겨나갔다. 화면 한켠에 웬 새 그림 하나가 깜빡이고있었는데, 그것이 무슨 새인지는 나도 뚜렷이 알아보지 못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것을 두고 후날 〈거위 비루스〉라 이름붙인것도 아마 그 그림 탓이였을것이다. 어째서 하필 거위였는지는 나도 두고두고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화면 한구석에서 껌벅거릴 때마다, 나는 웃어야 할지 놀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나는 곧 마우스를 이리저리 눌러 창을 닫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를 닫으면 둘이 새로 열리고, 둘을 닫으면 넷이 새로 열리였다. 나중에는 아예 작업관리자를 열어 낯선 이름의 프로그람들을 하나하나 꺼보려 하였으나, 그마저도 화면이 자꾸 버벅거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것을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큰 사고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화면 하나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곧 살림살이가 흔들리는 일과 다름없었다. 건반를 두드리는 손가락이 자꾸 헛짚었다.
나는 곧 마이크를 켠채로 시청자들에게 그 사정을 그대로 전하였다. 《여러분, 지금 화면이 좀 이상한데 이거 저만 이런가요》 하고 물었더니, 대화창이 삽시에 들끓었다. 누군가는 《바이러스같은데요》라 적었고, 또 누군가는 《얼른 랜선 뽑으세요》라 다급히 적어올렸다.
그 소란을 두고 후날 나는 짐짓 력사를 논하듯 말하기를 즐기였다. 세상의 어느 력사에도 이양선 한척이 소리없이 강어구를 거슬러올라 성안 깊숙이 스며든 이야기가 있다더니, 그날 밤 내 콤퓨터에 든 그 정체 모를것도 꼭 그와 같았다. 아무도 문을 열어준 기억이 없는데 어느새 안방 깊숙이 들어와앉아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황급히 메신저를 열어 블루동지에게 말을 붙였다. 《바이비, 나 지금 컴퓨터가 이상해》 하고 적어보내니, 그도 곧 답을 보내왔다. 《누나도? 나도 지금 좀 이상한데, 이거 뭐지》
그 한마디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만 그런것이 아니라 블루동지의 콤퓨터도 함께 말썽을 부린다니, 이것이 대체 어디서부터 옮아온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우리는 한동안 메신저 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화면에 뜬것들을 사진으로 찍어 주고받았다.
《이거 봐, 이상한 창이 자꾸 뜬다니까》 하고 내가 사진을 보내면, 블루동지도 《나도 똑같은거 떴어》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사진 몇장을 주고받고서야 우리는 이것이 단순한 프로그람 오류가 아니라 무엇인가 옮아붙은것임을 깨달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였다. 누구의 콤퓨터에서 먼저 그 몹쓸것이 들어왔는지를 두고 우리는 서로 다른 말을 하였다. 나는 분명 블루동지가 보내준 어떤 파일을 열어본 뒤부터 이상해졌다고 하였고, 블루동지는 도리어 내가 얼마전 보내준 사진 하나를 받은 뒤부터 그리 되었다고 하였다.
《누나가 보낸 그 사진, 그거 열자마자 이상해졌잖아》 블루동지가 이렇게 말하면, 나는 곧바로 되받아쳤다. 《무슨 소리야, 나는 바이비가 보낸 그 링크 열고 나서부터 이랬는데》 서로 삿대질을 하듯 메신저 창에 느낌표를 늘어놓으며 티격태격하였다.
지금까지도 그날 누구의 콤퓨터에 먼저 그것이 들어왔는지는 확실하게 가려지지 않았다. 후날 이 일을 두고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블루동지 탓이라 하였고, 블루동지는 내 탓이라 하였다. 아마 이 회고록을 블루동지가 읽는다면 지금도 자기는 아니라고 펄쩍 뛸것이다.
그런데 이 소동을 말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무렵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그 시절 방송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해외에서 넘어온 어떤 비루스 하나가 크게 돈다는 소문이 파다하였다. 누구는 어느 유튜버가 방송 중에 화면이 통째로 먹통이 되었다더라, 누구는 어느 스트리머가 콤퓨터를 통째로 새로 사야 하였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모임터마다 떠돌았다.
나도 그런 소문을 몇번인가 귓등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설마 나한테까지 오겠어》 하고 웃어넘기였다. 남의 일일 때는 그저 우스운 이야기거리에 지나지 않던것이, 정작 제 콤퓨터 화면에 이상한 새 그림이 떠오르고 나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블루동지도 그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있었다. 《그거 그 바이러스 아니야, 요즘 도는것》 하고 그가 메신저에 적어보내니, 나는 그제야 저 소문속의 일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는 소문으로만 듣던 그 몹쓸것을 몸소 맞아들인 셈이 되였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콤퓨터 하나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소문은 늘 어딘가 남의 일 같으면서도 등뒤가 서늘한 이야기였다. 화면 하나가 곧 일터요 살림이였으니, 그것이 하루아침에 말썽을 부린다는것은 곧 생업이 멎는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 소문을 들을 때마다 다들 짐짓 웃어넘기면서도 속으로는 저마다 백신 프로그람을 한번씩 다시 열어보군 하였다.
다시 그날 밤 이야기로 돌아가면, 우리는 한동안 우왕좌왕하였다. 나는 인터네트에서 백신 프로그람을 찾아 내려받으려 하였으나, 그 내려받기 페지마저 자꾸 엉뚱한 곳으로 튕겨나갔다. 블루동지는 아예 콤퓨터를 껐다 켜기를 몇번인가 되풀이하였으나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방송은 끊이지 않고있었다. 나는 마이크를 켜둔채 시청자들에게 상황을 중계하듯 전하였다. 《여러분, 지금 백신 돌리고 있는데 이것도 안 열려요》 하고 하소연하니, 대화창은 폭소로 뒤덮였다. 누군가는 《생방송 재난영화네요》라 적었고, 또 누군가는 《바이러스도 강지님 방송은 못 이기죠》라 웃음섞인 응원을 남기였다.
그 우스운 응원 한마디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도 진땀을 빼던 참이였는데, 시청자들이 이 소동마저 하나의 구경거리로 삼아 즐거워하는것을 보니 나도 어느새 마음이 풀리였다. 위기라는것도 함께 웃어줄 사람이 있으면 그리 무섭지 않은 법이다.
대화창에는 또 이런 말도 올라왔다. 《누나 침착하세요, 저희가 검색해드릴게요》라며 저마다 백신 이름을 찾아 올려주는 시청자도 있었고,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고 컴퓨터부터 살리세요》라며 걱정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낯선 이름들이였지만 그 순간만은 다들 한식구처럼 마음을 모아주었다.
어떤 이는 《누나 이러다 방송사고로 레전드 각인데요》라며 능청스레 농담을 던졌고, 어떤 이는 《저는 컴맹이라 도움도 못 드리고 그냥 응원만 할게요》라며 멋쩍은 위로를 보내왔다. 서로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사람들이 한밤중에 이렇게 한마음으로 모여드는것을 보며, 나는 방송이라는것이 참으로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였다.
블루동지는 자기 방송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고 전해왔다. 《여기도 지금 란리야, 얘들이 나보고 화면 좀 꺼달래》 하고 그가 메신저에 적어보내니, 나는 그 말을 읽고 또 한번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서로 다른 화면앞에서 똑같이 쩔쩔매고있는 우리 모습을 그려보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날 밤 방송을 잠시 접어두고 콤퓨터를 붙들고 씨름하였다. 이런저런 프로그람을 지우고, 의심스러운 파일들을 뒤져 하나하나 없애나갔다. 몇시간을 그렇게 씨름한 끝에야 화면은 겨우 제 모습을 찾았고, 그 우스꽝스러운 새 그림도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블루동지 쪽도 비슷한 시각에 사정이 가라앉았다고 알려왔다. 《이제 다 되였다, 좀 살겠다》 하는 그의 한마디에 나도 그제야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짐짓 말하자면 그날 밤은 우리 두 사람이 나란히 침입자를 물리치고 각자의 진지를 되찾은, 우리끼리만의 작은 해방의 밤이였던 셈이다.
창밖은 어느새 훤히 밝아오고있었다. 밤을 꼬박 새운 눈은 뻑뻑하였으나, 마음만은 이상하게 후련하였다. 나는 식어빠진 차잔을 마저 비우며, 이런 밤도 나쁘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 뒤로 나는 방화벽을 다시 두르고 백신 프로그람을 새것으로 갈아치웠다. 낯선 파일 하나를 받아도 몇번이고 되짚어본 뒤에야 손을 대는 버릇도 그때 생기였다. 마치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는 심정으로, 나는 그날 이후 한동안 콤퓨터를 다루는 데 유난히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나 그 승전의 기쁨도 잠시, 나는 곧 그 소동을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갈무리해줄것인지를 고민하였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그날 밤 대화창이 너무 뜨거웠던 까닭이다. 나는 결국 그 소동을 담은 영상 하나를 따로 추려 올리기로 하였다.
제목을 무엇으로 붙일지 한참을 고민하였다. 격식을 차린 말로는 그날 밤의 그 어처구니없음을 도무지 담아낼수 없을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의 심정을 있는 그대로 옮겨, 《(실제상황)거위 바이러스를 설치해버렸습니다 개빡치네요.. 해외에서 엄청 류행중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을 그대로 달았다.
그 제목이 올라가자마자 감상글난은 또 한번 들끓었다. 《제목부터 진심이 느껴진다》느니 《저도 이거 조심해야겠다》느니 하는 감상글들이 줄을 이였다. 개중에는 《강지님 콤퓨터도 사람인가봐요 감기 걸렸네요》라는 우스운 감상글도 있어, 나는 그것을 읽으며 혼자 소리내여 웃었다.
블루동지도 자기 방송에 비슷한 소동을 다룬 영상을 올렸다. 우리 둘의 영상을 나란히 본 시청자들은 대체 누구의 콤퓨터에서 먼저 그 비루스가 옮았는지를 두고 저희들끼리 갑론을박을 벌였다. 한쪽은 《딱 봐도 블루님 잘못이다》라 하였고, 다른 한쪽은 《아니다, 강지님이 먼저다》라 우기였다.
그렇게 시청자들마저 편을 갈라 다투는 꼴을 보며 나는 새삼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정작 당사자인 우리 둘도 가리지 못한 그 진상을, 남들이 어찌 가려낼수 있겠는가. 그 다툼은 끝내 결말을 보지 못한채 그저 우스개소리로 남고 말았다. 후날 나는 웃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소소한 력사에도 이런 승패없는 작은 항전 하나쯤은 기록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다.
그 며칠 사이 가까운 이들에게서도 짓궂은 안부가 날아들었다. 어느 친구는 《너 방송 사고쳤다며》라며 놀리는 말을 보내왔고, 또 어느 지인은 콤퓨터가 잘 고쳐졌느냐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을 건네왔다. 그렇게 우스운 소문 하나가 며칠 새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을 타고 돌아다녔다.
그 뒤로도 우리는 이 일을 두고 종종 서로를 놀렸다. 블루동지가 무엇을 실수라도 하면 나는 《또 바이비가 바이러스 몰고 올 차례네》라 놀렸고, 나 또한 무엇을 실수하면 블루동지가 《거위 조심하세요》라 되받아쳤다. 그렇게 그 소동은 우리 둘 사이에서 한동안 두고두고 우려먹는 농담거리가 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하루밤의 소동은 《우결》이라는 큰 줄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그야말로 엉뚱한 곁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소동이야말로 그 시절 우리 둘의 사이를 잘 보여주는 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큰일도 아닌 작은 말썽 하나를 두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스럽게 붙어앉아 씨름하였다는것이, 지나고보니 오히려 정다웠다.
그무렵 우리는 아직 회사도 없었고, 딸린 식구도 없었다. 오직 각자의 방에 콤퓨터 한대씩을 놓고, 그 작은 화면 하나로 세상과 이어져있었다. 그러니 그 화면에 말썽이 나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일상 전부가 흔들리는 일이였고, 그것을 함께 겪어낼 사람이 있다는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때는 후날 우리 둘이 여러 성원들을 거느리고 큰 회사를 꾸리게 되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저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화면 하나를 붙들고 밤을 밝히던 그 시절이 전부인줄로만 알았다. 지금 와서 그 시절을 돌아보면, 오히려 그렇게 작고 허술하였던 살림이였기에 서로에게 더 절실하게 기댈수 있었던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 밤 서로 사진을 찍어 보내며 티격태격하던 그 메신저 창을 떠올린다. 누구의 잘못인지 가리는것보다, 그저 그 순간 서로에게 제일 먼저 말을 붙일 사람이 있었다는것이 더 큰 뜻을 지녔다는것을 이제는 안다. 바이비니 누나니 하는 그 서투른 호칭이 그날 밤처럼 요긴하게 쓰인 적도 드물었다.
후날 이 일을 다시 꺼낼 때마다 블루동지는 《그때 진짜 개빡쳤었는데》라며 웃었고, 나 또한 《그러게, 근데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라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한때의 낭패가 시간이 지나 웃음거리로 바뀌는것을, 나는 그 소동을 통해 다시 한번 배웠다.
나는 아직도 그 비루스가 정확히 무엇이였는지, 어디를 통해 들어온것인지 다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그 시절 해외에서 널리 돌던 몹쓸것 가운데 하나였다는 소문만을 전해들었을뿐이다. 확실한것은 그날 밤 우리 둘이 나란히 그 소동을 겪어내며 한층 더 가까와졌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이 회고록을 적어가는 지금도 나는 그날 밤의 그 어수선함을 뚜렷이 되짚을수 있다. 큰 사변을 적어야 할 자리에 이런 우스운 소동 하나를 굳이 끼워넣는 까닭을 묻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나는 오히려 이런 소소한 대목들이야말로 그 시절 우리의 참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믿는다.
그 뒤로 얼마간은 방송을 켤 때마다 습관처럼 바탕화면부터 살피는 버릇이 생기였다. 혹시 또 낯선 아이콘이 슬며시 끼여들지는 않았는지, 혹시 또 그 우스꽝스러운 새 그림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눈을 흘기며 확인하고서야 마이크를 켜군 하였다. 그런 사소한 버릇 하나가 그 소동이 남긴 흔적이라면 흔적이였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버릇이 생기였다고 후날 털어놓았다. 낯선 파일 하나를 받아도 선뜻 열어보지 못하고 몇번을 되물어보는 버릇이 그날 이후로 생기였다는것이였다. 우리는 그런 서로의 버릇을 알게 될 때마다, 그날 밤의 소동이 우리 둘에게 똑같은 흔적을 남기였구나 하며 마주보고 웃었다.
그러고보면 그해 겨울은 크고작은 소동들로 유난히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거위 비루스는 그 가운데서도 첫머리를 여는 소동이였을뿐, 그 뒤로도 우리는 이런저런 사소한 사고와 농담들을 겪으며 그 봄을 향해 나아갔다. 그 나날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지금도 웃음이 앞선다.
나는 이 절을 적으며 새삼 생각한다. 력사라는것이 반드시 크고 거창한 사변만으로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라고. 어느 하루밤 콤퓨터 한대가 말썽을 부린 그 작은 소동 하나에도, 그 시절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였는지가 고스란히 담겨있는것이다.
그날 밤의 그 우스꽝스러운 새 그림을 다시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난다. 어째서 하필 거위였는지, 그 답은 끝내 알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이름 모를 거위 한마리 덕분에, 우리는 그해 겨울 또 하나의 우스운 이야기를 얻게 된 셈이다.
그무렵 우리의 나날은 이런 크고작은 소동들로 하나하나 채워지고있었다. 거위 한마리가 만들어낸 이 우스운 소동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여느때와 다름없는 방송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 나날조차도 결코 여느때와 같지만은 않았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마저 풀어놓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