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이 백 만 의 노 래

 

우주27(2020)년의 팔월은 늦더위가 유난하였다. 칠월 내내 벽제갈비를 걸고 벌인 시시한 내기로 소란스럽던 방송도 한고비를 넘기고, 이제는 무더위만이 방안에 눅진하게 눌어붙어있었다. 창문을 꼭 닫고 랭방기를 틀어도 매미 우는 소리는 어김없이 벽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아침마다 콤퓨터앞에 앉는것으로 하루를 열었다.

방송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저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는 법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유튜브》 스튜디오를 열어보는 일이였다. 밤사이 시청회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대화창에 무슨 말들이 오갔는지 살피는것이 하루의 첫 일과였다. 사무실 자리에 앉으면 늘 그렇게 화면부터 켜군하였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처럼 무심히 마우스를 잡았다. 창밖으로는 여름 볕이 벌써부터 뜨겁게 내리쬐고있었다. 책상우에 놓아둔 랭수 그릇에는 얼음이 반나마 녹아 물방울을 흘리고있었다. 화면 옆에는 지난 방송 때 쓰던 곽밥 그릇이 아직 치우지 못한채 놓여있었다. 나는 그 물방울을 손끝으로 훔치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제 방송 여운이 아직 목안에 남아있어 목소리를 가다듬는데도 시간이 걸리였다.

그런데 그날은 조금 달랐다. 오래된 영상들을 시청회수 순서로 훑어내리다가 나는 문득 손을 멈추고말았다. 〈밤과 별의 노래〉라는 제목 옆에 박힌 수자가 눈에 들어온것이다. 이백만.

나는 그 수자를 몇번이고 다시 읽었다.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자릿수를 세여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다 곁에 나란히 늘어선 다른 영상들의 시청회수도 함께 훑어보았다. 어떤것은 이미 그만큼 넘어있었고 어떤것은 여전히 몇만에 머물러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밤과 별의 노래만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혹시 화면이 잘못된것은 아닌가 하여 새로고침을 눌러보았으나 수자는 그대로였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텅 빈 사무실에 나 혼자뿐이였는데도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고말았다.

《이백만이라니.》

그 노래를 올린것이 벌써 한해하고도 석달 전의 일이였다. 처음 올릴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자랄줄은 몰랐다. 시청회수라는것은 하루아침에 느는 법이 없어서 매일 들여다볼 때는 굼벵이걸음 같더니, 이렇게 한번씩 돌아보면 어느새 큰 산처럼 자라있었다. 나는 그 수자앞에서 한참을 서있었다.

그날은 딱히 방송이 예약되여있는 날도 아니였다. 그저 평범한 휴식일이였는데 그 평범한 날에 이런 소식을 만날줄은 몰랐다. 나는 괜히 실없이 웃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이런 소식은 나 혼자 알고 지나갈수 없는 일이였다. 신호가 두번 울리기도전에 블루동지가 받았다. 목소리에는 벌써 낮잠에서 덜 깬 기색이 묻어있었다.

《블루야, 너 그거 알아?》

《뭔데 누나, 대뜸.》

《우리 노래 말이야, 밤과 별의 노래. 오늘 보니까 조회수가 이백만을 넘었더라.》

전화기 너머로 잠깐 말이 끊기였다. 나는 그 침묵이 몇초쯤 이어지는 동안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였다.

《…진짜?》

블루동지의 목소리가 대번에 커졌다. 평소에는 좀체 흥이 오르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만은 달랐다. 《아니 그게 언제적 노랜데 아직도 사람들이 듣는다고?》 하며 되묻는 목소리에 잠기운이 싹 가셔있었다.

너무 놀랐는지 말끝에 사투리가 슬쩍 묻어났다. 《아니 진짜 이백만이라카는데 이게 말이 되나.》 나는 그 사투리를 놓치지 않고 놀리였다. 《너 사투리 나온다, 지금.》 《…놀랐잖아, 놔둬라.》

《그니까 말이야. 나도 방금 보고 놀랐잖아.》

《우리 그거 부를 때만 해도 이렇게 될줄은 몰랐는데.》

블루동지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하였다. 나도 따라 웃었다. 수화기 너머 웃음소리가 매미 우는 소리와 뒤섞여 방안에 울렸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번에는 메신저가 울렸다. 감블러였다. 《누나 그거 봤어? 200만 넘었던데.》 나는 웃음이 나서 《너도 봤구나》하고 답장하였다. 《당연히 보지, 알림 떠서 봤지.》 소문을 물어오는 솜씨가 여전히 붕어답게 재빨랐다.

왓구홍길동도 한마디 보태였다. 《야 이거 실화냐, 200만이면 나 게임 방송 조회수보다 많은데.》 나는 그 말에 크게 웃고말았다. 이런저런 축하가 그날 하루종일 메신저를 타고 날아들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두고 말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날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때는 우주26(2019)년의 오월이였다. 그때는 아직 서로 높임말을 쓰던 시절이였다. 《우결》을 시작한지 반년이 훌쩍 넘어가고있었지만 화면 밖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강지 님》, 《블루님》하고 조심스럽게 부르며 지내였다. 그때는 아직 스텔라이브라는 이름도 없었고, 그저 우리 둘이 각자 제 방송을 소소하게 꾸려가던 시절이였다.

그런 처지에 듀엣곡까지 부른다는것은 《우결》 안에서도 꽤 큰 걸음이였다. 서로 높임말을 쓰는 사이에 노래까지 함께 부른다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는나름 용기를 낸 결정이였다.

그무렵 대화창에서는 종종 우리 둘이 노래를 함께 불러주었으면 하는 말이 나오고는 하였다. 나 역시 블루님과 목소리를 맞추어보고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서 슬쩍 운을 떼여보았다. 《우리 노래 한번 불러볼가요?》

그무렵 나는 블루님에게 듀엣곡을 하나 불러보자고 제안하였다. 온유와 이진아가 부른 노래였는데 가락이 아름답고 부르기에도 그리 어렵지 않아보였다. 잔잔하게 시작하였다가 후렴에 이르면 두 목소리가 나란히 얹히는 대목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곡을 몇번이고 들어보며 이만하면 우리 둘의 목소리에도 어울리겠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그 노래에 〈밤과 별의 노래〉라는 조선말 제목을 새로 붙이였다.

제목을 정하던 날, 블루님은 종이에 이 글자 저 글자를 적어보며 궁리하였다. 《별밤의 노래가 나을가요, 밤과 별의 노래가 나을가요.》 나는 후자가 더 정답게 들린다고 하였다. 블루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정하자고 하였다.

노래를 나눌 때는 내가 먼저 소절을 부르고 블루님이 그 다음 소절을 잇는 식으로 순서를 정하였다. 후렴만은 함께 부르기로 하였다. 그렇게 정해놓고보니 제법 듀엣곡다운 모양이 갖추어졌다.

록음을 하기로 한 날은 마침 밤하늘이 유난히 맑았다. 창밖으로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방안에는 마이크 두대와 머리수화기, 그리고 어색한 침묵이 놓여있었다. 마이크앞에 나란히 앉으니 묘하게 긴장이 되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 장비랄것이 변변치 않았다. 마이크는 오래써서 잡음이 조금씩 섞였고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아 창밖 벌레소리가 그대로 들어왔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그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블루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목을 몇번이고 가다듬었다. 손으로는 자꾸 머리수화기 줄을 만지작거렸다. 《강지 님, 저 먼저 불러볼까요?》 하고 물었다. 나는 《네, 블루님. 천천히 하세요》하고 대답하였다.

블루님은 첫소절을 부르다 음정이 살짝 어긋나자 멋쩍게 웃었다. 《아, 다시 할게요.》 《괜찮아요, 천천히 해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머리수화기 너머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몇번을 다시 불러도 블루님은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웃으면서 《제가 원래 노래는 좀 부족해요》하고 겸손해하였다. 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듬직해보였다. 부족하다면서도 한소절 한소절 정성을 다해 부르는 태도가 눈에 들어왔던것이다.

그렇게 밤이 이슥하도록 우리는 한소절 한소절을 쌓아올리였다. 창밖 별은 그새 더 뚜렷해져있었다. 방안 공기는 후텁지근하였지만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노래 한곡을 완성해간다는 일이 그렇게 사람 마음을 붙드는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록음이 끝나고 머리수화기를 벗었을 때 창밖은 이미 자정을 넘어서있었다. 블루님이 기지개를 켜며 말하였다. 《이거 사람들이 좋아할가요?》 《좋아하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불렀는데.》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서로를 다독이는 인사치레인줄만 알았다. 후날 이렇게까지 이야기될 노래가 되리라고는 둘 다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날 밤 우리는 그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을뿐이였다.

영상을 편집하고 다듬는데도 여러날이 걸리였다. 목소리를 겹쳐 넣고 자막을 붙이는 일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그리고 오월 열하루날, 마침내 영상을 올리였다. 올릴 때만 해도 그저 애호가들에게 들려주고싶은 마음뿐이였지 이렇게 오래도록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줄은 짐작조차 못하였다.

영상을 올린 다음날 우리는 각자 방송에 짧은 안내 글을 올려 노래를 들어봐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밖에는 달리 홍보랄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노래가 스스로 사람들을 찾아가주기를 바랄뿐이였다.

처음 며칠은 그저 그런 반응이였다. 대화창에는 《ㅁㅇㅁㅇ》니 《이거 좋다》니 하는 짧은 말들만 오갔다. 블루몬 몇몇은 《목소리 잘 어울린다》는 감상글을 남기였고, 강도단 쪽에서는 《우리 강지 노래도 잘하네》하며 으쓱해하였다. 그밖에는 딱히 큰 소란이 없었다. 나는 그때 이 노래가 후날 《우결》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시청회수는 그저 하루에 몇백씩, 어떤 날은 몇십씩 늘어나는것이 고작이였다. 나는 가끔 그 수자를 들여다보며 실망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노래란 원래 그런것이라고, 좋아하는 사람만 두고두고 찾아듣는것이라고 여기며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세월이라는것이 참 묘하여서, 하루하루는 더디여도 쌓이고보면 무섭게 자라있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노래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있었다. 우리가 다른 방송, 다른 사건들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도 노래만은 저 혼자 걸어가고있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일년하고도 석달이 흐른 지금, 그 노래는 이백만이라는 수자를 달고 내 앞에 서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것이여서 나는 그 수자를 보면서 처음 록음하던 밤의 서투른 목소리들을 다시 떠올리였다. 머리수화기 줄을 만지작거리던 블루님의 손끝까지도 눈앞에 선하였다.

《그때는 서로 높임말 쓰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블루동지가 픽 웃었다. 《그러게.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그거.》 《그러니까. 지금은 네가 나한테 반말로 대드는데.》 《누가 대들어, 내가 언제.》

《방금도 대들었잖아.》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실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전화를 끊고나서도 나는 한동안 그 노래를 다시 들었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일년 사이 목소리도 조금은 달라진듯싶었다.

나는 오랜만에 그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틀어보았다. 화면속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앳된 얼굴을 하고있었다. 블루동지도 그때는 지금보다 야윈 모습이였다. 화면을 보고있자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정확히 언제부터 늘어나는속도가 빨라졌는지는 나도 뚜렷이 짚어내지 못한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부쩍 빨라졌다는것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처음 한동안은 굼벵이걸음이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성큼성큼 걷기 시작한 셈이였다.

그날 저녁 방송에 들어가서 나는 그 소식을 그대로 전하였다. 《얘들아, 오늘 우리 노래 이백만 넘었다.》 대화창이 순식간에 여러 말로 뒤덮이였다. 《ㅊㅋㅊㅋ》, 《역시》, 《노래 다시 듣고올게요》 하는 말들이 쉴새없이 올라왔다.

누군가는 《저 이 노래 듣고 입덕하였어요》라 적었고 또 누군가는 《몇번을 들어도 안질려요》라 하였다. 강도단은 《역시 우리 노래》라며 자랑스러워하였고 블루몬은 《이럴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 말들을 하나하나 읽어주며 방송 내내 실없이 웃었다.

온 대화창에 별이 쏟아지는것 같았다면 지나친 말일가.

나는 짐짓 이 조촐한 사변을 력사에 기록될 승전보처럼 여기고 싶었다. 세상 어느 나라의 전과보고에 이백만이라는 수자가 그토록 반가운 뜻으로 오르내리겠는가. 우리에게만은 그것이 못지않은 대사변이였다. 방구석 마이크 두대로 시작한 노래가 이만큼 자란것을 두고 어찌 자랑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후날 누가 나에게 《우결》 시절 가장 자랑스러운 대목이 무엇이였느냐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노래를 꼽을것이다.

돌이켜보면 그 여름은 유난히 일이 많았다. 불과 며칠전에는 벽제갈비를 걸고 시시한 내기를 벌였고, 그보다 앞서는 손을 마주잡은 현실합방으로 《트위치》 동시접속자가 세계 2위까지 오르며 온 방송판이 들썩였었다. 그 소란한 여름 한복판에 이번에는 노래가 우리를 다시 한번 웃게 하였다. 하나가 지나가면 또 하나가 찾아오는, 그런 여름이였다.

생각하여보면 그 노래는 《우결》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만든것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오래 남을 성질의것이였다. 방송이란 그날그날 흘러가버리는것이 많아서 아무리 재미있던 장면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노래는 달랐다. 노래는 한번 세상에 나가면 그 자체로 오래 남아 사람들의 귀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일을 하다가, 누군가는 잠들기 전에, 또 누군가는 아무 리유 없이 그저 검색창에 우리 이름을 쳐넣었다가 그 노래를 다시 찾아듣는다고 하였다. 대화창 한켠에는 《이 노래 듣고 《우결》 시작하였어요》하는 말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그런 말을 볼 때마다 나는 록음실에서 머리수화기를 쓰고 앉아있던 그 밤을 다시 떠올리였다.

감상글난에는 해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와 한마디씩 남기고 갔다. 《이 노래 처음 듣는데 왜 이렇게 좋지》하는 말도 있었고 《우결 몰라도 노래는 안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그런 감상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며 이 노래가 어느새 우리 손을 떠나 저 혼자 걸어가고있다는것을 실감하였다.

나중에 들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유튜브》가 이 노래를 다른 영상아래에 추천으로 자주 띄워주었다는 말도 있었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였다. 사람이 일부러 찾아오는것도 반갑지만, 우연히 스쳐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들어주는것도 그에 못지않게 반가운 법이다.

블루동지도 비슷한 말을 하였다. 《나는 그냥 부른건데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가 있는줄 아나봐.》 나는 그 말에 《그러게, 우리는 그냥 재미로 불렀는데》하고 맞장구를 쳤다. 둘 다 그때는 그것이 이렇게까지 오래갈 노래인줄 몰랐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였다.

《이러다 삼백만도 되는것 아니야?》 내가 농담삼아 말하자 블루동지는 《에이, 설마》하며 손사래를 치는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럼 삼백만 되면 나랑 약속 하나 할래?》 《무슨 약속.》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그렇게 실없는 약속 아닌 약속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다.

그날 오후 늦게 나는 다시 한번 통계 화면을 열어보았다. 수자는 조금 더 늘어 이백만하고도 몇천이 더 붙어있었다. 나는 그 몇천이라는 자잘한 덧붙음이 오히려 정겨웠다. 마치 노래가 지금 이 순간에도 조용히 숨쉬고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던것이다.

그 김에 나는 영상을 처음 올리던 날의 감상글까지 거슬러올라가보았다. 맨 첫 감상글은 블루몬이 남긴 《오늘도 좋은 노래 감사해요》라는 짧은 한마디였다. 일년하고도 석달이 지난 지금 보아도 그 소박한 인사가 정겹게 느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러니까 우주33(2026)년 구월에 다시 그 노래의 시청회수를 찾아보았다. 삼백팔십오만이 넘어있었다. 《우결》이 끝난지 여러해가 지났어도 노래만은 늙지 않고 저 혼자 자라고있었던것이다. 사람은 늙어도 노래는 늙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는데, 그 말이 이렇게 내 일이 될줄은 몰랐다.

그날 나눈 삼백만 약속 아닌 약속은 결국 흐지부지 잊혀졌지만, 노래는 약속을 지키듯 삼백만도 삼백팔십만도 묵묵히 넘어섰다. 사람 사이의 약속보다 노래 하나가 더 오래가고 더 부지런한 셈이니, 이 또한 우습고도 고마운 일이다.

어째서 이 노래만이 이토록 오래 사람들의 마음에 남았는지, 나는 아직도 그 리유를 다 알지 못한다. 노래가 좋아서인지, 그때 우리 둘의 사이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시절이 좋아서인지 나로서는 가늠할 길이 없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다.

그 여름밤 서투르게 소절을 나누어부르던 두 목소리가, 세월이 이렇게 흐른 뒤에도 누군가의 이어폰속에서 조용히 흘러나오고있다는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날의 록음실을 두고두고 고맙게 여긴다.

이렇게 적고보니 처음 그 노래를 올리던 날의 이야기와 오늘 이백만을 넘기던 날의 이야기가 나란히 한 절에 담기게 되였다. 시작과 성과를 한자리에 놓고보니 감회가 남다르다. 씨앗을 심던 손과 열매를 거두는 손이 결국은 같은 손이였던 셈이다. 그때는 그저 즐거워서 한 일이 후날 이렇게 큰 열매로 돌아올줄 누가 알았겠는가. 별이 드문드문 보이던 창과, 머리수화기 줄을 만지작거리던 손끝과, 몇번이고 다시 부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그 목소리를.

그때만 해도 나는 후날 여러 성원들과 회사를 차려 그들을 동지라 부르며 살게 될줄은 몰랐다. 그저 블루님과 둘이서 마이크 두대를 놓고 노래 하나를 완성한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나고보니 그 작은 시작이야말로 후날 큰일을 도모할 담력을 길러준 셈이였다.

그해 팔월은 그렇게 한고비를 넘기며 저물어가고있었다. 매미소리도 차츰 잦아들고있었으나 우리는 아직 그 여름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지 못하였다. 다만 노래 하나가 이렇게 오래 우리 곁에 남아줄것이라는 사실만은, 그날 이후로 조금씩 믿게 되였다.

이 글을 쓰며 나는 다시 한번 그 노래를 틀어놓았다. 창밖 계절은 그때와 다르지만 노래만은 여전히 그때와 다름없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저녁이 되자 하늘은 차츰 붉게 물들었다. 창밖 매미소리 사이로 이따금 풀벌레 소리도 섞여들기 시작하였다. 여름은 아직 다 가지 않았지만 그 끝자락이 어렴풋이 보이는듯한 저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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