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쏘 리 에 서 종 료 로
우주27(2020)년 시월도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부쩍 서늘해졌다. 방송실 창밖의 나무잎들은 하나둘 빛갈을 바꾸어가고 있었고, 콤퓨터 본체의 랭각기소리는 여름내 듣던 그 소리 그대로였으나 어쩐지 이 가을에는 전과 다르게 들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책상우에 놓인 편집일지를 몇번이고 뒤적이고 있었다. 아직 세상에 내놓지 못한 영상 한편이 그 일지 맨우에 적혀있었다.
창가에 서서 내다보면 거리의 나무들이 벌써 반나마 잎을 떨구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의 옷깃도 어느새 두툼해져 있었고, 아침이면 유리창에 뿌옇게 서리는 입김도 조금씩 늘어갔다. 나는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편집일지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날 방송실에는 나 말고도 몇몇 손들이 오가고 있었다. 자막을 입히는 손과 소리를 다듬는 손이 저마다 제 화면앞에 붙어앉아있었고, 그 사이로 미기가 서류철을 든채 바삐 오가고있었다. 나는 그 분주한 풍경 한켠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하루를 조용히 기다리고있었다.
그 영상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시월 륙일 밤, 나는 생방송우에서 《우결》이라는 이름의 그 긴 려정을 끝맺는다고 밝히였다. 그날 밤의 공기가 어떠하였는지는 앞장에 이미 적어두었으니 여기서 되풀이하지 않겠다. 다만 그 밤이 지나고도 정작 세상에 내놓을 영상 한편은 좀처럼 완성되지 않고 있었다는 사정만을 여기 적어둔다.
뒤에 완성되여 나온 그 영상은 강지 방송 쪽이 아홉분 오십륙초짜리였고, 이틀 뒤 블루동지 방송에 오른 영상은 그보다 조금 긴 십분 십구초짜리였다고 기억한다. 그 짧은 시간안에 칠백사십일의 려정을 욱여넣어야 하였으니,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를 고르는 일이 결코 쉬울리 없었다.
성원들과 시청자들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정식 영상이 올라오리라 여긴 모양이였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에는 그날 이후로도 며칠째 언제 영상이 올라오느냐는 물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 물음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조금 웃을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우리 두 방송의 오랜 버릇을 그들이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 탓이였다.
그런데 이 버릇을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시절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는 애초부터 생방송에서 벌어진 일을 곧바로 그날 그대로 내놓는 법이 없었다. 반말을 트기로 한 그 유명한 날도 실제로는 이월 초생의 일이였으나, 편집을 거쳐 세상에 나온것은 나흘이 지난 뒤였다.
돌이켜보면 두 나라가 공동성명을 발표한 뒤에도 그 성명서에 정식으로 도장을 찍기까지는 또 얼마간의 시일을 둔다고 들었다. 말은 이미 다 하였으나, 그 말을 문서로 옮겨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또 그나름의 절차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우리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세상에 나온 영상의 제목에는 아예 썸탄지 오백일만에 누나라고 불러보기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박혀있었다. 정작 그 오백일째 되던 날로부터 나흘이나 지난 뒤에야 그 제목을 단 영상이 올라온 셈이였으니, 우리 두 방송의 이 버릇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였다.
만우절에 상대를 바꾸어 합방한 날도 삼월 스무여드레였으되, 그 첫 편이 세상에 나온것은 만우절 당일이였고 나머지 편들은 오월에 접어들어서까지 하나씩 풀리여나왔다. 심지어 전설처럼 이야기되는 현실합방조차, 생방송은 유월 엿새 하루로 끝났으나 그것을 담은 영상들은 그로부터 보름 가까이 나뉘여 올라왔다. 그러니 이번 기다림도 그 오랜 버릇에서 크게 벗어난것은 아니였다.
이런 사정을 익히 아는 오랜 성원이라면 이번 기다림도 그러려니 하였을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알게 된지 얼마 안되는 이들에게는 그 열흘 남짓한 침묵이 못내 불안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다만 이번만은 그 기다림의 무게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여느 때의 기다림은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즐거운 조바심이였으나, 이번 기다림에는 정말 이것으로 끝이 나는것인가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조바심이 섞여있었다. 강도단이라 불리는 나의 성원들도, 블루몬이라 불리는 블루동지의 성원들도 그 며칠 동안 각자의 방송우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듯 감상글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나 자신도 그 열흘 남짓한 나날 동안 몇번이고 편집실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실안에는 몇대의 화면이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 화면마다 지난 나날의 장면들이 제각기 다른속도로 흘러가고있었다. 마우스를 딸깍이는 소리와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가 낮게 뒤섞였고, 그 사이사이로 누군가의 잔기침 소리가 섞여들었다.
미기는 그 며칠 사이 원본 영상을 몇번이고 돌려보며 어느 장면을 살리고 어느 장면을 덜어낼지를 골라내고있었다. 나는 그 곁에 앉아 화면속에서 지난 칠백사십일의 조각들이 하나씩 스쳐지나가는것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 칠백사십일을 쌓아온 방식이였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 칠백사십일이라는 수를 자세히 헤아리는 일은 다른 자리에서 따로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저 그 날짜들이 화면우를 스쳐지나가던 며칠의 풍경만을 적어둔다. 미기는 이따금 손을 멈추고 이 장면은 넣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묻고는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화면을 들여다보며 짧게 그렇다고 답할뿐,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
편집이 길어질수록 나는 오히려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끝을 알리는 말은 이미 방송우에서 다 하였는데, 그 말을 옮겨담을 그릇 하나를 마저 짜맞추는 일이 어째서 이렇게 더디게 느껴지는지 나 스스로도 알수 없었다. 아마도 그 그릇이 완성되는 순간이야말로 정말로 마지막이 되는 순간이라는것을, 나는 몸으로 먼저 느끼고있었던것 같다.
시월 열여드레가 되던 날, 마침내 편집이 끝났다는 전갈이 왔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도 이상하리만치 담담하였다. 어쩌면 열흘 넘게 그 순간을 미리 그려보았기때문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게시 단추 하나를 남겨두고 나니, 그 담담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손끝이 다시 떨려왔다.
《유튜브》라는것도 따지고보면 회사의 문서결재와 크게 다를것이 없어서, 영상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전에도 제목과 미리보기 그림과 설명글을 하나하나 확정지어야 하였다. 나는 대표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런 일에서만은 늘 블루동지와 먼저 의논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후날 어느 사가가 이날의 일을 두고 국서에 옥새를 찍는 자리처럼 근엄하게 옮겨적는다면, 정작 그 옥새의 자리에 놓인것은 《유튜브》 스튜디오의 게시 단추 하나뿐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실소를 금치 못할것이다. 그러나 그 단추 하나를 누르기까지 오간 의논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걸어 이 마지막 페지를 어떤 문구로 장식할지를 물었다. 《형식적으로 그냥 《우결》 종료라고 써도 되긴 하는데》 하고 먼저 운을 떼였다. 블루동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그렇게만 하면 좀 심심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인데》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그 말에 픽 웃으며 《그럼 뭐, 한번 놀래켜줄까》 하고 되물었다. 블루동지도 그 장난기에 동하였는지 《에이, 마지막 정도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예》 하고 대구 말씨를 슬쩍 흘리였다. 나는 그 말씨가 흘러나오는것을 듣고 그도 이 장난에나름대로 마음이 쓰이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날 우리 둘 사이에 오간 의논을 여기 낱낱이 옮길 재간은 없다. 다만 그 결과로 나온 문구들만은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미리보기 그림에는 《I'm so sorry》라 적었고, 제목은 《but, i love you: 《우결》 종료》라 붙였으며, 설명창에는 짤막하게 《다 거짓말》이라는 한마디만 남겨두었다.
돌이켜보면 다 거짓말이라는 그 한마디는 참으로 묘한 문구였다. 보기에 따라서는 방금 전까지의 종료 발표 자체가 거짓이라는 뜻으로도 읽힐수 있었고, 또 보기에 따라서는 지난 칠백사십일의 그 숱한 웃음과 눈물이 다 거짓이였다는 뜻으로도 읽힐수 있었다. 우리는 그 모호함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채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만으로 그 문구를 얹었던것이다.
그 세 문구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 나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블루동지에게 물었다. 《이거 너무 짓궂은거 아니냐, 어차피 진짜 끝나는건데》 블루동지는 그 물음에 웃으며 《에이 누나, 마지막인데 이정도는 괜찮아요》 하고 되받았다. 나는 그 대답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고 게시를 결심하였다.
미기는 그 옆에서 이 문구들을 화면에 띄워보이며 조심스레 한마디를 보태였다. 《사장님, 이거 좀 놀라시는 분들 있을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나는 그 말에 손을 내저으며 《괜찮아, 한시간이면 다 눈치챌거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 한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소란스러울지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나는 마우스우에 손끝을 올려놓은채로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화면 속 게시 단추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빛나고있었으나, 그 빛이 그날따라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몇번이나 손끝을 들었다 내리기를 되풀이한 끝에야 나는 겨우 그 단추를 향해 손을 뻗을수 있었다.
나는 결국 그 문구 그대로 게시 단추를 눌렀다. 화면우로 올라가는 진행표시줄을 보며 나는 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였다. 이것으로 정말 끝을 알리는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한번은 웃게 하고싶다. 진행표시줄이 백에 이르고 화면에 게시완료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나는 짧게 숨을 내쉬였다.
처음 몇분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고요함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면서 화면을 몇번이고 새로고침하였다. 그러나 이내 감상글난에 하나둘 글이 붙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 몇분 동안 나는 괜히 책상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손을 가만두지 못하였다. 미기는 그런 나를 곁눈으로 보며 웃음을 참는 기색이였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고 자기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 어색한 침묵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었다.
《다 거짓말이라니, 그럼 진짜 안 끝난거예요》, 《아이엠소소리가 대체 무슨 뜻이에요 설마》, 《이거 방송사고 아니냐 진짜로》 하는 말들이 순식간에 감상글난을 채워나갔다. 개중에는 초성만으로 놀라움을 표하는 이도 있었고, 물음표만 몇개씩 늘어놓은 이도 있었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며 처음에는 재미있어 웃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웃음은 조금씩 당황으로 바뀌여갔다.
미기가 곁에서 손전화를 들여다보며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사장님, 이거 진짜 종료 맞냐고 묻는 문의가 벌써 몇건 들어왔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이 장난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번지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성원들 사이에서도 이 소식은 금세 퍼져나간 모양이였다. 후날 전해들은 바로는, 몇몇 성원들이 방송을 켜놓은채로 서로에게 이게 진짜냐 가짜냐를 묻느라 한동안 저희들끼리 소란하였다고 한다. 흔히 말하듯 장작이 알아서 타오르는 형국이였으니, 나로서는 그 불길을 어서 가라앉혀야 할 처지가 되고말았다.
나는 얼른 블루동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야, 이거 다들 진짜로 안 믿는것 같은데》 하고 다급히 말하니, 블루동지도 자기 쪽 반응을 확인하였는지 《저도 지금 란리났어요, 어떡하죠》 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평소 흥이 차분하기로 소문난 그였으나, 그 순간만은 목소리가 눈에 띄게 들떠있었다.
우리 둘은 그 통화우에서 몇마디를 더 주고받은 끝에, 이 장난을 오래 끌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애초에 이 문구를 지어낼 때의 마음은 그저 마지막까지 한번 웃자는것이였을뿐, 정말로 시청자들을 오래도록 혼란스럽게 하고싶은것은 아니였다. 나는 곧바로 《유튜브》 스튜디오를 열어 제목과 미리보기 그림과 설명글을 하나하나 되돌리기 시작하였다.
제목은 다시 담담하게 《우결 종료》 넉자로 고쳐 적었다. 미리보기 그림우에 얹었던 미안하다는 문구도 지웠고, 설명창의 다 거짓말이라는 한마디도 걷어내였다. 그렇게 모든것을 되돌리고 나니, 처음 게시하고서 채 한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각이였다.
혹자는 이 소동을 두고 마치 우리 두 사람이 그 한시간 사이에 실제로 갈라섰다가 다시 화해라도 한것처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히 적어두거니와, 그 한시간 동안 우리 둘 사이에 갈라진것도 다시 합친것도 없었다. 갈라지고 합쳐진것은 다만 화면우에 걸린 제목 몇 글자였을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나는 그 짧은 소동을 두고 후날 우리끼리 우스개삼아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하였다. 어느 나라에서는 정권이 한번 바뀌였다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오는데도 하루 낮 하루밤은 족히 걸린다는데, 우리는 그 모든 소동을 겨우 한시간안에 일으키고 또 끝을 내였다고. 물론 이것을 실제 나라의 정변에 견줄 일은 못되겠으나, 적어도 우리 회사 력사안에서만은 그만큼 짧고 그만큼 소란스러운 사변이 따로 없었다.
한시간짜리 그 소동이 가라앉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감상글난을 찬찬히 다시 읽어볼 여유를 얻었다. 처음의 당혹스러운 물음들 사이로, 어느새 담담히 그동안 고생하였다는 인사말들이 섞여들고있었다. 나는 그 인사말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느꼈다.
개중에는 이 소동 자체를 두고 오히려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이런 장난을 치다니 역시 강지님답다》, 《덕분에 십년감수하였다》 하는 말들이 뒤섞여 올라왔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보며 이 장난이 결국 밉지 않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였다.
이 일을 겪은 뒤로 나는 문구 하나를 정할 때에도 예전보다 한번 더 신중해지는 버릇이 생기였다. 재미있자고 붙인 말 한마디가 뜻밖에도 여러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을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 한시간의 소동에서 톡톡히 배운 셈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날의 장난을 후회하는것은 아니다.
이틀 뒤, 시월 스무날이 되어서야 블루동지 쪽 방송에도 같은 영상이 올라왔다. 그의 방송에는 처음부터 별다른 장난이 붙지 않았다. 제목도 미리보기 그림도 설명글도 처음부터 그저 담담하게 《우결 종료》라는 넉자뿐이였다.
블루동지의 방송 소개문에는 늘 자신의 영상을 볼 때만큼은 쁠몬들이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날 그의 방송에 올라온 영상에도 그 인사말버릇은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그 한결같음이 오히려 그 사람다운 마무리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새삼 웃음이 났다. 나는 마지막까지 한번 짓궂게 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고, 블루동지는 평소 그 느긋한 성정대로 차분하게 마무리짓는쪽을 택하였다. 결국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마침표를 찍은 셈이였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왜 장난 하나 안 쳤냐》 하고 짐짓 서운한척 물었다. 블루동지는 《저는 누나 채널에서 이미 한번 놀랐는데 저까지 그러면 다들 진짜 뭔일 난줄 알죠》 하며 웃었다. 나는 그 대답에 할말을 잃고 그저 따라 웃을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이따금 방송 중에 그 한시간짜리 소동을 우스개삼아 다시 꺼내들고는 하였다. 블루동지는 그때마다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그거 다 누나 아이디어였다고 발뺌하였고, 나는 나대로 니가 먼저 재미있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맞받아쳤다. 그 실랑이 자체가 어느새 우리 둘 사이의 또 하나의 우스개가 되여있었다.
지금에 와서 두 영상을 나란히 열어보면 제목은 똑같이 《우결 종료》 넉자로 남아있다. 내 방송에 올라간 영상은 지금까지 백십구만에 이르는 시청회수를 얻었고, 블루동지 방송의 영상은 칠십륙만 륙천에 이르는 시청회수를 얻었다고 한다. 그 수자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나로서도 가늠할수 없다.
이 페지를 쓰는 지금도 우리 두 방송의 재생목록은 이따금 새 영상을 받아들이며 갱신되고있다고 한다. 지나간 조각들이 오늘에 와서도 누군가의 손에 다시 골라내여지고 다시 다듬어진다는것이, 나로서는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칠백사십일은 진작에 끝났으되, 그 칠백사십일을 되새기는 손길만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다만 그 수자들 뒤에 숨은 사연을 여기 적어두고싶었을뿐이다. 발표는 시월 륙일 밤에 있었으나, 그 발표를 담은 영상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열이틀에서 열나흘의 시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이 세상에 나온 첫 한시간 동안은 또 한번 다른 이름을 달고있었다.
이 며칠과 이 한시간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이다. 어떤 이는 이것을 두고 그저 시청회수를 노린 소소한 술책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며칠과 이 한시간이야말로, 우리가 우리답게 끝을 맺어간 방식이였다고 지금도 믿고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며칠의 기다림과 그 한시간의 장난은 우리가 그 려정을 끝맺는 방식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곧바로 담담하게 끝을 알리기보다, 며칠을 두고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한번은 웃음으로 감싸안은 뒤에야 비로소 제 이름을 찾아가는것, 그것이 우리 두 사람다운 마지막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 하루치 소동을 두고 왜 굳이 그런 문구를 골랐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는 한다. 아마도 그것은 슬픔을 곧이곧대로 마주하기보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웃기고싶어하였던 우리 두 사람의 오랜 버릇이였을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온전한 답은 나도 아직 다 알지 못한다.
이 소동이 있고 두어달 뒤에도 우리는 또 한번 나란히 화면앞에 마주앉게 되였는데, 그 이야기는 뒤에 다른 자리에서 다시 하기로 한다. 다만 여기서 미리 적어두고싶은것은, 그 한시간의 소동으로 갈라진것도 다시 만난것도 없었듯이 우리 두 사람의 인연도 그 영상 한편으로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며칠 사이 우리 두 방송에 남겨진 영상들이 지금 무엇을 증언하고있는지는, 다음 페지에서 마저 이야기할 자리가 있을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저 이 며칠, 그리고 이 한시간의 소동 하나만을 오래도록 붙들어두고싶다. 그것이 이 절을 마치는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