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옛 영 상
《우결》이 끝났다고 세상에 알린 다음에도 나는 한동안 그 일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였다. 사무실 창밖은 벌써 늦가을빛으로 짙어져 나무잎이 하나둘 떨어지고있었고, 책상우의 콤퓨터는 밤이 깊도록 그 푸른 화면을 끄지 않은채 나를 지켜보고있었다. 종영을 알린 방송도, 영상 자막을 놓고 벌어진 한시간짜리 소동도 다 지나간 뒤였다. 나는 그제야 홀로 앉아 두 방송에 남은것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볼 마음이 생기였다.
책상우에는 식은 차 한잔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방송을 마치고 밤참도 거른채 그대로 들어와 앉은 자리였다. 창틀 틈으로 스며드는 늦가을 바람이 서늘하게 목덜미를 스쳤으나 나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콤퓨터 두대의 화면을 나란히 켜놓고 나는 마우스를 오른손에 쥐였다.
블루동지의 방송과 나의 방송, 이 두곳에는 《우결》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간 영상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우지 않았으니 당연한 노릇이였으나 그것을 새삼 마주하고보니 마음이 야릇하였다. 사람의 한 시절은 지나가도 그 기록만은 지나가지 않는다는것을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실감하였다. 재생목록을우에서부터아래로 열어보니 우주25(2018)년 가을부터 우주27(2020)년 가을까지,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나는 미기에게 전화를 걸어 예전 올리적재 목록을 함께 정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내 오른팔이라 부르는 그가 없었다면 이 많은 영상들을 이렇게 가지런히 다시 마주하기도 쉽지 않았을것이다. 미기는 밤늦은 시간인데도 군말없이 재생목록을 하나로 묶어 정리해주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놓고 혼자서 다시 처음부터 하나씩 눌러보기 시작하였다.
왼쪽 화면에는 나의 방송을, 오른쪽 화면에는 블루동지의 방송을 나란히 띄워놓았다. 같은 사건을 두 사람이 저마다의 시선으로 찍어올린 영상들이 서로 마주보고있는 모양새가 새삼 재미있었다. 어느 쪽 방송에서 보아도 그 시절의 공기만은 똑같이 배여있었다. 나는 그 둘을 번갈아가며 눌러보기로 하였다.
맨 처음 영상을 눌러보았다. 화면속의 나와 블루동지는 지금 보아도 우습도록 깍듯하였다. 《강지 님은 이미 제 거잖아요~?》라는 제목이 붙은 그 영상에서 우리는 서로 높임말을 놓지 않았고, 《블루님》, 《강지 님》하고 부르는 말투에는 존중이 지나쳐 도리여 어색함이 묻어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 사이의 례의였다.
《강지 님~ 귀엽기는~💞》라는 제목의 영상을 다시 보면서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무렵 우리는 처음으로 대놓고 서로를 귀엽다 말하기 시작하였는데, 화면 아래 대화창에는 그것을 지켜보던 성원들의 물음표가 줄지어 올라오고있었다. 《강지님~ 어제 제 꿈 꾸었어요?》 같은 제목을 보면 대본을 써놓고 찍은것 아니냐는 우스개도 있었지만, 실은 그 안의 어색함과 설렘은 누구도 대신 써줄수 없는것이였다. 나는 그 시절의 우리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화면속에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도 낯설었다. 평소보다 한결 높고 부드러운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슬며시 웃었다. 나는 원래 말투가 거칠어 방송에서도 욕을 서슴지 않는 편이였는데, 유독 블루동지앞에서만은 그것을 힘써 자제하였다. 오죽하였으면 친구 악녀가 자기앞에서도 그렇게 좀 말해달라고 서운한 소리를 한 일까지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그런데 이 시절의 영상들을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앞서 우리 《우결》에 은근히 세번째 자리를 차지하였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 없다. 성원들 사이에서 《김박사》라 불리던 그는, 삼각관계라는 설정을 지고 《우결》 초반부터 우리와 함께 합방을 하며 정을 쌓은 사람이였다. 《울지마 김박사...》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그가 이룰수 없는 사랑에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남아있고, 《강지 어머님께 점수따려는 김박사와 블루》라는 제목에는 두 남자가 나의 어머니앞에서 서로 경쟁하듯 살갑게 구는 우스운 장면이 남아있다. 콤퓨터 화면속에서 그 세사람이 얽히고설키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니, 그때는 그저 방송의 재미를 위한 설정이였던것이 지금 보면 퍽 다정한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또 하나의 영상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홍길동: 누나 나는..? 사실 귀여운 유명 유투버분과 《우결》 중입니다.》라는 제목이였는데, 왓구홍길동동지가 짐짓 억울한 표정으로 자기도 《우결》을 한다고 우기던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소리내여 웃었다. 그는 나와 친남매 같은 사이였고, 그가 끼여들면 시청자들의 반응은 언제나 한층 뜨거워지고는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능청스러움은 따라할 사람이 없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였으나, 다시 우리 두사람의 영상들로 돌아가보기로 한다.
우주26(2019)년으로 넘어가는 영상들앞에서 나는 잠시 마우스를 멈추었다. 그해 어느날, 《[《우결》] 력대급으로 설렌 누나에게 오빠소리 듣기》라는 제목이 올라온것을 나는 뚜렷이 기억한다. 화면속의 나는 오빠라는 그 한마디에 정말로 설레는 얼굴을 하고있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 보아도 그 표정만은 꾸며낸것이 아니였다. 《블루 오빠Yee..!!》라는 제목에는 내가 처음으로 오빠라는 호칭을 입에 담고 좋아죽는 블루동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밥은 누나가 사는것라고요!》라는 제목도 그 사이 어디쯤에 끼여있었다. 오빠와 누나라는 두 호칭이 정확히 어느 순서로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는지, 사실을 말하자면 나 자신도 그 앞뒤를 다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그무렵의 우리가 높임말의 벽을 조금씩 허물고있었다는것만은 영상들이 뚜렷이 증언하고있었다. 나는 그 순서를 굳이 바로잡으려 하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기로 하였다.
그무렵의 영상들속에는 《귀엽다고 말해!》라던가 《내가 생각하는 공주님은 1명뿐이야~》 같은 제목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것을 보고있으면 우리가 참으로 부지런히도 서로에게 그런 말들을 주고받았구나 싶었다. 대화창의 성원들은 그때마다 《ㅁㅇㅁㅇ》라는 초성으로 화답하였고, 나는 그 뜻을 모르는척하면서도 실은 다 알고 웃었다. 방송이라는것이 묘하여서, 정해놓고 하는 말도 하다보면 어느새 정말 마음이 된다는것을 그때 조금씩 배운것 같다.
《강지 님이 배그에서 탄약 프로포즈 하였다고?! 어머머머머!!》라는 제목의 영상도 오래된 자리를 지키고있었다. 그날 《배그》판안에서 무슨 아이템을 무슨 수로 건넸는지는 나조차도 이제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만으로도 그날 대화창이 얼마나 뒤집어졌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성원들은 그것을 두고 마치 력사에 남을 사변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고, 나 또한 그때만은 진지하게 프로포즈를 받은 사람 행세를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게임안의 장난 하나였을뿐인데, 그 장난이 이렇게 오래 남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줄은 몰랐다.
우주27(2020)년 이월무렵의 영상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멈추어있었다. 《썸탄지 500일만에 '누나'라고 불러보기...》라는 제목이였다. 그 500일이라는 수자가 정확히 어느 날부터 헤아린것인지, 나 자신도 지금까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날부터 블루동지는 나를 《누나》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를 《바이비》라 부르게 되였다는것만은 분명하다.
그 수자가 정말 500일이 맞는지, 어떤 이는 480일이라 적어놓기도 하였다. 그때그때 올린 영상 날자를 나 스스로 다시 헤아려보아도 딱 떨어지는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회고록이라 하여 모든것을 다 안다고 말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 수자만은 여백으로 남겨두려 한다.
높임말로 시작한 사이가 반말로 넘어가는 순간이란 생각보다 대단한것이 아니였다. 그저 어느 방송에서 블루동지가 《누나》라는 말을 무심코 뱉었고, 나도 별다른 생각없이 그를 《바이비》라 불렀을뿐인데, 그것으로 그 이전과 이후가 갈라졌다. 대화창은 잠시 술렁이더니 이내 그 호칭에 익숙해졌다. 사람 사이의 벽이라는것은 이렇게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법이다.
호칭이 바뀌자 주변까지 술렁였다. 나의 지인 강수동지는 내가 《우결》 상대의 누나 자리에 있으니 자기가 매제뻘이 된다면서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나도 블루동지도 그 호칭을 낯설어하였으나, 몇번 듣다보니 그것도 그런대로 정이 붙었다. 극속의 호칭이 현실의 술자리에까지 번져나가는것을 보며 나는 그저 웃을수밖에 없었다.
그해 어느 《배그》 합방에서는 나의 어머니마저 그 놀음에 끼여들었다. 어머니는 대뜸 《강지 사위감으론 블루가 100점》이라 말씀하였고, 그 말을 들은 블루동지는 화면안에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그 영상 역시 두 방송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어, 지금 다시 보아도 블루동지의 그 당황한 얼굴은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어머니의 그 한마디가 《우결》이라는 극을 얼마나 실감나게 만들어주었는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우주27(2020)년의 영상들은 유난히 두툼하였다. 《두 남자와 엄마를 모시고 상견례를 해보았다》는 제목을 보며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김박사동지와 블루동지 둘을 나란히 앉혀놓고 어머니에게 인사를 시키던 그 자리는, 지금 생각해도 《우결》이 아니고서는 나올수 없는 그림이였다. 극중의 설정이라지만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만은 결코 꾸민것이 아니였다.
《뭔가... 이거 뭔가 블루 덕질하는 기분이야》라는 제목도 그 사이에 끼여있었다. 상견례라는 큰 사변을 치른 뒤에도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놀리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대화창은 그 제목 하나에도 자지러졌고, 블루동지는 그것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은채 그저 웃기만 하였다. 지금 보아도 그 능청은 여전히 웃음이 난다.
그해 여름의 더블데이트 영상들도 여럿 남아있었다. 《귀여운 커플과 더블데이트를 하였습니다》, 《더블데이트 하기에는 장소가 영 좋지 않다...》 같은 제목들을 보고있노라면, 그때 우리가 얼마나 아무 장소에서나 되는대로 웃고 떠들었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방송이라는것이 늘 완벽한 무대에서만 이루어지는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어수선하고 준비 안된 자리에서 나온 웃음이 더 오래 남는 법이였다.
그중에서도 력사에 길이 남을만한 사변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벽제갈비 내기였다. 《비싸다고 소문난 그 갈비 걸고 맞짱 뜹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그 영상에서 우리는 자못 비장한 얼굴로 갈비 한상을 걸고 승부를 겨루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그것이 무슨 국사라도 되는 양 진지하였던 우리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다. 《벽제갈비 내기의 최종 승자는 과연?!》이라는 후속편까지 이어졌으니, 그 갈비 한상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던 셈이다. 이런 사소한 내기 하나에도 온 정성을 쏟던 그 시절이 지금은 그저 아름답게만 여겨진다.
《건전한 대화 중입니다... 진짜로요!》라는 제목의 영상도 눈에 띄였다. 제목부터가 이미 무언가를 강하게 해명하고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웃음을 터뜨렸을것이 뻔하였다. 우리끼리는 정말 아무 일도 아니였던 순간이, 제목 하나로 온갖 상상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방송이라는것의 묘미였다. 나는 그날 밤 이 제목을 보며 혼자 소리내여 웃었다.
《우리.. 손잡을래?》라는 제목을 눌렀을 때는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손을 잡는다는 그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우리는 륙백날이 걸렸다. 《손잡는데 600일이 걸렸습니다》라는 제목이 그것을 증명하고있었는데, 그 수자를 다시 헤아려보면서 나는 우리가 참으로 더디게, 그러나 허투루는 아니게 한걸음씩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것이 능사는 아니라는것을, 《우결》은 그렇게 몸소 보여주고있었다.
《블루랑 현실 합방 약속 잡은 날》이라는 제목을 지나 마침내 유월 유엿새의 그 영상앞에 이르렀다. 《(6월 6일 현실합방) 드디여 블루와의 현실 합방!》이라는 제목이였다. 화면 밖의 얼굴을 모르는 상태로 몇해를 이어온 사이였으니, 실제로 마주앉아 함께 방송을 한다는것이 우리에게도, 지켜보는 성원들에게도 얼마나 큰 사변이였는지 그 시청회수만 보아도 짐작이 갔다. 《전 세계 트위치 시청자 2위를 찍었던 전설의 현실합방》이라는 제목까지 붙었으니, 그날의 열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였다.
《현실 합방에서 나를 미치게 하였던 블루ㅠ》라는 제목을 보며 나는 그날의 어수선함을 다시 떠올렸다. 얼굴을 마주하고 방송을 한다는것은 목소리만으로 주고받던것과는 또 다른 긴장이였다. 화면속의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실감하며 조금은 어색하게, 그러나 분명 즐거워하고있었다. 그 어색함마저 지금은 그리운 기록으로 남아있다.
물론 남은 영상들이 달콤한것들만은 아니였다. 《강지누나에게 들켜버린 비밀 여사친ㅋㅋㅋㅋ (누나 울지마)》, 《누나 왜 그랬어..?" 바람 피다 걸린 그녀의 당황스런 한마디...(충격)》 같은 제목들도 나란히 남아있었는데, 그것을 보면 우리가 이 극속에서 다투기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럴 거면 둘이서 하러 가》, 《야아 블루!! 너 그러는것 아니야 알어?!》 같은 제목에는 짐짓 성이 난 나의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극중의 다툼이였으나 그 감정만은 매번 진짜였다.
《두 남자를 대하는 너무나도 다른 온도차이》, 《하루동안 썸녀 누나한테 반말하기》 같은 제목들도 있었다. 지금 다시 세여보면 참으로 다채로운 소재들이였다. 삼각관계, 위기, 화해, 질투, 다시 화해 — 그 반복이 지루하지 않게 이어졌다는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성원들은 그 굴곡을 하나하나 따라오며 함께 웃고 함께 안타까와하였다.
만우절이면 어김없이 사고를 쳤다. 《(만우절 상대교체 특집) 뭔가 이상한 더블데이트》라는 제목아래에는 《새로운 "강블" 커플》이라는 자막이 붙어있었는데, 그날은 상대를 바꾸어 더 짓궂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 특집에서 블루동지는 평소보다 한층 수위 높은 멘트를 쳐서 한동안 《김레드》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하였다. 장난이라도 도가 지나치면 이름이 따라붙는다는것을 그때 배웠다.
《서로 뒷감당 가능한거지? ㅋㅋㅋㅋㅋㅋ (꽃핀♥블루/강지♥감블러)》라는 제목도 그날의 소동을 증언하고있었다. 꽃핀동지는 나와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리유로 블루동지와도 남다른 동질감을 나누는 사이였고, 감블러동지는 나와 서로 감자님, 낑깡님 하고 부르던 사이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말을 트고 그가 나를 《누나》라 부르며 나는 그를 《붕어야》라 놀리는 사이가 되였으니, 호칭이란것도 사람 사이의 정을 따라 이렇게 변해가는 모양이다. 그 둘까지 끌어들여 짝을 뒤바꾸어놓은 그날의 소동은, 지금 생각해도 겁없이 벌인 장난이였다. 다행히 그 뒷감당은 우리 몫으로 잘 마무리되였다.
《헤어진 남녀 이상태로 재결합 가능??ㅋㅋㅋ ㅋㅋㅋㅋㅋ》같은 제목을 지나면 다시 《하.. 결국 이렇게 되였습니다..》, 《사실 블루랑 그런 관계 입니다》 같은 제목들이 이어졌다. 극중의 관계란 이렇게도 복잡다단하여, 헤여졌다 만났다를 되풀이하는것이 오히려 그 시절 우리 방송의 큰 즐거움이였다. 지금 이 제목들만 죽 훑어보아도 그 굽이굽이가 눈앞에 선하다. 사람들은 이런 굴곡을 두고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까지 지어내였는데, 돌이켜보면 틀린 말도 아니였다.
《난 잘못 없어!!!!》라는 제목 하나만 보아도 그날 대화창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사이다 터진 썸녀의 카카오톡에 열받은 썸남ㅋㅋ 역관광 레전드썰ㅋㅋㅋㅋ》라는 제목도 그 옆에 나란히 남아있었다. 방송을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끌고갈수 있었던것은, 우리 두사람이 그만큼 이 극에 정성을 들였기때문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대충 하였다면 이런 제목들이 나올 까닭이 없었다.
《비밀친구 하실래요...?》, 《블루님과 나만의 비밀이야~》 같은 제목들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여나왔다. 비밀이라 해놓고도 결국은 다 드러나고야 마는것이 《우결》의 되풀이되는 흐름이였다. 성원들은 그 뻔한 반전을 뻔히 알면서도 매번 속아주는 시늉을 하였고, 우리는 또 그 시늉을 반가와하며 다음 회차를 준비하였다. 서로가 서로를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척해주는 그 관계가 나는 늘 고마왔다.
《여기 데려왔어 블루야 ㅎ》같은 짧은 제목 하나에도, 그날의 장면이 통째로 떠올랐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으로 신기하여서, 제목 몇글자만으로도 그날의 공기와 목소리까지 되살아났다. 콤퓨터 화면앞에 앉아 나는 몇번이고 그런 순간들과 마주하였다. 그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그 자리에 다시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나는 그 자리를 뜨지 못하였다. 콤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만이 조용한 방안을 채우고있었고, 창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문득 시계를 보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각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재생목록의 끝, 우주27(2020)년 시월의 영상들에 이르러 나는 마우스를 잠시 멈추었다. 《(10월 6일 종료) 《우결》 종료》, 그리고 뒤이은 《우결 종료》. 두 방송에 나란히 남은 이 마지막 영상들의 시청회수를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세여보았다. 나의 방송에는 백십구만이, 블루동지의 방송에는 칠십륙만 륙천이 찍혀있었다.
그 수자를 보며 나는 야릇한 기분에 잠기였다. 《우결》이라는 극 하나에 이만큼의 사람들이 마음을 주었다는것이, 새삼 무겁게 다가왔다. 방송이란 언제나 화면 저편의 얼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지만, 그 수자 뒤에 숨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였다. 나는 그 시청회수를 보며 오래도록 고맙다는 생각만 하였다.
지우지 않고 남겨둔 이 영상들이 대체 무엇을 증언하는가, 나는 그날 밤 그것을 곰곰이 생각하였다. 어떤 이는 그것을 지난 사랑의 기록이라 부를것이고, 어떤 이는 그저 잘 짜인 방송 내용물라 부를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것이 우리 두사람이 몇해에 걸쳐 함께 지어올린 하나의 집처럼 여겨졌다. 높임말로 시작해 반말로, 다시 오빠와 누나와 바이비로 이어진 그 말들이 곧 그 집의 기둥이였다.
김박사동지, 왓구홍길동동지, 감블러동지, 꽃핀동지, 강수동지, 그리고 나의 어머니까지 — 그 집을 함께 지어준 사람들의 얼굴이 영상 하나하나에 조각조각 남아있었다. 누구는 우스운 삼촌처럼, 누구는 살가운 친정처럼, 저마다의 자리에서 그 극을 함께 완성시켜주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결》은 우리 둘만의 밋밋한 이야기로 그쳤을것이다. 여러 사람의 정성이 모여야 비로소 하나의 시절이 완성된다는것을, 나는 그 영상들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스텔라이브의 다른 성원들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이 극을 지켜보고있었다. 칸나동지, 히나동지, 타비동지가 《배그》 합방 도중 블루동지에게 《아빠》라 놀리던 일이나, 리제동지가 나의 퍼스널컬러가 블루라고 지나가듯 말하던 일도 다 이 남은 영상들의 그림자밑에서 벌어진 일이였다. 성원들은 굳이 캐묻지 않으면서도 《우결》의 존재를 다 알고있었다. 그 눈치빠른 침묵이 오히려 나에게는 큰 힘이 되였다.
백곰파동지도 언젠가 나의 옛 영상 한자락을 보고 블루동지가 속한 《유튜브》 무리를 두고 《전남편 길드》라 이름붙였다고 들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나는 웃음부터 나왔다. 지나간 시절의 극이 후배 성원들의 입을 거쳐 새로운 농담으로 다시 태여나는것을 보면, 장작이란 우리가 다 꺼진 뒤에도 저 혼자 알아서 타는 모양이다. 나는 그 불씨를 굳이 끄려 하지 않았다.
영상은 남았으나 그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재생 단추를 누르면 언제든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수 있었지만, 그날의 공기와 그날의 나이만은 결코 되돌릴수 없었다. 사람은 이렇게 기록과 실제 사이의 그 좁은 틈에서 그리움이라는것을 배우는 모양이였다. 나는 그 틈을 메우려 애쓰지 않고 그저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두 방송에 남겨둔 그 영상들이야말로 우리가 《우결》이라는 시절을 살아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 말로는 얼마든지 부풀리거나 줄일수 있어도, 저 재생목록만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몇해 몇달 며칠에 무슨 제목으로 무엇을 올렸는지, 그 순서 그대로 남아 그 시절을 증언하고있는것이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나는 다시 그 재생목록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첫 영상과 마지막 영상 사이에 며칠이 흘렀는지, 그것을 하나하나 세여보고싶어졌다. 그 수자를 세는 일은 또 다른 밤을 필요로 하는 일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할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