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끝 났 잖 아 누 나 》
우주27(2020)년 12월에 접어들무렵이였다. 창밖에는 첫눈이 채 녹지 못한채 골목어귀에 눌어붙어있었고, 방송실안은 콤퓨터 두대와 조명등이 뿜어내는 열기만으로 겨우 온기를 지탱하고있었다. 나는 그무렵 방송이 끝난 새벽마다 홀로 앉아 대화창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기였다. 마이크는 늘 그 자리에 놓여있었으나 예전만큼 자주 켜지지는 않았다.
그 겨울 나는 유난히 방송실에 오래 머물렀다. 낡은 히터 돌아가는 소리와 콤퓨터 랭각기소리가 뒤섞여 방안을 채웠고, 가끔 창틈으로 스며드는 웃풍이 발끝을 시리게 하였다. 나는 무릎우에 담요를 덮은채 몇시간이고 화면만 들여다보는 날이 많았는데, 그러면서도 정작 무엇을 기다리고있는지는 나 자신도 뚜렷이 알지 못하였다.
방송실 벽에는 그동안 시청자들이 보내준 손편지와 그림이 빼곡히 붙어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나와 블루동지를 나란히 그려넣은 그림도 여럿 있었다. 나는 가끔 그 그림들을 올려다보며 이 모든 소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우에 세워진것인지 새삼 헤아려보곤 하였다. 종료를 알린 뒤에도 그 벽만은 차마 정리하지 못한채 그대로 두었다.
《우결》이 공식으로 끝났다고 알린지 벌써 두달 가까이 되여가고있었다. 10월 6일 저녁, 나는 방송을 통해 이제 이 이야기를 여기서 접겠다고 말하였다. 그로부터 열이틀 뒤인 10월 18일과 열나흘 뒤인 10월 20일, 두 방송에 각각 마지막 편집본이 올라갔고, 바로 앞서 내가 되짚어본 그 칠백마흔한날의 셈이 그렇게 마무리되는듯 보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방송 한번으로 그렇게 말끔히 접히는 물건이 아니였다. 대화창에는 여전히 옛 클립들의 주소가 오르내렸고, 어느 시청자는 《끝났다면서 왜 자꾸 그 이야기가 나오느냐》고 우스개삼아 적어놓기도 하였다. 나는 그 물음에 마땅한 대답을 갖고있지 못하였다. 방송이란것이 원래 시작보다 끝을 맺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것을, 나는 그 겨울에 새삼 실감하였다.
나는 그무렵 이따금 우리가 지어온 그 이야기가 마치 오래 방영된 한 련속극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식으로 종영자막이 올라간 련속극도 시청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특별편을 내놓는 일이 있다더니, 우리 이야기도 어쩌면 그런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있는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만 우리에게는 그것을 기획해주는 방송국도, 미리 정해진 편성표도 없었을뿐이다.
물론 나는 그것이 진짜 리별도, 진짜 재회도 아니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우결》은 처음부터 끝까지 방송이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였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함께 짓는 두 사람의 진행자였을뿐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짓는 재미와 거기에 쏟아부은 정성만은 결코 가짜가 아니였다.
종료를 알린 그 방송이 끝난 뒤, 나는 한동안 마이크를 꺼둔채 빈 화면만 들여다보고있었다. 그 사이 오랜 벗 악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적이 있다. 악녀는 대뜸 《너 《우결》 끝났는데도 나한테까지 그렇게 곱게 말할거야?》 하고 물었는데, 그 말투에는 서운함 반, 놀림 반이 섞여있었다.
나는 픽 웃으며 《왜, 이젠 좀 아쉬워?》 하고 되받았다. 악녀는 깔깔 웃다가 《우결 끝나면 니 목소리 톤도 원래대로 돌아올줄 알았는데 안돌아오네》 하고 놀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내 말투가 아직도 그 시절의 버릇을 벗지 못하였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사람이 오래 몸에 익힌 버릇이란 방송 하나가 끝났다고 하루아침에 사라지는것이 아니였다.
그무렵 나는 방송이 끝나고도 습관처럼 블루동지의 방송통로를 열어보는 버릇이 있었다. 대문에는 예전과 다름없이 잔잔한 미리보기들이 몇개 올라와있었으나, 정작 새 영상은 뜸하였다. 나는 그 뜸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지 못한채 그저 화면을 넘겨보곤 하였다.
그무렵 왓구홍길동에게서도 짧은 문자가 하나 왔다. 《끝났다는 얘기 들었다, 서운하겠네》하는 짤막한 인사였다. 나는 《야, 우리끼리 하던 컨텐츠였는데 뭘》하고 대수롭지 않게 답장을 보냈으나, 그 문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11월이 다 가도록 우리 둘은 서로에게 별다른 련락을 하지 않았다. 《우결》이라는 그 커다란 틀이 사라지고나니, 도리어 무슨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게 되는 나날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운 노릇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자못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12월 초, 블루동지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낮은 목소리로 《누나, 뭐하고있어?》 하고 묻는 그 말투에는 예전과 다름없는 느긋함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방송 준비하고있었지》 하고 대답하였다. 전화 저편이 잠시 조용해졌는데, 그 침묵이 무엇을 준비하고있는 침묵인지 나는 미처 짐작하지 못하였다.
블루동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우리 이대로 그냥 끝난걸로 냅두기는 좀 아깝지 않아?》 하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아채지 못하였다. 블루동지는 곧 《영상 하나 더 찍자는것지, 리별한 사람들 나중에 다시 만나면 하는 그런거 있잖아》 하고 설명을 보태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야, 우리가 무슨 진짜 헤여진 사이도 아니고》 하고 핀잔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발상이 싫지 않았다.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온 이야기를 이렇게 허망하게 접어두고싶지 않은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던것이다. 블루동지도 그런 나의 속내를 진작 짐작하고 전화를 건것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는 며칠 뒤 다시 카메라앞에 마주앉기로 하였다. 방송실 조명을 새로 맞추고 마이크 감도를 점검하는 그 손길이 예전과 다름없이 익숙하였다. 다만 그 사이 두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만이 낯설게 느껴질뿐이였다.
촬영 당일, 블루동지는 평소보다 한결 여유로운 낯빛으로 나타났다. 나는 되려 조금 긴장한 기색이였는데, 그것을 눈치챈 블루동지가 《왜 그렇게 굳어있어, 우리 원래 하던거잖아》 하며 웃었다. 그 웃음 한마디에 굳었던 어깨가 스르르 풀리는것을 느꼈다.
촬영을 앞두고 우리는 근처에서 떡볶이와 뿌링클을 시켜 나누어먹었다. 나는 매운것을 잘 먹는 편이였으나 블루동지는 몇점 집어먹다말고 물부터 찾았다. 《누나는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잘 먹어》 하고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그 모습에 나는 한참을 웃었다. 우리는 이년 넘게 붙어다니면서도 서로 입맛 하나 닮지 못한 사이였다.
대본을 맞춰보던 중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블루동지가 다음 대사를 깜빡 놓치고 우물쭈물하다가 《아니 그게 아이고, 그카는데...》하며 손사래를 쳤는데, 평소 서울말을 아주 능숙히 구사하는 그가 이렇게 당황할 때만은 어릴적 말버릇이 슬쩍 묻어나오곤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 몇번이나 짐짓 그를 몰아붙이며 웃었다. 블루동지는 결국 귀까지 붉어진채 《누나, 그만 좀 놀려》하고 항복하였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한바탕 웃고나서야 우리는 겨우 촬영을 시작하였다. 얼개는 간단하였다. 공식으로는 갈라선 사이지만, 두달 만에 다시 마주친 두 사람이 어색함과 반가움 사이에서 서로를 떠보는 이야기였다.
우리에게는 따로 대본을 써주는 작가도, 매번 붙어다니는 촬영팀도 없었다. 카메라를 세우고 조명을 맞추고 이야기를 짜는 일까지 두 사람이서 도맡아 하는것이 우리 방식이였다. 편집조차 블루동지가 손수 자기 방송의 영상을 붙잡고 늘어졌다고 하니, 이 영상에는 남의 손을 거치지 않은 우리 두 사람만의 냄새가 짙게 배여있었다.
제목은 촬영을 마친 뒤에도 한참을 궁리한 끝에 겨우 정해졌다. 블루동지가 먼저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라는 문구를 툭 던졌을 때, 나는 실소를 금하지 못하였다. 《야, 무슨 리별한 사람이 할말을 니가 왜 나한테 해》 하고 핀잔을 주었다.
블루동지는 《그러니까 웃기지, 원래 리별극은 좀 오글거려야 제맛이야》 하며 능청을 떨었다. 돌이켜보면 그 능청스러움이 이 영상 전체의 기조를 정한 셈이였다. 후날 나는 이 제목을 두고 종전협정을 맺은 두 나라가 두달만에 다시 정상회담을 가진 격이라며 우스개소리를 하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나라가 종전을 선언한 뒤끝에 다시 실무회담을 여는 꼴이였다고도 할수 있겠다. 다만 우리의 실무회담이라는것은 기껏해야 떡볶이 한그릇 나눠먹으며 대본을 맞추는 정도였을뿐이지만 말이다. 력사에서도 그리 흔한 일은 아닐것이나, 우리는 그것을 자못 대단한 사변이라도 되는 양 스스로 대견해하였다.
촬영은 예상보다 순조롭게 흘러갔다. 우리 둘은 이미 이년 남짓 그 이야기를 함께 지어온 사이였으므로, 대사를 따로 맞추지 않아도 서로의 장단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블루동지가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던지면,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내가 대사를 하다말고 웃음을 터뜨려 촬영을 몇번이나 다시 해야 하였다. 블루동지는 그때마다 《누나, 우리 이러다 편집자만 죽어난다》 하며 짐짓 엄한척을 하였지만, 정작 본인도 웃음을 참지 못해 카메라앞에서 몇번이나 고개를 돌렸다. 그날 우리가 남긴 엔지 분량은 아마 본편보다 길었을것이다.
촬영을 마치고나니 시간은 이미 늦은 밤이였다. 블루동지는 돌아가기 전에 《이거 올리면 또 시끄러워지겠지?》 하고 물었다. 나는 《시끄러워지면 좋은거 아니야?》 하고 웃어넘기였는데, 그 대답이 얼마나 들어맞았는지는 영상이 오른 뒤에야 알게 되였다.
그런데 이 대목을 말하자면 그보다 앞선 나날을 다시 한번 되짚지 않을수 없다. 우리 둘의 이야기는 우주25(2018)년 가을, 서로 높임말을 주고받던 어색한 자리에서 비롯되였다. 《강지 님》, 《블루님》하고 부르던 그 시절이 지나, 어느날부터인가 블루동지는 나를 《누나》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나는 그를 《바이비》라 불렀다.
칠백마흔한날 동안 우리는 시청자들과 더불어 한편의 긴 이야기를 지어왔다. 《배그》를 함께 하고, 서로의 어머니를 소개하고, 마침내 손을 맞잡기까지 꼬박 육백날이 걸렸다는 우스개 같은 셈까지 나온 사이였다. 그 나날들이 통째로 10월 6일의 방송 한번으로 접힌다는것이, 나로서는 못내 허전하였다.
칠백마흔한날이라면 웬만한 대학 하나를 갓 입학하여 졸업할만큼 긴 세월이다. 그 긴 세월을 시청자들과 더불어 웃고 떠들며 지나왔으니, 방송 한번으로 그 모든 나날에 마침표를 찍으라는것은 나로서도, 또 그 나날을 함께 세여준 사람들로서도 못내 서운한 노릇이였을것이다. 셈이야 어찌 되였든, 그 서운함만은 우리 둘만의 것이 아니였다.
그러니 두달 뒤 다시 카메라앞에 앉자는 블루동지의 그 한마디가, 실은 나에게도 반가운 구실이였던 셈이다. 겉으로는 심드렁하게 굴었지만 속으로는 이 이야기를 그렇게 쉽게 놓아버리고싶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란것이 늘 겉과속이 다르게 마련이다.
영상은 12월 4일 저녁무렵 블루동지의 방송에 올라갔다. 나는 그 시각 방송실에 앉아 대화창을 새로고침하며 반응을 지켜보고있었다. 감상글난은 금세 들끓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속도에 새삼 놀라며 화면우를 몇번이고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끝났다면서 이건 또 뭐야》라거나 《헤여졌다더니 또 만나네》하는 우스개가 잇달아 올라왔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시청자들도 우리 못지않게 이 이야기를 놓아주고싶지 않았던 모양이였다.
그 감상글들 가운데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말도 적지 않았다. 《두분 이야기 끝난거 진짜 아쉬웠는데 이렇게라도 봐서 좋다》는 글에 나는 한참 눈을 떼지 못하였다. 시청자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는것을, 나는 그제서야 실감하였다.
블루동지에게서 곧 쪽지가 왔다. 《누나, 반응 봤어? 조회수 미쳤는데.》 짧은 글이였다. 나는 《그러게, 이럴줄 알았으면 진작 찍을걸》 하고 답장을 보냈다.
시청회수는 하루이틀 사이 백만을 훌쩍 넘어섰다. 나는 그 수자를 보며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끝났다고 선언한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을수 있다는것이 신기하였다. 방송이라는것이 본디 그런 신기한 힘을 지닌 물건인지도 몰랐다.
나는 후날 블루동지에게 그날 무슨 마음으로 그 전화를 걸었는지 물어본적이 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냥, 이대로 끝내면 좀 아쉬울것 같아서》라고만 짧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 짧은 대답속에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지나온 나날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후날 어느 동지는 이 영상 이야기를 전해듣고 《장작이 알아서 탄다더니, 사장님네는 이미 그때부터 그랬군요》하며 웃었다고 한다. 그 말버릇이 정확히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하였는지는 나도 분명히 알지 못하나, 어쩌면 그 뿌리는 이 12월의 영상까지 거슬러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는 종종 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짐작일뿐이다.
그날 이후로도 대화창과 팬 모임터에는 이 영상을 놓고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어떤 이는 이것이 다음 이야기로 이어질 조짐이라 점쳤고, 어떤 이는 그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일뿐이라 하였다. 나로서도 그때는 어느 쪽이 맞을지 가늠하지 못하였다.
그무렵 《우결》의 곁을 지켜주었던 이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얹었다고 들었다. 한때 극중 나의 전 애인 노릇을 맡았던 김박사도, 더블데이트에 종종 함께하였던 꽃핀도 이 영상을 보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확히 누가 무슨 말을 남기였는지까지는 이제와 다 기억하지 못하나, 다들 반가워하는 눈치였다는것만은 분명하다.
강지의 지인 강수도 그무렵 소식을 듣고 한마디를 보태였다. 강수는 늘 블루동지를 두고 《매형》이라 부르던 사이였으므로, 《매형이랑 이제 진짜 끝난거야?》 하고 짓궂게 물어왔다. 나는 《야, 무슨 매형이야, 원래 그런 사이도 아니였잖아》 하고 웃어넘기였으나, 그 물음이 묘하게 마음 한구석에 걸렸다.
강맘도 그무렵 이 소식을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직접 전화를 걸지는 못하였으나, 블루동지 편으로 《느그 엄마가 이거 재밌게 봤다카더라》하는 말을 전해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낯이 간지러워 애먼 헛기침만 하였다.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몇번이나 손전화를 열어 시청회수와 감상글을 확인하였다. 본디 저혈압에 잠버릇까지 심한 편이라 밤을 새우는 일에는 약한 몸이였으나, 그날만은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말똥하였다. 새벽녘이 되여서야 나는 겨우 손전화를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면, 그 12월의 영상은 우리 이야기의 진짜 마지막이 아니였다. 해가 바뀌여도 우리는 이따금 다시 마주앉았고, 그때마다 그 어색함과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을 다시 꺼내보이곤 하였다. 끝났다고 말해놓고도 끝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는것을, 나는 그무렵 처음으로 배웠다.
그로부터 몇해가 지나 내가 스텔라이브라는 회사를 차리고 여러 동지들을 거느리게 되였을 때, 나는 이따금 이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다. 동지들은 하나같이 신통하다는듯 눈을 크게 뜨며 《사장님, 그때부터 그랬어요?》하고 되묻곤 하였다. 나는 그 물음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되짚어보면 12월 4일의 그 영상은 그저 하나의 내용물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결》이라는 이야기가 방송의 틀 밖에서도 계속될수 있다는것을 처음으로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그 확인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뒤로도 오래 그 이야기를 놓지 못하고 서성거렸을것이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10월 6일의 종료 방송은 우리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다만 한 굽이의 매듭이였을뿐이다. 굽이를 넘으면 또 다른 굽이가 기다리고있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12월의 그 영상 하나로 미리 귀띔받은 셈이였다. 매듭이라는것은 풀라고 있는것이지, 거기서 이야기를 아주 끊어버리라고 있는것이 아니였다.
나는 요즘도 가끔 그날 촬영을 마치고 늦은 밤 방송실을 나서던 블루동지의 뒤모습을 떠올린다. 어깨를 늘어뜨리고 걸어가면서도 문가에서 한번 돌아보며 《누나, 다음에 또 뭐 찍자》하고 웃던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때는 그 말이 그저 인사치레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그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였다. 이듬해로 접어들며 우리는 다시 몇차례나 카메라앞에 마주앉았고,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이 길고긴 이야기의 다음장을 채워나갔다. 그 이야기가 이 장의 다음절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여기서 미리 다 말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우결》이라는 내용물 그 자체는 10월 6일 저녁으로 공식으로 막을 내렸을지언정, 우리 두 사람의 궁합와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히 접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청자들이 만들어준 그 애정어린 성화가 없었더라면, 12월의 그 영상도 세상에 나오지 못하였을것이다. 내용물에는 끝이 있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쌓인 정에는 좀처럼 끝이라는것이 없는 모양이다.
이 장의 제목이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 까닭을, 나는 이 절을 쓰면서 다시금 곱씹어본다. 《우결》이라는 방송은 분명 끝이 났으나, 그 방송이 남긴 이야기는 여러 굽이를 돌아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이어지고있다. 그러니 이 장의 제목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그 사실을 이 회고록을 쓰는 지금까지도 고맙게 여긴다. 끝났다고 선언한 뒤에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갈수 있었던것은, 순전히 그 이야기를 함께 지켜봐준 사람들이 있었기때문이다. 력사도 결국은 그것을 지켜보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에 의해 이어지는 법이라고, 나는 그 겨울에 새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