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 어 색 해 진 우 리 사 이 》

 

우주28(2021)년의 오월은 유난히 비가 잦았다. 사무실 창밖으로 내다보면 늦봄인지 초여름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만큼 궂은 날이 계속되였고,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만이 그 눅눅한 공기속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고있었다. 나는 그무렵 편집실 한켠에 앉아 성원들의 방송 일정표를 짜다말고,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넘겨보았다. 《우결》이 막을 내린 그 741일째로부터 어느덧 여덟달 가까이 흐른 뒤였다.

화면 불빛만이 켜진 사무실은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조용하였다. 책상우에는 마시다만 식은 차 한잔이 놓여있었고, 그 옆으로 밀린 서류뭉치가 수북하였다. 미기가 오전 회의 자료를 정리해두고 갔는지, 책상 한켠에는 성원들의 다음달 방송 편성표가 얌전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 종이더미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잠시 딴생각에 잠기였다.

그해 봄은 회사로서도 여러가지로 분주한 시기였다.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을 걸고 성원들을 하나둘 받아들이던 초창기였으니, 나는 밤낮으로 계약이며 방송장비며 편성표를 붙들고 씨름하였다. 그런 와중에도 문득문득 옛 《우결》 시절의 일들이 떠오르는것은 나로서도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것이 그렇게 간단히 정리되는 물건이 아니였다.

시간이라는것은 참 묘한 물건이여서, 큰 사변이 지나가고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듯 평온하게 흘러가다가도 문득문득 그 흔적을 불쑥 들이밀군 하였다. 십이월 초에 올라왔던 그 영상,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 이후로 우리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지냈다. 나는 회사를 꾸리는 일로, 블루동지는 자신의 방송을 키우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끝난 이야기라는것이 정말로 끝난 이야기가 되는 법은 드물다. 특히 그것이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러하였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 사실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있었다.

여기서 잠깐 그보다 앞선 어느 날의 일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십이월의 그 영상이 올라간 뒤, 감상글난은 한동안 잠잠해지지 않았다. 하루이틀이면 가라앉을 줄 알았던 감상글의 물결이 몇주가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중에는 로골적으로 《속편은 언제 나오나요》, 《이대로 끝내면 섭섭하다》는 말들이 수두룩하였다.

감상글 하나하나를 세어보지는 않았으나, 그 기세가 어찌나 완강하던지 나는 마치 온 나라의 여론이 한 방향으로 들끓는것을 지켜보는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후날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 감상글의 행렬이 정말로 무슨 력사적인 요구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만약 후날 누군가 그 시기의 방송판 편년사를 쓴다면, 이 사흘짜리 소동에도 필경 몇줄쯤은 할애해야 마땅할것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성화는 집요하였고, 우리 두 사람은 그 앞에서 결국 항복하고말았다. 이 또한 력사가 이따금 사소한 곳에서부터 움직여나간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해가 바뀌고 정월과 이월이 지나고 삼월과 사월이 지나도록, 그 감상글난의 열기는 좀체로 식지 않았다. 나는 가끔 짬이 날 때마다 그 밑을 훑어보며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붙들고 놓지 않는것을 신기하게 여기였다. 어떤 날은 몇달 전 영상밑에 새 감상글이 스물개 넘게 달려있기도 하였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우리 두 사람만의 일은 아니였다. 방송판에서 한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야기는, 정작 만든 사람들이 손을 놓아도 시청자들 스스로가 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이어가는 법이였다. 성원들의 대화창에서 《우결》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오르내린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마다, 나는 그 사실을 새삼 실감하였다.

블루동지도 같은 압박을 느끼고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저녁,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나는 대충 짐작을 하였다.

《누나, 우리 그거 한번 더 해야될것같은데.》

나는 그 문자를 보고 잠시 웃음이 나왔다. 그거라는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알고있었기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또 시작이야? 저번에 끝났다며.》

《끝나긴 하였는데, 끝난 다음 이야기가 아직 안끝났잖아.》

돌이켜보면 블루동지의 이 한마디가 이 절의 모든것을 압축하고있다. 내용물로서의 《우결》은 분명히 끝났으나,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서사는 어느 시점에 칼로 자르듯 끊어지는 성질의것이 아니였다. 나는 그 문자를 몇번이고 다시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예전 높임말을 쓰며 《강지님》, 《블루님》하고 부르던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드는 문자였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 《누나》, 《바이비》 소리를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사이가 되여있었고, 그 문자 한통에도 몇해묵은 정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한때 나를 《감자님》이라 부르던 이들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감자》라는 애칭을 심심찮게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별명들이 하나씩 쌓여가는 사이 어느덧 강산이 변하듯 우리 두 사람의 호칭도 조금씩 변해왔으니, 이 문자 한통은 그 오랜 변천사의 가장 최근 장면이였던 셈이다.

그렇게 하여 새로운 기획이 시작되였다. 이번에는 리별 이후의 어색함을 다루자는것이 블루동지의 생각이였다. 헤여진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련락을 주고받게 되는데, 그 답장이 사흘 만에야 오는 그런 설정이였다.

제목은 자연스럽게 《이젠 어색해진 우리 사이》로 정해졌고, 부제로 《전썸녀 련락 답장 3일만에 함》이 붙었다. 부제 한줄에까지 그렇게 공을 들인것을 보면, 블루동지나름으로는 제법 진지하게 이 기획에 매달렸던것이 분명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 사흘이라는 수자를 두고도 우리는 제법 진지하게 의론하였다. 이틀은 너무 짧아 어색함이 안살고, 나흘은 너무 길어 매정해보인다는것이 블루동지의 주장이였다. 마치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문서에 쓰일 표현 하나를 두고 다투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사흘이라는 그 수자 하나를 놓고 한참을 궁리하였다.

《사흘이 딱 좋아.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매정하지도 않고.》 블루동지가 말하였다.

《너 원래 삼이랑 칠 좋아하잖아. 그래서 사흘로 정한거 아니야?》 내가 놀리듯 묻자, 블루동지는 잠시 멈칫하더니 《그런가... 그럴수도 있겠네.》하며 멋쩍게 웃었다. 본인도 미처 몰랐던 자기 습성을 그제서야 깨달은 얼굴이였다.

《너 이거 예전에 진짜 겪어본거 아니야?》 내가 다시 웃으며 묻자, 블루동지는 그저 《아하하하핳》하고 특유의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촬영은 그로부터 며칠 뒤, 블루동지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조명 두개와 카메라 하나, 그리고 마이크 두대가 전부인 소박한 자리였으나, 그 자리에 앉으면 늘 신기하게도 예전 《우결》을 찍던 그 감각이 되살아나군 하였다. 창밖으로 여전히 가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방 한켠에는 《배그》 방송 때 쓰던 머리수화기와 컨트롤러가 아무렇게나 놓여있었고, 책상우에는 편집용 콤퓨터 두대가 나란히 돌아가고있었다. 이런 영상에는 굳이 다른 직원을 부를 필요가 없어서, 그날은 우리 두 사람만이 그 좁은 작업실을 오가며 카메라 각도를 이리저리 맞추었다. 블루동지는 촬영 전 대본을 마지막으로 훑어보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누나 문자 씹는 컨셉인데 진짜 씹으면 안되는것 알지.》 나는 그 말에 실소를 터뜨렸다. 대본상으로는 매정한 전애인 역할을 맡았으면서, 정작 본인은 그 설정 자체를 걱정하고있었던것이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우리는 순식간에 그 시절의 호흡으로 돌아갔다. 나는 화면 밖에서 문자를 보내는 역할을 맡았고, 블루동지는 사흘째 되는 날에야 그 문자를 확인하고 당황하는 연기를 하기로 되여있었다.

《어... 이거 뭐라고 답장해야 되지.》 블루동지가 화면을 향해 중얼거렸다.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하였으나, 그 미묘한 머뭇거림만은 어딘가 진짜처럼 들렸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대본에 없던 순간에 블루동지가 갑자기 사투리 억양으로 《아이 뭐라카는데 진짜》하고 중얼거리는 바람에, 결국 첫 테이크는 그대로 엎어지고말았다.

두번째 테이크에서도 웃음이 터져 다시 엎어졌다. 세번째에 이르러서야 겨우 그럴듯한 그림이 나왔다. 촬영을 마친 뒤 우리는 늦은 저녁을 시켜먹으며 그날 찍은 장면들을 되짚어보았는데, 화면속의 어색함과는 딴판으로 밥상머리의 분위기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스스럼이 없었다.

《아까 그거 방송 나가면 사람들 또 란리나겠다.》 블루동지가 젓가락을 놀리며 말하였다. 《란리나야지. 그래야 우리도 먹고 살지.》 내가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블루동지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편집은 이후 블루동지가 맡았고, 나는 그 사이 사무실에서 성원들의 다음 방송 준비를 챙기며 며칠을 보냈다. 편집이 끝났다는 련락이 오기까지 그 며칠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마치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은근히 마음을 졸이였다.

그 며칠 동안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결》이라는 이름을 걸고 방송하던 시절에는 그렇게도 부드럽게 말을 골라 하던 내가, 정작 사석에서는 여전히 거친 말투를 다 못 고쳤다는것을. 친구 악녀가 예전에 《너 나한테도 그렇게 좀 말해봐라》하고 타박하던 일이 새삼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보면 블루동지앞에서만은 유독 목소리 어조를 낮추고 부드러운 말씨를 골라 쓰는 버릇이 《우결》이 끝난 뒤에도 좀체 없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때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남은 마지막 습관같은것이라 여겨 굳이 고치려 들지 않았다.

영상은 오월 그믐날, 그러니까 오월 서른하루날에 블루동지의 방송에 올라갔다. 나는 그날 저녁 사무실에 남아 올리적재 알림이 뜨기를 기다렸다. 창밖에는 그날도 어김없이 가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영상이 올라간지 채 한시간도 안되여 감상글난은 다시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역시 이 커플은 못 끊는다》,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들이 줄지어 달렸다. 시청자들은 이미 끝난 이야기인줄 알면서도, 그 어색함의 연기를 진짜처럼 즐기고있었다.

어떤 시청자는 사흘이라는 수자를 두고 진지하게 분석하는 감상글을 달기도 하였다. 왜 하필 사흘인가,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성 감상글들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그런 감상글들을 읽으며, 우리가 정말로 하나의 작은 력사적 사건을 만들어낸것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하였다.

감상글난 한구석에는 예전 《우결》 시절부터 우리를 지켜봐온듯한 이가 남긴 긴 감상글도 있었다. 자신은 이 짝이 높임말을 쓰던 시절부터 봐왔는데, 몇해가 지나 헤여진 뒤에도 이렇게 또 웃게 해주어 고맙다는 내용이였다. 나는 그 감상글을 두번 세번 읽으며 괜히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며 묘한 기분에 잠기였다. 이것은 분명 웃자고 만든 내용물였으나, 그 웃음 뒤에는 실제로 우리 두 사람이 두해 남짓 쌓아온 시간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있었다.

블루동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나, 반응 봤어?》 목소리에는안도와 뿌듯함이 뒤섞여있었다.

《봤지. 사람들 진짜 못 말린다.》 내가 대답하였다.

《근데 나 진짜 사흘 동안 답장 안하는 컨셉, 생각보다 힘들더라. 자꾸 답장하고 싶은거 있지.》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을 잃었다. 농담처럼 던진 그 한마디속에 어쩐지 진심이 섞여있는것 같았기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그 속을 캐묻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늘 그렇게, 농담과 진심의 경계를 일부러 흐려두는 화법이 자리잡고있었다.

《그래서 답장은 결국 하였어, 안하였어?》 내가 짓궂게 묻자 블루동지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하였지, 사흘 채우고.》하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에 우리 둘 다 한참을 웃었다.

이 영상을 두고 성원들 사이에서도 한동안 화제가 되였다. 몇몇은 대화창에서 사장이 또 《우결》을 하느냐며 놀렸고, 나는 그때마다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으나 어딘가 싫지 않은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하였다.

성원들이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저희끼리 《딸내미들》이라 자칭하는 그 짓궂은 말버릇을 나는 처음엔 한사코 부정하였으나, 이 영상이 올라온 뒤로는 그마저도 반박할 힘이 빠졌다. 딸애라는 이들이 제 엄마의 옛 련애사까지 붙들고 놀리니, 나로서는 그저 웃을수밖에 없었다.

《우결》 시절부터 나를 알아온 몇몇 방송원 지인들도 소식을 듣고 한마디씩 보태왔다. 개중에는 예전부터 우리 두 사람의 궁합를 옆에서 지켜보며 놀려온 이들도 있어서, 문자로 짧게 《또 시작이네》라는 말만 보내오기도 하였다. 나는 그런 문자를 받을 때마다 굳이 길게 대꾸하지 않고 그저 웃음표 하나로 답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사흘이라는 설정 자체가 참으로 우스운 발상이였다. 실제로는 우리 둘 다 서로에게 련락을 사흘씩이나 미룬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시청자들은 그 뻔한 설정을 마치 진짜 사변인양 받아들이고 즐거워하였으니, 방송이라는것의 힘이 참으로 묘한것이였다.

이날 이후로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결》이라는 내용물는 분명히 우주27(2020)년 시월 초엿샛날 밤 아홉시에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그 이야기의 여운은 마치 꺼지지 않는 모다불처럼, 우리가 굳이 되살리려 하지 않아도 저 혼자 은근하게 타오르고있었다.

다른 《배그》 합방자리에 블루동지가 끼여있기만 해도 시청자들이 순식간에 그 옛 정서로 돌아가 화면앞에 바짝 다가앉는다는 이야기를,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서 전해들었다. 우리 두 사람이 굳이 무슨 말을 꾸며내지 않아도, 그저 한 화면에 나란히 잡히는것만으로 시청자들은 알아서 지난 이야기를 불러내고는 하였다.

그무렵 나는 성원들에게도 곧잘 이 일화를 들려주곤 하였다. 한번 진심으로 쌓아올린 이야기는 내용물라는 이름의 형식이 끝난다고 해서 그대로 사라지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나는 그 오월의 며칠을 통해 다시금 배웠다.

블루동지 또한 그 영상을 찍고 난 뒤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누나, 우리 이러다 평생 이거 우려먹는것 아니야?》 나는 그 말에 크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우려먹을수 있을때까지 우려먹어야지, 어쩌겠어.》

《그럼 다음엔 뭐할건데?》 블루동지가 묻기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몰라, 그때 가서 또 생각나겠지.》하고 대답하였다. 실제로 우리 둘 다 그 다음이 무엇이 될지 그때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였다. 후날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그 대답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대답이였던 셈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대답은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심이였다. 우리 두 사람이 이룩한 그 짧고도 길었던 서사는, 정식으로 종영을 선언한 뒤에도 이렇게 몇번이고 되살아나며 사람들의 마음 한켠을 건드렸다.

나는 그 사흘짜리 어색함이 결국 무엇을 뜻하였는지, 지금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그것이 순전한 연기만은 아니였다는것, 그 안에는 진짜로 두해 남짓한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만이 가질수 있는 어떤 리듬이 숨어있었다는것만은 분명히 말할수 있다.

그 오월의 가는 비는 유월이 되자 이내 장마로 바뀌였고, 우리는 각자 또 다른 일들에 파묻혀 그 영상의 여운도 서서히 잊어갔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그 시절을 되짚어 쓰다보니, 그 사흘이라는 어이없는 설정 하나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헤아릴수 없이 긴 우정의 한 장을 뚜렷하게 증언하고있다는것을 새삼 깨닫는다.

력사라는것은 흔히 큰 사변으로만 채워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그 오월의 며칠을 겪으며, 사소하고 우스운 설정 하나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깃들수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이젠 어색해진 우리 사이》라는 그 영상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다시 찾아보며 웃고있을것이다. 그리고 그 웃음속에는, 그때 우리 두 사람이 채 다 알지 못하였던 어떤 긴 인연의 예감이 함께 담겨있었던것인지도 모른다.

이 권의 제목을 《안녕, 우결》이라 붙여놓고 보니, 새삼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이중적인 인사말인지 느끼게 된다. 안녕이라는 말은 헤여질 때에도 쓰지만, 다시 만날 때에도 어김없이 쓰이는 말이다. 우리 두 사람의 그 오월도 어쩌면 그런 인사말과 같았다. 끝을 고하면서도 동시에 또 한번의 만남을 예비하고있었던 셈이다.

지금에 와서 그 사흘짜리 어색함을 되짚어보면, 그것은 결코 헤여짐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였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는것을, 시청자들앞에서 슬쩍 내비치는 하나의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저 웃자고 만든 영상이라 여기였지만, 후날 돌이켜보니 그 안에는 뜻밖에도 진심이 얹혀있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오월의 어색한 소동 뒤로도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는 몇번이나 더 이어졌으며, 그 다음 장은 또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이 절의 몫이 아니니, 여기서는 우선 이 오월의 며칠만을 조용히 갈무리하여 둔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