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새 문 법
그림으로 선 다음날 아침에도 창밖 풍경은 어제와 다름이 없었다. 우주28(2021)년 유월의 해는 벌써 이르게 떠올라 방송실 창틀을 부옇게 밝히고있었고, 밤새 식지 않은 콤퓨터 본체는 낮은 숨소리 같은 랭각기소리를 내고있었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화면속에서 나 대신 눈을 깜빡이고 웃던 그 그림을 다시 켜보았다. 익숙한 내 얼굴 대신 낯선 그림이 나를 마주보고있다는 사실이 하루가 지나도록 실감나지 않았다.
화면 한켠에는 밤사이 그림을 맡은 업체에서 보내온 갱신파일이 도착해있었다. 눈썹 몇개의 각도를 더 손보았다는 짧은 글이 붙어있었는데, 그 몇줄이 마치 어느 진단서처럼 낯설게 읽히였다.
나는 그 파일을 열어 그림 속 눈썹이 정말 미세하게 달라진것을 확인하고는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의 표정을 고치는 일과 그림의 표정을 고치는 일이 이렇게 다르면서도 닮은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치였다.
방송을 준비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거울앞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조명의 각도를 맞추었으나, 이제는 얼굴잡이 카메라앞에 앉아 눈과 입의 움직임이 그림에 제대로 옮겨지는지부터 확인하여야 하였다.
추적이라 부르는 이 작업은 마치 그림에게 내 표정을 하나하나 새로 가르치는 일과 같았다. 웃을 때는 입꼬리가 이만큼 올라가야 하고 놀랄 때는 눈이 이만큼 커져야 한다는것을, 나는 나 자신에게서 뽑아내여 그림에게 옮겨주어야 하였다.
조정실 문이 열리고 오른팔 미기가 들어왔다. 그는 화면에 뜬 내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대뜸 물었다.
《사장님, 눈 세번 깜빡이는것 한번 해보세요.》
나는 얼결에 눈을 세번 깜빡였고, 화면 속 그림도 따라 눈을 세번 깜빡였다. 미기는 그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다.
《됩니다! 잘 따라와요!》 그 한마디에 나는 괜히 뿌듯해져서 몇번을 더 깜빡여보았다. 사람이 사람 흉내를 내는 그림을 보고 이렇게 기뻐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 순간만은 정말 새 세계의 문턱을 넘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새 세계라고 해서 처음부터 순탄한것은 아니였다. 추적은 종종 튀였다. 웃다가도 갑자기 그림의 눈이 한쪽만 커지거나, 고개를 돌리면 그림의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대화창은 즉시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물어뜯었다. 《사장님 얼굴 고장났어요》, 《지금 그거 클립감인데》 하는 글들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나는 그 반응에 웃음이 터져 다시 추적이 튀는 악순환을 겪기도 하였다.
미기는 그럴 때마다 조정실 유리 너머에서 장비 탓을 하였다. 《카메라를 좀더 좋은걸로 바꿔야 할것 같아요.》 나는 장부를 떠올리며 잠시 망설였는데, 그림 하나를 세우는 일에 이렇게까지 돈이 들어갈줄은 시작하기 전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였다.
결국 나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새 카메라를 들이기로 하였다. 미기는 주문을 넣으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얼굴 하나 접었더니 장비값이 더 나가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실없이 웃었지만, 속으로는 새 세계의 문법에는 새로운 값이 매겨져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무렵의 방송은 완성된 무엇이 아니라 하나의 실험장에 가까웠다. 나도 시청자도 이 새로운 그림이 어디까지 사람을 닮을수 있는지, 또 어디서부터 그림다움을 지켜야 하는지 함께 가늠해나가는 자리였던것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문법을 말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실사 방송을 접기로 마음먹기 전, 나는 밤늦게까지 혼자 다른 나라의 그림방송들을 찾아보고는 하였다. 화면 속 그림이 실시간으로 웃고 놀라고 화를 내는것을 보면서, 저것이 정말 사람의 방송과 같은 무게를 가질수 있을가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런 그림방송 하나를 밤새 지켜보다가, 화면 속 그림이 아니라 그 그림을 지켜보는 대화창의 열기에 먼저 놀라고말았다. 사람들은 얼굴 하나 없는 그림에게도 웃고 울고 화를 내며 진심으로 반응하고있었다.
그무렵 나는 저혈압에 잠버릇까지 심한 몸으로 밤을 새워가며 그런 화면들을 들여다보았다. 아침에는 늘 몸이 무거워 굼뜨게 일어나던 나였지만, 그 그림방송들을 볼 때만은 이상하게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는 하였다.
그 열기를 보고나서 나는 미기에게 넌지시 그 화면을 보여주며 물은적이 있었다. 《이거, 우리도 한번 해볼만하지 않을가.》
미기는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쉽지는 않을것 같은데... 그래도 사장님이라면.》 그 뒷말은 흐지부지 끝났지만 나는 그 흐지부지함속에서 오히려 해볼만하다는 대답을 들은 셈이라 여기였다.
다시 그 유월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나는 매일 조금씩 이 새로운 문법에 익숙해져갔다. 얼굴을 가린것이 아니라 얼굴 대신 다른 언어를 얻은것이라는 생각이 그 즈음부터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얼굴은 어쩔수 없이 세월을 따라 변하지만, 그림은 업체에 파일 하나만 새로 보내면 다시 젊어지고 다시 웃을수 있었다. 그림은 늙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무렵 나에게는 뜻밖의 위안이 되였다.
혹자는 후날 이날을 두고 내가 로화를 막는 재주를 얻었다고 우스개를 하였는데, 나로서는 그저 눈썹 각도 하나를 고친것뿐이였으니 그런 거창한 표현을 들을 때마다 실소를 금할수 없었다.
새로운 그림 언어에는 표정 말고도 여러가지가 딸려있었다. 즉석에서 띄울수 있는 스탬프, 대사에 맞추어 입을 벙긋거리는 립싱크, 놀랐을 때 그림 머리우로 떠오르는 작은 부호까지, 사람의 얼굴 하나로는 다 담지 못하던 것들이 그림속에서는 새로 태여났다.
대화창의 반응도 예전과는 결이 달라졌다. 실사 방송 때에는 내 표정 하나하나에 반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림이 짓는 표정과 그 표정 뒤에 숨은 내 목소리를 함께 견주어보며 반응하였다.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표정이 다르니까 더 웃기다》 하는 글이 자주 올라왔다.
그러던 어느 방송에서는 후원이 유난히 많이 몰리던 참에 하필 추적이 통째로 멈추어버린적이 있었다. 그림은 웃는 표정 그대로 굳어버렸고, 나는 마이크로 연신 《잠깐만요, 잠깐만》을 외치며 프로그람을 다시 켰다.
그 몇초 사이 대화창은 오히려 축제 분위기였다. 《사장님 얼굴 잠갔다》, 《굳은 표정도 귀엽다》 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그 반응에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새 세계에서는 사고조차 하나의 구경거리가 된다는것을 그날 톡톡히 배운 셈이였다.
후원창에도 새로운 말들이 오갔다. 《그림 되신거 축하드려요, 그래도 목소리는 그대로라 다행이에요.》 나는 그 글을 읽어주며 정말 다행이라는 말이 이렇게 여러 뜻을 품을수 있는가 생각하였다.
어느 저녁에는 블루동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인사도 없이 대뜸 물었다.
《누나, 진짜 그림 되였다며?》
《어. 이제 얼굴 안 보여줘.》 나는 심상하게 대답하였다.
《에이... 아깝다카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다가 스스로도 놀란듯 잠시 말을 끊었다.
《너 지금 사투리 나왔다?》 내가 웃으며 놀리자 그는 황급히 둘러댔다. 《아니라니까, 헛들은거야.》
《아깝다고 해놓고 아니라니, 그럼 아까운거 맞네.》 나는 그렇게 몰아붙였고, 그는 한참을 웃다가 결국 인정하였다. 《그래, 아깝긴 한데... 그래도 그림도 나쁘지 않네. 개꿀이네 그럼, 이제 안 늙어보이겠다.》
그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아까와 개꿀 사이를 오가는 그 반응이야말로 그때 우리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것 같았기때문이다.
《너도 한번 해볼래?》 내가 농담삼아 물으니 그는 곧바로 손사래를 치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나는 아직 얼굴로 벌어먹고 살아야지.》
그 대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뒤, 나는 한동안 화면 속 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림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마우스를 움직일 때마다 눈을 깜빡이며 나를 마주보고있었다.
그 새로운 문법에는 잃는것도 있었다. 실사 방송 시절에는 카메라앞에서 무심코 짓던 표정 하나하나가 다 방송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추적이 잡아주지 못하는 미세한 표정들은 그냥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가령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짓던 애매한 웃음이나, 말이 막힐 때 무의식중에 찌푸리던 미간 같은것들은 그림에 다 옮겨지지 않았다. 나는 그런 표정들이 사라진 자리를 다른 방식으로, 이를테면 손짓이나 목소리의 높낮이로 메꾸는 법을 새로 익혀야 하였다.
반대로 얻는것도 있었다. 실사 시절에는 신경써야 하였던 방안의 조도나 화장, 그날그날의 얼굴 상태 같은것들에서 자유로워졌다. 몸이 고단한 날에도 그림만은 늘 같은 낯빛으로 웃어주었다.
어느 날은 감기로 목이 잔뜩 잠긴 채로 방송을 켰는데, 대화창에서는 오히려 《오늘 표정 왤케 좋아요》 하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그 반응을 보며 그림과 목소리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 우스운 결과를 낳을수도 있는가 하고 혼자 웃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나에게는 강형이니 15강지니 감자니 강공지주니 하는 별명이 시절마다 따라붙었다. 그런데 그림앞에서는 그런 지난 별명들이 하나도 소용닿지 않았다. 그림에게는 아직 아무 별명도 붙어있지 않았고, 그 텅 빈 자리가 나에게는 되레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세계에는 새로운 말들도 따라왔다. 사람들은 그림 속 나를 두고 《이차원 사장님》이라 부르기도 하였고, 실사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원본》이라는 말을 농담삼아 쓰기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원본과 그림 사이에 놓인 나 자신을 새삼 돌아보게 되였다. 원본이 그림을 조종하는것인지, 그림이 원본의 어떤 부분을 대신 살아주는것인지, 그 경계는 방송을 거듭할수록 오히려 흐려져갔다.
미기는 그무렵 나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하였다. 《사장님, 이제 그림이 사장님보다 더 유명해질수도 있어요.》 나는 그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하였다. 《그럼 그림한테 월급을 줘야하나.》
그 농담에 미기는 크게 웃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농담속에는 뒤에 올 일들의 씨앗이 이미 심어져있었던것이다. 그림이 방송의 주역이 되는 세계, 그림 하나하나에 이름과 성격을 붙이는 세계가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내 앞에 펼쳐지리라고는 그때는 미처 짐작하지 못하였다.
방송이 끝난 늦은 밤이면 나는 종종 이 새로운 문법을 정리해보려 애썼다. 노트에 이런저런 낱말들을 적어보기도 하였는데, 추적, 파라미터, 리깅, 립싱크 같은 낯선 말들이 어느새 내 일상어가 되여있는것을 발견하고 스스로도 놀라고는 하였다.
언젠가 《배그》 합방 중에 옛 동료 하나가 화면 너머로 내 그림을 보고 놀란 목소리를 낸적이 있었다. 《야, 이거 진짜 너야? 목소리는 딱 넌데.》 나는 웃으며 대답하였다. 《목소리만 믿어. 나머지는 그림이 알아서 해.》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도 묘한 기분에 잠기였다. 목소리만 믿으라는 그 한마디가, 실은 이 새로운 세계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대화창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과 목소리를 따로 떼여 즐기는 법을 익혀갔다. 어떤 이는 그림의 표정만 캡처해 짧은 그림움짤을 만들어 돌렸고, 어떤 이는 목소리만 따로 록음해 류행어처럼 쓰기도 하였다.
짐짓 력사적인 사변처럼 부풀려 말해보자면, 후날 강도단 사이에서는 이 시기를 두고 《사장님이 두번째 얼굴을 얻은 나날》이라 부르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나로서는 그저 추적 하나 겨우 익힌 나날이였을 뿐인데,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여주니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우스개 섞인 이름속에도 얼마간의 진실은 담겨있었다고 생각한다. 얼굴을 내려놓은 자리에는 정말로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표정과 새로운 관계의 문법이 하나씩 들어서고있었기때문이다.
그 새로운 문법을 가장 먼저 실감한것은 아마 나 자신이였을것이다. 예전에는 카메라앞에서 지치면 지친 얼굴이 그대로 방송에 나갔지만, 이제는 지친 몸으로도 그림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그 어긋남이 처음에는 낯설었으나 차차 하나의 재주로 바뀌여갔다.
나는 그 재주를 부리는 법을 조금씩 익히면서,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청자들과 거리를 좁혀갔다. 얼굴을 감추었으니 멀어질줄 알았던 사이가 오히려 그림이라는 새로운 매개를 통해 더 가까워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어느 밤 방송에서 나는 그림의 손짓 하나를 새로 익혀 시청자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대화창은 그 단순한 동작 하나에 유난히 뜨겁게 반응하였다. 《그림인데 왜 이렇게 반갑지》 하는 글이 여럿 올라온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그림이라는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문을 여는 손잡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였다. 그 생각은 그 뒤로도 오래 내 안에 남아 여러 갈래로 자라났다.
방송을 마치고 머리수화기를 벗을 때마다 나는 화면 속 그림을 한참 바라보는 버릇이 생기였다. 그림은 내가 손을 떼면 곧 가만히 멈추어섰지만, 그 멈춘 모습조차도 어딘가 나를 닮아있었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고 종종 놀리듯 물었다. 《사장님, 그림한테 정드였어요?》 나는 그 물음에 딱히 부정하지 못하였다. 《정든게 아니라... 그냥 신기해서.》
지금 이 페지를 쓰며 그때를 되짚어보니, 신기하다는 그 말속에는 이미 어떤 예감이 섞여있었던것 같다. 이 그림이라는 존재가 나 하나로 끝나지 않고 여럿으로 불어나리라는 예감, 그리고 그 여럿이 언젠가 하나의 회사를 이루리라는 예감이였다.
물론 그무렵의 나는 아직 그런 큰 그림까지는 그려보지 못하였다. 그저 매일 추적을 손보고 대화창의 반응을 살피며, 새로운 문법 하나하나를 몸에 익히는데 여념이 없었을뿐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작은 나날들이 쌓여 뒤에 올 큰 걸음의 첫 디딤돌이 되였던것이다. 얼굴을 내려놓은 그 자리에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다음 세계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있었던 셈이다.
그해 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거의 매일 그림앞에 앉아 표정을 가르치고 목소리를 실어보내는 일을 되풀이하였다. 처음에는 서툴렀던 그 일이 어느새 손에 익어, 나중에는 추적이 튀는 순간조차 웃음의 재료로 삼을만한 여유가 생기였다.
대화창의 사람들도 그 여름을 지나며 부쩍 늘어난것을 느낄수 있었다. 실사 시절부터 따라오던 이들도 여전하였지만, 그림만 보고 새로 들어온 이들도 하나둘 눈에 띄였다. 두 부류가 대화창안에서 뒤섞여 서로 다른 언어로 나를 부르는 모습이 신기하였다.
어떤 이는 여전히 예전 방송 시절의 말투로 나를 대하였고, 어떤 이는 오직 그림만 알고있는 사람답게 새로운 별명을 붙여주었다. 나는 그 두 부류의 인사를 번갈아 받으며 내가 하나이면서도 둘인듯한 묘한 자리에 서있음을 느꼈다.
그 자리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것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속에서도 나는 이상하게 든든한 기분을 느끼고는 하였다. 얼굴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내가 사라진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대화창의 그 두 부류가 오히려 매일 확인시켜주고있었기때문이다.
여름이 저물어갈무렵, 나는 문득 이 새로운 세계가 나 혼자 감당하기에는 조금씩 벅차오르고있다는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표정 하나, 대사 하나를 새로 만들 때마다 상의할 사람이 나 자신과 미기 둘뿐이라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온것이다.
그 벅찬 느낌을 그때는 그저 낯섬에서 오는 일시적인 부담이라 여기였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낯섬이 아니라 앞으로 두고두고 짊어져야 할 무게의 첫 조각이였다는것을, 나는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미기는 그무렵 늦은 밤 조정실을 정리하며 나에게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사장님, 이거 사장님 혼자 다 끌고가시는것 맞아요?》 나는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웃어보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웃음속에는 이미 조금씩 버거움이 섞여있었던것이다.
나는 그 버거움을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의 문을 스스로 열어놓고 이제 와서 힘들다는 말을 하기가 겸연쩍었기때문이다. 그러나 그 겸연쩍음이 오래갈수 없다는것을, 나는 여름이 다 가기 전부터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지금 이 페지를 쓰며 그 여름을 다시 헤아려보면, 나는 그때 얼굴 하나를 내려놓은 대신 훨씬 많은 것을 새로 짊어지고있었던것 같다. 새로운 표정의 언어, 새로운 관계의 문법, 그리고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어떤 무게까지.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유월의 나날은 단순히 얼굴을 그림으로 바꾼 사건이 아니였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다리였고, 나는 그 다리우에서 매일 조금씩 걸음을 옮기고있었던것이다.
그리고 그 다리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있는지는, 그해 여름의 나로서는 아직 다 헤아릴수 없었다.
그해 유월의 마지막 밤, 나는 방송을 마치고 콤퓨터를 끄기 전에 창문을 열어보았다. 늦은 바람이 방안으로 흘러들어왔고, 화면은 검게 꺼진채 창밖 불빛만을 희미하게 되비추고있었다.
나는 그 캄캄한 화면속에 아직 남아있는듯한 그림의 잔상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콤퓨터를 껐다. 방을 나서며 나는 이 새로운 세계가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직 다 알지 못한채, 그저 다음날의 방송을 기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