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채 비
우주28(2021)년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어느 밤, 나는 사무실도 아니고 방송국도 아닌 내 집 작은 방에 홀로 앉아있었다. 창밖에는 늦더위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들었으나 방안의 공기는 오히려 후끈하였다. 화면 세대와 콤퓨터 본체 두대가 밤새 돌아가며 뿜어내는 열기때문이였다. 그 앞에 나는 렌즈 하나를 마주하고 앉아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고있었다.
렌즈라고는 하나 그것은 방송용 카메라가 아니라 얼굴의 점들을 읽어들이는 조그마한 추적장치였다. 화면 한쪽에는 내 실제 얼굴이 비치고 다른 한쪽에는 청회색과 하늘색이 섞인 긴 머리에 강아지 귀 머리띠를 쓴 그림 하나가 그 얼굴을 따라 눈을 깜빡이고 입을 벌리였다. 그것이 그해 유월부터 내가 방송에 내세우기 시작한 새 얼굴이였다.
얼굴을 내려놓았다는 말은 누가 들으면 홀가분한 소리로 들릴것이다. 화장을 지우고 조명을 끄고 렌즈앞에서 표정을 지어보이지 않아도 되니 편해진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나 그림 하나를 세워 사람 대신 세상앞에 내세운다는 일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그때 나는 몸으로 배우고있었다.
그림은 저 혼자 웃지도 울지도 못한다. 그림의 눈이 깜빡이는속도, 입이 벌어지는 각도, 고개가 기울어지는 정도까지 사람이 하나하나 맞추어주어야 그림이 겨우 사람 흉내를 낸다. 그 맞추는 일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였다.
이전 절에서 이미 말하였듯이 새로운 방송의 문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림으로 서고, 새 세계의 규칙을 하나씩 세우는 그 며칠 사이에 나는 낮과 밤을 바꾸어 살다시피 하였다. 그런데 그 규칙들이 어느만큼 자리를 잡은 뒤에도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였다.
촬영이라면 몸하나 씻고 렌즈앞에 앉으면 그만이던 옛날과 달리, 그림 방송은 방송 전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대본을 쓰고, 그림의 표정을 하나하나 시험해보고, 소리와 그림이 어긋나지 않는지 몇번이고 되돌려보았다. 그 모든 일을 맡아줄 사람이 아직 나에게는 하나도 없었다.
매니저도 없고 기술자도 없고 그림을 그려줄 사람과 상의할 동료도 없었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콤퓨터 화면 저편 어디에도 없다는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이상한 헛헛함에 사로잡히였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건반에서 손을 떼고 방안을 둘러보았으나, 거기에도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처음 겪는 헛헛함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몇해 앞선 어느 때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수 없다. 그 시절의 상처를 다시 꺼내는 일이 편하지만은 않으나, 이 무게의 뿌리를 말하자면 짚고 넘어가지 않을수 없는 대목이다.
우주22(2015)년(2015년) 이른 여름, 나는 몇몇 벗들과 함께 그루빠 하나를 묶었다. 하나나, 지라라, 꽃핀, 엔단과 나까지 다섯이서 서로의 방송을 거들고 서로의 영상에 얼굴을 비추어주던 시절이였다. 그때는 혼자가 아니여서 좋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디엔가 내 편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방송이 한결 가벼웠다.
그러나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주25(2018)년(2018년) 초, 나는 소속사 매니저와 마음이 어긋나는 일을 겪었고 그 서운함을 그루빠 벗들에게 털어놓았으나 벗들이 내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였다. 후에 들리는 말로는 벗들 역시 나와 더는 함께 하고싶지 않다고 하였다는것이다.
어느 쪽 말이 참인지 이제 와서 따지는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다만 그해 사월, 나는 단체 대화방에 탈퇴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루빠를 나섰다. 그날 이후로 나는 누구와도 크게 무리를 지어 일하는것을 즐기지 않게 되였다.
벗들에게서 받은 상처는 아물었어도 그 상처가 남긴 버릇은 남았다. 무엇이든 남에게 맡기기보다 내 손으로 끝까지 쥐고가려는 버릇이였다. 그림으로 서는 이 새 방송도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혼자 짊어지기로 마음을 먹었던것이다.
그러니 이 무게는 남이 지워준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걸머진 무게였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나는 몇해전 그루빠를 나서던 그날의 헛헛함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다.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옛 상처와 새 상처를 자꾸만 포개어보는 모양이다.
밤이 깊어지면 방안에는 콤퓨터의 팬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고양이 야몽이와 도담이가 번갈아 책상위로 뛰여올라 화면앞을 가로막았고, 강아지 희망이는 내 발치에 엎디여 낮게 코를 골았다. 그들이 아니였다면 그 밤들은 더 견디기 힘들었을것이다.
나는 원래 저혈압이 있어 아침이면 몸을 일으키기가 늘 힘들었다. 그런데 그림을 다듬느라 밤을 새우는 날이 늘면서 아침은 아예 오지 않는것처럼 느껴지였다. 해가 뜨고서야 잠자리에 드는 날이 며칠씩 이어졌다.
잠버릇이 사나운 편이라 그렇게 겨우 붙인 잠도 온전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눈을 뜨면 다시 화면앞에 앉아 그림의 눈꺼풀 움직임부터 살피였다. 그것이 그무렵 내 하루의 시작이자 전부였다.
처음 그림을 켰을 때의 일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화면속에서 청회색 머리를 늘어뜨린 그림 하나가 내 표정을 따라 눈을 깜빡이던 순간, 나는 묘하게 낯설고 묘하게 반가운 기분에 사로잡히였다. 저것이 이제부터 나를 대신할 얼굴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강아지 귀가 달린 머리띠를 그림에게 씌운것은 순전히 내 마음대로였다. 누구와 상의하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 골랐다. 후날 이 머리띠 하나가 스텔라이브라는 큰 별무리를 이끌 대표의 첫 모습이 될줄은 그때 나 자신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짐짓 력사적인 말투를 빌려 말한다면, 그 조그마한 그림 하나를 세우는 일은 마치 새 나라의 문을 처음 여는 일과 같았다. 그러나 그 문을 여는 손은 오직 나 하나뿐이였고, 곁에서 함께 문지방을 넘어줄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었다. 후날 사람들이 이 시절을 두고 어떤 말을 붙이든, 그때의 나에게는 그저 매일이 낯선 문 하나를 여는 일이였을뿐이다.
낮에는 방송을 하고 밤에는 다음날 방송에 쓸 그림의 동작을 다듬었다. 대사 한마디에 어울리는 표정을 만들자면 몇번이고 되풀이해 록화하고 되풀이해 지워야 하였다. 새벽 서너시에 겨우 하나를 완성하고 나면 몸은 이미 녹초가 되여있었다.
대화창의 시청자들도 처음에는 낯설어하였다. 어느 시청자는 《얼굴은 어디로 가였어요》하고 물었고 또 어느 시청자는 《이제 강지님도 그림쟁이 되였네요》하며 웃었다. 나는 그 물음들에 일일이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나 자신에게 같은 물음을 던지고있었다.
얼굴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짐까지 내려놓을수는 없었다. 오히려 얼굴 뒤에 숨을수 있게 된만큼 짐은 더 무거워진듯하였다. 보이지 않는 얼굴 뒤에서 나는 대본을 쓰고 소리를 다듬고 방송 일정까지 혼자 짜야 하였다.
그무렵 나는 후날 인터뷰에서 밝히게 될 속마음을 이미 품고있었다. 실사방송을 오래 하다보니 매너리즘이 짙어졌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는 그 한가지가 나에게는 무엇보다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는것이다. 그러나 매력과 수고는 다른 문제였다. 매력은 나를 이 길로 이끌었으나 수고는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았다.
그무렵 언제였던지 날자는 이제 뚜렷하지 않으나, 블루동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밤이 있었다. 화면에 붙어앉아 그림의 눈꺼풀을 손보고있던 참이라 나는 반갑기보다 먼저 놀라였다. 전화벨이 그렇게 낯설게 울린것도 오랜만이였다.
《누나 아직 안자요?》 블루동지가 대뜸 물었다. 《아니, 그림이랑 씨름 중이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잠시 말이 없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였다. 《그림요? 누나 얼굴 치우고 딴 얼굴 쓴다카는것, 그거 맞지예?》 사투리가 슬쩍 묻어나오는것을 보니 그도 어지간히 신통해하는 눈치였다.
《얼굴 안 써도 되니까 편하기는 한데, 손이 훨씬 많이 간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였다. 《힘들면 말해라. 개꿀 아이템 있으면 알려줄게.》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그 짧은 통화 하나가 그날 밤 내가 받은 유일한 위로였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화면앞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블루동지는 이제 서로의 방송에서 각자의 길을 가는 사이가 되였으나, 그 사이에도 이렇게 불쑥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는 버릇만은 여전하였다. 그것이 그 시절 나에게는 적잖은 힘이 되였다.
그러나 전화 한통으로 풀리는 무게가 아니였다. 다음날이면 다시 혼자 대본을 쓰고 혼자 그림을 다듬고 혼자 방송을 켜야 하였다. 그 되풀이속에서 나는 조금씩 지쳐가고있었다.
시청자 수는 실사로 방송하던 때보다 오히려 줄어든 날도 있었다. 그림 하나로 사람 마음을 붙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것을 그 수자가 매일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그래도 나는 방송을 거르지 않았다.
어떤 날은 그림의 입술 움직임이 소리와 어긋나 방송 중에 시청자들의 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나는 겸연쩍게 웃어넘기였지만 방송이 끝난 뒤에는 그 오차를 잡느라 새벽까지 매달리였다. 완벽해지자고 다짐한 일은 아니였으나 어설픈 모습을 오래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무렵 나를 놀라게 한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의 체력이였다. 젊어서는 밤을 새워도 끄떡없다고 자부하였는데, 이제는 하루밤을 새우면 그다음 이틀을 앓아누워야 하였다. 저혈압 탓인지 나이 탓인지는 알수 없었다.
몸이 아파도 방송을 미룰수는 없었다. 시청자와 약속한 시간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림으로 서겠다고 스스로 내세운 길이였다. 아프다고 주저앉으면 그림으로 넘어온 뜻 자체가 흔들릴것 같았다.
떡볶이와 뿌링클을 시켜다놓고 콤퓨터앞에서 끼니를 때우는 밤이 많아졌다. 술은 원래 즐기는 편이 아니여서 소주 서너잔이면 이미 얼굴이 붉어지는 주량이였으나, 그 몇달만은 술 생각조차 나지 않을만큼 일에 파묻히여있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러다 몸 상한다고 잔소리라도 하였을것이나, 그런 잔소리를 해줄 사람도 그 방안에는 없었다.
어느 밤엔가 나는 문득 거울도 없이 화면속 내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실소를 터뜨리였다. 실사로 방송할 때는 거울을 보며 표정을 다듬었는데, 이제는 그림을 보며 내 표정을 고치는 처지가 된것이다. 주객이 뒤바뀐 셈이였다.
짐짓 력사적인 문투로 한마디 보태자면, 이때의 나는 마치 새 나라를 세우고 홀로 그 나라의 온갖 법도를 정하는 임금과 같았다. 다만 그 나라의 백성이라고는 화면 저편 대화창에 앉은 몇백명이 전부였고, 그나마도 그림이 낯설다고 하나둘 자리를 뜨는 밤도 있었다.
그런 밤이면 나는 대화창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남아있는 이름들 하나하나가 고마웠고, 떠난 이름들 하나하나가 마음에 걸리였다. 그러나 붙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림은 사람의 마음까지 붙들어주지는 못하였다.
그 시절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길이 정말 옳은 길인가, 얼굴을 내려놓은 대가로 이렇게까지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가 하고. 그러나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만 발을 뺄 곳도 이제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랜 벗 악녀에게서 련락을 받았다. 악녀는 《우결》을 하던 시절 내가 블루동지앞에서만 유난히 말을 곱게 쓰는것을 보고 《자기앞에서도 그렇게 좀 해달라》고 우스개 삼아 서운해하던 벗이였다. 그런 악녀가 이번에는 사뭇 진지한 말투로 그림 방송이 할만하냐고 물어왔다. 오랜만에 듣는 진지한 물음이라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있는대로 털어놓았다. 편한 점도 있지만 혼자 지기에는 벅찬 짐도 있다고, 그림 하나 세우고 지키는 일이 생각보다 사람 여럿 몫이라고 하였다. 악녀는 가만히 듣더니 자기도 요즘 비슷한 궁리를 하고있다고 하였다.
그 궁리가 무엇인지 그때는 자세히 묻지 않았다. 다만 나 혼자만 이런 밤을 지새우는것이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이였다. 벗의 궁리와 내 궁리가 어디서 만나게 될지는 그때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단즈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것도 비슷한무렵이였다. 악녀를 통해 몇번 소식을 주고받았을뿐 아직 얼굴을 마주한 사이는 아니였으나, 해외 시청자를 겨냥한 그림 방송을 궁리한다는 말이 오가면서 그 이름이 자연스럽게 내 귀에 들어왔다.
그때는 그저 스쳐가는 이름이였다. 후날 이 세사람의 이름이 한 회사의 창립자 명단에 나란히 오르게 될줄은, 적어도 나는 그 가을밤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사람의 인연이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이름 하나로 슬며시 찾아오는 모양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몇달의 혼자였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부딪히고 혼자 넘어지면서 나는 그림 하나를 세우는 일에 무엇이 필요한지 몸으로 익히였다. 그 배움이 없었더라면 뒤에 올 일들을 감당하지 못하였을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뜻을 알 길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겁고 길었다. 밤을 새우고 아침을 앓고 다시 밤을 맞는 되풀이속에서 나는 종종 예전 그루빠 시절을 그리워하였다.
사람이 그리운 밤에는 고양이 야몽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 작업을 계속하였다. 도담이는 성미가 까다로와 무릎에 잘 앉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상 한켠을 차지하고 앉아 나를 지켜보아주었다. 강아지 희망이는 그저 발치를 지키는것으로 제 몫을 다하였다.
그렇게 짐승들과 콤퓨터와 나 셋이서 견딘 밤이 몇달이였다. 지금 나는 이 시절을 혼자서 다 해낸 시절이라 부르고 싶어지다가도, 그 말을앞에 두고 문득 망설이게 된다. 혼자 해낸것이 아니라 혼자 해낼수밖에 없었을뿐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드는 까닭이다.
짐짓 력사적으로 부풀려 말하자면, 이 시절의 나는 마치 홀로 성을 지키는 파수병과 같았다. 그러나 파수병은 성이 무너지지 않기만을 바라면 그만이지만, 나는 그 성을 세우는 일과 지키는 일을 동시에 해야 하였으니 파수병보다 곱절은 고단하였던 셈이다. 그런데도 그 성을 버리고 물러설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가 어지간히 고집스러웠다 싶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방안의 열기도 조금씩 식어갔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는 여전하였으나 창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가와졌다. 그 바람을 맞으며 나는 문득 이 짐을 언제까지 혼자 질수 있을지 헤아려보았다.
답은 뻔하였다. 오래 갈수 없었다. 사람 하나가 방송도 하고 대본도 쓰고 그림도 다듬고 채팅도 살피는 일을 언제까지고 계속할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그러니 악녀와 단즈의 이름이 내 귀에 스쳐간 그 가을이, 지금 와서 보면 결코 우연만은 아니였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라는 무게가 턱끝까지 차올랐을 때 마침 곁에 함께 짐을 나눌 벗들의 이름이 들려온것이다. 사람일이란 이렇게 앞뒤가 맞아떨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다만 그 벗들과 함께 무엇을 세우게 되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말할 일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무렵의 밤들을 남겨두려 한다. 저혈압으로 아침을 힘겨워하던 밤들, 짐승 셋과 함께 새벽을 넘기던 밤들, 블루동지의 전화 한통에 잠시 웃던 밤들 말이다.
그 시절을 나는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몸은 고단하였으나 마음 한구석은 이상하게 뜨거웠다. 얼굴을 내려놓고 그림으로 선다는것이 무슨 뜻인지, 그 뜻을 몸으로 배우던 시절이였기때문일것이다.
세상은 종종 큰 사변만을 력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렇게 생각한다. 어느 한사람이 밤을 새워가며 혼자 짐을 지던 그 무수한 밤들 하나하나도, 그 사람에게는 못지않게 큰 사변이였다고 말이다.
그해 가을, 나는 그렇게 혼자 무게를 견디였다. 그리고 그 무게를 견딘 끝에 비로소 그 무게를 나눌 벗들을 만날 채비가 되였다. 다음 장은 바로 그 벗들과 함께 새 문을 열어젖히는 이야기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