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이 견

 

우주29(2022)년의 이른봄, 사무실 창문에는 아직 겨울의 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아침마다 뽀얀 성에가 서리곤하였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는 밤낮으로 낮게 웅웅거리며 방안을 채웠고, 나는 그 소리에 몸을 맡긴채 화면우에 뜬 일정표를 들여다보는것으로 하루를 열군하였다. 창밖의 은행나무는 아직 잎 하나 내밀지 않은 앙상한 가지뿐이였으나, 그 가지끝에는 어쩐지 곧 무엇인가 터져나올듯한 기운이 어려있었다. 지난해 겨울 세사람이 나란히 도장을 찍던 그 자리로부터, 어느덧 넉달 남짓한 세월이 흘러가있었다.

그때의 사무실은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책상 세개를 겨우 붙여놓은 좁은 방 한칸에 콤퓨터 세대와 마이크 몇개, 그리고 밤새 식어버린 종이컵들이 어지러이 놓여있는것이 전부였다. 앞절에서도 적었듯이 우리는 그 좁은 방에서 낯선 바다 저편을 그리며 서류를 넘기고 지도를 펼쳐보았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그림이 얼마나 컸는지에 비해 우리가 앉아있던 자리는 참으로 작고 초라하였다.

서류에 찍은 도장의 인주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우리 세사람은 곧바로 몸을 일으켜 뛰여다녀야 하였다. 해외를 겨냥한 회사를 세운다는것은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여서, 그해 겨울 내내 우리는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였다. 그러던 궁리가 하나둘 열매를 맺기 시작한것이 바로 이 이른봄무렵부터였다.

우리는 먼저 성원을 뽑는 일부터 시작하였다. 얼굴을 그림으로 대신하는 이 새로운 형식의 방송에 뛰여들려는 젊은이들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이 문을 두드려왔다. 나는 밤늦도록 지원자들의 목소리 파일을 듣고 또 들으며, 이 사람이라면 낯선 바다에서도 능히 헤여나갈수 있겠다 싶은 사람을 고르고 골랐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다섯 사람으로 첫 기생을 꾸렸다. 우리는 그들을 《유메 뮤즈》라 이름지었다. 테토라 노아, 세츠카 에나, 야사키 란, 쿠마사 레이, 키코 마야 — 다섯 사람의 이름을 처음 나란히 적어놓고 보았을 때, 나는 이제야 비로소 회사라는것이 무엇인지 실감이 났다.

삼월 스무이레, 다섯 사람은 나란히 데뷰방송의 막을 올리였다. 화면 저편에서 낯선 언어로 인사말을 건네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와 악녀와 단즈는 사무실 한켠에 모여앉아 마치 자식을 첫 학교에 보낸 부모들처럼 마음을 졸이였다. 방송이 무사히 끝나고 대화창에 반가운 말들이 쏟아지는것을 보았을 때, 우리 세사람은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소리없이 웃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근처 식당에서 조촐하게 자리를 가졌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사이다 한잔으로 건배를 대신하였고, 악녀와 단즈는 소주잔을 부딪치며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몇번이고 되뇌였다. 력사책이라면 이런 대목에 으례 《세 영웅이 굳게 손을 잡았다》는 식의 거창한 문장을 붙이겠으나, 그날 우리가 정말로 나눈것은 삼겹살 한판과 콜라 몇병뿐이였다는것을 솔직히 적어두고싶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한참 앞선 나의 오랜 버릇 하나를 말하지 않을수 없다. 나는 예로부터 돈 문제에 무디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방송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쓸것인가를 골똘히 따지기보다는, 오늘 떡볶이 한그릇과 뿌링클 한마리 사먹을 여유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 바로 나였다.

주량이 소주 서너잔을 넘기지 못하는 나는 술자리에서도 셈이 빠른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계산서가 나오면 그저 나누기 몇으로 대충 나누고 말았을뿐, 누가 무엇을 얼마나 더 먹었는지 따지는 성미가 못되였다. 언젠가 악녀는 그런 나를 보고 《장사하는 사람이 이래서야 되겠소.》 하며 웃음 섞인 핀잔을 준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나도 따라 웃고 말았을뿐 그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를 차리고보니 사정이 전혀 달라졌다. 이제는 삼겹살값을 대충 나누는것과는 차원이 다른, 몇사람의 생계와 몇사람의 꿈이 걸린 돈을 다루어야 하였다. 셈에 무딘 내가 그 무거운 저울대를 손에 쥐게 되였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깊이 헤아리지 못하였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다. 다시 그 봄의 사무실로 돌아오면, 유메 뮤즈의 다섯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낯선 언어의 벽앞에서도 그들은 저마다의 재간으로 애호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는 그 화면들을 지켜보며 이 도전이 헛되지 않았다는안도를 느끼였다.

봄이 여름으로 넘어가는 동안 나와 악녀와 단즈는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았다. 누구는 계약서와 씨름하고 누구는 방송 장비를 챙기고 누구는 팬 반응을 살피며, 셋이서 부족한 손을 서로 메꾸어나갔다. 그때만 해도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른 성미가 오히려 서로를 보완해주는 미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와서 가만히 돌이켜보면, 그 서로 다른 성미야말로 후날 배가 기울게 되는 첫 씨앗이였다. 나는 무엇이든 천천히 다지며 가려는 쪽이였고, 악녀는 기회가 왔을 때 곧바로 몸을 던지자는 쪽이였으며, 단즈는 그 사이에서 늘 신중하게 저울질하는 쪽이였다. 셋의 걸음걸이가 다르다는것을, 그때는 그저 서로 다른 재간이라고만 여기였다.

그해 오월 어느날, 유메 뮤즈 다섯 사람의 방송을 다 합친 시청자수가 처음으로 큰 자리수를 넘어선 날이 있었다. 우리 셋은 그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고, 단즈는 근처 빵집에서 케이크까지 사와 조촐한 자축을 벌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의 웃음소리야말로, 유메퍼센트라는 배가 가장 순조롭게 물살을 가르던 순간이였다.

여름이 짙어갈무렵 우리는 두번째 기생을 준비하는 일에 매달렸다. 첫 기생이 자리를 잡은것을 보고 자신심을 얻은 우리는,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세상에 내보내기로 하였다. 심사 공고를 내자 또다시 밤늦도록 지원자들의 목소리가 사무실 콤퓨터를 채웠다.

그렇게 새로 꾸려진 네 사람을 우리는 《유메 사가》라 이름지었다. 칸나동지, 코가메 히나츠, 후와리 도지코, 유니동지 — 이 네 사람의 이름을 처음 적어놓았을 때만 해도, 나는 이들이 후날 내 곁에 얼마나 오래 남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첫 기생이 걸어놓은 길을 뒤따르는 셈이니 한결 수월하리라 여기였던 나의 짐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순진한 생각이였음이 드러났다.

팔월 스무날, 유메 사가 네 사람은 차례로 데뷰의 막을 올리였다. 특히 칸나동지의 첫방송을 지켜보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화면 너머로 다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나는 마치 내 일처럼 손에 땀을 쥐고 대화창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아홉 사람이라는 수자는, 다섯 사람이였을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로 우리 앞에 놓이였다. 방송 시간표 하나를 짜는 일도, 지원할 장비와 인원을 나누는 일도, 이제는 갑절 넘게 복잡해졌다. 우리 셋은 회의실에 모여앉는 시간이 부쩍 늘었으나, 그 회의실의 공기는 봄철의 그것과는 조금씩 달라지고있었다.

게다가 바다건너 시간과 이 땅의 시간은 서로 어긋나게 마련이였다. 유메 뮤즈의 저녁방송 시간이 유메 사가에게는 한밤중이 되기도 하였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하였다. 시간표 하나를 새로 짤 때마다 아홉 사람 누군가의 잠을 덜어내야 하였으니, 그것부터가 벌써 작지 않은 다툼의 씨앗이였다.

언어도 걸림돌이였다. 앞절에서 말한 해외 진출이라는것이 서류우에서는 그럴듯한 문장이였으나, 막상 부딪쳐보니 통역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회의는 시간이 갑절로 걸렸다. 좋은 뜻으로 건넨 말도 통역을 거치는 사이 뜻이 조금씩 무뎌지거나 날카로와지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사소한 어긋남들이 알게모르게 쌓여갔다는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어느 늦여름 저녁, 정산 프로그람의 화면을 함께 들여다보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수입을 어떻게 나눌것인가, 두 기생에게 자원을 어떻게 배정할것인가를 두고 셋의 생각이 저마다 달랐던것이다. 나는 그때 오간 말들을 낱낱이 다 옮겨적을 재간은 없으나, 대략 이러한 뜻들이 오갔다는것만은 분명히 기억한다.

《먼저 자리잡은 쪽에 더 많이 실어주어야 이 사업이 흔들리지 않소.》 하고 누군가 말하면, 《아니오, 이제 막 나온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이 회사가 더 커지오.》 하는 대답이 뒤따랐다. 그런 주고받음이 몇차례 이어지는 사이, 회의실안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기도 하였다.

나로 말하면, 그때에도 여전히 우리가 잘할수 있고 좋아하는것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붙들고있었다. 그러나 회사라는것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굴러가는 물건이 아니였다. 좋아하는 마음과 살림살이의 셈이 자꾸만 어긋나는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대표라는 자리의 무게를 실감하였다.

활동의 방향을 두고서도 셋의 생각은 갈라졌다. 지금 가진 아홉 사람을 더 단단히 다지는데 힘을 쏟자는 쪽이 있었는가 하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세번째 기생을 서둘러 준비하여 몸집을 더 불려야 한다는 쪽도 있었다. 다지는것과 불리는것, 이 둘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걸음을 맞추어야 하는지를 놓고 우리는 몇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였다.

방송 시간을 짜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유메 뮤즈는 이미 정해진 시간표에 애호가들이 익숙해져있었고, 유메 사가는 아직 그 시간표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처지였다. 두 시간표를 하나의 봉사기, 하나의 장비, 하나의 사무실안에서 다 소화하려니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삐걱거림을 처음에는 그저 자라나는 아픔이라고만 여기였다. 아이가 자라면서 옷이 작아지듯, 회사도 사람이 늘면 으례 겪는 통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였다. 그러나 그 통증은 가을이 깊어갈수록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조금씩 더 커졌다.

그무렵 어느날 밤 늦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요즘도 잠은 제대로 자느냐고 묻는 목소리에, 나는 그저 잘 자고있다고 얼버무렸다. 어려서부터 저혈압에 잠버릇까지 사나웠던 나를 잘 아는 어머니는, 전화 저편에서도 무언가 눈치를 챈듯 한참을 더 붙들고 이런저런 안부를 물었다.

그 통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콤퓨터앞을 떠나지 못하였다. 어머니에게는 차마 회사 걱정을 다 털어놓지 못하였으나, 그 무거운 마음은 고스란히 내 잠자리까지 따라와 나를 뒤척이게 하였다. 그런 밤이 하루이틀 쌓여가는 사이, 나는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지쳐가고있었다.

늦여름의 어느 회의에서 단즈가 조용히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셋이 처음 도장을 찍을 때 그렸던 그림과, 지금 아홉 사람을 데리고 실제로 부딪치는 살림이 조금씩 어긋나고있는것 같소.》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창밖만 오래 내다보았다.

악녀는 그런 나를 보며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내려야하오. 자꾸 재기만 하다가는 아무것도 못하오.》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악녀앞에서, 나는 신중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할뿐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런 자리가 몇번 되풀이되는 사이, 셋이 함께 모이는 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어느새 우리는 서로 다른 방에서, 서로 다른 화면을 마주하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챙기는 나날에 익숙해져가고있었다. 한 사무실안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조금씩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고있었다.

그렇다고 그무렵의 우리가 서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것은 아니였다. 내가 몸살로 며칠 앓아누웠을 때에는 단즈가 대신 정산표를 붙들고 밤을 새워주었고, 악녀는 말없이 죽 한그릇을 사무실 책상에 놓고 갔다. 다투는 말과는 달리 서로를 챙기는 손길만은 그때까지도 여전하였다는것을, 나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으로 적어둔다.

그러면서도 나는 내 개인방송의 자리마저 놓을수 없었다. 낮에는 대표로서 정산표와 씨름하고 밤이면 다시 얼굴 없는 그림 하나를 켜고 시청자들앞에 앉는 나날이 이어졌다. 두 자리를 오가는 사이 몸은 하나뿐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그해 가을에는 유난히 버겁게 느껴지였다.

가을 문턱에 들어서면서 사무실 창밖 은행나무 잎이 하나둘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봄에 앙상하던 그 가지에서 그렇게 무성한 잎이 돋아났던가 싶을만큼, 여름 한철은 우리 모두에게 정신없이 지나간 계절이였다. 그러나 그 무성하던 잎들이 저물어가는것을 보면서,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것을 느끼였다.

대화창의 반응과 시청회수라는 수자 뒤에는, 늘 살아있는 사람의 생계와 마음이 걸려있었다. 유메 뮤즈의 다섯 사람은 다섯 사람대로, 유메 사가의 네 사람은 네 사람대로 저마다 우리 세사람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고있었다. 그 초조함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와 쌓이는것을, 나는 그제서야 하나씩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무렵부터 밤에 홀로 사무실에 남아 정산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수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어떤 말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였다. 콤퓨터 화면의 푸른 빛만이 텅 빈 사무실을 채우던 그 밤들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력사를 돌이켜보면 큰 나라들도 흔히 재물을 나누는 문제에서 갈라섰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정을 그런 큰 력사에 견주는것은 지나친 과장일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다투었던것은 나라의 강토가 아니라, 정산 프로그람 한 화면의 셀 몇개였을뿐이니 말이다.

그 정산표는 볼수록 마치 옛 성곽의 축조도처럼 줄과 칸이 빼곡하였다. 어느 칸은 유메 뮤즈의 몫이고 어느 칸은 유메 사가의 몫이며 또 어느 칸은 사무실 월세와 장비값으로 빠져나갈 돈이였는데, 그 성곽 하나를 두고 세사람의 축성 방식이 저마다 달랐던 셈이니 다툼이 없을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노릇이나, 그때는 그 표 한장앞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결코 우습지 않았다.

십일월에 접어들면서 유메 뮤즈의 활동은 조용히 매듭을 짓게 되였다. 요란한 작별인사도, 특별한 발표도 없이, 십일월 스무이레를 마지막으로 다섯 사람의 방송은 하나둘 잦아들었다. 그 조용한 매듭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때의 나는 애써 깊이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매듭이 지어지던무렵부터, 사무실 공기는 눈에 띄게 서느러워졌다. 악녀와 단즈, 그리고 나 사이에 오가는 말수가 줄어들었고, 회의는 짧아졌으며, 서로의 눈을 마주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아무도 입밖에 내지는 않았으나, 우리 셋 모두 무엇인가 어긋나고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고있었을것이다.

그무렵 나는 밤늦게 퇴근길에 홀로 골목을 걸으며, 처음 도장을 찍던 그해 겨울의 설레임을 자꾸만 되새겨보았다. 그때는 셋이 나란히 걸어도 좁게 느껴지던 골목이, 이제는 혼자 걸어도 넓게만 느껴지였다. 사람 사이의 거리라는것이 발걸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것을, 나는 그 골목에서 몇번이고 깨달았다.

어느 밤 나는 정산표를앞에 놓고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였다. 우리가 애초에 그리던 그림은 낯선 바다를 함께 건너는 배 한척이였는데, 그 배가 지금 어느 한쪽으로 조금씩 기울어가고있다는것을 그제서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배가 기운다고 해서 당장 가라앉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는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그러나 배는 기운채로 오래 나아갈수 없는 법이다. 그때는 그 리치를 미처 깊이 새기지 못하였다. 나는 그저 조금만 더 버티면, 조금만 더 애를 쓰면 다시 균형을 되찾을수 있으리라고 막연히 믿고있었을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해 가을은 유메퍼센트라는 배가 소리없이 기울기 시작한 계절이였다. 수익을 어떻게 나눌것인가, 방송 시간을 어떻게 배정할것인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것인가 — 이 세가지 물음앞에서 우리 세사람의 대답은 조금씩 서로 다른 쪽을 가리키고있었다. 어느 하나도 틀린 대답은 아니였다는것이, 오히려 이 일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 어긋남이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다 짚어내지 못한다. 사람 사이의 금이란 흔히 그러하듯, 어느 한순간에 쩍 갈라지는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실금으로 오래 자라나다가 어느날 문득 눈에 뜨이게 마련이다. 그해 가을의 우리도 그러하였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 가을의 사무실에 앉아있던 우리 세사람 그 누구도 서로를 미워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만 저마다 옳다고 믿는 길이 조금씩 달랐을뿐이다. 그리고 그 조금씩의 다름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는 배 하나를 통째로 기울게 만들수도 있다는것을, 나는 그해에 처음으로 배웠다.

지나고보니 유메 뮤즈의 다섯 사람과, 유메 사가의 네 사람 모두가 저마다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 다른 꿈을 지니고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였다. 그 아홉가지의 서로 다른 꿈을 하나의 배에 나누어싣고 낯선 바다를 건너려 하였으니, 애초부터 순탄하기만을 바라는것이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 헤아림보다도, 그저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일이 더 급하였다.

악녀와 단즈, 이 두 사람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떠올려보면, 그들 또한 나만큼이나 이 배를 아끼고 이 배가 가라앉지 않기를 바라던 사람들이였다. 다만 배를 지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이 나와 조금씩 달랐을뿐이다. 그 다름을 그때의 나는 옳고 그름의 문제로만 보았으나, 지금은 그것이 그저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이였다고 여기고싶다.

은행나무 잎이 다 떨어지고 첫추위가 찾아올무렵, 나는 이 배가 이대로 얼마나 더 나아갈수 있을지를 두고 홀로 자주 헤아려보게 되였다. 창밖의 앙상한 가지를 내다보고있노라면, 봄에 저 가지끝에서 느꼈던 설레임이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계절 하나가 통째로 지나가는 사이, 사람의 마음도 그렇게 통째로 바뀔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해에 절실히 깨달았다.

그 헤아림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있었는지는, 다음 절에서 마저 이야기할 자리가 있을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 십일월의 서느런 사무실과, 조금씩 기울어가던 우리의 배 한척만을 오래도록 붙들어두고싶다. 그리고 그 배우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서도 끝내 서로의 손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던 세사람의 마음만은, 후날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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