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첫 실 패

 

우주29(2022)년(2022년)의 십이월은 유난히 일찍 추위가 들이닥쳤다. 첫눈이 채 녹기도 전에 두번째 눈이 내려 사무실 창밖의 골목은 온통 희끗희끗하였고,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웃풍에 나는 종일 무릎담요를 두르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만이 그 서느런 방안에서 규칙적으로 돌아가고있었으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벽에 걸린 달력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달력에는 이듬해 정월 언저리에 내가 손수 표시해둔 작은 동그라미가 하나 있었다. 유메퍼센트가 새해를 맞는 날을 기념하여 무엇이라도 해보자고 마음속으로 벼르며 그어둔 표식이였다. 그러나 그 동그라미는 끝내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채 달력우에서 하루하루 다가올뿐이였다. 회사는 그 표식이 가리키는 날을채 한달도 남기지 않고 이미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있었기때문이다.

설립한지 열세달만에, 나는 유메퍼센트라는 이름을 걸고 시작한 첫 사업을 스스로 접어야 하였다. 지난 절에서도 말하였듯이 그해 가을무렵부터 수익을 어떻게 나눌것인가, 방송 시간을 어떻게 배정할것인가, 활동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잡을것인가를 두고 우리 사이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있었다. 그 금은 처음에는 머리카락처럼 가늘어 눈에 잘 띄지도 않았으나, 겨울이 깊어갈수록 걷잡을수 없이 벌어졌다. 나는 그 벌어진 틈을 어떻게든 메워보려 애를 썼으나,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크게 벌어지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 실패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 그러니까 이 회사를 처음 세우던 그날의 일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의 들뜬 마음과 이 겨울의 참담한 마음 사이에 놓인 열세달이라는 시간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만큼 짧게 느껴지기때문이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묘하여서, 시작할 때의 부픈 마음과 끝날 때의 무거운 마음이 같은 시간의 두 끝에 매달려있다는것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우주28(2021)년(2021년) 십일월 초여드레, 나는 악녀·단즈와 함께 작은 사무실 한칸을 얻어놓고 사업자등록증을 받아들었다. 해외 시청자들을 겨냥한 가상 유튜버 기업을 만들어보자는것이 우리 셋의 공통된 꿈이였다. 세 사람 모두 《트위치》에서 스트리머로 잔뼈가 굵은 처지였으나, 그림 아바타를 쓰는 이 새로운 방송의 세계에서만은 다들 초행길이였다.

사무실이라고 해야 책상 서너개와 낡은 소파 하나가 전부인 좁은 공간이였지만, 그날만은 그 좁음이 조금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악녀는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들고 몇번이나 뒤집어보며 《이거 실감이 안나네》하고 중얼거렸고, 단즈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우리 진짜 회사 차린거 맞지?》하고 되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웃음으로 답하는것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세 사람 다 회사라는것을 처음 차려보는 처지였으니, 그 어색함과 설렘이 뒤섞인 표정만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 셋은 근처 식당에서 소주를 나누어 마였다. 나는 원래 술을 잘 못하는 편이여서 잔을 몇번 부딪치는 시늉만 내었을뿐인데, 그런 나를 보고 단즈가 《사장님이 이렇게 약해서야》하고 놀렸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회사이름을 다시 한번 입에 올리며, 꿈이라는 글자를 회사이름 맨앞에 새겨넣은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였다. 그때만 해도 그 다짐이 열세달 뒤의 겨울에 이렇게 되돌아올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듬해 봄이 되자 첫 소속 가상 유튜버들이 하나둘 데뷰하였다. 노아동지, 에나동지, 란동지, 레이동지, 마야동지, 이 다섯 사람이 삼월 스무이레 나란히 첫 방송을 열었을 때, 나는 콤퓨터 화면앞에 앉아 마치 내 자식들이 첫걸음을 떼는것을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이 되였다. 여름을 지나 팔월 스무날에는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그리고 히나츠동지, 도지코동지까지 네 사람이 다시 그 뒤를 이였다.

아홉 사람이 저마다 자기 나라 말과 억양으로 방송을 열고 시청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우리가 정말로 해외라는 넓은 바다에 배 한척을 띄운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였다. 미기는 그무렵부터 내 곁에서 온갖 잡무를 도맡아 처리하며 《오른팔》노릇을 톡톡히 해주었다. 나는 미기가 있어 사업의 절반은 이미 든든하다고 여러번 말하고 다녔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닥칠 일들을 전혀 짐작하지 못한채, 그저 아홉 사람의 앞날만을 눈부시게 그리고있었다.

그러나 회사라는것은 사람의 마음처럼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 법이다. 아홉 사람의 방송을 꾸리고, 아홉 사람의 수익을 정산하고, 아홉 사람의 활동 방향을 잡아나가는 일은 세 사람의 대표가 감당하기에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짐이였다. 나는 그 무게를 처음에는 열정으로 버틸수 있으리라 믿었으나,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것이였는지는 그해가 다 가기도 전에 뼈저리게 깨닫게 되였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셋이 마주앉는 회의 자리의 공기는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수익을 어떤 비률로 나눌것인가를 두고 나는 나대로, 악녀는 악녀대로, 단즈는 단즈대로 계산이 조금씩 달랐다. 방송 시간을 정하는 문제, 소속 가상 유튜버들에게 어디까지 지원을 해줄것인가 하는 문제까지 겹쳐지자 회의는 자꾸만 길어지고 결론은 자꾸만 미뤄지였다. 나는 그 회의들이 끝날 때마다 홀로 사무실에 남아 오늘은 또 무엇을 풀지 못하였는가를 곱씹곤 하였다.

나는 그때마다 회의실 화이트보드앞에 서서 서로의 의견을 표로 정리해보려 애썼으나, 표를 그리면 그릴수록 세 사람의 생각이 하나로 모이기는커녕 더 뚜렷하게 갈라져 보일뿐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다. 마치 나라와 나라 사이의 국경선을 긋듯이, 우리는 몇 퍼센트의 수익을 두고 진지하게 얼굴을 붉히였다. 회사이름에 새겨진 그 《퍼센트》라는 글자가, 어느새 우리 세 사람 사이를 가르는 수자가 되여있었다.

십일월의 어느 회의날, 단즈가 먼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우리 이거, 이대로 계속 가는게 맞는건가.》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인정하고싶지 않았을뿐, 나 역시 같은 생각을 오래전부터 품고있었기때문이다.

악녀도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였다. 《나도 더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세 사람 모두 서로를 탓하고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저마다 최선을 다하였다고 믿는 세 사람의 최선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는 그 사실이, 그 어떤 잘잘못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하였다.

며칠 뒤 우리는 다시 그 좁은 사무실에 모였다. 창밖은 이미 어둑어둑하였고, 누구도 먼저 불을 켜자는 말을 꺼내지 않아 방안은 콤퓨터 화면의 빛만으로 어스름하였다. 나는 그 어스름속에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 자리가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인지 이미 알고있었다.

《해산하자.》 이 한마디를 먼저 꺼낸것은 나였다. 말을 뱉고나서야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실감하였다. 사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회사의 문을 닫자고 제 입으로 말하는 일은,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일이였다.

단즈는 한참 말이 없다가 짧게 《그래, 그게 맞겠다》하고 대답하였다. 악녀는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린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서운함인지안도감인지 가늠할수 없었으나, 굳이 캐묻지 않았다. 세 사람 사이에는 그런 침묵을 그냥 두어도 되는 세월이 이미 쌓여있었다.

《우리 셋 다 잘못한건 아니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악녀가 그제야 나를 돌아보며 옅게 웃었다. 《그러게. 그냥 안맞았던거지.》 그 말이 그날 회의의 마지막 말이였다.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 길, 나는 열세달 전 사업자등록증을 손에 들고 웃던 그날의 우리 셋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렇게 끝날줄 누구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사업이라는것은 원래 그렇게 끝을 알수 없는채로 시작하는것인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채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보았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뿌옇게 번져보였는데, 그것이 눈발때문인지 내 눈시울 탓인지는 그때도 지금도 정확히 알수 없다. 버스가 정류소마다 서고 다시 떠나는 그 반복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스스로도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그때 나는 이 실패를 두고 마치 력사에 길이 남을 대사변이라도 겪은듯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였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작은 회사 하나가 문을 닫은 일에 지나지 않았을터인데, 나 혼자만은 마치 한 나라의 흥망을 짊어진 사람처럼 밤잠을 설치였다.

누가 보았다면 내 표정이 흡사 패전한 장수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다못해 《사장님, 회사 하나 접었다고 나라가 망한건 아니잖아요》하며 웃겨보려 하였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 농담조차 잘 들어오지 않았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미기의 그 한마디가 가장 정확한 진단이였다.

돌이켜보면 그 며칠 동안 나는 유메퍼센트라는 이름 석자에 지나치게 큰 무게를 실었던것 같다. 회사이름 맨앞에 새겨넣은 그 꿈이라는 글자가, 마치 내 인생 전체를 걸어놓은 표지판처럼 느껴지였기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보면, 그것은 그저 여러 사업들 가운데 하나가 뜻대로 되지 않은것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사람이란 참으로 묘하여서, 큰 실패앞에 서면 그 실패를 실제보다 훨씬 거창하게 부풀려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나는 그해 겨울 스스로를 두고 《몰락》이니 《패망》이니 하는 거창한 낱말을 마음속으로 몇번이나 되뇌였는지 모른다. 지금 다시 헤아려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표현들이나, 그때는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였다.

그러나 그런 과장된 슬픔조차도 그 시절의 나에게는 필요한 감정이였는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진심으로 부딪쳐본 사람만이 그 실패앞에서 그렇게까지 무겁게 절망할수 있는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그 과장된 슬픔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만큼 진심이였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십이월 초하루 밤, 나는 미기와 함께 사무실에 남아 해산 알림문의 문구를 몇번이고 고쳐썼다. 《수익 분배와 활동 방향에 대한 이견》이라는 한 구절을 두고도 너무 딱딱하지는 않은지, 너무 속내를 다 드러내는것은 아닌지 몇번이나 고민을 거듭하였다. 밤이 깊도록 우리 둘은 그 짧은 글 한장을 붙들고 씨름하였다.

미기는 화면 너머로 문구를 소리내여 읽어보며 《이정도면 담백하고 좋은것 같아요》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말에 겨우 마음을 놓고 알림문을 다듬었다. 창밖에는 그날도 어김없이 가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이튿날인 십이월 초이틀, 유메퍼센트는 공식 페지와 각 소속 가상 유튜버들의 방송을 통해 해산을 선언하였다. 나는 그 공지가 올라가는 순간을 사무실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지켜보았다. 화면 속 시청회수가 올라가는것을 보면서도, 나는 어쩐지 그 수자를 하나하나 세어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대화창과 감상글난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채워졌다. 아쉬움을 표하는 시청자들의 말들 사이로, 그동안 응원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도, 앞으로는 어떻게 되는것이냐는 걱정도 뒤섞여 올라왔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며, 우리가 열세달 동안 쌓아온것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았다.

그날 밤 나는 소속 가상 유튜버들에게 따로따로 문자를 보내여 그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하였다. 답장은 저마다 다른 말투로 돌아왔으나, 그 안에 담긴 서운함과 고마움만은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답장들을 다 읽고나서야 비로소 이 회사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였음을 새삼 깨달았다.

사실 이 해산이 선언되기 닷새 남짓 앞서, 노아동지를 비롯한 다섯 사람의 활동은 이미 십일월 스무이레로 마무리된 뒤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것을 그저 첫 기수의 자연스러운 활동 종료로만 여기려 애썼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미 회사 전체에 드리운 그림자의 첫 자락이였는지도 모른다.

노아동지는 마지막 방송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였다. 에나동지와 란동지는 서로를 다독이듯 우스개를 주고받으며 무거워질뻔한 분위기를 애써 가볍게 만들었다. 레이동지와 마야동지도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마쳤다. 나는 그 다섯 사람의 마지막 방송을 하나하나 챙겨보았으나, 그것이 곧 닥쳐올 더 큰 리별의 예고편이라는것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닷새 사이의 간격을 다시 헤아려보니, 력사라는것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조용히 앞당겨 신호를 보내는것 같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 신호를 알아채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에 쫓기고있었을뿐이다. 사람이란 눈앞의 작은 슬픔에만 매달리다가 정작 그 뒤에 오는 더 큰 슬픔은 짐작조차 못하는 법인가보다.

공지가 나간 뒤 칸나동지, 유니동지, 히나츠동지, 도지코동지 네 사람에게서도 각기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유니동지는 특유의 밝은 말투로도 다 감추지 못한 서운함을 내비쳤고, 히나츠동지와 도지코동지는 한동안 말을 아끼였다. 칸나동지는 그 며칠 사이 유난히 조용하였는데, 그 조용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뒤의 절에서 다시 이야기할 일이 되였다.

나는 그 네 사람에게 방송을 완전히 접어야 하는것은 아니라고, 회사의 형태는 사라지더라도 방송이라는것 자체를 그만둘 필요는 없다고 여러번 말해주었다. 그러나 그 말이 그때 얼마나 위안이 되었을지는 지금도 자신이 없다. 사람은 눈앞의 울타리가 무너지는것을 보면, 그 울타리 밖에도 길이 있다는것을 쉬이 믿지 못하는 법이다.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성원들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여러날 화제가 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사업 방식을 두고 이런저런 평을 늘어놓았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아홉 사람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나는 그 모든 말들을 다 새겨듣지는 못하였으나, 적어도 우리가 헛되이 잊혀질 정도로 작은 시도는 아니였다는것만은 알수 있었다.

십이월 열하루, 유메퍼센트의 마지막 방송이 열렸다. 아홉 사람 모두가 한 화면안에 나란히 들어앉은 그 방송을 나는 사무실 한켠에서 화면으로 지켜보았다. 저마다의 아바타가 서로 다른 표정을 짓고있었지만, 그 뒤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만은 어쩐지 하나로 닮아있는것 같았다.

대화창에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마지막까지 응원한다는 말들이 쉴새없이 올라왔다. 누군가는 《꿈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간이였다》는 글을 남기였고, 나는 그 한줄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것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성원들 아홉 사람도 화면 저편에서 그 감상글들을 하나하나 읽고있는것이 보였다.

방송 말미에 아홉 사람은 저마다 짧게 소감을 말하였다. 유니동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말하였고, 칸나동지는 평소보다 훨씬 적은 말수로 고맙다는 인사만을 되풀이하였다. 나는 그 목소리들을 하나하나 들으며, 이 아홉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음을 새삼 실감하였다.

방송이 끝나고 화면이 까맣게 꺼진 뒤에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방금 전까지 아홉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하였던 사무실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것처럼 느껴지였기때문이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만이 다시금 그 적막을 채우고있었다.

미기가 조용히 다가와 따뜻한 차 한잔을 내 앞에 놓아주었다. 나는 그 차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있었다. 창밖에는 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좀처럼 일에 손이 잡히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그무렵의 나를 두고 술로 마음을 달래였다고도 하고, 몸에 무리가 왔다고도 전한다. 다만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정확한것인지는 나 스스로도 다 헤아려 말하기 어렵다.

확실한것은, 그 겨울의 나는 평소의 나답지 않게 자주 말수가 줄었고, 사무실에 혼자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사실이다. 원래도 술이 세지 못한 몸이였으니, 소주 서너잔에도 얼굴이 붉어지던 평소의 내가 그무렵 무엇을 어떻게 견디였는지는 지금도 뚜렷이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그 겨울을 지나며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았다는것만은 부인하지 않겠다.

블루동지에게서도 그무렵 안부를 묻는 문자가 몇번 왔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말투로 답장을 보내였으나, 그가 그 태연함을 곧이곧대로 믿었을지는 알수 없다. 오랜 벗이라는것은 이렇게, 굳이 캐묻지 않아도 상대의속을 짐작해버리는 존재인가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업이라는것이 방송 하나를 준비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지녔다는것을 몸으로 배웠다. 카메라앞에서 실수를 하면 웃음으로 넘길수 있었지만, 회사의 문을 닫는 실수는 아홉 사람의 생계와 마음까지 함께 흔들어놓는 일이였다. 그 무게를 견디는 법을 나는 그 겨울에 처음으로 배우고있었다.

후날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이 시절을 두고 짧게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원하는만큼의 시청자를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회사를 접어야 하였다.》 담담하게 적힌 그 한문장 뒤에는, 지금 이 절에서 풀어놓은 그 겨울의 눈물과 침묵과 뒤척임이 고스란히 눌려있다는것을, 아마 그 기사를 읽은 사람들 가운데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을것이다.

나는 그때의 실패를 지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처음으로 크게 넘어져본 사람만이 아는 어떤 감각을, 나는 그 겨울에 뼈저리게 배웠을뿐이다. 넘어지는 법을 알아야 다시 일어서는 법도 알게 되는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까지 하다. 그때 나는 유메퍼센트의 해산을 마치 한 시대의 종언처럼 무겁게 받아들이였으나, 그것은 사실 더 큰 이야기로 가는 길목의 작은 고비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력사란 언제나 당사자에게는 거창하게, 뒷사람에게는 담담하게 읽히는 법인가보다.

그해 겨울의 마지막 며칠, 나는 홀로 사무실에 앉아 텅 빈 책상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홉 사람의 자리였던 그 책상들우로 먼지가 앉기 시작하는것을 지켜보며, 나는 이 실패를 딛고 다시 무엇을 할수 있을지 아직 아무런 답도 찾지 못한채였다. 창밖의 눈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끈질긴것이여서, 아무리 크게 넘어져도 결국은 다시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손을 뻗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 겨울의 끝자락에서, 나도 모르게 다음 걸음을 향해 조금씩 몸을 일으키고있었다. 그 몸짓이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질만큼, 그것은 아주 작고 조심스러운 움직임이였다.

그 다음 걸음이 무엇이였는지는 다음 절에서 자세히 이야기할 일이다. 다만 여기서 미리 말해둘것은, 그 걸음의 첫발을 뗄수 있게 해준 사람이 다름아닌 유메퍼센트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두 사람, 칸나동지와 유니동지였다는 사실이다. 그 겨울의 실패가 없었더라면 그 뒤의 이야기도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을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해 겨울을 《첫 실패》라는 이름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이름앞에 붙은 《첫》이라는 글자가, 지나고보니 그저 아픔의 크기만을 뜻하는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동시에 그 뒤로 이어질 여러 시도들의 맨 처음이라는 뜻이기도 하였다.

열세달만에 문을 닫은 회사 하나가, 후날 더 크고 단단한 무언가로 이어지리라는것을 그 겨울의 나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다만 눈덮인 사무실 창밖을 내다보며, 이 실패가 완전한 끝은 아니기를 막연히 바라고있었을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막연한 바람이야말로, 내가 그 겨울에 붙들고있던 유일한 희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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