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엄 마 와 딸

 

우주30(2023)년의 봄은 유난히 더디게 왔다. 법인등기를 마치고도 사무실 창밖의 나무는 한참을 몽오리째 버티였으며 나는 그 나무를 내다볼 때마다 어쩐지 우리 회사의 걸음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두르지 않으나 마침내는 피고야 마는것, 그것이 그 봄의 나무였고 또한 그때의 우리였다.

사무실은 작았다. 콤퓨터 두어대가 나란히 돌아가며 랭각기소리를 냈고 책상밑으로는 정리되지 못한 선들이 어지러이 얽혀있었으며 창가에는 아직 뜯지도 않은 등기서류봉투가 몇장 놓여있었다. 나는 그 방에서 하루의 태반을 보내였다.

내 책상위에는 도장과 계산기와 두꺼운 달력이 늘 어지러이 놓여있었다. 달력에는 방송일정이며 회의날짜며 크고작은 글씨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는데 그 글씨들 사이사이로 나는 그해 봄을 다 보낸 셈이였다. 지금 와서 그 낡은 달력을 떠올리면 어쩐지 웃음이 난다.

이따금 칸나동지의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마이크 점검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왔다. 《하나, 둘, 셋, 잘 들리나요?》하는 그 심심한 목소리마저 나는 어쩐지 정겹게 들었다. 사무실이 작다보니 방음이랄것도 변변히 없어서 이쪽 소리와 저쪽 소리가 늘 뒤섞이였다.

《주식회사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을 새로 얻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사업자등록도 다 마치지 못한채로 사무실 한켠에서는 칸나동지와 유니동지의 방송소리가 들려왔고 다른 한켠에서는 내가 서류뭉치를 붙들고 앉아 도장 찍을 자리를 찾고있었다. 그 두 소리가 뒤섞여 그무렵 우리 사무실의 풍경을 이루었다.

법인이라는것을 세워놓고보니 이름만 근사하지 실상은 아직 아무것도 갖추어진게 없었다. 회사라고 부르기엔 민망할만큼 작은 살림이였으나 그래도 나는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유메퍼센트 시절부터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뻐근하였다.

유메퍼센트라는 이름을 스텔라이브로 바꾸어 법인을 다시 세운 일은 이미 앞서 적었거니와 이름을 바꾸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는것은 아니였다. 칸나동지도 유니동지도 여전히 그 얼굴 그 목소리 그대로 방송을 하였고 다만 우리를 부르는 간판만 새로워졌을뿐이였다. 나는 그 사실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미기는 그무렵 내 오른팔노릇을 하였다. 등기서류부터 세금계산서까지 나 혼자서는 엄두도 못낼 일들을 미기가 곁에서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어느날 밤늦도록 서류를 정리하다가 미기가 나에게 《사장님, 이러다 우리 진짜 회사같이 되겠어요.》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픽 웃으며 《회사같이 되는게 아니라 회사인거야, 우리.》하고 대꾸하였으나 나 스스로도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미기가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서류무더기에 파묻혀 그 봄을 다 보냈을것이다. 그런 미기를 두고 나는 곧잘 《내 오른팔》이라 부르고 다녔는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기는 그저 웃기만 하였다. 오른팔이라는 말이 과분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정작 일이 밀릴 때면 제일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는것도 미기였다.

돌이켜보면 나도 한때는 말이 거칠기로 소문난 사람이였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앞에서 말을 고르고 목소리를 낮추는 버릇이 붙었는데 그 버릇은 이 사무실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였다. 성원들앞에서만은 나도 모르게 한결 부드러운 사람이 되곤 하였으니 사람이 자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 모양이였다.

그러고보면 나를 부르는 말도 그동안 여러번 바뀌였다. 한창때는 강형이라 불리다가 15강지, 감자, 강공지주 같은 별명을 거쳐 이제는 사장이니 샤쵸니 하는 말을 듣는 처지가 되였다. 사람을 부르는 말이 그렇게 바뀌여가는것을 보면 사람도 결국 시대를 따라 옷을 갈아입는 존재인가 싶었는데 엄마라는 그 말도 알고보면 그 옷들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유메퍼센트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하던 시절에는 성원들 사이에 높임말이 당연한것이였다. 나이야 내가 몇살 위였지만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님》자를 붙이는것이 순리라고 여기였다.

그때는 방송이 끝나면 다들 인사만 나누고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짬도 별로 없었거니와 그럴 분위기도 아니였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있다기보다 각자 따로 일하는 사람들이 한 방송이름밑에 모여있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 소속을 스텔라이브로 옮기고 칸나동지와 유니동지가 나란히 재데뷰를 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하루에도 몇번씩 얼굴을 마주하고 방송일정을 맞추고 콤퓨터앞에 나란히 앉아 자료를 넘기다보니 높임말은 어느샌가 뒤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편한 말들이 들어섰다. 나는 처음엔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자꾸 높임말이 튀여나오군 하였으나 칸나동지가 몇번이나 《사장님,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하고 웃으며 청하는 통에 나도 차츰 말을 놓게 되였다. 돌이켜보면 그 사소한 말투의 변화가 후날의 큰 흐름을 미리 알려준 셈이였다.

다시 그 봄으로 돌아가보자. 법인을 세운 그해 봄 우리는 여전히 작은 사무실에서 부대끼며 지내고있었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매일같이 방송을 하였고 나는 그 사이사이에 회사일을 보았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그해 정월에 나란히 재데뷰를 마치고 채 몇달이 지나지 않은 새내기들이였다. 데뷰한지 일주일만에 칸나동지가 시청자 일만명을 넘기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 아이들이 례사롭지 않다는것을 직감하였다. 그러니 이 사무실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것도 당연한 일이였는지 모른다.

그무렵 하루 일과는 늘 비슷하였다. 아침에는 두 사람의 방송일정과 콤퓨터 점검을 확인하고 낮에는 회사서류를 붙들고 저녁에는 그날치 후원과 시청회수를 정리하였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흘러갔지만 그 반복속에서도 나는 묘하게 지치지 않았다.

유니동지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였다. 방송준비가 늦어져도, 장비에 말썽이 생겨도 유니동지는 늘 《괜찮아요, 하다보면 되지요.》하고 넘기였다. 그 밝음이 사무실 전체의 기운을 밝혀주는것 같았다.

칸나동지는 그와는 결이 조금 달랐다. 늘 밝은 모습과 열정을 앞세우면서도 승부욕이 남달라서 시청자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였다. 나는 그 두 사람을 볼 때마다 오히려 내가 힘을 얻는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 생각은 후날 어느 인터뷰자리에서도 그대로 뱉어낸 말이 되였다.

그날도 두 사람은 나란히 방송을 하고있었다. 유니동지의 방송은 잡담위주였고 칸나동지의 방송은 오락위주였는데 둘 다 대화창이 제법 북적였다. 나는 사무실 한켠 내 자리에서 서류를 보다말고 무심코 그쪽 화면을 곁눈질하였는데 그날따라 대화창에 낯선 낱말 하나가 자꾸 올라오고있었다.

《엄마》라는 그 한마디였다. 처음엔 누가 장난삼아 한 말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였다. 그러나 유니동지가 그 말을 눈여겨보고는 방송중에 대뜸 《여러분, 저희 사장님을 엄마라고 부르고 계신거예요?》하고 물었고 대화창은 그 한마디에 불이 붙은듯 요동을 쳤다.

칸나동지도 옆 화면에서 그 소동을 듣고 참견을 하였다. 《그럼 나랑 유니는 딸내미인가?》하는 그 말에 두 사람의 대화창이 동시에 웃음소리로 도배되였다. 그 소리가 사무실 이쪽까지 들려왔을 때 나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나를 향해 마이크에 대고 놀리듯이 《엄마! 오늘 저녁은 뭐 먹어요?》하고 외쳤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며 《내가 무슨 엄마야, 나이차이도 얼마 안나는데.》하고 부정하였다. 그러나 그 부정의 말투에는 벌써 웃음이 절반쯤 섞여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미기에게 그 이야기를 하며 투덜거리였다. 《쟤들이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니까.》하고 말하니 미기는 서류를 정리하며 태연하게 《사장님이 딱 그런 자리에 계시잖아요.》하고 대꾸하였다. 나는 그 말에 무어라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방송장비를 챙겨주고 일정을 조율해주고 끼니까지 걱정해주는 사람이였으니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었다. 다만 그 호칭이 어쩐지 부끄러워서 자꾸 아니라고 우기고싶었을뿐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력사적인 사변이 되고만 순간이였다.

그 대화창의 낱말 하나가 후날 이 회사의 가풍이 되고 성원들이 서로를 부르는 말버릇으로까지 자리잡을줄은 그날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큰 사변이 큰 자리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작은 사무실 대화창 한줄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후날 누군가 이 회사의 력사를 적는다면 아마 그 첫장에 이 우스운 호칭싸움을 적어야 할것이다. 나는 그 말을 몇번이고 부정하였다.

방송에서도 사석에서도 《나는 엄마가 아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였다. 그러나 부정할수록 그 별명은 오히려 더 단단히 자리를 잡아갔으니 이것도 세상 리치의 한 갈래인가 싶었다. 봄이 지나고 초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사무실 분위기는 한결 더 무르익었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이제 서로를 《딸내미야》하고 부르는 일이 잦아졌고 나를 부를 때도 자연스럽게 《엄마》소리가 앞장을 섰다. 나는 여전히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 말을 딱히 막지도 않았다.

그무렵 사무실에서는 또 다른 소식이 오가고있었다. 사업자등록을 마치는 일과 함께 새 식구를 맞아들일 채비가 조금씩 이루어지고있었던것이다. 나는 미기와 마주앉아 몇번이고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여름엔 네명이나 더 들어온다면서요.》하고 미기가 물었을 때 나는 서류뭉치를 뒤적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응, 히나, 마시로, 리제, 타비. 이번엔 한꺼번에 넷이야.》 그 이름들을 입에 올릴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였다.

이제 겨우 두 딸을 건사하는데 익숙해졌는데 넷이 한꺼번에 더 온다니 마음 한켠이 설레면서도 다른 한켠은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 걱정보다 앞선것은 어쩐지 벌써부터 차오르는 반가움이였다.

그무렵 나는 밤이면 미기와 전화로 새 식구들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방을 어떻게 꾸릴지, 장비는 몇대나 더 들여야 할지, 그런 자잘한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다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 통화가 지겹지 않았던것은 그 이야기의 끝에 늘 새 얼굴들에 대한 기대가 놓여있었기때문이였다.

유니동지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럼 저희도 언니가 되는것이예요?》하고 물었다. 나는 그 물음에 웃음으로 《그렇게 되겠지, 너희가 첫째니까.》하고 답하였다. 칸나동지는 한술 더 떠서 짐짓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언니 노릇 제대로 해야겠네, 엄마 닮아서 잘할 자신 있어요.》하였고 그 말에 사무실안이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되였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잠깐 딴생각에 잠기였다. 이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된 그 우스개소리가 앞으로 이 회사의 뼈대가 될것이라고는 그때로서는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그 웃음이 듣기 좋았고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 사업자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정리하였다. 미기가 먼저 퇴근을 하려다 말고 되돌아와 곽밥 두개를 사다 내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사장님, 이거라도 드시고 하세요.》하였다. 나는 저혈압 탓에 아침이면 늘 비실거리는 사람이였는데 이상하게 밤이 되면 정신이 말짱해져서 서류더미를 붙들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지곤 하였다.

나는 원래 떡볶이나 뿌링클같은 매운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이였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곽밥의 밍밍한 맛도 나쁘지 않게 느껴지였다. 아마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음식맛까지 바꾸어놓은 모양이였다.

그날도 곽밥을 반쯤 먹다말고 다시 서류로 눈을 돌렸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고 혀를 차며 《엄마라는 소리 들을 자격 충분하시네요, 정말.》하였다. 나는 젓가락을 든채로 그 말에 눈을 흘기였으나 딱히 반박할 말은 찾지 못하였다.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사무실 랭방기도 쉴새없이 돌아갔다. 콤퓨터 여러대가 뿜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지니 작은 방 하나가 후끈하였는데 그래도 그 더위마저 활기로 느껴지던 시절이였다. 나는 땀을 훔치면서도 서류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유월 스무엿새, 우리는 마침내 대중문화예술기획업 등록까지 마치였다. 서류상으로 보면 그저 관청에 도장 하나 더 받은 일에 지나지 않았으나 나에게는 그것이 회사가 걸음마를 떼는 두번째 걸음처럼 느껴지였다. 그날 나는 미기와 함께 사무실 문앞에 서서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네요.》하고 미기가 말하였을 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이였다.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시작한다는것인지는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그무렵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방송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습관처럼 《저희 엄마가요》하는 말을 앞세웠다. 시청자들도 이제는 그 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듯 별다른 물음없이 넘어가고있었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며 어느새 부정하던 손사래도 덜 치게 되였다.

한번은 합방중에 한 시청자가 대화창에 《엄마 목소리 진짜 좋다.》라고 적었다. 그 말을 본 칸나동지가 대뜸 나에게 마이크를 넘기며 《엄마, 인사 한번 해주세요.》하고 장난을 걸었다. 나는 얼결에 마이크를 잡고 어색하게 《안녕하세요, 딸내미들 엄마입니다.》하고 인사를 하였다.

그 말을 내뱉고 나서 나 스스로도 놀라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부정하고 부정하던 말을 내 입으로 먼저 뱉어버린 순간이였다. 대화창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가 되여 후원 알림신호이 연달아 울리고 《드디여 인정한다》는 말들이 폭포처럼 쏟아지였다.

그 방송의 클립은 인차 이곳저곳에 퍼져나갔다. 강도단을 비롯한 시청자들은 그 장면을 두고두고 돌려보며 《엄마 인정 짤》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나는 그런줄도 모르고 며칠뒤에야 미기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듣고 또 한번 얼굴이 붉어지였다.

나는 그 소란을 들으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을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는 그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게 되였다. 방송에서도 사무실에서도 성원들은 나를 자연스럽게 《엄마》라 불렀고 나 또한 그 말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였다.

사람의 마음이라는것이 참으로 간사하여서 그렇게 싫다던 말도 어느새 정이 붙어버리는것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호칭이 자리잡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봄에 씨가 뿌려진 그 우스개소리는 초여름에 이르러 완연히 뿌리를 내리였고 그 뿌리우로 곧 새로운 가지들이 돋아날 참이였다.

나는 가끔 그무렵을 떠올릴 때마다 그보다 몇해 앞선 어떤 장면과 겹쳐보고는 한다. 그때에도 나는 낯선 호칭 하나를 두고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결국은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지 않았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이라는것은 늘 그렇게 처음엔 낯설다가 나중엔 몸에 붙는 법인가보다.

다만 그때와 다른것이 있다면 그 호칭이 이번에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색깔이 되였다는 점이다. 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늘어날수록 《엄마와 딸내미들》이라는 그 말은 점점 더 무게를 더해갔다. 나는 그 무게가 조금 버겁기도 하였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후로 몇해가 지나 시부키동지, 동지, 나나동지, 리코동지, 후야동지가 차례로 이 살림에 들어왔을 때도 그 말은 조금도 낡지 않고 그대로 이어졌다. 새로 온 딸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 다른 목소리를 가졌으나 나를 부르는 그 한마디만은 신통하게도 다들 똑같았다. 나는 그것이 이 회사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유니동지는 그 시절을 두고 후날 《그때 사장님이 제일 엄마 같았어요, 진짜로.》라고 말한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새삼 그 봄의 사무실 풍경이 떠오르곤 한다. 칸나동지도 비슷하게 《우리가 먼저 그렇게 불렀는데 나중엔 사장님이 먼저 그러시더라고요.》하고 말하였는데 그 말에는 얼마쯤의 놀림기가 섞여있었지만 나는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그해 초여름, 사무실에는 또 한번의 큰 변화가 예고되여있었다.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네 사람이 곧 이 작은 살림에 새로 합류할 참이였다. 나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문득 이 호칭이 그들에게도 자연스레 이어지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 네사람을 맞이하기 위하여 미리 방을 하나 더 마련하고 며칠간 함께 지낼 자리도 봐두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 합숙이야기는 뒤에 따로 적을 자리가 있을것이다. 지금은 다만 그무렵 사무실 공기가 못내 설레였다는것만 적어둔다.

실제로 그 예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넷이 들어온 뒤로도 《엄마와 딸내미들》이라는 그 말은 사그라들지 않고 오히려 더 넓게 퍼져나갔으니 그것은 이 회사의 색깔을 이루는 하나의 결이 되였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뒤에 다시 이어가야 할 몫이다.

사무실 창밖의 나무는 어느새 꽃을 다 떨구고 짙은 잎을 매달고있었다. 봄이 그렇게 지나가고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다시 올려다보며 처음 이 글을 열며 떠올렸던 그 몽오리들을 생각하였다.

그때는 몰랐다. 대화창에 떠오른 그 낱말 하나가, 내가 손사래치며 부정하던 그 말 한마디가, 이렇게 오래도록 이 회사를 따라다닐줄은 정말 몰랐다. 사람의 일이란 그렇게 사소한 자리에서 시작되여 커다란 흐름이 되는것인가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그 봄을 떠올려보니 그때 내가 그토록 부정하려 애쓴 그 말이 실은 내 마음속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있었던것이 아닌가 싶다. 딸처럼 여기는 마음이 앞서있었기에 그 말이 그렇게 순순히 내 입에 붙어버린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의 정확한 시작점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히 말할수 있다. 그 작은 사무실에서, 그 서투른 호칭 하나로부터, 우리는 비로소 한 가족이 되여가고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족은 그해 여름 또 한번 크게 늘어날 참이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성원들은 나를 스스럼없이 엄마라 부른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작은 사무실과 그 낡은 달력과 콤퓨터 랭각기소리를 함께 떠올리곤 한다. 우주30(2023)년의 그 봄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이 호칭도, 이 회사의 이 결도 없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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