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2 기 유 니 버 스

 

우주30(2023)년 유월에 접어들면서 서울의 볕은 부쩍 따가와졌다. 법인을 세운지 채 두달이 못되던 그무렵, 사무실 창밖으로는 초여름 나무잎들이 벌써 짙푸르게 우거지고있었다. 사무실 한켠에는 화면 여러대가 나란히 놓여 밤낮으로 웅웅거렸고, 그 소리는 이제 나에게 자장가나 다름없이 익어있었다.

창을 열면 매미소리가 아직 이르다는듯 조용하였고, 대신 아래층 큰길에서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이따금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몸을 기댄채 새 식구를 맞을 채비를 하고있었다. 책상우에는 심사 지원서와 목소리 파일을 적어놓은 종이가 수북히 쌓여있었고, 그 종이무데기 옆에는 식은 커피가 몇잔째 놓여있었다. 밤을 새다시피 하며 그 종이들을 들여다보던 나날이 여름 문턱까지 이어졌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두 딸을 얻어 회사의 문을 연것이 바로 그 반년 앞선 일이였다. 그때는 오직 둘뿐이여서 온 정신을 둘에게만 쏟으면 그만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보다 갑절 되는 네 사람을 한꺼번에 맞아들여야 하였으니, 나로서는 살림을 처음 배로 늘리는 셈이였다. 밤이 깊도록 사무실에 남아 서류를 들여다보고있노라면 문득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였다.

두 딸을 건사하는 일도 힘에 부칠 때가 있었는데, 이제 네 사람을 더 들이면 내가 그 무게를 다 감당할수 있을가 하는 걱정이였다. 그러나 이미 벌여놓은 일이니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어차피 회사를 차린 이상, 식구는 자라야 하는 법이였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는 오히려 나보다 태연하였다. 《사장님, 저희도 처음엔 둘뿐이였잖아요. 이번엔 넷이니까 더 재밌을거에요.》 하고 유니동지가 웃으며 말하였을 때, 나는 그 태평함이 부럽기도 하고 든든하기도 하였다. 칸나동지도 곁에서 《우리가 언니 노릇 잘 할게요.》 하고 거들었는데, 그 한마디가 두고두고 내 마음을 놓아주었다.

새 기수를 뽑는 일은 그해 정월 열하루부터 시작되였다. 나는 이 일을 우주30(2023)년 1월 11일부터 2월 15일까지 한달 남짓 붙들고있었던것으로 기억한다. 지원서가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것을 보며 나는 이 회사가 정말로 자라고있다는 것을 처음 실감하였다. 어떤 지원서는 목소리 파일 하나만 달랑 붙어있었고, 어떤 것은 몇장이 넘는 사연을 구구절절 적어 보낸 것도 있었다.

지원자 하나하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몇번이고 되물었다. 이 사람이 우리 식구가 되면 어떤 얼굴을 하고 웃을가, 어떤 사정으로 여기까지 왔을가 하는 물음이였다. 오래 방송을 해온 나였지만 사람을 고르는 일에는 좀처럼 리력이 붙지 않았다. 밤늦게 혼자 남아 파일을 몇번이고 돌려듣다가, 새벽에야 겨우 몇 사람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치던 나날이 이어졌다.

어떤 밤에는 목소리 하나를 열번 넘게 되돌려듣기도 하였다. 사람을 고른다는것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일인줄, 나는 회사를 차리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한 사람을 들이는 일이 그 사람의 남은 나날을 함께 짊어지는 일이라는것을, 그 겨울 내내 몸으로 배웠다.

그렇게 추리고 추려 남은것이 네 사람이였다.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 이들을 한데 묶어 《유니버스》라 이름지었다. 유니동지가 회사 이름을 지을 때 보여주었던 그 재간이 이번에도 한몫을 하였다. 몇가지 이름을 놓고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저마다 다른 별에서 왔다는 뜻을 살려 그 이름으로 정하였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은 서로 닮은 데가 별로 없었다. 지구인도 있고 외계에서 온 고양이도 있고 흡혈귀도 있고 이세계에서 온 아이도 있어, 하나의 틀에 맞춰 소개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차라리 잘되였다고 생각하였다. 온 우주를 통틀어 저마다 다른 별에서 왔다는 뜻으로 《유니버스》라는 이름이 그래서 더 맞춤하였다.

히나동지는 어려서부터 가수가 되는것이 꿈이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겁이 많고 마음이 여려 그 꿈을 스스로 접었다가, 친구 하나가 몰래 올려둔 노래 소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다시 우리앞에 서게 된 사람이였다. 처음 히나동지를 만났을 때 나는 그 목소리의 맑음에 먼저 놀랐다. 그런데 말을 나눠보니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문 여닫는 소리 하나에도 어깨를 움츠리는 사람이였다.

나는 속으로 이 아이는 방송보다 방송뒤의 삶을 먼저 돌봐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남들이 짐작 못할 엉뚱한 소리를 태연히 내놓는 구석이 있어, 겉보기와는 다른 사람이라는것을 곧 알아차렸다. 겁이 많은것과 괴짜인것이 한 사람안에 나란히 들어앉아있다는것이,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였다.

히나동지는 심사 자리에서 《저는 원래 꿈을 접었던 사람인데, 친구가 몰래 올린 노래를 사람들이 들어주었다고 해서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하고 담담히 말하였다. 나는 그 담담함 뒤에 숨은 각오를 알아보았고, 이 사람만은 반드시 우리 식구로 들여야겠다고 그 자리에서 마음을 굳혔다.

마시로동지는 외계에서 내려온 고양이라는 설정을 가진 사람이였다. 목소리는 속삭이듯 나른하였지만 한번 웃음이 터지면 짜랑짜랑 울려 온 방을 채웠다. 이 사람에게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 여기서는 다만 그 웃음소리가 유난히 맑았다는것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장난기를 감추지 못하였다는것만 적어두려 한다.

리제동지는 흡혈귀와 마족의 피를 함께 받았다는 설정을 지녔는데, 정작 사람을 무는것보다 노래부르는것을 더 좋아하여 저희 무리에서 쫓겨났다는 사연을 지니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서늘하고 다가서기 어려운 인상이였으나 정작 만나보면 낯을 몹시 가리는 사람이였다. 스스로는 《청초 담당》이라 자처하였지만 매운 롱담을 던지는 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어긋남이 오히려 리제동지다운 데라고, 나는 진작부터 생각하고있었다. 넷 가운데 키가 제일 크면서도 정작 목소리를 낼 때는 제일 작아지는 사람이여서, 나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이 사람을 눈여겨보았다.

타비동지는 넷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보물을 찾아 하늘 도시를 떠돌다 길을 잃었다는 설정을 가진 사람으로, 키가 작고 말투는 어수룩하였지만 정작 앉혀놓고 이야기를 시켜보면 넷 가운데 제일 야무진 소리를 하였다. 나는 타비동지의 데뷰를 앞두고 따로 시간을 내여 붙잡고 가르쳤다. 이 아이가 너무 무르고 순하여 남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갈 사람으로 보였기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두고 《방망이로 팼다》고 우스개 삼아 말하고 다녔는데, 실은 방망이가 아니라 잔소리였다. 사무실 한켠에 마주앉아 몇시간이고 방송하는 법을 짚어주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타비야, 방송이란건 마음을 다 열어놓되 등뒤는 지킬줄 알아야 하는것이다.》 하고 나는 몇번이고 일러주었다. 타비동지는 그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 사장님.》하고 대답하였는데, 그 대답이 어찌나 고분고분한지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켠이 짠하였다.

그런데 이 네 사람을 맞이하는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반년 앞선 겨울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를 데뷰시킬 때 나는 준비가 턱없이 모자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발을 굴렀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방송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아무것도 짐작이 서지 않았다. 데뷰 전날 밤에는 콤퓨터앞에 앉아 대본을 몇번이고 고쳐쓰다가 새벽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그에 견주면 이번 두번째 기수를 맞는 마음은 한결 든든하였다. 이미 한번 겪어본 일이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눈에 훤히 보였고, 칸나동지와 유니동지가 곁에서 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지나간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는것을 그제서야 실감하였다. 사람은 그렇게 한번 넘어져보아야 다음번엔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모양이다. 칸나동지가 데뷰한지 일주일만에 시청자 만명을 넘기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뛸듯이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새삼 실감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 무게를 이제 넷에게 나누어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새삼 다잡아졌다.

데뷰를 한 열흘 앞두고부터 네 사람은 한자리에 모여 지내게 되였다. 서로 얼굴도 낯설고 말도 어색하던 사람들이 한지붕밑에서 부대끼며 며칠을 보냈으니, 그 나날의 자세한 사연은 따로 적을 자리가 있을것이다. 다만 그 며칠사이 네 사람의 말투가 눈에 띄게 편해졌다는것만은 여기서도 말해두어야겠다.

나는 며칠에 한번씩 그 자리에 들러 넷의 얼굴을 살폈다. 처음에는 서로 존대를 하며 서먹서먹하던 것이 어느새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새여나오는 사이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을 보고있자니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을 잘 지켜주어야겠다는 다짐이 새삼 굳어졌다. 사람이 사람과 낯을 트는데는 방송보다 밥상머리가 먼저라는것을, 나는 그 며칠을 지켜보며 새삼 깨달았다.

데뷰를 이틀 앞둔 저녁, 나는 넷을 한자리에 앉혀놓고 마지막으로 채비를 점검하였다. 목소리를 다듬는 련습, 화면 넘기는 손짓, 대화창 읽는 눈길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몇번이고 되풀이시켰다. 히나동지는 손끝을 떨었고 리제동지는 애써 태연한 척하였으나 무릎우에 얹은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였다. 마시로동지만이 홀로 여유롭게 웃으며 나머지 셋을 놀려대다가 나에게 눈총을 받았다.

《떨리는게 당연한거다.》 하고 나는 말하였다. 《나도 이 회사를 처음 세울 때 밤잠을 설쳤다. 첫 방송이 서투른건 흠이 아니다, 다만 그 서투름을 숨기지 않는것이 낫다.》 타비동지가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사장님, 그러면 넘어져도 됩니까?》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넘어지는것도 방송이다, 다만 일어날 때는 웃으면서 일어나라.》 하고 대답하였다. 그 한마디에 넷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제 되였다, 이 아이들은 잘 해낼것이다 하고 마음을 놓았다. 그날 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 웃음소리가 귀에 남아 혼자 몇번이고 되뇌였다.

유월 열흘, 마침내 첫날이 왔다. 그날은 유난히 하늘이 맑아서 사무실 창으로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 나는 오후 네시가 되기 한참전부터 콤퓨터앞에 앉아 대화창을 열어놓고 기다렸다. 손에는 식은 커피잔을 쥐고 있었지만 정작 한모금도 마시지 못하였다.

오후 네시, 히나동지의 화면이 처음으로 켜졌다.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지만 첫인사만은 또랑또랑하였다.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 하는 그 한마디에 대화창이 순식간에 빼곡히 차올랐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반쯤 일어섰다.

히나동지는 몇번이고 말을 더듬으며 준비해온 소개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알림소리가 갑자기 크게 울리자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는데, 그 모습을 본 시청자들이 오히려 더 반가워하였다. 나는 화면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속으로 잘 견디여내라고 빌었다. 겁많은 아이가 그 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내보이는 것도 방송이 될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날 새삼 배웠다.

한시간 뒤, 마시로동지의 차례가 되였다. 이 사람은 앞선 히나동지와는 아주 딴판이여서, 화면이 켜지자마자 나른한 목소리로 《안녕, 나는 저 먼 별에서 왔어.》 하고 능청스레 인사를 건넸다. 대화창이 마시로동지의 그 능청에 웃음소리로 넘실거렸다.

그런데 마시로동지가 정작 하고싶었던 말은 인사 뒤에 붙은 한마디였다. 《나랑 같은 별에서 온 친구들을 찾고있어, 혹시 아는 사람 있으면 알려줘.》 그 말을 하는 목소리가 장난스러운듯 하면서도 어딘가 진심이 묻어있어, 나는 화면 너머로 코끝이 시큰해졌다. 하루 첫 방송을 그렇게 무사히 둘이나 마치고 나니, 저녁무렵이 되여서야 나는 비로소 어깨의 힘을 풀수 있었다.

다음날인 유월 열하루도 하늘은 그대로 맑았다. 나는 전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또 오후 네시를 기다렸다. 하루사이에 식구가 둘이나 더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신기한 마음이 앞섰다. 사무실 밖에서는 여름 첫 매미가 이날에서야 슬슬 울기 시작하였다.

오후 네시, 리제동지의 화면이 켜졌다. 낯을 몹시 가린다던 그 사람이 첫 인사만은 야무지게 해내여, 나는 속으로 며칠간의 채비가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리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목소리에는 애써 다잡은 힘이 실려있었다.

그런데 몇마디 지나지 않아 리제동지는 이내 말끝을 흐리며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하였다. 대화창에서 《긴장한거 다 보인다》는 소리가 나오자 리제동지는 《저 원래 청초한 사람입니다.》 하고 애써 둘러댔는데, 그 말투가 도리어 웃음을 자아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겉과속이 다른것도 이 사람의 매력이 되겠구나 생각하였다.

리제동지의 방송이 끝난 뒤에도 나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남은 한시간을 기다렸다. 사무실안은 조용하였지만 대화창만은 쉴새없이 새로운 글자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조용함과 소란스러움이 뒤섞인 그 시간이, 나는 그 여름 내내 가장 기이한 기다림으로 기억한다.

다시 한시간이 지나 타비동지의 차례가 되였다. 며칠전 내 앞에서 손을 떨던 그 아이가 화면 너머에서는 제법 씩씩하게 첫인사를 하였다. 《보물사냥꾼 타비, 여러분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자마자 준비해온 대사를 깜빡 잊었는지 잠시 말이 끊기였다.

나는 화면앞에서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았는데, 타비동지는 이내 《음, 넘어졌으니까 웃으면서 일어나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둘러대며 다시 말을 이였다. 그 말이 내가 며칠전 일러준 그대로여서, 나는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가르친 말이 이렇게 고스란히 쓰이는것을 보는 마음이 이런것이로구나 하고,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네 사람이 이틀에 걸쳐 차례로 화면에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마치 온 나라가 새 력사의 장을 넘기는 자리에 앉아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스운 말이지만 그때는 정말로 그렇게 여겨졌다. 회사를 차린지 겨우 반년만에 식구가 여섯으로 불어난 것이니, 그럴 만도 하였다.

대화창에서는 벌써부터 《엄마 딸 늘었다》는 말이 오갔다. 나는 그 말이 낯간지러워 못들은 척하였지만, 속으로는 이 말이 오래 갈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가 그 예감은 얼마 못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날 밤 늦게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첫 방송을 돌려보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들었다. 히나동지는 자기가 놀란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고, 마시로동지는 그런 히나동지를 놀리며 깔깔거렸다 한다. 리제동지와 타비동지는 서로의 실수를 짚어가며 배를 잡고 웃었다는데,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는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낯설던 넷이 벌써 저희끼리 흉을 보며 웃을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뜻이였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고 하였다. 유니동지는 《이제 우리도 언니가 되였네.》하며 으쓱거렸고, 칸나동지는 넷의 첫 방송을 하나하나 챙겨보며 잘한 대목을 짚어 칭찬해주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말을 전해듣고 이 두 사람이 어느새 저희끼리 든든한 울타리를 이루었다는것을 알았다. 언니라는것이 이렇게 저절로 생기는것이로구나 하고, 나는 새삼 흐뭇하였다. 밤이 깊도록 그 이야기를 전해준 미기동지에게 나는 몇번이고 되물어가며 웃었다.

미기동지는 웃음 끝에 《사장님도 이제 딸이 여섯입니다.》 하고 놀리듯 말하였다. 나는 그 말에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헛기침만 하였는데, 속으로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여섯이라는 수자가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이틀은 회사의 력사에서 결코 작지 않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그때는 그것을 대사변이라 여길 겨를도 없이, 그저 넷이 무사히 첫 방송을 마쳤다는 사실 하나에안도하였을뿐이였다. 력사라는것은 늘 그렇게, 지나고서야 비로소 력사라 불리는 모양이다.

나는 그 이틀 사이 몇번이고 콤퓨터 화면을 껐다 켰다 하였다. 방송이 끝날 때마다 대화창을 다시 열어 반응을 훑어보았고, 반응이 좋을 때는 혼자 사무실에서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런 내 모습을 미기동지가 보았다면 아마 놀렸을것이다.

그날 이후로 《유니버스》라는 이름은 우리 회사안에서 낯설지 않은 말이 되였다.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넷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그 첫 소리들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중에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우던 사람도 있었으니, 그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마저 하려 한다.

나는 그때만 해도 이 네 사람이 앞으로 얼마나 큰 웃음과 눈물을 나에게 안겨줄지 다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유월의 그 이틀, 하늘이 유난히 맑았던 그 오후들만은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있다. 사무실 콤퓨터가 웅웅거리던 그 소리와 창밖으로 길게 들어오던 볕까지도, 눈을 감으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그 이틀사이 나는 엄마라는 말을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묵묵히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딸이라는 말도, 엄마라는 말도, 누가 먼저랄것 없이 저절로 붙은 이름이였다. 그런 이름들이 쌓여 오늘의 우리 회사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새삼 신기한 노릇이다.

딸들이 하나둘 늘어가던 그 여름의 문턱에서, 나는 비로소 이 일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것을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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