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 시 로 의 자 리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와 리제동지와 타비동지, 네사람이 이틀에 걸쳐 차례로 데뷰방송을 마친 그날 밤에도 나는 사무실의 콤퓨터앞을 뜨지 못하였다. 대화창은 아직도 축하의 말들로 흘러넘치고있었고 창밖은 벌써 어두워져 초여름밤 특유의 눅눅한 공기가 유리창에 매달려있었다. 화면의 불빛만이 방안을 비추고 나머지는 어둑하였는데 그 고요함이 오히려 낮동안의 소란을 실감케 하였다.
책상우에는 이틀치 후원 그라프를 뽑은 종이와 식은 커피잔 두개가 놓여있었다. 미기는 벌써 자정 전에 먼저 들어갔고 나는 혼자 남아 그 넷의 이름이 나란히 걸린 알림문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히나, 마시로, 리제, 타비. 새로 걸린 프로필 그림 넷이 화면우에서 나란히 웃고있었다.
건물 아래층 로비의 조명이 하나둘 꺼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나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잠깐 눈을 감았다. 몇달 사이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갔는데, 유독 한사람의 얼굴이 오래 머물러 사라지지 않았다.
보는 사람들은 아마 이 넷이 애초부터 한 조로 묶여있었으려니 생각할것이다. 실상 방송이라는것이 다 그렇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의 모습만이 력사로 남고 그 뒤에 있었던 수많은 조정과 망설임은 아무도 알지 못한채 지나가버린다.
그러나 이 네사람의 자리가 처음부터 그렇게 순순히 정해진것은 아니였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겨울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29(2022)년(2022년) 세밑이였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사무실 라디에터가 밤새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었고 창에는 성에가 두텁게 앉았다. 나는 그맘때 다음 기수를 꾸리는 일로 하루의 절반을 심사 파일과 리력서철에 파묻혀 지냈다.
그 철속에 마시로라는 이름이 있었다. 자기소개 록음 파일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끌리였다. 유난히 맑고 조용조용한데다가 말끝을 흐리는 버릇이 오히려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였다.
다만 그 록음본에는 남앞에 나서는 사람 특유의 배포보다는 조심스러움이 더 짙게 배여있었다.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방송을 하다보면 다들 겪는 통과의례라 여기였고, 오히려 차분한 성격이 방송에 안정감을 줄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다.
애초의 계획으로는 마시로동지를 먼저 준비가 된 기수, 그러니까 1기 쪽 대오에 넣을 생각이였다. 목소리도 좋고 그림도 좋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안이한 생각이 없지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순전히 나의 성급함이였다.
처음 화상통화로 마시로동지와 인사를 나누던 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화면 속 마시로동지는 인사말을 몇번이나 다시 고쳐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그저 낯선 자리에 처음 앉은 사람의 흔한 긴장이려니 여기였다.
그날 나는 여느 후보들에게 하던대로 앞으로의 방송 방향과 스텔라이브의 지향을 설명하였다. 《우리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대신 목소리와 개성으로 승부를 본다, 기술보다 노하우가 더 중요한 곳이다.》 마시로동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받아적었는데, 그 성실함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오면서 데뷰 준비는 하나씩 갖추어져갔다. 자기소개 대본을 다듬고 방송 프로그람을 손보고 발성 련습을 함께 하는 나날이 이어졌는데 그 사이 나는 마시로동지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가는것을 눈치채지 못하였다.
처음 이상한 낌새를 챈것은 단체통화 자리에서였다. 다른 후보 성원들은 서로 농을 주고받으며 웃는데 마시로동지만은 화면 한구석에서 마이크를 꺼놓은채 고개만 끄덕이고있었다. 그날은 그저 낯을 가리는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였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발성 련습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목청껏 대본을 읽는데 마시로동지만은 소리를 반쯤 삼키듯 읽어내려갔다. 미기가 옆에서 조금 더 크게 해보라고 권하자 마시로동지는 알겠다고 대답은 하였으나 목소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밤늦게 쪽지가 하나 왔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라는 짧은 문장 뒤로 한참동안 다음 줄이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랭수 한잔을앞에 놓고 화면만 들여다보며 기다렸다.
한참만에 이어진 문장은 이러하였다. 《저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들앞에 서는것이, 특히 다른 성원들과 나란히 서는것이 너무 무섭습니다. 기수를 다시 생각해주실수는 없을까요.》
나는 그 밤 여러 말로 마시로동지를 다독였다. 《마시로동지, 처음엔 다 그런것이다. 나도 처음 카메라앞에 앉았을 때는 손이 다 떨렸다. 함께 서면 무섭지 않다, 옆에 히나동지도 있고 리제동지도 있고 타비동지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마시로동지의 대답은 완강하였다. 《사장님 말씀은 감사하지만, 옆에 누가 있어도 무서운것은 무섭습니다. 저는 아직 그 무서움을 이길 힘이 없습니다.》
이런 문답이 그뒤로도 한번이 아니였다. 통화로도 하고 문자로도 하고 어떤 밤에는 사무실에 남아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도 하였다. 하루밤 사이에 결정을 내릴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나는 말로만 다독이는데 그치지 않고 몇가지를 실제로 해보았다. 우선 사람 수가 많은 단체통화 대신 마시로동지와 다른 한 성원, 단둘이서만 짧게 잡담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해보았다. 둘이서만 있으니 조금은 나아지는듯도 하였으나 그것도 림시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 다음엔 카메라도 마이크도 없이 그저 문서만 놓고 대본을 함께 읽어보는 자리를 만들어보았다.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면 조금씩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마시로동지는 그 자리에서는 곧잘 웃었지만 정작 방송이라는 말만 나오면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
나 자신도 처음 방송을 시작하던무렵에는 실수가 두려워 며칠씩 잠을 설친 일이 있었다. 그 경험을 들려주며 《누구나 처음은 그렇다》고 말해보았으나, 마시로동지에게는 그 말이 오히려 자신만 유난스럽다는 자책으로 돌아가는듯하였다.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 도리어 짐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나는 대표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이왕 정한 기수를 흔드는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과, 사람 하나의 마음을 짓밟으면서까지 밀어붙이는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 사이에서 여러날 흔들리였다. 회사를 처음 꾸릴 때부터 지녀온 립장은 분명하였으나, 그것을 사람 하나하나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번은 마시로동지에게 이렇게 물어본적도 있었다. 《혹시 방송 자체가 싫은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이 조합이 부담스러운것인가.》 마시로동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대답하였다. 《방송이 싫은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만 뒤처지는것 같은 그 느낌이 무섭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서야 나는 마시로동지의 두려움이 단순한 낯가림이 아니라 이미 앞서 나가있는 이들 곁에서 스스로를 견주는 데서 오는 두려움임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답이 나오는것은 아니였지만, 적어도 무엇을 물어야 할지는 알게 되였다.
어느 날은 반농담삼아 이렇게도 말해보았다. 《마시로동지, 이러다가는 방송 시작도 하기 전에 사장이 먼저 앓아눕겠다.》 마시로동지는 그 말에 처음으로 픽 웃었으나 이내 다시 어두운 얼굴로 돌아갔다.
나는 미기를 불러 이 일을 의논하였다. 미기는 내 오른팔답게 늘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사장님, 마시로 그 친구 표정 보였어요? 저러다 데뷔도 하기 전에 지쳐버리겠어요.》
《나도 안다. 다만 이제 와서 기수를 바꾸면 저쪽 준비도 다 흐트러지지 않겠나. 일정도 그렇고 발표도 다 나가있는데.》
미기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였다. 《흐트러지는건 서류 몇장이지만, 사람 마음이 망가지면 그건 서류로 못 고칩니다. 그리고 사장님도 이미 답 정해놓고 저한테 확인받으러 오신것 아니예요?》
그 한마디가 내 안의 저울을 완전히 기울여놓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답을 알고있었는데 다만 대표로서의 책임감이 그 답을 인정하는것을 늦추고 있었을뿐이였다. 미기의 말은 그저 내 등을 슬쩍 떠민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왕 발표까지 나간 명단을 되돌린다는 부담과, 그럼에도 사람 하나를 살리는 일이 우선이라는 확신이 밤새 자리다툼을 하였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나는 이불속에서 몸을 일으켜 다시 콤퓨터를 켰다.
화면에는 마시로동지가 보내온 지난 쪽지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신이 없습니다》, 《무섭습니다》, 《다시 생각해주실수는 없을까요》. 그 세 문장을 다시 읽고나니 더는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이튿날 나는 마시로동지에게 다시 통화를 걸었다. 《마시로동지, 그동안 여러번 물어서 미안하다. 이제 그만 물으마. 대신 하나만 묻자. 만약 지금 기수를 조정해서 준비가 좀더 된 다음, 다른 얼굴들과 함께 시작한다면 어떻겠는가.》
전화기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해주실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섞인안도의 떨림을 나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그리하여 마시로동지는 1기가 아니라 그해 새로 꾸려지는 2기 유니버스 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였다. 히나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와 함께 준비할 시간이 몇달 더 주어진 셈이였다.
서류상으로는 간단한 일이였다. 명단에서 이름 하나를 이쪽 칸에서 저쪽 칸으로 옮기는것뿐이니 미기의 말대로 종이 몇장의 문제였다. 그러나 그 종이 몇장을 옮기기까지 오간 통화와 문자와 망설임의 수자를 헤아리자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나는 그때 결정을 내리며 짐짓 력사책에나 나올법한 말투로 혼자 중얼거려보기도 하였다. 《오늘 이 작은 조정이 후날 스텔라이브 력사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서류 한장을 놓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말이여서, 옆에서 듣던 미기가 실소를 터뜨렸다.
《사장님, 그거 인사이동 서류에 쓸 말은 아닌것 같은데요.》
《기록은 원래 이렇게 남기는것이다.》 나는 짐짓 근엄하게 대꾸하였고 미기는 어이없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그 실없는 문답 한번으로 며칠 무겁던 사무실 공기가 조금은 풀리는것 같았다.
1기 쪽 후보들에게도 이 조정을 알려야 하였다. 처음엔 마시로동지의 빈자리를 두고 서운해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사정을 듣고는 다들 리해해주었다. 오히려 개중에는 《저도 그런 마음 리해가 갑니다》 하고 조용히 말해주는 이도 있어 나는 마음이 놓이였다.
새로 명단을 확정하던 날, 미기가 서류를 인쇄해오며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마치 무슨 큰 조약서에 서명이라도 하는듯 펜을 오래 만지작거리다가 이름 옆에 도장을 찍었다. 미기는 그 모습을 보고 《사장님, 그거 인사발령서예요, 국경조약 아니고요》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웃고 나니 며칠 무겁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람 하나의 자리를 정하는 일이 나라의 강토를 나누는 일만큼 거창할 리야 없겠으나, 적어도 그날의 나에게는 그만큼 무겁게 느껴졌던것도 사실이다.
그로부터 마시로동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조급하게 등을 떠밀지 않으니 스스로 걸음을 떼기 시작하는것이 보이였다. 발성 련습에도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였고 단체통화에서도 마이크를 켜놓는 시간이 늘어났다.
히나동지와 리제동지와 타비동지 세사람도 새로 합류한 마시로동지를 스스럼없이 맞아주었다. 처음엔 서로 낯을 가리며 인사만 주고받던 사이가 몇주 지나지 않아 서로의 습관이며 버릇을 놀리는 사이로 바뀌어갔다.
어느 날 단체통화 도중에 타비동지가 마시로동지의 조용한 말투를 흉내내며 장난을 쳤다. 마시로동지는 처음엔 당황하다가 이내 자기도 따라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를 화면 너머로 듣던 나는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는것을 느끼였다.
히나동지는 마시로동지에게 발성 련습 요령을 따로 일러주기도 하였고, 리제동지는 자기가 먼저 서투른 실수담을 늘어놓으며 마시로동지의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다. 넷 사이에 그런 잔정이 오가는것을 보면서 나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일이 많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어느 단체통화에서는 리제동지가 《마시로는 우리 넷 중에 제일 늦게 왔으니까 막내다》라고 짐짓 짓궂게 놀렸다. 마시로동지가 정색을 하며 《저 나이는 막내 아닙니다》라고 받아치자 화면 너머로 웃음이 터졌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듣는것만으로도 몇달 사이의 마음고생이 다 풀리는 기분이였다.
타비동지는 한걸음 더 나아가 마시로동지의 말투를 흉내내며 인사말 련습을 함께 해보자고 청하기도 하였다. 둘이서 서로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낄낄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낯가림이라는것도 결국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씩 녹아내리는 얼음 같은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대표라는 자리를 앉아서 결정만 내리는 자리로 여기지만 실상 이 일의 대부분은 결정을 내리기까지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이다. 나는 마시로동지의 일을 겪으며 그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그 겨울부터 새봄까지, 나는 사장이라는 직함보다는 어머니라는 말에 더 가까운 노릇을 하고있었는지 모른다. 성원들이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애라 부르는 말버릇이 자리를 잡은것도 바로 이무렵 언저리였음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그때는 그 말버릇을 두고 짐짓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였지만, 지금 이 일을 적으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부정할 일도 아니였던것 같다. 사람 하나의 두려움을 서류 몇장으로나마 덜어줄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한것이다.
2기 유니버스의 데뷰가 예정된 우주30(2023)년(2023년) 6월이 다가오면서 마시로동지의 준비는 몰라보게 단단해졌다. 물론 낯가림이 하루아침에 사라진것은 아니였다. 다만 두려움을 안고서도 앞으로 나설수 있는 힘이 조금씩 붙어가는것이 곁에서도 느껴졌다.
그 몇달 사이 나는 마시로동지와 몇번 더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자리에서는 《요즘은 좀 어떤가》하고 물으니 《아직 무섭기는 하지만 예전보다는 낫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조금씩 나아지고있다는 그 말 한마디가 그동안의 모든 통화보다 더 반가웠다.
데뷰를 얼마 앞두지 않은 어느 날, 나는 마시로동지를 따로 불러 다시 한번 물었다. 《이제 준비가 되었는가.》
마시로동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하였다. 《여전히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엔 도망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대답이 지난겨울 밤늦게 오던 그 짧은 쪽지보다 얼마나 멀리 온것인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렸을것이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되었다》고 짧게 답하였다.
그리하여 6월의 이틀에 걸쳐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네사람이 차례로 화면에 얼굴을 내밀었다. 마시로동지의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사무실 한구석에서 대화창을 새로고침하며 남몰래 손에 땀을 쥐고있었다.
방송은 무사히 끝났다. 목소리가 몇번 떨리기는 하였으나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따뜻하였다. 방송이 끝난 직후 개인 쪽지창에 짧은 한마디가 올라왔다. 《사장님, 저 해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겨우 몇 글자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반년 남짓의 시간을 아는 사람은 나와 미기, 그리고 마시로동지 자신뿐이였다.
이날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였다. 우리가 잘할수 있고 좋아하는것을 하는것, 그것이 회사를 만든 리유의 전부라고. 사람을 억지로 무대우에 세우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설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회사이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처럼 뚜렷하였던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후날 마시로동지가 2기 유니버스의 일원으로 무난히, 오히려 다른 누구보다도 안정되게 활동을 이어가는것을 보고 그가 원래부터 2기 소속이였으려니 여길것이다. 그 뒤에 있었던 겨울밤의 쪽지들과 랭수 한잔의 침묵과 미기의 잔소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 두 언니뻘 되는 성원들도 후날 이 사정을 전해듣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보태였다. 칸나동지는 《그런 사정이 있었는지 몰랐다, 마시로가 잘 이겨내서 다행이다》하였고, 유니동지는 《힘든 일이 있어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것이 우리 회사 딸들 아니겠냐》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것이 우리 딸들의 성정이라면, 그 웃음을 지을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는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력사란 원래 그런것이다. 무대에 오른 결과만이 사람들 눈에 남고 그 앞에 있었던 수많은 망설임과 되물음은 기록되지 않는채 흘러가버린다. 나는 이 회고록에서나마 그 흘러간 밤들을 굳이 붙잡아 적어두려 한다.
그때 나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사람이 데뷰를 앞두고 한 지붕 아래서 일주일 남짓 함께 지내며 서로의 낯을 마저 트게 될것이라는것을. 그 합숙의 며칠이 마시로동지에게 또 한번의 문턱이 되리라는것도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이 일을 겪으며 한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딸들을 맞이한다는것은 데뷰방송 하나를 무사히 치르는 일이 아니라, 그 딸 하나하나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나의 걸음을 늦추기도 하고 서두르기도 하는 일이라는것을.
마시로동지의 자리를 옮기던 그 겨울과 새봄의 나날은 지금 돌이켜보아도 사소한 인사기록 한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사소함속에서 이 일을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의 한자락을 붙잡았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있다.
후날 이 회사가 얼마나 더 커질지, 딸들이 몇기수까지 늘어날지 그때는 아무도 헤아리지 못하였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하였다. 자리란 억지로 앉히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스스로 걸어들어올 때까지 비워두고 기다려주는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상이 마시로동지가 우리 스텔라이브의 두번째 기수, 2기 유니버스의 한 자리를 얻게 된 전말이다. 겨울의 망설임과 새봄의 다독임을 거쳐 여름의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 사이에 있었던 밤들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