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합 숙 의 나 날

 

나는 앞선 어느 절에서, 네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내던 그 며칠의 자세한 사연은 따로 적을 자리가 있으리라고 말해둔바 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킬 차례가 되였다. 우주30(2023)년 오월의 끝자락, 서울의 볕은 어느새 초여름 티가 나기 시작하였고, 골목 어귀 장미덤불은 한창 붉게 피여있었다.

회사는 그무렵 사무실과는 따로 작은 오피스텔 한채를 얻어두고있었다. 미기가 며칠을 발품 팔아 구해온 자리였는데, 방 두칸에 거실 하나, 부엌이 딸린 좁은 살림집이였다. 나는 열쇠를 받아든 날 그 빈방을 한바퀴 둘러보며, 이제 곧 이 방들이 낯선 목소리로 채워지리라는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나는 그곳을 네 사람이 데뷰 전까지 함께 지낼 자리로 정하였다. 며칠인지 정확히 헤아리기는 지금도 어렵다. 나중에 누구는 열흘이였다 하고 누구는 반달 가까이 되였다고 기억하니, 아마 그 사이 어디쯤이 맞을것이다.

입주하기 전날, 나는 미기와 함께 랭장고를 채워넣으러 마트에 들렀다. 히나동지가 매운것을 잘 못먹는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듣고 순한 맛 라면을 골라담았고, 마시로동지가 밤에 군것질을 즐긴다기에 과자 몇봉지도 슬쩍 끼워넣었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누가 보면 진짜 딸 넷 시집보내는줄 알겠어요》하고 놀렸는데, 나는 그 말에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를 데뷰시킬 때에는 나 혼자 발을 구르며 모든것을 떠안았으나,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이 네 사람은 서로 얼굴도 낯설고 말투도 낯설었다. 방송이라는 무대에 함께 서기 전에 먼저 한 지붕밑에서 밥을 나누어 먹어보아야 한다는것이 나의 생각이였다.

첫날 저녁, 나는 오피스텔 문앞에서 네 사람을 하나하나 맞이하였다. 히나동지가 가장 먼저 도착하여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허리를 깊이 숙였고, 뒤이어 들어온 마시로동지도 《처음 뵙겠습니다.》하며 존대를 놓지 못하였다. 리제동지와 타비동지 역시 서로에게 깍듯이 높임말을 쓰며 짐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서먹서먹한지,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네 사람 모두 방바닥에 나란히 앉아 저녁밥을 먹는데, 젓가락질 소리와 텔레비죤 소리만 방안을 채울뿐 말은 좀처럼 오가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짐짓 목소리를 높여 집안 살림 규칙 몇가지를 일러주었다.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하고, 청소당번은 벽에 붙여둔 표를 보고 정하기로 하자.》 그 말에 리제동지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사장님, 그럼 라면은 누가 끓입니까?》 그 엉뚱한 물음에 방안 공기가 잠시 풀렸다가, 다시 어색하게 가라앉았다.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다가 넷을 재우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마치 새 나라 하나를 세우고 첫 백성 넷을 이주시킨 사람처럼 뿌듯하기도 하고 서투르기도 한 기분을 느끼였다. 회사를 차릴 때의 그 서투름과 다르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지켜야 할 사람이 넷이나 더 늘어있었다.

이튿날부터 나는 며칠에 한번씩 오피스텔에 들러 넷의 얼굴을 살폈다. 처음 이틀은 다들 존대를 놓지 못하고 서로 방문앞에서 마주쳐도 어색하게 고개만 숙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랭장고 안 식료품마저 저마다 이름표를 붙여 나누어놓았다니, 그 서먹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만하다.

그러나 사흘째부터는 그 어색함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나는 첫 장보기를 넷과 함께 다녀왔는데, 마트 카트 하나를 두고 넷이 서로 밀고 당기며 웃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리제동지가 카트를 몰다가 진열대를 살짝 들이받자, 타비동지가 재빨리 붙잡아 세우며 《조심하셔야죠》하고 나무랐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뒤자리에 나란히 앉은 넷이 봉지 속 과자를 두고 실랑이하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웃음을 참았다. 히나동지는 그 실랑이에 끼지 못하고 창밖만 보고있었으나, 이따금 곁눈질로 셋을 살피는 눈빛만은 전과 달리 호기심이 어려있었다. 나는 그 눈빛 하나에도 마음이 놓였다.

셋째날 저녁, 마시로동지가 라면을 끓이다가 그만 냄비를 태워먹은 일이 있었다. 부엌에서 매캐한 냄새가 퍼지자 히나동지가 화들짝 놀라 뛰쳐나왔고, 리제동지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타비동지만이 침착하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며 《밥은 제가 다시 하겠습니다.》하고 나섰다.

그날 저녁 넷은 결국 타비동지가 새로 지은 밥에 김치만 놓고 늦은 저녁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웃음소리가 방문 밖까지 새여나왔다고 나는 나중에 전해들었다. 마시로동지는 그때 처음으로 《아 몰라, 나 원래 료리 못해》하며 존대를 벗어던졌다. 그 한마디가 넷 사이에 처음 놓인 반말의 다리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속으로안도의 한숨을 쉬였다. 밥그릇 하나를 태워먹은 실수가 오히려 넷의 마음을 이어주는 실마리가 되였으니, 사람 사이의 일이란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로 일부러 넷에게 료리를 자꾸 시켜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나름의 셈속이 있었던 셈이다.

그무렵 리제동지의 입담은 벌써 오피스텔안에서 이름을 떨치고있었다. 리제동지는 스스로를 《청초 담당》이라 자처하면서도, 정작 입을 열면 누구보다 매운 말을 태연히 던지는 사람이였다. 하루는 내가 들르자마자 《사장님, 오늘도 감시하러 왔어요?》하고 태연히 놀려대여,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런 리제동지의 장난에 처음에는 눈만 껌뻑이던 히나동지도 며칠이 지나자 조금씩 되받아치기 시작하였다. 《리제 언니, 그렇게 말하면 사장님 서운해할거에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거드는 히나동지를 보며, 나는 이 아이가 이렇게 농담을 받아넘길 줄도 아는 사람이였구나 하고 새삼 놀라웠다.

타비동지는 넷 중 가장 말수가 적었으나, 밤이면 홀로 거실 한켠에서 마이크도 없이 소리내여 대본을 읽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였다고 한다. 어떤 날은 발음사전까지 펴놓고 낯선 낱말을 몇번이고 되뇌였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다른 셋이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엔 놀리려다가도, 그 눈빛이 하도 진지하여 다들 슬며시 자리를 피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나는 나중에 들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겉보기에 순하고 어수룩한 사람일수록속에 품은 다짐은 오히려 굳센 법이라고 생각하였다. 하루는 나도 밤늦게 들렀다가 그 소리를 문밖에서 가만히 듣고 돌아온 일이 있었다. 굳이 문을 열어 아는 체하지 않은것은, 그 다짐을 흩트리고 싶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며 넷 사이에는 조금씩 저희들만의 질서가 생겨났다. 아침잠이 많은 마시로동지를 위해 나머지 셋이 알아서 아침을 차렸고, 저녁이면 다같이 거실에 모여 그날 익힌 자기소개 인사를 서로 들려주고 고쳐주었다. 나는 그 광경을 몇번이나 문틈으로 지켜보며 혼자 웃음을 참았다.

날이 갈수록 오피스텔 창밖의 볕도 짙어졌다. 오월 끝머리의 선선하던 저녁바람은 어느새 후덥지근하게 바뀌였고, 창틀 너머 골목에서는 이르게 깨여난 매미 한마리가 서투른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매미 울음이 조금씩 굵어지는것으로 데뷰날이 다가오고있음을 가늠하군 하였다.

빨래를 개다가 넷의 옷가지가 뒤섞여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날도 있었다. 리제동지의 양말 한짝이 마시로동지의 서랍에서 나왔다며 다들 배를 잡고 웃었는데, 정작 그 소동을 웃음으로 넘길수 있었다는것 자체가 넷이 얼마나 가까와졌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였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웃으면서도, 이제야 이 넷이 한식구가 되여가는구나 하고 느끼였다.

그러나 이 나날이 마냥 웃음으로만 채워진것은 아니였다. 합숙 열흘째쯤 되던 어느 늦은 밤, 나는 미기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오피스텔로 향하였다. 히나동지가 방에 들어간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전갈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히나동지는 이불을 뒤집어쓴채 소리없이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마시로동지와 리제동지가 그 곁을 지키고 앉아 등을 쓸어주고있었고, 타비동지는 물 한컵을 떠다놓고 어쩔줄 몰라하며 서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이불 곁에 조심스레 앉아 히나동지의 등을 가만히 두드렸다.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니.》하고 나직이 물으니, 한참 만에야 히나동지가 이불 밖으로 눈만 내밀고 대답하였다. 《저만 아직도 자기소개를 제대로 못해요. 다들 저때문에 늦게 자는것 같아서.》

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이 아이가 며칠 내내 홀로 그 걱정을 삼키고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하였다. 《누구도 너때문에 늦게 자는게 아니다. 여기 있는 넷은 서로를 기다려주려고 함께 있는것이다.》 마시로동지도 그 말을 거들었다. 《맞아, 나도 지난번에 내 자리 갖고 한참 헤맸잖아. 그때 사장님이 기다려줬어.》

그 말에 히나동지는 이불 밖으로 완전히 얼굴을 내밀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웃었다. 리제동지가 짐짓 장난스러운 말투로 《울고 나니 목소리가 더 맑아졌네, 이참에 그 소리로 자기소개 해봐요》하자, 방안에는 울음 끝에 웃음이 섞인 묘한 소리가 퍼지였다. 타비동지도 그제서야안도한듯 물컵을 내려놓고 옅게 웃었다.

나는 그날 밤 넷이 나란히 이불을 펴고 눕는것을 보고서야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딸을 처음 재워보는 사람처럼 마음이 복잡하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랭정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잡아왔으나, 그 밤만은 그런 다짐이 조금도 힘을 쓰지 못하였다.

온 나라를 호령하는 장수라도 제 자식이 우는앞에서는 별수 없다더니, 딱 그 심정이였다. 나는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댄채 그날 본 히나동지의 젖은 눈을 오래 떠올렸다. 그 눈물 한줌이 앞으로 이 아이를 얼마나 단단하게 만들어줄지, 그때는 다만 짐작할뿐이였다.

이튿날 아침, 히나동지는 눈이 조금 부은 얼굴로 거실에 나와 앉았다. 그런데 그 목소리만은 전날보다 한결 뚜렷하였다. 《안녕하세요, 히나입니다.》하고 련습삼아 인사를 건네는 그 목소리에, 나머지 셋이 일제히 박수를 쳐주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히나동지는 눈에 띄게 말수가 늘었다. 존대를 벗고 반말을 쓰는 일도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리제동지의 농담에 스스럼없이 맞받아치는 여유도 생기였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며, 사람이 한번 크게 울고 나면 오히려 마음의 문 하나가 열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며칠 뒤 내가 들렀을 때, 히나동지는 나를 보자마자 먼저 다가와 《사장님, 저 오늘 리제 언니한테 안 졌어요》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는데, 옆에서 리제동지가 억울하다는듯 《아니 그게 왜 안 진거야》하고 투덜거리는 통에 거실은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였다.

합숙 중반의 어느 밤, 넷은 각자의 학습장형콤퓨터를 펴놓고 《배그》를 함께 하였다는 이야기도 나중에 전해들었다. 리제동지가 먼저 총을 맞고 쓰러지자 《아 몰라, 나 죽었어!》하고 외쳤고, 타비동지는 그런 리제동지를 일으켜세우려다 함께 총에 맞았다. 마시로동지는 그 광경을 보며 배를 잡고 웃다가 정작 저도 적에게 쫓기는줄 모르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아래층에서 조용히 해달라는 문자가 관리실을 통해 올라올 정도였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미안한 마음 반, 흐뭇한 마음 반으로 다음날 아래층에 사와 과일 한상자를 돌렸다. 넷의 웃음소리가 벽을 넘어갈만큼 커졌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나무람보다 반가움으로 먼저 다가왔다.

합숙 중반을 넘길무렵, 칸나동지와 유니동지가 반찬 몇가지를 싸들고 오피스텔에 들른 일도 있었다. 유니동지는 문을 열자마자 《언니들 왔다!》하며 넉살좋게 들어섰고, 칸나동지는 조용히 랭장고부터 열어 반찬통을 정리해넣었다. 넷은 그 갑작스러운 방문에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우르르 몰려나와 인사를 하였다.

유니동지는 밥상머리에 앉아 이런저런 조언을 건넸다. 《긴장되는건 당연한거야, 나도 첫 방송때 물도 제대로 못 마였어.》 칸나동지도 옆에서 거들었다. 《채팅 반응 늦게 온다고 조바심내지 마, 다들 처음엔 그래.》 넷은 그 말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고개를 끄덕이며 새겨들었다.

그날 밤 여섯 사람은 좁은 거실에 다리를 겹치듯 앉아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으나, 후날 유니동지에게서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다. 선배가 후배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품어주는 모습이야말로, 내가 이 회사를 시작하며 바라던 풍경 그대로였다.

합숙이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오피스텔안의 공기는 눈에 띄게 편안해졌다. 넷은 이제 서로의 방문을 례사로 드나들었고, 밥을 짓는 순서도 굳이 표를 보지 않고도 알아서 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방송보다 밥상머리가 먼저라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어느 저녁무렵 들렀을 때는, 넷이 거실 바닥에 나란히 엎드려 서로의 자기소개 문구를 손으로 고쳐써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리제동지가 히나동지의 문구에 웃긴 말을 몰래 끼워넣었다가 들켜 등짝을 맞는 장면도 있었다. 나는 그 어수선한 풍경이야말로 이 회사가 마침내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하였다는 증거라고 여기였다.

그날은 마침 저녁을 함께 먹을 일이 있어, 나는 넷과 함께 좁은 거실 소파에 끼여앉아 텔레비죤에서 하는 옛 영화 한편을 끝까지 보았다. 마시로동지는 소파 팔걸이에 걸터앉았고 히나동지는 내 옆에 바짝 붙어앉았으며, 리제동지와 타비동지는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다리를 뻗고 누웠다. 영화가 슬픈 대목에 이르자 히나동지가 훌쩍이는 소리를 냈고, 리제동지는 그런 히나동지를 보며 《또 우네》하면서도 정작 자기 눈가도 붉어져있었다.

그 며칠 사이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성원들 사이에서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그 말버릇이, 어쩌면 이런 밥상머리에서 비로소 진짜 뜻을 갖추게 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였다. 나는 그 말을 여전히 낯간지러워하면서도, 그날만은 그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며칠은 마치 서로 다른 네 나라의 사절이 한자리에 모여 조약을 맺기 위해 합숙하는것과도 같았다. 물론 그 조약이라는것이 기실 설거지 당번표와 라면 끓이는 순서에 지나지 않았으니, 력사적 사변이라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짐짓 그것을 이 회사 력사의 중대한 협상 자리로 여기고 싶어하였다.

데뷰를 이틀 앞둔 저녁의 그 마지막 채비, 목소리를 다듬고 손짓을 맞추어보고 넷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떨림을 감춰주던 그 밤의 이야기는 앞서 다른 절에서 이미 적어둔 대로이다. 나는 여기서 그 밤을 되풀이하여 적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 밤에 이르기까지, 그보다 앞선 이 며칠의 밥과 웃음과 눈물이 있었다는것만은 꼭 적어두고 싶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면, 그 며칠 동안 우리가 한 일이란 그저 밥을 나누어 먹고 냄비를 태워먹고 오락을 하다 아래층에 항의를 받은것뿐이였다. 력사에 남을 대사변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소소한 나날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소소함이야말로 뒤에 이어질 큰 무대의 뿌리였다고 지금도 믿는다.

사람과 사람이 하나의 무대에서 손발을 맞추려면, 먼저 한상에 둘러앉아 같은 국을 떠먹어보아야 한다는것을 나는 그 며칠 동안 다시금 배웠다. 아무리 훌륭한 기획과 련습만으로는 결코 넷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수 없었을것이다. 밥을 나누고 웃음을 나누고 눈물마저 나눈 그 시간이 있었기에, 넷은 비로소 한 기수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람들이 될수 있었다.

합숙을 마치던 날, 넷은 저마다 짐을 꾸려 오피스텔을 나섰다. 히나동지는 문앞에서 나에게 허리를 숙이는 대신 이번에는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그 웃음 하나로 나는 이 며칠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수 있었다. 마시로동지는 돌아서기 전에 오피스텔 현관을 한번 돌아보며 《여기서 산 며칠이 진짜 재밌었어요》하고 나직이 말하였다.

텅 빈 오피스텔에 홀로 남아 나는 방마다 남은 흔적을 둘러보았다. 리제동지가 붙여둔 우스운 낙서 한장, 타비동지가 밤마다 대본을 읽던 자리의 방석 하나, 마시로동지가 태워먹은 냄비 자국이 남은 부엌 벽, 히나동지가 울던 그 이불이 개켜진 모습까지도 눈에 선하였다. 나는 그 흔적들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는데, 지금도 가끔 그 사진첩을 열어본다.

후날 성원들 사이에서는 그 며칠을 두고 《오피스텔 대전》이라는 우스운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물론 전쟁이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평화롭고 냄비만 태워먹은 며칠이였음을 나도 잘 알고있다. 다만 그 별명속에는, 낯선 넷이 짧은 시일안에 하나로 뭉쳐야 하였던 그 절박함이 다소 과장되게나마 담겨있는것이라고 나는 짐짓 웃어넘긴다.

나는 그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그 며칠을 회사의 력사에서 그리 대단하지 않은 한 토막으로 여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안다. 그런 대단하지 않은 나날들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대단한 일들이 그우에 설수 있다는것을. 딸들이 하나둘 늘어가던 그해 초여름의 한 어귀에서, 나는 그 리치를 다시한번 마음에 새기였다.

그무렵의 나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넷을 무대에 올려놓고안도의 한숨을채 돌리기도 전에, 회사가 또 다른 시련을 마주하게 되리라는것을. 딸들을 하나둘 맞아들이는 기쁨 뒤에는, 그 딸들을 건사할 살림살이의 무게 또한 함께 자라나고있었다.

여섯 사람의 밥그릇을 이제는 여섯 사람의 벌이로 채워야 하였고, 그 벌이를 위한 새로운 제도 하나가 그해 칠월 초하루 예고도 없이 세상에 나가게 되리라는것을, 나는 이 오피스텔 거실에 앉아있던 그 며칠 동안에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력사란 늘 그렇게,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시련을 예비해두는 모양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이어가야 할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그 며칠간의 좁은 오피스텔이 후날 넷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를 잠시 상상해보는것으로 이 절을 맺으려 한다. 언젠가 넷이서 그 시절을 돌이키며 웃음지을 날이 온다면, 그날의 웃음속에는 아마도 타버린 냄비와, 아래층의 항의 문자와, 이불속에서 흘린 눈물 한줌이 여전히 남아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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