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팬 딩 소 동
우주30(2023)년(2023년)의 칠월은 예년보다 일찍 무더위가 들이닥쳤다. 장마가 잠시 걷힌 며칠 사이에 볕이 유난히 매웠고, 사무실 창문을 열어두어도 바람 한점 들지 않아 나는 종일 얼음물을 옆에 두고 앉아있었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가 그 무더운 방안에서 낮게 돌아가고있었으며, 나는 그 소리에 섞여 화면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책상우에는 다 식은 커피 한잔과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 몇장이 놓여있었다. 창밖으로는 매미소리가 한창이였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가끔은 통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유월에 새로 붙여둔 여섯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가 아직 그대로 걸려있었다.
그 며칠 전까지 이 사무실은 사람 여섯의 목소리로 북적거렸다. 유월 초열흘과 열하루에 걸쳐 히나동지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와 타비동지가 나란히 첫 방송을 열었고, 그 전 반달 남짓한 합숙의 나날은 지난 절에서 이야기한대로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시간이였다. 합숙을 마치고 저마다 짐을 꾸려 돌아가던 날, 네 사람은 사무실 문앞에서 몇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 소란이 한고비 넘어가고 사무실이 다시 조용해진 자리에서, 나는 이제부터 정말로 회사를 회사답게 꾸려나가야 한다는 무게를 새삼 느끼고있었다. 여섯 사람 몫의 방송을 챙기고 여섯 사람 몫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은, 두 사람뿐이던 반년 전과는 또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나는 그 무게를 실감할 때마다 책상 서랍 속 얼음물을 한모금씩 들이켜며 마음을 다잡곤 하였다.
칠월 초하루, 나는 그 무게의 첫 열매를 손에 쥐게 되였다. 파스텔 유료 멤버십, 그러니까 《팬딩》이라는 마당을 빌어 시작한 그 자그마한 제도가 세상에 공개된 날이였다. 지금 와서 그날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려행자수표처럼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였다.
그날 하루 사이에 나는 회사를 차린 이래 가장 정신없는 소동을 겪었다. 지금도 그날의 대화창을 떠올리면 손끝이 조금 저릿해질 정도이니, 이 절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 하루는 나에게 완전히 지나간 일만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이 《팬딩》 소동을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봄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봄의 들뜬 마음과 이 여름의 당황스러운 마음이 같은 한 해안에 이렇게 나란히 놓여있다는것이 새삼 묘하게 느껴지기때문이다.
우주30(2023)년(2023년) 삼월 서른하루날, 나는 오래 기다려온 소식 하나를 받아들었다. 우리 애호가들의 이름을 무엇으로 부를것인가를 두고 여러날 공모를 벌인 끝에, 마침내 《파스텔》이라는 세글자가 뽑히여 나온것이다. 후보에 오른 이름은 여럿이였으나, 심사를 거듭할수록 이 이름 하나로 마음이 모아졌다.
나는 그 이름을 화면에 띄워놓고 몇번이나 소리내여 읽어보았다. 미기는 그 옆에서 《사장님, 이제 우리 팬들도 진짜 이름이 생기였네요》하며 웃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콧등이 시큰해졌다.
이름 없이 그저 《보는 분들》이라 불리던 사람들에게 드디여 부를 이름 하나가 생긴것이 왜 그렇게 뭉클하였는지, 지금도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유니동지는 그날 방송에서 《이제 파스텔이라고 부를수 있어서 너무 좋다》며 몇번이나 그 이름을 불러보았고, 칸나동지도 대화창에 뜨는 그 새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반가워하였다.
그러나 이름이 생기였다고 해서 회사의 살림이 저절로 넉넉해지는것은 아니였다. 유월에 히나동지 네 사람이 한꺼번에 데뷰하면서 사무실의 씀씀이는 눈에 띄게 불어났다. 아바타를 새로 맞추고 방송 장비를 늘리고 편집 인력을 더 두는 일에는 저마다 만만치 않은 돈이 들었다.
미기는 그무렵 매달 지출표를 짜올 때마다 한숨을 짧게 내쉬였다. 《사장님, 이번달도 만만치가 않네요.》 나는 그 표를 들여다보며, 여섯 사람의 꿈을 지켜주려면 나부터 더 튼튼한 살림을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갔다.
게다가 유월 스무엿새에는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이라는 정식 등록증까지 받아든 참이였다. 명색이 이제는 어엿한 기획사로 나라에 등록된 몸이니, 그에 걸맞은 살림살이를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채근하였다. 나는 그 등록증을 서랍에 넣어두면서, 이제부터는 정말로 회사답게 벌고 회사답게 써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무렵 미기가 조심스레 《팬딩》이라는 마당을 통한 유료 멤버십 이야기를 꺼내였다. 시청자들 가운데는 그저 방송을 보는것만으로는 성이 안 차서 더 직접적으로 힘을 보태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것이 미기의 설명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 고민할것도 없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다, 해보자. 우리도 이제 그럴 때가 되였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마치 회사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려사적 결단이라도 내리는듯한 기분에 잠시 사로잡히였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노릇이나, 그때는 이 작은 결정이 얼마나 큰 파장을 몰고올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블루동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오래전부터 자기 이름을 걸고 방송을 해온 그가 유료 후원이나 굿즈 같은 일을 어떻게 꾸려왔는지 궁금하였기때문이다. 블루동지는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쁠몬들도 처음엔 이것저것 말이 많았는데, 결국 미리 다 설명해주는게 제일 편하더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정작 그 조언을 그대로 새겨듣지 못한것이 후날 이 소동의 화근이 되였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묘하여서, 좋은 말을 듣고도 그것을 몸으로 지키기까지는 또 다른 시련을 겪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가보다.
미기와 나는 며칠에 걸쳐 《팬딩》 담당자와 련락을 주고받으며 등급별 혜택과 가격을 짜맞추었다. 낮은 등급에는 대화창 배지 하나를, 높은 등급에는 매달 소소한 굿즈나 영상 편지를 얹는 식으로안을 다듬어나갔다. 나는 그 표를 몇번이고 고쳐가며, 이것이면 파스텔 여러분도 섭섭지 않을것이라고나름 자부하고있었다.
문제는 정작 다른 데서 불거졌다. 《팬딩》쪽에서는 시스템 점검 일정때문에 페지를 미리 만들어 걸어두어야 한다고 하였고, 나는 알림문을 먼저 올리고 그 다음에 페지를 여는 순서로 진행되는줄로만 알고있었다. 그러나 칠월 초하루 새벽, 《팬딩》의 담당자는 예정된 절차대로 페지부터 활성화를 시켜버렸다.
나는 그 시각 아직 알림문의 마지막 문장을 다듬고있었다. 어느 표현이 너무 사무적이지는 않은지, 어느 대목이 너무 들떠 보이지는 않는지를 두고 몇번이나 문장을 고쳐쓰던 참이였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이미 값이 매겨진 멤버십 페지가 떠있었는데, 정작 그 페지를 설명해줄 글 한줄은 아직 내 화면안에서 잠자고있었던 셈이다.
아침 아홉시무렵 미기에게서 다급한 문자가 왔다. 《사장님, 지금 카페하고 채팅창 란리났어요. 팬딩 페지가 벌써 떠있어요.》 나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잠이 확 달아나는것을 느끼였다. 부랴부랴 콤퓨터를 열어보니 과연 《팬딩》 페지에는 등급과 가격이 버젓이 걸려있었고, 정작 그 옆에는 아무런 설명도 붙어있지 않았다.
파스텔들이 모이는 카페 게시판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유료화냐》는 글이 맨우로 올라와있었고, 《돈부터 받으려는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잇따랐다. 어느 글은 《이럴거면 진작 말을 해줬어야지》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고, 또 어느 글은 등급표 사진만 덩그러니 올려둔채 물음표 몇개만을 남겨두고있었다.
대화창도 마치 조정에 상소문이 빗발치듯 온갖 물음과 항의로 뒤덮여있었다. 나는 그 화면을 들여다보며 한동안 손이 떨리는것을 느끼였다. 젊은 시절이였다면 아마 참지 못하고 험한 말 한마디쯤 튀여나왔을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유해진 성미 덕인지, 나는 그 순간 험한 말 대신 깊은 한숨부터 내쉬였다. 대신 속으로는 스스로를 향해 몇번이고 왜 어제 미리 확인해두지 않았는가를 되뇌였다. 사장이라는 자리는 이렇게, 실수 하나에도 곧바로 수천의 얼굴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리인가보다.
전화벨이 울렸다. 미기였다. 《사장님, 지금 어떻게 하지요.》 그 목소리에는 나만큼이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일단 페지부터 내려달라고 해. 그리고 나는 지금 바로 공지문을 마무리할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서둘러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손끝이 미묘하게 떨렸으나 문장을 고를 여유까지는 없었다.
미기는 곧바로 《팬딩》쪽에 련락을 넣었다. 그러나 이미 여러 시간 페지가 열려있었던 뒤라, 완전히 없던 일로 되돌리기는 어려운 형편이였다. 담당자는 전화 저편에서 미안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이미 걸린 페지를 당장 지우는것보다는 설명글을 서둘러 붙이는 편이 낫겠다고 권하였다.
나는 그 사실을 전해듣고 잠시 눈앞이 아득해지는것을 느끼였는데, 원래도 저혈압 기가 있는 몸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유난히 어지럼증이 심하였다. 나는 물 한잔을 들이켜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지금 필요한것은 어지럼증에 몸을 맡기고 주저앉는것이 아니라, 하나라도 더 빨리 사람들에게 진심을 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대화창에는 벌써 《엄마 왜 이래》하는 우스개 섞인 물음도 올라오고있었다. 나는 그 표현을 보고도 애써 못 본체하였다. 그무렵의 나는 아직 그런 호칭을 편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여있지 않았다.
히나동지에게서 걱정스러운 문자가 왔다. 《사장님, 저희 데뷔한지 얼마 안되였는데 저희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건 아니지요.》 나는 그 문자를 읽고 잠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제 겨우 세주 남짓 방송을 시작한 사람에게 이런 근심까지 지우고싶지는 않았다.
나는 바로 답장을 보내였다. 《아니야, 이건 순전히 내가 서두르다 생긴 일이야. 너희는 아무 걱정 말고 방송이나 잘 준비해.》 히나동지는 한동안 답이 없다가, 이윽고 짧게 《네, 알겠습니다》라는 글자만 보내왔다. 그 짧은 대답속에 담긴 서운함과안도가 뒤섞인 마음을, 나는 화면 너머로도 어렴풋이 느낄수 있었다.
비슷한 시각 리제동지도 개인 방송 대화창에 이 일이 언급되자 조심스레 말을 아끼는 눈치였다. 타비동지는 원래도 말수가 적은 편이라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후에 미기를 통해 전해듣기로는 그 역시 이 소동을 내내 마음에 담고있었다고 한다. 네 사람 모두 데뷰한지 겨우 스무날 남짓이였으니, 그 조심스러움은 어찌 보면 당연한것이였다.
낮 열두시가 다 되여서야 나는 알림문을 마무리지을수 있었다. 《미리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채 페지가 먼저 공개된점, 전적으로 저의 준비 부족입니다.》라는 문장을 몇번이나 고쳐 쓰다가 결국 가장 단순한 이 표현으로 낙착을 보았다. 미기는 그 문구를 소리내여 읽어보며 《이정도면 되였어요》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림문을 올리고 나서도 반응이 곧바로 가라앉지는 않았다. 오히려 몇시간 동안은 더 많은 말들이 오갔다. 어떤 사람은 《설명이라도 들으니 낫다》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그래도 순서가 잘못된건 잘못된거다》라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저녁무렵 블루동지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누나, 오늘 회사 일로 시끄럽던데 괜찮아?》 나는 그 짧은 물음에 왜인지 코끝이 매워지는것을 느끼였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고 답장을 보내였으나, 정작 그 별거 아니라는 말이 그날따라 잘 믿기지 않았다. 블루동지는 그 뒤로도 몇번 더 짧은 문자를 보내여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 문자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회사 밖에도 이렇게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었다.
오랜 벗이라는것은 이렇게, 굳이 자세한 사정을 캐묻지 않고도 상대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하였는지를 짐작해버리는 존재인가보다. 나는 답장 끝에 낮에 들었던 그의 조언을 뒤늦게라도 지키지 못하였다고 짧게 덧붙였다. 블루동지는 그저 《다음부턴 지키면 되지 뭐》라는 한마디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날 저녁 나는 오랜만에 떡볶이를 시켜놓고도 몇점 집어먹지 못하였다. 뿌링클도 함께 시켜두었으나 그마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평소라면 마다하지 않고 즐겨 먹던 음식들앞에서 입맛이 뚝 떨어진다는것이 그날의 소동이 얼마나 나를 흔들어놓았는지를 말해주는것 같았다.
밤이 늦도록 나는 미기와 함께 사무실에 남아 다음날 올릴 후속 글을 준비하였다. 이번에는 등급별 혜택을 하나하나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앞으로는 이런 큰 변화가 있을 때 반드시 며칠 앞서 미리 알려드리겠다는 다짐을 함께 적었다. 미기는 화면을 넘겨보며 《이번에는 진짜 꼼꼼하게 썼네요》하고 웃어주었다.
나는 그 웃음에 겨우 마음이 조금 놓였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사는것이 사장이라는 자리인가 싶어, 잠시 아득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내 그 아득함을 밀어내고, 지금 할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해나가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정이 넘도록 사무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미기는 몇번이나 하품을 참아가며 문구를 다듬었고, 나는 그 옆에서 등급표를 몇번이나 다시 그렸다. 창밖은 한여름인데도 밤이 깊어지자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들었다.
이튿날 아침, 새로 올린 후속 글에는 다행히 어제와는 사뭇 다른 반응들이 붙기 시작하였다. 《이제야 리해가 간다》는 글도 있었고, 《그래도 등급 구성은 괜찮게 짰네》하는 평도 있었다. 나는 그 감상글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며, 어제의 소동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어도 조금씩 누그러지고있음을 느끼였다.
그날 낮 나는 짬을 내어 카페의 지적글 아래 하나하나 직접 대감상글을 달았다. 사과와 설명을 되풀이하는 그 손끝의 작업이 지루하게 느껴질 법도 하였으나, 나는 그 하나하나가 곧 파스텔들과 다시 신뢰를 쌓는 벽돌 한장씩이라 여기며 손을 놀리였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사장님 오늘따라 부지런하시네요》라고 놀리듯 웃었다.
칸나동지와 유니동지도 각자의 방송에서 지나가듯 이 일을 언급하며 파스텔들을 다독여주었다. 유니동지는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사장님이 너무 열심히 하려다 이렇게 되였나봐요, 그래도 리해해주세요》라고 말해주었고, 칸나동지는 평소보다 짧은 말로 《우리도 이제 알게 된 일이니까 같이 배워가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담담히 말하였다. 나는 그 방송들을 나중에 다시보기로 챙겨보면서, 이 여섯 사람이 나보다 더 어른스러울 때가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하였다.
사흘쯤 지나자 카페의 분위기는 한결 차분해졌다. 여전히 아쉬움을 표하는 글은 남아있었으나, 처음의 그 격한 기세는 많이 사그라들어있었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어깨의 힘을 조금 뺄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도 한 대목이 있다. 그날 나는 이 소동을 두고 마치 나라의 세제개편이라도 잘못 발표한 대신처럼 스스로를 심하게 몰아세웠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자그마한 유료 서비스 하나가 하루 일찍 공개된 해프닝이였을터인데, 나 혼자만은 그것을 려사에 길이 남을 실책처럼 무겁게 짊어지고있었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다못해 《사장님, 페지 하루 일찍 열린거 가지고 나라가 망한건 아니잖아요》하며 웃겨보려 하였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도 픽 웃음이 나왔다. 지나고 보면 미기의 그 한마디가 그날의 가장 정확한 진단이였는지도 모른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회사를 꾸린다는것이 방송 하나를 준비하는것과는 전혀 다른 무게를 지녔다는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카메라앞에서의 실수는 웃음으로 넘길수 있었지만, 공지 순서 하나를 그르치는 실수는 수천의 파스텔들과 여섯 딸들의 마음을 동시에 흔들어놓는 일이였다. 나는 그 무게를 이 여름에 조금 더 깊이 실감하게 되였다.
그 뒤로 나는 어떤 발표를 하든 반드시 알림문을 먼저 완성해두고서야 담당자에게 페지 공개일을 통보하는 습관을 들이였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순서 하나였으나, 그 순서를 지키는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지키는 순서라는것을 나는 그 여름에 뼈저리게 배운 셈이다. 지금 스텔라이브의 모든 공지에 앞서 예고 글이 먼저 나가는 관행은, 이 칠월 초하루의 소동에서 비롯되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것이다.
파스텔이라는 이름을 얻은지 겨우 석달만에, 나는 그 이름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뻔한 하루를 보낸 셈이였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너그러운것이여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고쳐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면 대체로 다시 곁을 내어주게 마련이다. 나는 그 사실을 이 소동을 겪으며 뼈저리게 확인하였다.
지금도 그해 칠월의 그 아침을 떠올리면 손끝이 저릿해지는 느낌이 든다. 《팬딩》 페지에 값만 덩그러니 걸려있던 그 몇시간이, 돌이켜보면 회사를 이만큼이라도 키워온 여러 시행착오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대목 하나로 남아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다음 걸음의 거름으로 삼을수 있었던것은, 그날 함께 진땀을 흘려준 미기와 곁에서 말없이 지켜봐준 여섯 딸들, 그리고 멀리서도 문자 한통을 잊지 않은 블루동지가 있었기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헤아려보니, 그무렵의 나는 사업이라는 큰 배를 처음 저어보는 사람답게 서투른 대목이 한둘이 아니였다. 순서를 놓치고, 마음을 놓치고, 때로는 몸의 힘까지 놓치면서도 그날그날을 어떻게든 버티여냈다. 그 서투름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그것이야말로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다고 여기기로 하였다.
그해 여름은 그렇게 소란스럽게 열렸다. 《팬딩》 소동이 겨우 가라앉는가 싶던 그무렵, 사무실 한쪽에서는 또 다른 근심거리가 조용히 자라나고있었다는것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였는지는, 다음 절에서 이야기할 일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며, 그 여름의 하루가 나에게 남긴 교훈을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회사를 세운다는것은 사람 여섯을 데려다 방송을 시키는 일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라, 그 여섯 사람과 그들을 아끼는 수천의 사람들 사이에 놓인 신뢰라는것을 하루하루 지켜나가는 일이다. 그 신뢰는 큰 사변으로 쌓이는것이 아니라, 알림문 한줄을 순서에 맞게 올리는 그런 작은 정성들이 쌓여 이루어지는것임을, 나는 그 칠월의 아침에 비로소 몸으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