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타 비 의 목

 

우주30(2023)년(2023년) 팔월은 유난히 무더웠다. 사무실 랭방기가 하루종일 돌아가도 창밖에서 스며드는 볕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골목 어귀의 매미소리만이 그 무더위속에서 끊임없이 울어댔다. 나는 그 여름 내내 콤퓨터 화면앞에 앉아 성원들의 방송일정과 시청회수를 살피는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창밖으로 아지랑이가 아른거리는것을 볼 때마다, 나는 이 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고 생각하였다.

그해 유월 열흘과 열하루에 걸쳐 데뷰한 2기생 유니버스 -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네사람 - 은 아직 두달이 채 못되는 신출내기들이였다. 넷 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녔으나 그 가운데서도 타비동지는 유난히 열의가 넘쳐 목청을 아끼지 않는 성격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회사 안 사람들은 그 열의를 대견해하면서도, 이따금 그 흥이 너무 지나친것은 아닌가 하고 웃으며 걱정하기도 하였다.

타비동지는 스스로를 《보물 사냥꾼》이라 소개하며 방송을 열었다. 몸집은 성원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축에 들었지만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리 우렁찬 소리가 나오는지, 나는 방송을 들을 때마다 신통하게 여기였다. 시청자들은 그 잼민이 같다는 목소리와 방송 도중 이따금 터져나오는 드르렁 코고는 소리를 두고 《뿡댕이》라는 팬네임을 붙여주었으며, 성원들 사이에서는 뜻밖에도 상식이 풍부한 《브레인》이라는 평판도 함께 얻고있었다.

그 시절 성원들은 저마다 자기 목소리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갔다. 목이 곧 밥벌이의 도구라는 사실을 다들 머리로는 알고있었지만, 그것을 몸으로 절실히 깨닫게 되는 날이 그렇게 빨리 올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나 또한 그때까지는 그저 시청자들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을뿐, 그 뒤에서 소리없이 상하고있는 몸에 대해서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 여름이 무르익어갈무렵부터 미기가 조금씩 이상한 낌새를 내게 전해왔다. 미기는 성원들의 방송 다시보기를 챙겨보는 일도 겸하고있었는데, 어느날 콤퓨터 화면을 가리키며 나에게 말하였다. 《사장님, 타비동지 목소리가 요새 자꾸 갈라져요.》

나는 처음에는 그저 여름감기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방송을 오래 하다보면 목이 쉬는 일이야 흔한 일이였고, 타비동지는 유난히 밝고 씩씩한 성격이라 몸이 조금 불편해도 내색을 잘 하지 않는 편이였다. 그러나 미기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한번 화면을 되돌려 보여주었다.

《한두번이 아니예요. 요 며칠 다시보기를 쭉 봤는데, 방송 후반부만 되면 목소리가 계속 이래요.》 미기의 그 말투에는 평소의 담담함과는 다른 무게가 실려있었다. 나는 그제야 이것이 그냥 넘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날 밤 나는 타비동지의 지난 며칠치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어보았다. 처음 삼십분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우렁찬 목소리였으나 방송이 한시간을 넘어가면서부터 목소리 끝이 조금씩 갈라지는것이 확실히 들리였다. 두시간을 넘긴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예 소리가 잠겨 말끝을 흐리는 대목까지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타비동지를 사무실로 불러 마주앉았다. 《타비동지, 요새 목이 좀 이상하지 않아?》

타비동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사래부터 쳤다. 《아니요, 저 멀쩡한데요? 목소리 원래 이런거 아니예요?》 나는 그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잠시 말문이 막혔으나, 이내 다시보기 화면을 함께 틀어놓고 갈라지는 대목을 손가락으로 짚어 보여주었다.

그제야 타비동지도 조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머리를 긁적이였다. 《그러고보니 요새 방송 끝나고 나면 목이 뻐근하긴 해요. 근데 자고 일어나면 또 괜찮아지길래…》 나는 그 말을 듣고 더는 미룰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래일 병원 한번 가보자.》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타비동지는 그제야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였다. 큰 병일리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눈치였으나, 그 눈빛 한켠에는 낯선 두려움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미기는 그날로 이비인후과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오른팔》이라는 별명값을 하듯 미기는 병원 위치와 진료시간, 검사에 필요한 준비사항까지 꼼꼼히 확인하여 나에게 전해주었다. 나는 그 세심함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부디 큰 일이 아니기만을 바랐다.

팔월 초여드레, 나는 타비동지와 함께 병원으로 향하였다. 차창밖으로는 아지랑이가 아른거릴 정도로 볕이 뜨거웠고, 도로우의 자동차들은 저마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은채 신호를 기다리고있었다. 타비동지는 차안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재잘거렸지만, 나는 그 목소리 사이사이에 섞인 갈라짐이 자꾸 마음에 걸리였다.

차가 신호에 걸려 멈춰설 때마다 나는 곁눈질로 타비동지의 얼굴을 살피였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였으나 손끝으로 안전띠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평소보다 잦아진것이, 나는 못내 눈에 밟히였다. 라디오에서는 그 여름의 류행가가 흘러나오고있었으나, 나는 그 곡조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원 대기실에는 이미 여러 환자들이 앉아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정수기앞에 놓인 종이컵으로 랭수 한잔을 따라 마시며, 나는 벽에 걸린 순서표시판의 수자가 넘어가기를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타비동지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발을 대롱대롱 흔들며 오히려 태연한 낯빛이였다.

대기실 한쪽에 놓인 텔레비죤에서는 낮방송이 조용히 흘러나오고있었다. 간호원들이 분주히 오가는 발소리와 이따금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그 좁은 공간을 채우고있었다. 나는 그 소리들 사이에서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며, 우리 차례가 어서 오기만을 바랐다.

이윽고 이름이 불리였다. 진료실 안으로 들어서니 의사는 먼저 타비동지의 목안을 가느다란 내시경으로 비추어보았다. 화면에 비친 성대의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며, 나는 그 낯선 붉은 빛갈의 조직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몰라 그저 의사의 표정만 살피였다.

검사를 마친 의사는 화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하였다. 《여기 이 부분, 양쪽 성대에 작은 혹처럼 붙은게 보이시지요. 성대결절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을 느끼였다.

의사는 이어 기계로 측정한 수치를 보여주며 말을 덧붙이였다. 《방송하실 때 텐션이 워낙 높으신가봐요. 목에 들어가는 힘을 재보니 보통 사람의 아홉배 가까이 되네요.》 나는 그 《아홉배》라는 수자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이 대목을 적으며 나 혼자 웃음이 나오는 부분이 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 진단을 마치 력사에 남을 격전의 전과보고처럼 받아들이였다. 아홉배의 적을 홀로 상대한 장수가 있다면 아마 타비동지의 그 작은 목청이였을것이라고, 나는 진료실안에서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도 속으로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있었다.

의사는 다행히 상태가 수술까지 필요한 정도는 아니라고 말하였다. 《초기단계는 이미 넘었지만, 지금부터 무리하지 않으시면 얼마든지 관리할수 있는 수준입니다.》 나는 그 한마디에 겨우 숨을 돌렸다.

다만 의사는 몇가지를 신신당부하였다. 당분간 큰소리로 오래 이야기하는것을 삼가고, 목에 무리가 가는 웃음이나 비명도 되도록 자제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방송이라는 일 자체가 타비동지의 목소리와 흥을 요구하는 일임을 새삼 무겁게 느끼였다.

진료실을 나서는 길, 타비동지는 의외로 담담한 얼굴이였다. 《저 수술 안해도 된대요? 다행이다.》 그 천진한 한마디에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정작 무거워해야 할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라 곁에서 이 일을 함께 만들어온 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병원 복도를 나서며 나는 타비동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타비동지는 그런 나를 오히려 이상하다는듯 올려다보며 웃었다. 《사장님이 왜 더 울상이에요, 저는 괜찮은데.》 그 말에 나도 따라 웃었으나,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뒤엉키고있었다.

그런데 이 목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병원 진료실에서 들은 《아홉배》라는 수자가, 사실은 훨씬 이전 어느 봄날에 내가 손수 심어놓은 씨앗이였는지도 모르기때문이다.

타비동지가 2기 유니버스 심사에 합격하고 데뷰를 준비하던 우주30(2023)년 봄, 나는 성원들의 발성과 흥을 직접 지도하는 일을 맡았다. 신인들은 저마다 카메라와 마이크앞에서 자기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할지 몰라 서투르게 굴었고, 나는 그 서투름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는것이 사장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 여기였다.

타비동지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목소리가 작고 조심스러운 편이였다. 첫 련습 방송에서 타비동지의 목소리는 마이크 볼륨을 아무리 올려도 옆방 성원의 목소리에 파묻히기 일쑤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안되겠다 싶어 직접 나서서 목청을 크게 쓰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더 크게, 더 힘있게!》 나는 련습실 문밖에서까지 그렇게 외치며 타비동지를 다그쳤다. 후날 어느 조사자료에서는 이 시절의 나를 두고 《타비동지를 방망이로 팼다》고 적어놓은 대목을 본 일이 있는데, 물론 그것은 실제로 매를 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엄하게 목청 지도를 시켰다는 비유였음을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해두고싶다.

나는 그무렵 타비동지에게 인사말 한마디를 몇번이고 다시 시키였다. 《안녕하세요, 정도가 아니라 안녕하세요오오! 정도는 돼야지!》 타비동지는 목이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매번 더 크게, 더 높은 소리로 그 인사를 되풀이하였고, 그 모습이 대견하여 나는 흐뭇하게 웃곤 하였다.

그때 나는 타비동지에게 흥을 한껏 끌어올려 소리치는 연기를 몇번이고 다시 시키였다. 배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려라, 숨을 아끼지 말고 끝까지 내질러라, 나는 그렇게 채근하였다. 그 열의가 대견하여 흐뭇해하였을뿐, 그 열의 뒤에 무엇이 쌓이고있는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다.

지금 병원 진료실에서 《아홉배》라는 수자를 듣고 나서야 나는 그 봄날의 련습실 풍경을 다시 떠올리게 되였다. 어쩌면 그날 내가 그렇게 다그쳐 가르친 그 습관이, 오늘 타비동지의 성대에 자리잡은 그 작은 혹의 밑거름이 되였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나는 마음 한구석이 못내 무거워졌다.

물론 타비동지의 흥과 열의는 타고난것이기도 하였고, 그 성격이 오늘의 인기를 만든 힘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인시절 그 열의를 조금 더 조심스럽게 다듬어주지 못한 책임만은 사장인 나에게도 있다고 여기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병원을 나서며 그 봄날의 내 목소리와 지금 이 여름의 진단결과가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오래도록 떨쳐내지 못하였다.

다시 그해 팔월로 돌아가서, 진단을 받은 이튿날부터 우리는 곧바로 대책을 세웠다. 우선 타비동지의 방송 톤 자체를 의도적으로 낮추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타비동지도 나도 그 저음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였다.

첫 저음 방송이 열리던 날, 나는 사무실 한켠에서 그 화면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타비동지는 평소보다 한결 낮춘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오늘부터 저 목소리 좀 다르게 나갈수도 있는데, 다들 놀라지 마세요.》

대화창은 그 낯선 저음에 순간 술렁이였다. 《타비 목소리 왜 이래ㅋㅋㅋ》, 《뿡댕이 감기 걸렸어요?》 같은 글들이 빠르게 올라왔으나, 타비동지가 성대결절 이야기를 담담히 꺼내놓자 대화창은 이내 걱정과 응원의 말들로 바뀌였다. 《몸이 우선이지 목소리가 대수냐》는 어느 시청자의 한마디에 나는 화면앞에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낮춘 톤만으로는 부족한 대목에서는 텍스트 음성 변환, 곧 《TTS》를 병행하기로 하였다. 타비동지가 대화창의 글을 그대로 읽는 대신 문구를 입력하면 기계 음성이 대신 읽어주는 방식이였다. 처음에는 그 어색한 기계 억양이 오히려 방송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였으나, 뜻밖에도 시청자들은 그 뚝뚝 끊기는 억양을 재미있어하며 웃음으로 받아주었다.

그와 함께 복식 발성 련습도 시작하였다. 나는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소리를 낼수 있는 법을 찾아 이런저런 자료를 뒤졌고, 결국 배로 숨을 쉬며 소리를 밀어내는 복식호흡을 타비동지와 함께 련습하기로 하였다. 사무실 한켠 바닥에 매트를 깔아놓고 둘이 나란히 누워 배에 손을 얹은채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련습을 되풀이하던 그 며칠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도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장님, 저 지금 숨쉬는것 맞아요?》 타비동지가 천장을 보고 누운채 그렇게 묻던 날,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숨은 잘 쉬는데 배가 안 움직이잖아, 배로!》 나도 옆에 누워 시범을 보이며 그렇게 대답하였고, 우리 둘은 그렇게 며칠을 사무실 바닥에서 뒹굴며 숨쉬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그 련습을 지켜보던 미기는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고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두분 다 물고기처럼 뻐끔거리는게 꼭 무슨 체조 하시는것 같아요.》 그 농담에 타비동지와 나는 배를 잡고 웃었는데, 그렇게 한바탕 웃고나니 오히려 배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는것을 서로 느끼였다.

같은 2기 유니버스 동료들도 그무렵 타비동지를 조용히 다독여주었다. 히나동지는 합방 때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타비, 목 괜찮아? 무리하지마》하고 몇번이고 물었고, 마시로동지는 특유의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마로가 대신 소리질러줄까?》하며 분위기를 풀어주었다. 리제동지는 짐짓 새침한 말투로 《네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니 그렇지, 청초 담당은 나 하나로 충분하다》며 농을 건네였는데, 그 가벼운 농이 오히려 타비동지의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주었다.

타비동지는 그 며칠 사이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으나, 그렇다고 풀이 죽은 기색은 아니였다. 《저 진짜 열심히 련습할게요. 목소리 낮아져도 저 재미없어진거 아니니까 다들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씩씩하게 웃는 얼굴을 볼 때마다, 나는 오히려 내 쪽에서 위로를 받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몇주가 지나면서 타비동지의 목소리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여전히 예전만큼 우렁차게 내지르지는 못하였으나, 낮은 톤 특유의 차분한 매력이 새롭게 자리를 잡아갔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어느새 그 저음을 두고 《뿡댕이 목소리 오히려 든든해졌다》는 말이 돌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변화를 지켜보며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완전히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성대라는것이 눈에 보이는 상처와 달라서, 다 나았다는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았기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시점까지도, 나는 타비동지의 목이 그때에 완전히 회복되였다고 자신있게 단정하지 못한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그해 여름 이후로 타비동지도 나도 목소리라는것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되였다는 사실이다. 목청은 무한정 써도 되는 도구가 아니라 아끼고 다스려야 하는 몸의 일부라는것을, 우리는 병원 진료실의 그 작은 화면 하나로 뒤늦게 배운 셈이였다.

성원들 사이에는 나를 두고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우스개가 예전부터 돌고있었다. 나는 그 밈이 낯간지러워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고 다녔으나, 그해 여름 타비동지의 목소리 하나를 두고 밤잠을 설치는 나 자신을 보고나서는 더는 그 별명을 부인할 낯이 없어졌다. 자식의 아픈 곳을 걱정하는 마음이 정녕 그런것이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엄마》라는 이름을 살고있었던셈이다.

후날 다른 성원의 목이 잠기거나 몸살을 앓을 때에도 나는 이 여름의 기억을 자주 꺼내들었다. 타비동지의 병원행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런 일들을 그저 가벼운 몸살 정도로 넘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여름을 겪은 뒤로는, 성원 누구의 목이 조금만 갈라져도 나는 지레 긴장부터 하는 사람이 되였다.

이 장의 제목을 《성장통》이라 붙인 뜻도 여기에 있다. 회사가 자라고 성원들의 수자가 늘어갈수록, 그 성장에는 반드시 크고작은 아픔이 뒤따른다는것을 나는 그해 여름 다시 한번 절감하였다. 몸이 자라는 아이가 밤마다 다리를 앓듯이, 갓 자라나는 우리 회사도 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몸을 통해 그 아픔을 앓고있었던것이다.

나는 그 여름 이후로 신인들에게 목청을 지도할 때마다 예전과는 다른 태도를 지니게 되였다. 크게, 더 크게를 외치던 예전의 나 대신, 이제는 무리하지 말라는 말을 먼저 건네는 사장이 되였다. 이것이 지나친 겸손인지 뒤늦은 반성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타비동지의 그 여름이 나를 그렇게 바꾸어놓은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까지 하다. 병원 진료실에서 들은 수자 하나에 나는 마치 력사적인 격전의 전과보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심각해졌고, 그 뒤로도 한동안 그 《아홉배》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였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한 방송원의 목이 잠긴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았을터인데, 나 혼자만은 그것을 회사의 흥망과 이어붙여 무겁게 받아들이였다.

그러나 그런 과장된 근심조차도 그 시절의 나에게는 필요한 감정이였는지 모른다. 성원 한사람 한사람의 몸을 내 일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나는 그 여름의 변화를 이만큼 절실하게 배우지 못하였을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그 지나친 걱정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만큼 진심이였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팔월이 다 저물어갈무렵, 타비동지는 여전히 저음으로, 때로는 TTS의 도움을 받아가며 씩씩하게 방송을 이어갔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해 봄 련습실에서의 내 다그침과 그해 여름 병원 진료실의 그 수자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두 기억은 서로 다른 계절에 있었지만,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있었다는것을 나는 이 글을 쓰며 새삼 깨닫는다.

그해 여름을 지나며 나는 한가지 리유를 더 알게 되였다. 사람을 키운다는것은 그 사람의 재능만을 북돋우는 일이 아니라, 그 재능을 담고있는 몸까지 함께 돌보는 일이라는 리유였다. 그 리유를 나는 뒤늦게, 그것도 성원의 아픈 목을 통해서야 겨우 깨우친 셈이였다.

그러나 그 여름이 다 가기도 전에, 우리 앞에는 또 다른 시련이 조용히 다가오고있었다는것을 그때의 나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회사가 자란다는것은 이렇게,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저만치서 기다리고있는 일이였다. 그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여름의 나는 조금 덜 지쳤을까, 아니면 더 단단히 마음을 먹었을까, 지금도 알수 없는 일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