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 빠 드 립
우주30(2023)년에서 우주31(2024)년으로 넘어가던 그무렵, 그러니까 우주30(2023)년의 늦가을이던가 우주31(2024)년의 이른봄이던가, 정확한 날자는 이제 와서 다시 헤아려보아도 뚜렷하지 않다. 다만 그 밤, 사무실 창밖으로 늦은 바람이 창틀을 흔들던 소리와, 콤퓨터 두대의 랭각기소리가 나직이 겹쳐 돌아가던 감촉만은 지금도 뚜렷이 남아있다. 나는 그날도 결재할 서류 몇장을앞에 놓아둔채, 한쪽 화면에는 서류를, 다른쪽 화면에는 블루동지의 방송을 틀어놓고있었다.
그무렵 사무실은 이미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있었다. 창턱에 놓아둔 화분 잎이 하나둘 누렇게 변해가고, 늦은 밤이면 히터를 미리 꺼내둘가 말가를 두고 미기와 몇마디를 주고받던 시절이였다. 나는 그 계절의 냄새를 맡으며, 오늘 하루도 조용히 넘어가려나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런 버릇은 회사를 차린 이래로 좀체 고쳐지지 않았다. 블루동지가 방송을 여는 시간이면 나는 늘 화면 한구석에 그 방송을 켜두고 서류를 보다가도 이따금 곁눈으로 화면을 살피군하였다. 그날 그가 하고있던것은 《배그》의 무기 스킨을 뽑는 가챠 방송이였다.
화면속 블루동지는 화려한 그림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창을앞에 두고 앉아, 결과가 나올 때마다 낮은 탄식과 짧은 환호를 번갈아 냈다. 《아, 이건 또 꽝이네.》하는 말과 《오, 이건 그래도 쓸만한데.》하는 말이 몇번이나 오갔다. 그 억양은 평소처럼 느긋하였으나, 뽑기의 결과가 궂을 때면 은근히 대구 사투리의 흔적이 묻어나오는것이 재미있었다.
화면 불빛만이 어둑한 사무실을 은은하게 비추고있었다. 나는 그 불빛속에서 서류의 수자를 짚어가다가도, 블루동지의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몇번이나 고개를 들었다. 그런 밤이면 일이 더디게 나가는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대화창은 그 시각에도 여느때처럼 빠르게 흘러가고있었다. 나는 서류를 뒤적이다가도 그 대화창의속도가 유독 빨라지는 순간이면 저도 모르게 눈길이 그리로 쏠리군하였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화면 한구석에서 나는 익숙한 이름 하나를 보았다. 칸나동지였다. 칸나동지도 그 시각 블루동지의 방송을 보고있었던 모양인데, 그것 자체는 새삼스러울것도 없는 일이였다.
성원들이 서로의 방송을 챙겨보는것은 이 회사에서는 흔한 풍경이였다. 그러나 그날 칸나동지가 대화창에 띄운 글자 하나는, 그뒤로 오래도록 이 회사의 안팎에서 되풀이하여 불려지는 말이 될 줄을 그때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아빠 이번엔 좋은거 나오게 해주세요.》
대화창에 그 글자가 떠오른 순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블루동지는 뽑기 결과를 확인하느라 잠시 채팅을 놓치고있다가, 몇초 뒤 문장을 눈으로 좇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 야, 내가 무슨 아빠야.》하고 그는 화면을 향해 되물었다.
그러나 칸나동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창에 몇마디를 더 얹었다. 《아빠 맞잖아요, 강지사장님이랑.》 그 말에 블루동지는 잠시 말을 잃은듯 화면을 바라보다가, 이내 특유의 낮은 웃음으로 《아하하하핳》하고 웃어넘기였다.
나는 그 장면을 다른 화면로 지켜보며 손에 쥐고있던 서류를 저도 모르게 내려놓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짧은 몇마디가 그날 결재해야 할 어떤 서류보다도 더 오래 내 머리속에 남았다.
그런데 이 아빠라는 말을 이야기하자면 그보다 훨씬 앞선 어느 시절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 이 회사의 성원들이 별생각없이 던지는 그 한마디 뒤에는, 실은 《우결》이라는 오랜 뿌리가 있었기때문이다.
블루동지와 나는 우주25(2018)년부터 《우결》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해를 함께 방송하였다. 처음에는 서로 《강지님》, 《블루님》하며 높임말을 쓰던 사이가 어느새 《누나》, 《바이비》로 부르는 사이가 되였고, 그 호칭은 《우결》이 끝난 뒤에도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절 나의 지인이던 강수는 자신이 나의 《우결》 상대, 그러니까 매제뻘이 된다는 설정으로 블루동지를 《매형》이라 부르곤 하였다. 나의 어머니, 이른바 강맘이라 불리는 그 사람은 언젠가 《배그》 합방 도중 블루동지의 점수를 백점이라 매겨 사위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선언하여 정작 당사자인 블루동지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일도 있었다.
그러니까 《우결》이라는 내용물는 애초부터 나와 블루동지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였다. 그 극속에는 매형도 있었고 어머니도 있었으며, 그 모든 이름들이 마치 정말 있는 집안의 촌수처럼 서로를 부르고 불리웠다.
그뿐이 아니였다. 《우결》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김박사라 불리던 이가 나의 옛 애인 역할을 자청하여 삼각관계를 이루었고, 감블러는 나와 서로 감자님, 낑깡님 하고 부르다가 지금은 편하게 붕어야, 누나 하는 사이가 되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우결》이란 나와 블루동지 둘만의 무대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저마다 배역 하나씩을 나누어 맡은 한편의 커다란 극이였던 셈이다.
《우결》은 우주27(2020)년 시월 엿새날 저녁에 끝을 맺었다. 그날 이후로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는 한동안 《누나》라는 부름이 반사적으로 튀여나왔고, 두달 뒤에 올라온 영상의 제목마저 《이미 우린 끝났잖아.. 누나》였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결》이라는 극은 끝이 났어도, 그 극이 남긴 말버릇과 호칭의 흔적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그저 지난 한때의 재미있는 추억으로만 여기고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차리고 성원들을 하나둘 늘려가던 어느 사이엔가, 이 젊은 성원들 사이에서는 또 다른 호칭이 자라나고있었다. 성원들은 나를 두고 어느새 《엄마》라 부르고 저희들끼리는 《딸내미들》이라 부르는 놀이를 만들어냈다.
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였다. 《내가 무슨 엄마냐, 그냥 사장이지.》하고 나는 몇번이나 바로잡아보려 하였으나, 그 말은 바로잡으려 할수록 더 재미있는 소재가 되여 오히려 성원들 사이에서 굳어져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그 호칭이 어디에서 흘러왔는지를 미처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딸들이 있으면 아빠도 있어야 한다는 리치를, 젊은 성원들이 나보다 먼저 눈치채고있었다는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였다.
칸나동지가 그날 밤 대화창에 던진 그 한마디는, 어쩌면 오래전부터 성원들의 마음속에 씨앗처럼 묻혀있던 생각이 우연한 계기로 싹을 틔운것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짐작할 뿐, 그 씨앗이 정확히 언제 심어졌는지는 지금도 다 알지 못한다.
그날 밤 방송이 끝난 뒤 나는 블루동지에게 문자를 보내였다. 《오늘 채팅창 보았어? 칸나가 아빠라고 부르던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누나 그거 나도 봤어, 나 완전 놀랐잖아, 아빠는 무슨.》 그 문장 끝에는 웃음 표시가 여럿 달려있었다.
나는 그 답장을 보며 픽 웃었다. 《그래도 딱 어울리는데, 우리 그동안 애들 부모 노릇 한거 맞잖아.》하고 나는 농담삼아 답을 보내였다.
블루동지는 한동안 답이 없다가 짧게 한마디를 보내왔다. 《…그러게, 부정을 못하겠네.》 나는 그 문장을 몇번이나 다시 읽어보았다.
그 밤 나는 잠자리에 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였다. 《우결》이라는 내용물가 끝난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났는데, 그 옛날의 인연이 이렇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회사라는 살림안에서 되살아날줄은 몰랐던것이다.
그러나 이 아빠 롱담은 그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이번에는 히나동지가 나섰다.
히나동지는 《배그》 합방에서 블루동지와 한팀이 되였는데, 오락 도중 블루동지가 자꾸 앞장서서 팀원들을 이끌자 대뜸 《아빠, 이쪽으로 가면 안될것 같은데요》하고 마이크에 대고 말하였다. 블루동지는 그 말에 헛웃음을 지으며 《야, 너도야?》하고 되물었다.
히나동지는 태연하게 《칸나동지가 그러던데요, 아빠 맞다고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대답에 합방에 함께 있던 다른 성원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타비동지도 이 롱담에 합류하였다. 평소 말수가 적은 타비동지답게 그 방식은 요란하지 않았다.
타비동지는 어느 합방에서 블루동지가 무엇인가를 알려줄 때마다 짧게 《네, 아빠》하고 대답하는 버릇을 들이였다. 그 짧은 대답이 오히려 더 재미있다고 시청자들은 입을 모았다.
그 합방의 다시보기아래에는 어느새 이 두마디를 정리해놓은 대답글들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누구는 아빠 롱담 년대기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우스개를 하였고, 누구는 이러다 진짜 족보가 하나 생기는것 아니냐며 즐거워하였다. 나는 그 대답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내려가며, 시청자들마저 이 놀이에 진지하게 동참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무렵 성원들의 방송을 챙겨보면서, 이 아빠 롱담이라는것이 어느새 나 혼자 알던 옛이야기가 아니라 회사 전체가 나누어 갖는 하나의 문화로 자라나고있다는것을 실감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웃어넘길 일이라 여기였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은 회사의 공기속에 하나의 결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이 롱담이 굳어지는 데는 리제동지의 한마디도 한몫을 하였다. 리제동지는 어느 날 자신의 방송에서 색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강지사장님의 퍼스널컬러는 블루죠》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 클립을 나중에 전해듣고 한참을 소리내여 웃었다. 퍼스널컬러라는것은 본디 그 사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가리키는 말인데, 리제동지는 그것을 빌어 나와 블루동지의 오랜 인연을 에둘러 짚어낸것이였다.
그 말은 직접 《우결》이라는 낱말을 입에 담지 않고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그 옛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간있는 표현이였다. 나는 리제동지가 언제 그런 사정을 알게 되였는지 캐물어보지는 않았으나, 그 한마디로 미루어보아 성원들 사이에서 《우결》이라는 이야기가 이미 공공연한 상식으로 자리잡았음을 짐작할수 있었다.
실은 그무렵 시부키동지나 리코동지처럼 비교적 늦게 회사에 들어온 성원들조차도, 합방 도중 은근히 《우결》을 아는듯한 눈치를 내비치군하였다. 시부키동지는 언젠가 합방 대화창에 아빠라는 말이 지나갈 때 잠깐 웃음을 참는 기색을 보였고, 리코동지도 비슷한 자리에서 무언가를 짐작한듯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서, 새삼 놀라움을 느끼였다. 3기라 불리는 가장 나중에 합류한 성원들에게까지, 몇해 전 내용물 하나가 이렇게 자연스레 전해져 내려갔다는것이 신기하였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그 사연을 전해주었는지, 나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마도 성원들끼리 방송을 서로 챙겨보고 지난 영상들을 찾아보는 사이에, 마치 구전동요처럼 자연스럽게 퍼져나간것이 아닐가 짐작할뿐이다.
이렇게 되고보니 회사안에서는 어느새 나와 블루동지를 부모로, 성원들을 자식으로 놓는 하나의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여있었다. 누가 먼저 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여러 사람의 손이 조금씩 보태여 그려낸 그림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그 그림이 지니는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우결》이라는것은 본디 방송이라는 무대우에서 꾸며진 하나의 극이였다.
그러나 그 극속의 인연이 이렇게 몇해가 지나 전혀 다른 자리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어 되살아나는것을 보면서, 나는 방송이라는것이 단지 한때의 웃음거리로 끝나지 않는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무대우의 인연도 시간이 지나면 삶의 한 갈래가 되여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는 모양이다.
짐짓 력사적인 사변을 론하듯 말하자면, 이 아빠 롱담이야말로 스텔라이브라는 회사의 건국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한 장면이라 할것이다. 후날 누군가 이 회사의 래력을 정리한다면, 엄마와 딸애들이라는 놀이가 먼저 자리잡고 그뒤를 이어 아빠라는 말이 화룡점정처럼 얹히여, 마침내 이 회사가 하나의 완전한 가정의 모양을 갖추게 되였다고 적을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과장을 섞어 말하면서도, 실은 이 말들이 지니는 진짜 무게를 잘 알고있다. 엄마니 아빠니 하는 말들은 그저 우스개일뿐, 이 회사가 진짜 어느 집안이 되였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우스개속에는 성원들이 나와 블루동지를 그만큼 편하고 가깝게 여긴다는 마음이 담겨있었고, 나는 그 마음을 결코 가벼이 여길수 없었다. 딸이라 불리는 성원들이 저희들끼리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웃는다는것은, 그만큼 이 회사가 서로에게 가족처럼 여겨지는 자리가 되였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나는 처음 엄마 소리를 들었을 때는 손사래를 쳤으나, 아빠 롱담이 이만큼 널리 퍼진 뒤로는 더는 그 말들을 부정하려들지 않았다. 어차피 부정한다고 지워질 말들도 아니였거니와, 곱씹어보면 그 말들이 싫지만은 않았기때문이다.
블루동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였던 모양이다. 한번은 방송 중 시청자 하나가 다시 아빠 소리를 건네자, 그는 예전처럼 손사래를 치는 대신 《어, 그래, 아빠 여기 있다》하고 짐짓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여 대화창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 장면을 나는 나중에 클립으로 전해받아 몇번이나 돌려보았다. 예전 《우결》 시절, 높임말을 쓰던 그 서먹한 사이에서부터 오늘 이 우스개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멀고도 가까웠는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였다.
백곰파라는 이가 언젠가 나의 《유튜브》 영상아래에 블루동지가 속한 무리를 두고 《전남편 길드》라 적어놓았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도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끼였다. 세상 사람들도 이렇게 우리의 지난 인연을 잊지 않고 이따금 장작을 던져넣어주는것이다.
애호가들은 이런 재조명 장면을 두고 흔히 《장작이 알아서 탄다》고 말한다지만, 나는 여기에 성원들도 저마다 장작 한개비씩을 얹어주고있다는것을 이 아빠 롱담을 겪으며 새삼 알게 되였다. 우리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성원들이 알아서 그 불씨를 지켜나가고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며, 사람의 인연이라는것이 얼마나 신기한 방식으로 이어지는지를 다시 한번 배웠다. 젊은 시절의 나와 블루동지가 카메라앞에서 나눈 몇마디 말들이, 몇해가 지나 전혀 다른 얼굴을 한채 이 회사의 문화가 되여 되돌아올줄을 그 시절의 우리가 짐작이나 하였겠는가.
《우결》을 진행하던 그 시절, 나는 목소리를 늘 부드럽게 낮추고 거친 말버릇을 자제하였다. 오죽하면 나의 오랜 벗 악녀가 자기앞에서도 그렇게 말 좀 해달라고 부탁하였을 정도였으니, 그때의 나는 방송속에서만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굴었던 셈이다.
그런데 지금 이 아빠 롱담을 겪으며 돌이켜보니, 그렇게 다듬어두었던 말버릇 하나가 몇해 뒤 전혀 다른 자리에서 이렇게 되살아나 쓰일줄은 몰랐다. 사람이 마음을 다하여 쌓아둔것은 반드시 어디에선가 다시 쓰일 자리를 찾아내는 모양이다.
그해가 저물어갈무렵, 나는 성원들과 함께한 어느 회식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였다. 《얘들아, 근데 너희가 언제부터 나랑 블루동지를 부모로 취급하기로 정한거야?》하고 나는 웃으며 물었다.
칸나동지는 짐짓 시치미를 떼며 《저는 그냥 가챠 방송 보다가 무심코 나온말이였는데요》하고 대답하였다. 그 말에 옆에 있던 히나동지와 타비동지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유니동지는 그 자리에서 《그러고보니 우리 진짜 엄마아빠밑에 딸 넷이나 있는 셈이네》하며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나는 그 계산을 들으며 어이없다는듯 웃었으나, 마음속으로는 그 계산이 그리 틀린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날 저녁의 웃음소리를 다시 떠올려본다. 사무실 한켠에서 벌어진 그 자그마한 술자리의 웃음이, 몇해 전 《배그》 방송의 대화창에서 시작된 한마디에서 비롯되였다는것을 생각하면 새삼 인연의 실이 참으로 가늘고도 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아빠라는 말이 언제까지 이 회사에 남아있을지 알지 못한다. 성원들의 류행어라는것은 늘 그렇듯 한동안 반짝이다가 서서히 다른 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기 마련이다.
그러나 설령 그 말 자체는 흐려지더라도, 그 말이 담고있던 마음만은 쉬이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성원들이 나와 블루동지를 그렇게 편하게 여기고, 저희들끼리도 스스럼없이 그런 농을 주고받을수 있었다는것 자체가, 이 회사가 그만큼 따뜻한 자리로 자라났다는 증거이기때문이다.
《우결》이 끝나던 그날, 나는 그 인연이 이렇게까지 오래 이어질줄은 미처 몰랐다. 그저 지나간 한때의 즐거운 방송으로 남으리라 여기였을뿐, 그것이 몇해가 지나 전혀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되살아나 하나의 가족놀이로 완성될줄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옛날의 사랑이라 불리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오늘의 가족이라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그것을 애써 설명하려들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딸들이 태여난 이 회사에서, 나는 뜻하지 않게 아빠라는 이름 하나를 블루동지에게 붙여준 셈이 되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어느새 엄마라는 이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있었다.
이 모든것이 칸나동지의 무심한 한마디에서 비롯되였다고 생각하면, 사람의 말 한마디가 지니는 힘이 참으로 크다는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정작 그 한마디를 던진 칸나동지 자신은 그것이 이렇게까지 널리 퍼질줄은 몰랐을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라는것은 본디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조금씩 살이 붙고, 마침내는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함께 나누어 갖는 이야기가 되는것이다.
나는 이 절을 마무리지으며, 그날 밤 대화창에 떠올랐던 그 짧은 글자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아빠라는 그 두 글자가, 옛 《우결》의 추억과 오늘의 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였다는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그 다리우에 서서,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갈 길을 함께 바라볼수 있게 되였다. 그 다리가 언제 어떻게 놓였는지 정확한 날자는 이제 와서 다시 헤아려도 알수 없으나, 그 다리를 딛고 서있는 지금의 이 마음만은 뚜렷하다.
나는 이 회사가 앞으로 몇기, 몇세대를 더 맞이하게 될지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사이에 새로 들어올 성원들에게도, 아빠와 엄마라는 이 우스개 섞인 이름이 여전히 자연스레 전해지리라는것만은 어쩐지 믿어진다. 사람 사는 자리에는 늘 그렇게, 말이 말을 낳고 정이 정을 낳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아빠라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낸 칸나동지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방식으로 블루동지와 나의 이야기속에 이름을 올리게 될줄은 그때는 몰랐다. 그것은 다음 절에서 다시 이야기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