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3. 치 지 직

 

우주31(2024)년(2024년) 이월 초하루를 앞둔 어느 밤, 사무실 창밖에는 지난겨울 눈이 화단귀퉁이에 잿빛으로 눌어붙은채 채 녹지 못하고있었다. 브레이브 그룹과 나눈 이야기는 아직 서류함속에서 잉크냄새를 풍기고있었으나, 내 책상우에는 어느새 또 다른 뭉치가 쌓여가고있었다. 콤퓨터의 랭각기소리만이 늦은 사무실을 채웠고 화면의 푸른 빛이 밤이 깊도록 내 얼굴을 비추었다. 그러나 그 서류뭉치는 계약서가 아니라 우리 온 성원들의 방송집을 통째로 옮기는 일에 관한것이였다.

이 일을 말하자면 그보다 앞선 지난해 가을의 어느 저녁으로 거슬러올라가지 않을수 없다. 방송을 마치고 홀로 사무실에 남아있던 나에게 미기동지가 조용히 다가와 콤퓨터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트위치》의 화질을 두고 오가는 말들이 잔뜩 떠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저 또 한번 지나가는 소란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그러나 그 소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이미 몇해전부터 《트위치》는 이 나라에서만 유독 화질을 낮추어 방송하도록 해두고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잠시의 불편으로만 여기였다. 미기동지는 화면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나에게 말하였다. 《사장님, 아무래도 이번에는 좀 다른것 같습니다. 아예 이 나라에서 물러가겠다는 말까지 나와요.》

나는 그 말을 처음에는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였다. 세계 어디에서나 방송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 커다란 마당이 통째로 문을 닫는다는것이, 그때의 나에게는 마치 살던 고을의 큰 장거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말처럼 아득하게만 들리였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해 겨울이 깊어가면서 그 소문은 소문에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 공식적인 발표로 이어졌다. 《트위치》는 이 나라에서의 사업을 접겠다고 하였다. 그것은 우리 회사 하나만의 일이 아니였다. 크고작은 방송사들, 이름난 사람이나 이름없는 사람이나 할것없이 이 나라에서 방송하는 이는 누구나 같은 처지에 놓이였다.

온 고을 사람들이 하루밤 사이에 살던 집터를 내놓아야 하는 사변을 맞은것과 같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되겠지만, 그때 업계안에서 오간 술렁임은 실로 그에 못지않았다. 나는 그해 겨울을 돌이켜볼 때마다, 온 나라의 방송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보따리를 싸들고 새 터전을 찾아 나서던 그 풍경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누구는 이 마당으로, 누구는 저 마당으로 흩어져갔다.

어느 자리에서는 오래 쌓아온 구독자와 방송기록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두려움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고 들었다. 후날 사람들이 이 시절을 두고 방송하는 사람들의 민족대이동이라 우스개삼아 부르게 될 줄은, 그때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우리 회사로서도 이 일은 결코 가볍게 넘길수 있는 문제가 아니였다. 스텔라이브의 모든 성원 — 칸나동지, 유니동지를 비롯하여 그 전해 유월에 새로 들어온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에 이르기까지 — 이 저마다 그 마당우에 방을 얻어 방송을 해오고있었다. 그 방마다 쌓인 구독자수, 대화창의 오랜 단골들, 방송이 끝난 뒤에도 남는 다시보기까지, 옮긴다는것은 그 모든것을 다시 처음부터 쌓아야 한다는 뜻이였다.

미기동지와 함께 지난 방송기록을 정리하던 어느 밤, 나는 우연히 몇해 전 내가 얼굴을 드러내고 방송하던 시절의 오래된 클립 하나를 다시 보게 되였다. 화면속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앳된 목소리로 무어라 떠들고있었는데, 그 옆에는 낯익은 아이디들이 대화창을 가득 채우고있었다. 나는 그 클립을 한동안 멈추어놓고 바라보다가, 애써 눈길을 돌려 다시 서류로 돌아갔다.

그때는 그런 옛 클립 하나에 마음을 빼앗길 겨를이 없었다. 옮겨야 할 방송이 여섯개, 정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였으니 감상에 젖는것은 사치에 가까운 일이였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며 돌이켜보니, 그 짧은 순간의 머뭇거림이야말로 내가 그 마당에 얼마나 깊이 정들어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날 밤 미기동지와 마주앉아 늦도록 의논하였다. 사무실 한구석에는 며칠째 먹다 남은 곽밥 그릇이 쌓여가고있었다. 《오른팔》이라 부르는 이 사람은 이런 일앞에서 언제나 나보다 침착하였다. 《사장님, 어차피 옮겨야 한다면 미리 준비하는 편이 낫습니다. 늦게 옮기나 일찍 옮기나 아플것은 매한가지니까요.》

그 말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때부터 나는 여러 밤을 이 나라안의 다른 방송마당들을 살피는데 썼다. 아프리카의 오래된 마당도 있었고, 이 나라 포털이 새로 낸 마당도 있었다. 나는 하나하나 견주어보며 우리 성원들에게 어느 자리가 더 나을지 헤아렸다.

그 가운데 유독 눈에 들어온것이 이 나라의 큰 포털회사가 새로 낸 《치지직》이라는 마당이였다. 아직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것이 새것 냄새를 풍기였지만,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 새로움이 반가운 소식으로 들릴법하였다. 나는 그 마당의 이모저모를 살피며 이곳이라면 우리 성원들을 다시 심을만한 자리가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때는 미처 몰랐으나, 이 나라의 버튜버업계는 그무렵을 기점으로 두 갈래 큰 마당으로 나뉘어가고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다른 회사들 가운데 일부는 예전부터 자리잡아온 다른 마당에 그대로 눌러앉았고, 우리는 이 새로운 마당에 깃발을 꽂았다. 후날 사람들은 이 두 갈래 길을 두고 이 나라 버튜버시장의 두 기둥이라 부르게 되였으니, 그 시초가 바로 이 소란스러운 봄이였다는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하였다.

나는 성원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이 일을 의논하였다. 회의실 탁자에 둘러앉은 여섯 얼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있었다. 유니동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러면 우리 구독자수는 다 없어지는것이예요? 저 그거 모으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였는데.》 목소리 끝이 살짝 떨리였다.

칸나동지도 팔짱을 낀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저도 그게 제일 걱정돼요. 그동안 찍어둔 다시보기들도 다 옮겨야 하는것 아니예요?》 나는 그 물음들에 하나하나 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나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리제동지는 평소답게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하였다. 《에이, 뭐 어때요. 새 집으로 이사간다고 생각하면 되지요. 구독자수 좀 줄어들면 또 채우면 되고.》 그 말에 회의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타비동지는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끼여들었다. 《저는 새 마당 이름부터 마음에 들어요. 치지직! 부르기도 재밌잖아요!》 하고 웃어보였다. 마시로동지와 히나동지는 말없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다가, 마시로동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그러면 우리 다 같은 날에 옮기는것이예요?》

나는 그렇다고 답하였다. 성원 모두가 한날한시에 새 마당으로 방을 옮기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게 될것이 뻔하였기때문이다. 회의는 그렇게 몇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온 성원이 함께 새 마당으로 옮기기로 뜻을 모으고서야 끝이 났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나에게 있어 《트위치》라는 마당은 회사의 방송터 이상의 자리였다. 스텔라이브를 세우기 훨씬 전, 아직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방송하던 시절부터, 나는 그 마당우에서 오래도록 살아왔다.

그뿐이 아니였다. 스텔라이브를 세우기도 전, 나는 악녀동지, 단즈동지와 함께 《유메퍼센트》라는 작은 회사를 셋이서 그 마당우에 차린 일이 있었다. 그때도 우리 셋은 다 그 마당에서 방송하던 사람들이였고, 그 자리가 아니였다면 애초에 셋이 만날 일도 없었을것이다. 이제 그 자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나는 마치 내가 자라난 고향집을 통째로 허무는듯한 심정이 되였다.

물론 고향을 떠난다고 해서 그 기억까지 사라지는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그것을 다 알지 못한채, 그저 눈앞의 서류와 일정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있었을뿐이다.

그리고 그곳은 다른 누구도 아닌 블루동지와 내가 《우결》이라는 이름으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바로 그 자리이기도 하였다. 《배그》를 하며 함께 웃고, 서로 오빠니 누나니 부르며 지낸 그 수많은 밤들이 다 그 마당의 대화창우에 남아있었다. 이제 그 자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언젠가 그 마당의 대화창우에서 블루동지에게서 처음으로 오빠라는 말을 듣던 밤도, 처음으로 누나라 불러보던 밤도 다 그 자리에서있었던 일이다. 세월이 흘러 그 대화들이 남긴 다시보기는 대부분 지워지고 없었지만, 그 자리 자체는 여전히 그날의 온도를 품고있는것만 같았다. 나는 그 온도를 뒤로하고 떠난다는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날 저녁 나는 블루동지에게 넌지시 이 소식을 전하였다. 《오빠, 나 이제 트위치 접어야 할것 같아.》 전화 저편에서 블루동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특유의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아니 그니까 트위치가 망한다카는데, 이게 뭔 소리고.》 놀라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다는 그 사투리 억양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묻어나왔다. 나는 그 말투를 들으며 오랜만에 웃음이 나왔다. 《망하는게 아니라 이 나라에서만 접는것이야. 그래도 서운하긴 하네.》

《그래도 뭐, 자리 옮긴다고 우리 그때 일이 없어지는건 아이잖아.》 블루동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조금 놓이였다. 방송하는 자리는 옮겨갈수 있어도, 그 자리에서 쌓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통째로 옮겨지지는 않는다는것을, 나는 그날 새삼 깨달았다.

결정을 내린 뒤부터 사무실은 밤낮없이 분주해졌다. 미기동지를 비롯한 직원들은 새 마당의 방송통로를 하나하나 만들고, 방송 시작화면과 대화창 규칙을 새로 짜고, 예전 다시보기 가운데 옮길수 있는것들을 골라내느라 며칠 밤을 꼬박 새웠다.

정산 방식도 새로 익혀야 하였고, 후원 상자의 표시법도 하나하나 다시 설정해야 하였다. 나는 그 곁에서 곽밥을 시켜나르고 커피를 타는것밖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였는데, 그것이 못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애써주는것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광고를 맡아주던 회사들에게도 일일이 사정을 알려야 하였다. 자리를 옮기는 동안 로출이 줄어들지 모른다는 우려에, 나는 몇번이고 전화통을 붙들고 사정을 설명하였다. 다행히 그 가운데 대부분은 오히려 우리보다 먼저 이 나라 방송업계의 사정을 헤아리고 있어, 큰 잡음 없이 넘어갈수 있었다.

성원들은 저마다 새 마당에 걸어둘 프로필과 소개글도 새로 써야 하였다. 어느 성원은 몇시간을 붙들고 문장 하나를 고치고 또 고쳤고, 어느 성원은 예전 소개글을 거의 그대로 옮겨적으면서도 마지막 한줄만은 새 마당에 어울리게 바꾸었다. 그 작은 문장 하나하나에도 저마다의 마음가짐이 배여있다는것을, 나는 그 서류들을 검토하며 새삼 느끼였다.

성원들도 저마다 준비에 들어갔다. 유니동지는 예고 방송을 열어 시청자들에게 이사 소식을 알렸다. 《여러분, 우리 이제 새 집으로 이사가요. 짐 챙기느라 바빠서 오늘 방송은 짧게 할게요!》 대화창에는 아쉬움과 응원이 뒤섞인 말들이 쉴새없이 올라왔다고 한다.

히나동지는 노래방송 말미에 담담한 목소리로 리별인사를 건넸다. 《오래 정들었던 이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노래 한곡 더 부르고 갈게요.》 그 방송을 지켜본 직원 하나가 나에게 와서, 대화창이 온통 눈물이모티콘으로 뒤덮였더라고 전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방하나를 옮기는 일에도 이렇게 많은 마음이 오간다는것을 새삼 느끼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일보다, 오히려 이런 작은 자리하나를 옮기는 일이 사람의 마음을 더 크게 흔들어놓는다는것을 그때 나는 배웠다.

마침내 이월 초하루, 우리는 온 성원이 한날한시에 새 마당 《치지직》에서 방송을 열기로 하였다. 그날 아침 사무실에 나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콤퓨터앞에 앉았다. 여섯개의 방송창을 나란히 띄워두고, 저마다의 대화창에 첫 시청자가 들어오는것을 지켜보는 내 손끝은 은근히 떨리였다.

첫 방송의 시작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마시로동지의 화면은 접속이 몰려 몇번이나 끊기였고, 타비동지는 새 마당의 후원 기능을 잘못 눌러 후원 소리가 연달아 울리는 바람에 스스로도 놀라 웃음을 터뜨리였다.

리제동지는 대화창에 낯선 얼굴들이 인사를 건네오자 《어, 여기 분위기 또 다르네요.》 하며 신기해하였다. 그런가하면 옛 시청자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새 마당까지 굳이 찾아와 낯선 계정을 새로 만들고 다시 인사를 건네주었다.

유니동지는 그런 채팅을 볼 때마다 《와, 진짜 따라와주었네.》 하며 목이 메인 소리를 냈다고 한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는것은 마당이 바뀐다고 해서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는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였다.

그날 오후 나 자신의 방송통로에도 새로 첫 방송을 열었다. 화면 너머로 오랜 시청자들의 이름이 하나둘 눈에 익은채로 나타날 때, 나는 순간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오래들 기다렸지요. 우리 이제 여기서 다시 시작해요.》 그 한마디를 내놓기까지 나는 몇번이나 마이크를 껐다 켰는지 모른다. 화면아래로 흐르는 대화창의 낯익은 이름들을 보며, 나는 이 자리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것이지 마당이 만드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다시금 되새기였다.

그날 밤 늦게 블루동지에게서 문자 하나가 왔다. 《잘 옮기였나. 첫날부터 고생 많았겠다.》 나는 웃으며 답장을 보내였다. 《응,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다들 잘 따라와주었어.》 짧은 문자였지만, 나는 그 안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한 사람만이 건넬수 있는 위로를 느끼였다.

새 마당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한동안은 크고작은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날은 후원금이 잘못 표시되는 바람에 시청자들이 놀라 대화창이 마비되다시피 하였고, 또 어느 날은 이모티콘 목록이 새로 바뀌어 성원들이 저마다 좋아하던 표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소동들조차 지나고나면 웃으며 이야기할수 있는 추억거리로 남았다. 나는 그무렵 사무실에서 성원들과 자주 마주앉아 새 마당에 적응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비동지는 《저는 그래도 여기 후원 소리가 더 경쾌해서 좋아요.》라며 신이 나 있었고, 마시로동지는 《저는 아직도 예전 채팅창 글자체가 그리워요.》 하며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람마다 새것을 반기는속도가 이렇게 다르다는것을, 나는 그 시절에 새삼 배웠다.

히나동지는 그 가운데서도 유독 담담하였다. 《저는 어디서 부르든 노래는 매한가지니까요.》 그 말이 어찌나 어른스럽게 들리던지, 나는 그날 히나동지를 다시 보게 되였다.

어느 저녁 미기동지가 나에게 우스개소리를 건넨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장님, 우리도 이제 력사책에 한줄 남기게 되였네요. 우주31(2024)년 이월 초하루, 스텔라이브가 마당을 옮기다, 하고요.》 나는 그 말에 실없이 웃으면서도, 어쩐지 그 우스개소리가 아주 틀린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방송하는 사람에게 있어 마당을 옮긴다는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딛고 서있던 땅을 통째로 바꾸는 일이며, 그 땅우에 다시 씨를 뿌리고 사람을 심는 일이다. 나는 그 봄, 사무실 창밖의 눈이 다 녹아 없어질무렵에야 비로소 그 일의 무게를 온전히 헤아릴수 있었다.

나는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는 기술보다 사람 사이에 쌓아온 요령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 말은 이 마당 이사를 겪으며 더욱 뼈저리게 실감한 말이 되였다. 아무리 좋은 마당이라 해도 그우에 사람의 마음을 다시 쌓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것을, 나는 그 봄에 몸으로 배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해 이월의 그 소란스러운 이사는 회사에 있어 뜻밖의 전환점이 되였다. 우리는 그 마당에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새 얼굴들을 만나게 되였다. 후날 스텔라이브가 이 나라안에서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방송집단으로 불리게 된 밑거름도, 실은 그때 다져진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는 그저 등떠밀리듯 옮겨간 자리였는데, 지나고보니 그것이 새로운 력사의 첫 페지였던 셈이다.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그렇다. 겪을 때에는 그저 견디는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가도, 세월이 지나 돌아보면 그 견딤이 다음 자리로 건너가는 다리였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나는 이 대목을 쓰면서, 그때 우리가 조금 더 여유있게 이 일을 겪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몰아치듯 밀려온 변화였기에 오히려 성원들과 나는 서로에게 더 바짝 붙어설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급한 물살일수록 손을 더 꽉 잡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다만 한가지, 그때 성원들 저마다의 속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나는 지금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겉으로는 웃으며 새 마당을 반기던 얼굴들 뒤에, 얼마만큼의 서운함과 두려움이 숨어있었는지는 아마 그 사람들 자신만이 알고있을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이 자리옮김이 그해에 겪을 마지막 변화가 아니라는것을 아직 알지 못하였다. 새 마당에 겨우 자리를 잡고 숨을 돌릴 즈음, 회사안에서는 또 다른 술렁임이 조용히 준비되고있었다.

다섯이 될뻔한 자리가 어찌하여 넷으로 줄어들게 되었는지, 그 사연은 지금도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부분이 남아있다. 다만 그해 봄, 우리는 또 한번 새로운 얼굴들을 세상에 내보일 준비를 조용히 시작하고있었다는것만은 분명하다.

사무실 한쪽 벽에는 아직 이름도 확정되지 않은 새 유니버스의 시안들이 하나둘 붙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몇달 전만 해도 마당을 옮기는 일만으로도 벅찼던 사무실이, 어느새 다음 식구를 맞을 채비로 다시 부산해지고있었다.

창밖의 눈이 마침내 다 녹고 화단에 새싹이 돋아날무렵,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새 마당에서의 첫 한달치 방송기록을 살펴보았다. 구독자수는 아직 예전만 못하였지만, 대화창에 오가는 말들의 온기만은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 온기를 보며 생각하였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것은 마당의 이름이나 구독자의 수자가 아니라, 그 마당우에서 오간 사람들의 마음이라는것이다. 그 마음만 옮겨간다면, 자리가 어디이든 우리는 또다시 뿌리를 내릴수 있을것이다.

이 절을 쓰며 나는 새삼 깨닫는다. 회고록이란 큰 사변만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라, 이렇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옮김 하나에도 마음을 다해 기록해야 하는 글이라는것을 말이다. 옮겨간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뿌리를 내렸고, 그 뿌리는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도 굳건히 이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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