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1. 다 섯 에 서 넷 으 로

 

우주31(2024)년(2024년) 오월 초순의 사무실은 유난히 분주하였다. 며칠 전 내린 봄비로 창밖 공기는 유리알처럼 맑았고, 화단에 새로 심은 영산홍이 붉게 피여있었다. 콤퓨터 화면 한켠에서는 알림신호이 쉴새없이 울려댔고,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새 식구를 맞을 날이 하루하루 다가옴을 실감하였다. 창가에 앉으면 마당의 나무잎 사이로 스며드는 볕이 건반우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그려놓군하였다.

그해 봄 우리 회사는 3기 《클리셰》라는 이름으로 다섯번째 식구들을 세상에 내놓을 채비를 하고있었다. 반년 넘게 련습실의 불이 꺼지는 날이 드물었고, 무대도면과 의상시안이 사무실 벽 한켠을 빼곡히 채우고있었다. 나는 그 도면들을 지날 때마다 다섯 사람의 자리를 하나하나 손끝으로 짚어보군하였다. 다섯이라는 수자가 그때는 너무도 당연한것이여서, 나는 그것이 흔들릴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말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해 가을, 심사를 거쳐 다섯 사람이 처음 한자리에 모이던 날의 광경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련습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다섯 그림자, 그들이 서로 어색하게 주고받던 첫 인사말이 아직 귀에 남아있는것만 같다. 그날 나는 그 다섯 얼굴을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앞으로 몇해가 될 세월을 함께 갈 사람들이라고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시부키동지는 첫날부터 넉살이 좋아 마이크를 잡자마자 우렁차게 인사를 하였고, 그 옆에서 동지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였다. 나나동지와 리코동지는 나이가 가장 어려 서로 손을 꼭 잡은채 구석자리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다섯번째 자리가 하나 더 있었다. 그 자리에 앉은 사람 역시 다른 넷과 다름없이 매일 늦도록 안무를 맞추었고, 누가 실수를 하면 제일 먼저 나서서 웃어넘기는 성격이였다.

그 이름 《클리셰》는 처음부터 정해놓은것이 아니라, 다섯이 밤늦도록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골라낸 이름이였다. 흔하다못해 진부하다는 뜻의 그 말을 오히려 자기네 이름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재미있어, 나는 그 이름을 듣던 날 무릎을 치며 웃었다. 다섯은 그 이름을 스스로 정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벌써 한식구가 된듯 뿌듯해하였다.

심사이 있던 날의 풍경도 지금껏 잊혀지지 않는다. 시부키동지는 발성시험에서 목청을 너무 높인 나머지 스스로도 놀라 헛웃음을 지었고, 동지는 반대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준비한 대사를 거꾸로 외워 심사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나나동지와 리코동지는 나이가 어린 티를 감추지 못해 손을 마주잡은채 부들부들 떨었으나, 노래 한소절이 끝나자 심사석에서 절로 박수가 터져나왔다. 나는 그날의 그 서투른 떨림들이야말로 다섯을 다섯으로 묶어준 첫 매듭이였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는 그 다섯 사람을 볼 때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좋은 식구들이 들어왔구나 하고 흐뭇해하였다.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는 사이 다섯은 하루가 다르게 손발이 맞아갔다. 노래 한소절을 맞추는데 몇시간씩 걸리던 처음과 달리, 해가 바뀔 즈음에는 눈빛만으로도 다음 동작을 알아채는 사이가 되여있었다. 나는 그 성장을 지켜보는것이 사장으로서 누릴수 있는 가장 큰 락이라고 여기였다.

겨울이 깊어가던 어느 날 저녁, 다섯은 련습이 끝난 뒤에도 돌아갈 생각을 않고 련습실 바닥에 둘러앉아 곽밥을 나누어먹었다. 나나동지가 반찬 하나를 리코동지의 곽밥에 덜어주면 리코동지는 또 그것을 시부키동지에게 밀어주었고, 그렇게 오가는 반찬을 두고 다섯은 한참을 깔깔거리였다. 나는 그 문틈으로 그 광경을 들여다보며, 이 다섯이라면 무슨 무대에 세워도 든든하겠다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였다.

련습이 끝난 저녁이면 나는 짓궂게 시부키동지를 놀리군하였다. 《시부키동지는 실은 천살이 넘은 할머니지, 안그런가?》 시부키동지는 그때마다 억울하다는듯 눈을 흘기면서도 못이기는척 웃어보이였다. 그 실없는 롱담 하나에 련습실 분위기가 금세 눅어지군하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재주였다.

미기는 그무렵 다섯 사람의 일정을 도맡아 관리하였다. 의상실과 미용실 예약, 안무선생과의 시간조정까지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챙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새삼 내 오른팔을 잘 두었다고 생각하였다. 미기는 다섯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조차 순서를 틀리는 법이 없었다. 나는 그 꼼꼼함에 기대여 다섯의 데뷰 준비를 마음놓고 미기에게 맡길수 있었다.

해가 바뀌여 우주31(2024)년 봄이 되자 준비는 마지막 고비에 접어들었다. 데뷰곡 록음이 끝나고 뮤직비디오, 곧 《PV》 촬영 일정이 잡히였다. 오월 열이튿날에 그 PV를 세상에 처음 공개하기로 우리는 진작부터 못을 박아두고있었다. 사무실 달력에는 그날짜에 굵은 동그라미가 몇겹으로 둘러쳐져있었다.

공개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사무실 공기는 팽팽해졌다. 홍보문안에는 이미 《다섯》이라는 수자가 몇번이고 박혀있었고, 예고그림에도 다섯 그림자가 나란히 서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반년 넘게 이어온 노고가 곧 결실을 맺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였다. 그것이 그렇게 쉽게 무너질 계획이라고는 그때까지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오월 열이튿날이 밝기도 전에, 공개하기로 한 PV가 갑자기 미뤄졌다. 사무실에 나붙은 짧은 알림문에는 그저 《내부 사정으로 공개를 연기합니다》라는 한줄이 전부였다. 나는 그 짧은 문구를 몇번이고 다시 읽었으나, 처음 접하는 사람처럼 몇번을 되뇌여도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사무실은 평소와 다름없이 콤퓨터 소리로 채워져있었지만, 그 소리마저 유난히 무겁게 들리였다.

미기를 비롯한 직원들도 갑작스런 연기소식에 말을 아꼈다. 다들 서로 눈치만 살필뿐, 먼저 나서서 캐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 역시 그 사정을 직원들앞에서 소상히 늘어놓을 처지가 못되였다. 나는 그날 오후 내내 회의실 문을 닫아걸고 혼자 앉아있었다.

창밖으로 오월의 볕이 한창이였으나 나는 그 볕을 즐길 겨를이 없었다. 다섯 사람의 얼굴이 하나씩 눈앞을 스쳐지나갔고,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한 얼굴이 오래 머물러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 회의실 탁자우에 엎드려 몇시간을 그렇게 보냈던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이 대목을 적으면서도 그날의 무거움이 그대로 되살아나는듯하여 나는 잠시 붓을 멈추게 된다.

그날 저녁 나는 회사의 나이 든 성원 몇에게 넌지시 이 일을 물어보았다. 자세한 사정을 다 밝힐수는 없었지만, 무거운 결정을 앞두고 혼자 짊어지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컸기때문이다. 그들은 저마다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결국 이 결정은 사장인 내 몫이라며 조용히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나에게는 적지 않은 힘이 되였다.

저녁무렵 미기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손에는 따뜻한 차 한잔이 들려있었다. 《사장님, 우선 이거라도 드세요.》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그제야 하루종일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공식적인 발표에 앞서 남은 네 사람에게 먼저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마음을 굳혔다. 다섯이 넉으로 줄어드는 소식을 그들 자신의 입이 아니라 대화창의 글씨로 먼저 알게 하고싶지 않았기때문이다. 이튿날인 오월 열사흗날 낮, 나는 네 사람을 련습실로 불러앉혔다. 련습실안은 여느때와 달리 무겁도록 조용하였다.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주게. 이번 무대는 다섯이 아니라 넉사람의 무대가 되였네.》 시부키동지는 눈을 크게 뜬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리코동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시선을아래로 떨구었다.

나나동지는 그런 리코동지의 손을 말없이 그러잡았다. 동지만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하고 짧게 대답하였다. 그 짧은 대답속에 얼마나 많은 물음이 눌려있는지, 나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아무도 나에게 그 리유를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 리유를 낱낱이 설명해줄수 없었다. 다만 《여기서 더 캐묻지 말아달라, 이것이 지금 내가 해줄수 있는 가장 옳은 처사다.》라고 당부하였을뿐이다. 네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한번씩 돌아보더니 이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침묵이 어떤 웨침보다도 무겁게 련습실을 채웠다.

이 회고록을 쓰는 지금도 나는 그날의 약속을 지키고있다. 세월이 이만큼 흘렀어도 나는 그 사정을 이 페지에까지 옮겨적을 생각이 없다. 누군가는 그것을 두고 력사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나무랄지도 모르나, 나는 그보다 한 사람의 존엄을 지키는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지금도 믿는다. 그러니 이 대목에서만은 독자들도 나의 이 침묵을 너그러이 보아주기를 바랄뿐이다.

그날 저녁 나는 예정된 방송에 자리를 잡고앉았다. 마이크를앞에 두고 몇번이나 목을 가다듬었으나 좀처럼 말이 술술 나오지 않았다. 나는 결국 짧게, 그러나 또박또박 한마디를 전하였다. 《데뷔 예정 인원이 다섯에서 넷으로 변경되였습니다.》

그 한마디가 나가기 무섭게 대화창은 온통 물음표로 뒤덮이였다. 《네?》, 《누가요?》, 《왜요?》하는 글자들이 화면을 타고 폭포처럼 쏟아져내렸다. 나는 그 물음들을 하나하나 다 읽으면서도 더 대답해줄 말이 없어 그저 마이크앞에서 침묵을 지킬수밖에 없었다. 몇몇 시청자는 벌써부터 이런저런 억측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으나, 나는 그 어느것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날 방송을 평소보다 일찍 마쳤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화면을 껐을 때, 사무실에는 나 혼자만 남아있었다. 콤퓨터 랭각기소리만이 고요한 방안을 채우고있었다.

그로부터 데뷰일까지는 닷새가 채 남지 않았다. 우리는 그 닷새 사이에 손볼것이 한둘이 아니였다. 이미 다섯을 기준으로 짜여있던 PV는 통째로 다시 편집하여야 하였고, 안무대형도 다섯각형에서 네각형으로 새로 짜야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며칠은 마치 력사에 남을 대작전을 앞두고 진영을 다시 짜는것과 같았다. 편집자는 밤을 새워가며 화면 속 빈자리를 지워나갔고, 안무선생은 네 사람의 동선을 새로 그리느라 마루바닥에 분필로 어지러이 표시를 해가며 골머리를 앓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속으로 짐짓 《이것도 력사에 남을 재편성이다.》하고 헛웃음을 지어보았다. 그러나 웃음 끝에는 어쩔수 없는 씁쓸함이 남아있었다.

인쇄소에 이미 넘어가있던 홍보물도 문제였다. 다섯 그림자가 나란히 박힌 포스터 수백장이 창고에 그대로 쌓여있었고, 담당 직원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나에게 몇번이고 물어왔다. 나는 결국 그 포스터들을 폐기하라고 지시하면서도, 그 종이무더기를 트럭에 싣는 광경을 차마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포스터 한장 한장에도 반년의 땀이 배여있었을터인데, 그것을 그렇게 허무하게 버려야 하였던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였다.

네 사람은 그 며칠 동안 유난히 말이 적었다. 안무선생이 빈자리를 메우라고 지시할 때마다 넷은 조금씩 간격을 좁혀 서로에게 다가섰다. 그 좁혀진 간격을 볼 때마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왔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는듯 웃고있었지만, 그 웃음 사이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살피는 눈빛이 오갔다.

나는 그 며칠 저녁마다 련습실에 들러 네 사람을 다독이였다. 《너희 넉사람만으로도 차고넘친다, 걱정말아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그 말을 얼마나 믿고있는지 자신하지 못하였다. 다만 그 말을 되풀이할수록 나 자신도 조금씩 그 말을 믿게 되여갔다.

그무렵 다른 기수의 언니 성원들도 소문을 듣고 하나둘 련습실을 기웃거리였다. 칸나동지는 넷을 한명씩 끌어안아주며 《너희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있다》고 다독여주었고, 유니동지는 특유의 밝은 얼굴로 실없는 우스개를 던져 무거운 공기를 풀어주려 애썼다. 그렇게 언니들이 오가며 남기고 간 온기가, 그 며칠의 넉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버팀목이 되였다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어느 저녁에는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다시 그 옛 롱담을 꺼내들었다. 《시부키동지, 그러고보니 천살 먹은 할머니가 넉사람 몫을 해내는 셈이니 오히려 이문이 남는것 아닌가?》 시부키동지는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소리에 나나동지와 리코동지도 따라 웃었다. 무거웠던 련습실 공기가 그 한마디로 잠시나마 눅어지였다.

오월 열이레날 밤, 마지막 총련습이 끝나고 네 사람은 나란히 무대바닥에 걸터앉았다. 다들 지친 기색이 력력하였으나 그 얼굴에는 이상하게도 옅은 웃음이 걸려있었다. 동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래일이면 진짜 시작이네요.》

나머지 세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네 사람의 뒤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다섯이 아니라 넷이 된 이 무대가 어떤 첫걸음을 내딛을지, 나로서도 가늠할 길이 없었다. 다만 그 뒤모습이 결코 작아보이지 않는다는것만은 분명히 느낄수 있었다.

오월 열여드렛날 아침이 밝았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고, 사무실 창으로 스며드는 볕이 그날따라 유난히 따사로웠다. 카메라와 조명이 분주히 자리를 잡는 소리, 스텝들의 발걸음소리가 오전 내내 복도를 오갔다. 나는 그 부산한 소리들속에서 오히려 마음 한켠이 가라앉는것을 느끼였다.

그날 저녁 시부키동지와 동지가 먼저 화면에 나타났다. 시부키동지는 평소의 그 우렁찬 목소리로 첫 인사를 건넸고, 동지는 그 곁에서 차분한 미소로 화답하였다. 대화창에는 축하의 글들이 순식간에 쌓여올라갔다. 나는 조종실 한켠에 앉아 그 화면을 지켜보며 며칠 사이 몰래 삼켰던 근심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화면 속 두 사람은 마치 처음부터 넷이였던것처럼 자연스럽게 무대를 채워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안도와 함께 알수 없는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오는것을 느끼였다. 안도한것은 두 사람이 그만큼 씩씩하게 서있었기때문이고, 서운하였던것은 그 옆에 있어야 하였을 또 한 사람의 자리가 자꾸 눈에 밟히였기때문이다. 나는 그 두 감정을 굳이 갈라놓지 않고 그대로 끌어안은채 방송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이튿날인 오월 열아흐렛날 저녁에는 나나동지와 리코동지가 그 뒤를 이였다. 두 사람은 데뷰 전날까지도 손을 놓지 않고 서로를 다독이던 사이답게, 화면속에서도 눈빛만으로 서로를 챙기였다. 나나동지의 밝은 웃음과 리코동지의 야무진 말투가 어우러져 대화창은 금세 훈훈한 반응으로 채워졌다. 나는 그 훈훈함속에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완전히 놓이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틀에 걸쳐 넉 사람의 데뷰가 그렇게 마무리되였다. 다섯이 넉이 된 사연을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그날만큼은 함께 축하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 축하의 목소리들이 고마우면서도, 그 이면에 남은 빈자리를 잊지 못하는 나 자신을 어쩌지 못하였다. 겉으로는 웃고있었으나 나는 그날 밤 사무실에 홀로 남아 오래도록 불을 끄지 못하였다.

그후로 두해가 지나도록 다섯번째 자리에 대한 물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오월이 돌아오면 인터네트 여기저기서 그해 봄의 일을 다시 꺼내드는 글들이 올라왔고, 그 가운데는 사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도 적지 않았다.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이 일을 에둘러 물어오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었으나, 나는 그때마다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 화제를 돌렸다. 그것이 잘하는 처사인지는 지금도 확신할수 없으나,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만은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해두고싶다. 그 다섯번째 사람 역시 우리와 함께 반년 넘는 세월을 땀흘려 준비한, 누구 못지않게 성실한 사람이였다는 사실이다. 사정이 어떠하였든 그 노력만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그 사람의 이름을 여기 적지 않는것은 그를 지우려는것이 아니라, 그를 지키려는 나의 마지막 도리이다.

력사책이라면 이런 일을 두고 무슨 대사변처럼 몇줄이나 되게 적어놓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평범한 나날의 련속이였을뿐이다. 다섯이 넉이 되였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진것도 아니고, 세상이 뒤바뀐것도 아니였다. 다만 그 작은 빈자리 하나가, 지나고보니 우리 모두에게 적지 않은 무게로 남아있었을 따름이다.

넉 사람은 그후로 서로를 더욱 의지하며 자라났다. 시부키동지의 우렁찬 목소리와 동지의 차분함, 나나동지의 밝음과 리코동지의 야무짐이 한데 어우러져 3기 《클리셰》만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나는 그 넉 사람이 자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섯이든 넉이든 사람은 결국 저마다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을 해낸다는 평범한 리치를 다시 배웠다.

그해 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그 봄의 일을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고 지냈다. 성원들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밤늦게 혼자 사무실에 남을 때면 그해 봄의 련습실 풍경이 불쑥불쑥 떠오르군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다섯번째 자리에 놓여있던 빈 의자를 마음속으로 한번씩 쓸어보았다.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는것이 어떤 일인지, 나는 그해 봄을 지나며 다시 한번 배웠다. 모든것을 다 설명해줄수 없을 때도 있고, 모든 물음에 다 답해줄수 없을 때도 있다는것을, 그리고 그런 순간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태도 하나가 얼마나 무겁게 남는 자들의 버팀목이 되는지를 나는 그때 몸으로 익히였다. 그것은 어느 경영학책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리치였다.

넉 사람이 자리를 잡아가는 사이, 회사의 다른 성원들도 저마다 새 노래와 새 무대를 준비하며 조금씩 자라나고있었다. 다섯에서 넉으로 줄어든 자리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봄 하나로 끝나지 않으리라는것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고있었다.

지금도 나는 해마다 오월이 되면 그날의 련습실 풍경을 떠올린다. 다섯 그림자가 처음 모이던 그 가을날과, 그 가운데 하나가 조용히 자리를 비우던 그해 봄이 겹쳐 떠오르군한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빈자리 하나가 오히려 남은 넉 사람을 더 단단히 여미게 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섯에서 넉으로 넘어가던 우주31(2024)년 오월, 그것은 우리 회사의 력사에서 가장 조용히, 그러나 가장 오래 남을 한 굽이였다. 나는 아직도 그 사연의 전모를 다 말할수 없다. 다만 그 봄을 뒤로하고 무대에 오른 넉 사람의 뒤모습만은, 지금도 눈을 감으면 뚜렷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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