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 닛 싱 글
우주31(2024)년 이른 봄이였다. 창밖 여의도 거리에는 아직 찬바람이 남아있었고 사무실 콤퓨터 고성기에서는 아직 다 섞이지 않은 노래가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오고있었다. 얼마전까지도 나는 다섯이어야 할 자리에 넷만 남았던 그 봄의 뒤숭숭함에서 헤여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이 일이라는것이 슬픔앞에서도 하루를 그냥 쉬여주는 법이 없다는것을 나는 그무렵 다시금 깨달았다.
사무실 창가에는 그해 겨울부터 자리를 지킨 화분 하나가 놓여있었는데 봄이 되어도 좀처럼 새잎을 내밀지 않았다. 나는 아침마다 그 화분에 물을 주며 이것도 언젠가는 새잎을 내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화분과 그 봄의 우리 회사가 어쩐지 닮은꼴이였다.
미기, 내가 오른팔이라 부르는 그 직원은 그 봄에 발매일정표를 커다랗게 인쇄하여 사무실 벽에 붙여놓았다. 2월에 한곡, 4월에 두곡, 그리고 또 한곡, 유닛별로 흩어진 날자들이 씨앗을 뿌려놓은 밭고랑처럼 나란히 늘어서있었다. 나는 그 표를 지나칠 때마다 이것을 다 해낼수 있을지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나는 그 표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가끔 이것이 무슨 전투배치도 같다고 혼자 중얼거리곤 하였다. 2월에 한곡을 내보내고나면 4월에 두곡이 밀려오고 그 뒤로도 곡들이 줄줄이 대기하고있었으니 무슨 지휘관이라도 된 기분이였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보며 《사장님, 전쟁은 무슨 전쟁입니까, 그냥 노래입니다.》 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중 제일 먼저 온것이 《Milky Way》였다. 2월 21일에 나갈 이 노래는 그때까지 있던 성원 여섯 — 칸나동지, 유니동지,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 전원이 한목소리로 부른 첫 전체곡이였다. 클리셰가 태여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하나의 노래안에 여섯 목소리를 담아본 셈이다. 록음이 시작되기 전날 나는 이 여섯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보며 새삼 우리가 이만큼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Milky Way》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은하수, 곧 별들이 강물처럼 흐르는 밤하늘을 떠올렸다. 제각기 다른 세계관을 가진 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의 강물을 이룬다는 뜻이니 이보다 더 맞갖은 이름은 없을것 같았다. 후날 음악사를 쓰는 사람이 있다면 이날을 스텔라이브 창세기의 한 대목으로 적어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짐짓 거창하게 생각해보았다. 물론 그런 사람이 정말로 나타날지는 지금도 알수 없는 일이다.
록음실은 좁았다. 방음벽 사이로 히터 소리가 웅웅거렸고 마이크앞에 선 성원들은 두꺼운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은채 머리수화기를 고쳐썼다. 창 하나 없는 그 방에서 노래가 겹겹이 쌓여가는 소리를 듣고있노라면 바깥의 찬 계절도 잊혀지곤 하였다. 나는 그 방의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목소리를 복도에 서서 몰래 엿듣는것을 좋아하였다.
《사장님, 여기 화음 한번 더 들어보겠습니까.》 하고 엔지니어가 물으면 나는 머리수화기를 넘겨받아 몇번이고 되돌려 들었다. 《조금만 더 낮게, 서로 밟지 않게.》 하고 내가 말하면 성원들은 두말없이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 되풀이가 며칠이고 이어졌다. 지루할만도 한데 아무도 먼저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록음이 다 끝난 날 여섯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완성본을 처음으로 함께 들었다. 누구는 머리수화기도 없이 고성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누구는 눈을 감고 제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에서 슬쩍 웃음을 지었다. 노래가 끝나자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누군가 먼저 박수를 쳤고 곧 다들 따라 박수를 쳤다.
2월 21일 저녁, 나는 사무실에 홀로 남아 발매된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 대화창에는 벌써 반가운 말들이 쏟아지고있었다. 나는 그날 늦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고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창밖은 이미 캄캄하였고 사무실안에는 노래소리만 가득하였다.
봄이 깊어가면서 발매일은 더 촘촘해졌다. 4월 한달 사이에만 두곡이 나왔는데 3일에는 《Hit On Shot》이, 21일에는 《Dear My Fairy》가 세상에 나왔다. 두 곡 모두 성원 몇이 짝을 지어 부른 유닛곡이였다. 열흘 남짓한 사이에 빛갈이 전혀 다른 두 곡을 내놓았으니 듣는 사람들도 정신이 없었을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그 조합을 누가 어떻게 나누었던지 두해 남짓 지난 지금은 다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두 곡의 빛갈이 사뭇 달랐다는것만은 뚜렷이 기억한다. 하나는 총쏘듯 경쾌하였고 다른 하나는 동화속 요정처럼 나긋하였다. 이런 세세한 기억이 흐려진것을 아쉬워해야 할지, 그만큼 그 시절 노래가 많았다는 증거로 여겨야 할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두 곡의 홍보용 사진을 나란히 놓고보면 그 대조가 더욱 뚜렷하였다. 한쪽은 조명을 밝게 터뜨려 총구가 번쩍이듯 찍었고 다른 한쪽은 안개필터를 넣어 숲속 요정 그림처럼 부드럽게 찍었다. 같은 회사, 같은 계절에 나온 사진인데도 완전히 다른 나라 것 같았다. 나는 그 사진들을 번갈아 보며 우리 회사가 벌써 이만큼 여러 빛갈을 가지게 되였구나 하고 새삼 놀랐다.
련습실에서 두 곡의 안무를 번갈아 맞추어보던 어느날, 한 성원이 《이 두곡 순서를 바꿔 련습하면 머리가 어지럽습니다.》하고 웃으며 하소연한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옆에서 함께 웃었으나 속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촘촘한 일정이 성원들에게 얼마나 고된것인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사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 두 갈래가 음악적으로 정확히 어떻게 다른것인지 처음에는 다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원들이 록음실을 나서며 짓는 표정만 보아도 그 노래가 자신에게 얼마나 맞는옷인지 금방 알수 있었다. 경영이란 결국 수자보다 그 표정을 읽는 일에 가깝다고 나는 이무렵 새삼 생각하였다. 미기는 내 이런 말을 듣고 《그건 경영이 아니라 그냥 정이 많은겁니다.》 하고 웃어넘기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지난해 가을의 일을 적어두지 않을수 없다. 우주30(2023)년 11월 27일, 나는 한 오락전문지 기자와 마주앉아 회사의 방향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그날은 늦가을치고는 유난히 볕이 좋아 인터뷰장소로 잡은 회의실 창으로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왔다. 그때는 그 인터뷰가 후날 이렇게 다시 떠올릴 자료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기자가 이 일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대답하였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말에는 《앞으로 빠른 페이스로 음악 콘텐츠로 다양한 시도를 할 예정》이라고 답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대답이 그대로 그해 봄과 여름을 예고한 셈이였다.
같은 자리에서 유니동지에 대해서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 친구》라 말하였고 칸나동지에 대해서는 《항상 밝은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는 친구》라 말하였다. 나는 이들이 오히려 내게 힘이 되여주는 친구들이라고 덧붙였다. 기술보다 요령가 더 중요하다는 말도 그날 하였다.
나는 우리를 통해 많은 애호가들이 행복을 얻을수 있는 그런 미래를 꿈꾸고있다는 말로 그날의 이야기를 맺었다. 기자는 그 말을 받아적으며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례의인지 진심인지 알수 없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어느 쪽이든 내가 한 말은 이미 내뱉어진 뒤였다.
그 인터뷰가 지면에 실린 뒤 성원들 몇이 나에게 그 기사를 링크로 보내며 놀려댔다. 《사장님, 저희가 힘이 되여주는 친구들이라면서요.》하는 식이였다. 나는 그저 웃으며 넘기였지만 그 말들이 결코 인사치레가 아니였다는것을 그 봄과 여름을 지나며 몸소 알게 되였다.
그 인터뷰로부터 반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다짐을 실제로 지키고있는 셈이 되였다. 한달이 멀다하고 새 노래가 나왔고 그때마다 나는 빠른속도라는 말을 스스로 되새기였다. 말이란 이렇게 뱉어놓으면 결국 자기 발등을 찍어가며 걷게 만드는 물건이다. 그해 봄여름의 발매일정표가 바로 그 증거였다.
4월의 끝, 30일에는 유니버스의 첫 유닛싱글 《Stars Align》이 나왔다. 히나동지, 마시로동지, 리제동지, 타비동지 넷이 데뷰한지 근 일년만에 처음으로 자신들만의 이름을 건 노래를 낸것이다. 이날은 유니버스라는 이름이 비로소 노래로 증명된 날이였다.
이 넷은 애초에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이지 않았다. 지구인도 있고 외계 고양이도 있고 흡혈귀도 있고 이세계인도 있었으니 한자리에 세워놓으면 그야말로 전 우주를 축소해놓은 모양새였다. 그런 넷이 한곡안에서 목소리를 맞추어야 하였으니 록음실안의 실랑이도 만만치 않았다.
리제동지는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 록음실에서도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타비동지는 그무렵 목상태가 온전치 않아 높은 음을 오래 끌지 못하였으므로 우리는 그의 대목을 몇번이고 나누어 록음하였다. 그럼에도 넷은 서로를 탓하지 않고 묵묵히 제 몫을 채워나갔다. 나는 그 모습이 유니버스라는 이름값을 하는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언니, 저 부분은 제가 낮춰 부를게요.》 하고 누군가 말하면 다른 누군가는 《그럼 나는 그 뒤를 받을게.》 하고 응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저 지켜보는것밖에 할 일이 없었다. 노래란 결국 만드는 사람보다 부르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그날 들었다.
《별들이 줄지어 선다》는 그 노래 제목을 두고 나는 짐짓 이것이 무슨 천체현상이라도 되는 양 성원들앞에서 거창하게 떠들었다. 《오늘은 력사에 남을 날이다, 몇백년만에 온다는 그 별의 정렬처럼 말이다.》 하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성원들은 질색을 하면서도 웃었다. 실없는 소리인줄 알면서도 그런 말 한마디가 그날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4월 30일 밤, 대화창은 오래간만에 유니버스 이야기로만 가득찼다. 나는 그 반응들을 하나하나 새겨읽으며 이 네 사람이 드디여 저마다의 자리를 찾았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물론 그 생각이 얼마나 섣부른것이였는지는 뒤에 가서야 알게 되였다.
6월 9일에는 조금 다른 성격의 곡이 나왔다. 유니버스가 부른 커버곡 《소리가 나는 쪽으로》였다. 자기 노래를 짓는 일과 남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일은 비슷한듯 하면서도 전혀 다른 일이였다.
어째서 하필 그 노래를 골랐던지는 지금 다시 물어도 나 스스로 명확히 대답하지 못한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 제목을 꺼냈고 다들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을뿐이다. 이런 사소한 결정의 사연들은 큰 사변의 그늘에 가려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 모양이다.
커버곡이란것이 새로 곡을 쓰는 일보다 손이 덜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세상에 나와 사랑받는 노래를 다시 부른다는것은 오히려 자기 목소리의 빛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일이였다. 숨을 곳이 없으니 더 조심스러웠다. 원곡을 아는 사람들의 귀는 무엇보다 날카로운 법이다.
록음 전날 히나동지가 나에게 《이 노래는 다들 원곡을 너무 잘 알아서 무섭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그럼 원곡을 이기려 하지 말고 네 목소리로 다시 들려주면 된다.》고 대답하였다. 그말이 정말 위로가 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 록음은 예상보다 수월하게 끝났다.
6월이 가고 장마가 지나갔다. 창밖으로 매미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즈음, 나는 다른 걱정에 마음이 쏠려있었다. 5월에 겨우 넷으로 데뷰를 마친 클리셰, 그들의 첫 노래를 준비할 때가 된것이다.
다섯이어야 할 자리에 넷만 서야 하였던 그 데뷰의 뒤숭숭함은 앞절에 이미 적었다. 시부키동지, 린동지, 나나동지, 리코동지는 그 자리에 서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나는 그들의 어깨가 유난히 굳어있었던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 넷에게 첫 노래를 안겨주는 일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급한 숙제였다.
그무렵도 나는 시부키동지에게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하는 실없는 롱담을 여전히 자주 하였다. 시부키동지는 그때마다 정색을 하다가도 결국은 웃어버리곤 하였다. 그런 시덥잖은 말 한마디가 굳어있던 록음실 공기를 풀어주는 데는 오히려 큰 노래 한곡보다 나를 때가 있었다.
8월 24일, 클리셰의 1st 싱글 《Our Tales》가 나왔다. 데뷰한지 겨우 석달만의 일이였다. 다른 기수들이 반년, 일년을 들여 첫 노래를 준비한것과 견주면 이례적으로 빠른 걸음이였다.
나는 이 넷에게만은 서두르고싶었다. 다섯에서 넷으로 줄어든 자리를 노래로나마 빨리 채워주고싶었던것이 솔직한 마음이였다. 회의탁자에 둘러앉아 발매일을 앞당기자고 우기였을 때 실무일군은 무리라며 난색을 표하였으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록음실에 들어선 네 사람은 다른 기수들보다 유난히 말이 없었다. 첫 소절을 부르다 음이 흔들리면 곧바로 《다시 할게요.》 하고 자청해서 되돌아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들이 이미 스스로를 다그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우리끼리라도 잘하면 되는것지요.》 하고 나나동지가 물었을 때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르다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너희 넷이 함께 부른 이 노래 자체가 이미 잘한 일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리코동지는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한참 말이 없었다. 시부키동지가 그런 리코동지의 등을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발매 당일 나는 사무실에 앉아 노래를 몇번이고 되돌려 들었다. 《Our Tales》라는 이름 그대로, 이 노래는 우리들의 이야기였다. 다섯이 아니여도 넷이서 완성한 이야기라는것이 그 제목 하나에 다 담겨있는듯하였다.
후날 누가 스텔라이브의 력사를 쓰게 된다면 이 대목에서 필시 《넷이서 다섯의 몫을 해낸 이야기》라는 식의 거창한 제목을 붙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상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그러나 웃고나니 어쩐지 코물이 핑 돌았다. 넷은 그 노래 하나로 스스로 다섯번째 몫까지 해낸 셈이였다.
따져보면 《Milky Way》가 나온 2월 21일부터 《Our Tales》가 나온 8월 24일까지 꼭 185일이 걸린 셈이다. 나는 이 수자를 굳이 세어보며 무슨 큰 전쟁의 일수라도 세듯 혼자 뿌듯해하였다. 실은 노래 여섯곡을 세는 일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무렵 나에게는 그것이 곧 하나의 전투사였다.
이렇게 2월부터 8월까지 반년 남짓 사이에 우리 회사에서는 전체곡 하나, 유닛곡 둘, 유닛싱글 하나, 커버곡 하나, 그리고 새 기수의 첫 싱글까지 도합 여섯번의 발매가 있었다. 세 기수, 열명 남짓한 성원들이 저마다 다른 빛갈의 노래를 세상에 내놓은 셈이다. 한 회사안에서 이렇게 많은 목소리가 한꺼번에 자라났다는것을 그때는 미처 실감하지 못하였다.
다섯에서 넷으로, 여섯에서 다시 열로 — 이 반년 사이 우리 회사를 두고 오가는 수자는 이렇게 자꾸 바뀌었다. 나는 가끔 그 수자들을 다 헤아리다가 스스로 헛갈려 웃곤 하였다. 줄어드는 수자도 있고 늘어나는 수자도 있었으나 그 안에서 노래만은 한번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나 자신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였다. 나는 늘 조종실 유리 너머에서 머리수화기를 끼고 손끝으로 재생 단추를 눌러줄뿐이였다. 그러나 그 유리 너머로 성원들의 노래가 완성되어가는것을 지켜보는 일이 나에게는 무엇보다 뿌듯한 일이였다.
처음에 나는 우리 회사가 하나의 통일된 빛갈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해 봄과 여름을 지나며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통일된 하나의 빛갈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빛갈들이 한 하늘 아래 모여있는것, 그것이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에 더 어울리는 그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그 몇달 동안 나는 밤늦도록 믹싱파일을 듣는 일이 잦아졌다. 곽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식은 커피를 마시며 머리수화기를 낀채 새벽을 맞은 날도 여러날이였다. 창밖이 부옇게 밝아올 때에야 나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곤 하였다. 그런 새벽마다 미기가 말없이 곽밥 하나를 책상우에 놓고 가곤 하였다.
봄에는 사무실 앞 벚나무가 꽃을 피웠다가 졌고 여름에는 그 자리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나는 그 나무가 잎을 피우고 그늘을 늘려가는 동안 우리 성원들의 노래도 함께 늘어가는것을 지켜보았다. 계절이 한바퀴를 채 돌기도 전에 노래는 어느새 여섯곡이 쌓여있었다. 창가의 그 화분도 어느틈엔가 여린 새잎 하나를 내밀고있었다.
그때는 이 노래들이 그저 한때의 발매목록으로 남으리라 생각하였다. 지나고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 반년의 발매들이 하나하나 벽돌처럼 쌓여 오늘의 스텔라이브라는 집을 이루었다는것을 나는 후날에야 깨달았다.
이 권의 이름을 《성장의 굴곡》이라 붙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굴곡이라 하면 흔히 아픈 대목만 떠올리기 쉬우나 나는 그 낱말안에 이런 신곡들 사이의 나날도 함께 담고싶었다. 다섯에서 넷으로 줄어든 아픔도, 여섯번의 발매로 다시 채워간 나날도 모두 같은 굴곡의 다른 마디일뿐이다.
가을이 오면 성원들은 저마다 또 다른 걸음을 내디딜 참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뒤에 적을 이야기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 반년 사이에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여섯번의 노래, 그것으로 이 절을 맺으려 한다.
이 회고록을 우주31(2024)년이라 적으면서 나는 문득 그해 우리 회사도 하나의 작은 우주였다는 생각을 한다. 저마다 다른 별들이 저마다의 궤도를 돌면서도 결국 하나의 하늘 아래 놓여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비유가 지나치게 거창하다는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 봄여름을 겪은 사람으로서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노래란것이 신기한 물건이여서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다 담지 못해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는 고스란히 가닿는다. 그해 봄과 여름, 우리 성원들이 부른 노래들이 지금도 누군가의 대화창에서, 누군가의 재생목록에서 조용히 흐르고있을것이라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마음이 놓인다. 그것이 그해 우리가 지나온 성장의 한 굽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