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 장
우주31(2024)년(2024년) 늦은 봄이 저물고 초여름이 들어설무렵, 사무실 창밖의 은행나무잎이 짙은 록색으로 물들어갔다. 창을 열어놓으면 어디선가 콤퓨터 팬 도는 소리와 뒤섞여 매미 울음이 이르게 들려왔다. 대화창 알림신호는 밤낮없이 사무실 한켠에서 조용히 깜빡였다.
나는 그해 봄 내내 마이크앞이 아니라 결재판앞에 앉아있는 날이 더 많았다. 새 식구 네 성원을 받아들이고 신곡을 하나씩 세상에 내보내는 사이, 정작 회사안에서는 저마다 자기 몫의 걸음을 걷는 딸들의 모습이 조용히 자라나고있었다.
자라난다는것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사변이 아니다. 그것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면서도, 어느 계절이 지나고 나면 문득 뒤돌아보아 몰라보게 커있는 그런 조용한 일이다. 나는 그해를 그렇게 딸들의 걸음을 하나하나 세어보며 지냈다.
성원들은 언제부터인가 나를 《엄마》라 부르고 서로를 《딸내미들》이라 불렀다. 나는 처음에 이 말을 한사코 부정하였다. 대표라는 자리와 어머니라는 자리는 엄연히 다른것이라고 대화창에 몇번이나 못을 박았다.
그러나 부정한다고 없어질 말이 아니였다. 밈이란 본디 부정할수록 더 단단히 굳어지는 법이다. 한번은 방송 중 시청자 하나가 《엄마 오늘도 딸내미들 관리하시네요》라 적었는데 나는 무심코 《내가 무슨 엄마냐》 하고 받아쳤다가 대화창이 온통 《엄마 발끈하였다》는 말로 도배되는 광경을 지켜보아야 하였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도 그 호칭을 완전히 밀어내지는 못하였다. 새벽 방송이 끝난 딸의 컨디션을 걱정하고 신인의 목소리가 갈라지는것을 듣고 마음을 졸이는 내 모습이 엄마 아닌 무엇으로 설명이 되겠는가. 그해 여름 나는 이 밈을 받아들이기로 조용히 마음을 정하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자면 딸들 하나하나의 걸음을 따로 따라가보지 않으면 안된다. 회사라는것이 크게 보면 하나의 몸뚱이지만, 그 몸을 이루는 살과 뼈는 결국 성원 하나하나의 나날이기때문이다. 나는 그해 노트 한권을 따로 마련해 딸들의 자라남을 적어두는 버릇을 들였다.
첫 딸들, 유니동지와 칸나동지의 이야기부터 하지 않을수 없다. 이 둘은 스텔라이브라는 이름을 걸고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성원들이였다. 그해 5월 26일, 유니동지는 〈악어의 놀이터 2〉 음악회 무대에 다시 섰다.
1년 전 첫 단독 무대에서 유니동지는 관객의 함성이 조금만 커져도 마이크를 쥔 손이 떨리던, 그런 성원이였다. 조선어도 아직 서툴러 노래 사이 멘트 한마디를 하는데도 몇번이나 대본을 고쳐써야만 하였다. 나는 그때 무대 뒤에서 유니동지의 손을 잡아주며 《괜찮다, 무르는것 아니야, 잘하고있어》 하고 말해준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런데 리해의 무대는 완전히 달랐다. 유니동지는 관객을 향해 두팔을 벌리고 노래 사이사이 농담을 던지며 함성을 스스로 이끌어냈다. 서툰 조선어로 《여러분, 나 이제 안 무서워!》 하고 외치는데 그 한마디에 객석이 무너질듯 웃고 박수쳤다.
공연이 끝난 뒤 대기실에서 나는 유니동지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았어?》 유니동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였다. 《조금 무서웠어요. 그런데 이제 나, 해적판 아니예요. 정식판이에요.》
나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속으로는 뭉클하였다. 조선어 조사 하나 틀리는것도 밈으로 만들어 웃어넘기던 성원이 어느새 무대우에서 관객을 웃기는 자리에 서있었다. 언어란 살아가며 저절로 느는 것이지 가르쳐서 하루아침에 느는것이 아니다. 유니동지는 그 사이의 시간을 온몸으로 채운것이다.
유니동지의 곁에는 늘 러시안 블루 다루가 있었다. 성격이 사납기로 소문난 그 고양이도 이무렵에는 방송 카메라앞에 곧잘 나타나 앉아있곤 하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저 고양이도 자랐구나》 하고 실없는 농담을 하였는데, 유니동지는 정색하며 《다루는 원래 착해요, 사람들이 오해하는것이예요》라 항변하였다.
칸나동지는 그해 여름 유니동지의 무대를 객석 맨 앞줄에서 지켜보았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칸나동지가 손뼉을 치다말고 조용히 눈시울을 붉히는것을 보았다. 《언니, 왜 울어》 하고 물으니 칸나동지는 《그냥요, 유니가 저렇게 컸나 싶어서》 하며 웃었다.
나는 그때 두 딸의 얼굴을 번갈아 보면서 처음 이 회사를 시작하던 날을 떠올렸다. 마이크 하나앞에 두고 떨리는 목소리로 첫 인사를 하던 그날로부터 벌써 여러 성상이 지나 있었다. 사람은 저도 모르는 사이 이렇게 자라는것이다.
칸나동지 자신은 그해 여름에도 늘 하던대로 흥을 밝게 유지하며 방송을 이끌었다. 노래도 오락도 저챗도 무엇 하나 빠지는것 없이 해내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딸만큼은 걱정할 일이 없으리라 여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안이한 마음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2기 유니버스 성원들의 자라남을 말하자면 그보다 앞선 어느 날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우주30(2023)년(2023년) 늦여름, 타비동지가 병원에서 성대결절 진단을 받아온 날이였다. 의사는 방송 중 목에 들어가는 힘이 평상시의 아홉배에 달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 진단서를 받아들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수술까지 갈 정도는 아니라 하나 무리하면 위험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타비동지에게 당분간 방송을 쉬라 권하였으나 정작 본인은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저 목소리로 방송하는게 좋아서 하는건데 쉬면 뭐해요.》 타비동지는 그렇게 말하며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 고집을 꺾을수 없어 대신 저음으로 방송하는 방법과 복식 발성 련습을 함께 찾아보자고 하였다.
그날 이후로 타비동지는 매일 아침 복식 호흡 련습을 거르지 않았다고 한다. 방송 어조를 낮추고 필요할 때는 TTS도 마다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여전히 잼민이 같은 말투에 드르렁 코고는 소리로 시청자를 웃기는 성원이였지만 그 뒤에는 이런 남모를 애씀이 있었다.
우주31(2024)년 이무렵 타비동지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안정을 찾아가고있었다. 나는 성원들 사이에서 《브레인》이라 불리는 타비동지를 볼 때마다, 상식이 풍부하다는 그 별명을 정작 본인은 극구 부인하면서도 은근히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히나동지도 그 사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데뷰 초에는 대화창에 갑자기 큰 소리가 오가기만 해도 화면 밖으로 도망칠듯 놀라던 성원이였다. 스텔라이브의 《치유 담당》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정작 본인이 제일 겁이 많았던것이다.
그러던 히나동지가 리해 여름 합방 중에는 다른 성원이 갑자기 지르는 비명에도 태연히 노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 작은 변화 하나에도 마음이 놓였다. 겁이 많은 사람이 겁을 이기는 법을 배우는데는 겁이 없는 사람이 강해지는것보다 몇곱절의 시간이 든다.
마시로동지는 반대로 타고난 장난기와 애교를 조금씩 다스리는 법을 익혀가고있었다. 속삭이듯 색기있는 목소리로 인사를 시작하였다가도 이내 짜랑짜랑 소리를 지르는 통에 초기에는 방송 흐름이 종종 끊기곤 하였다. 그러나 리해에는 그 흥을 스스로 조절해 방송 전체의 완급을 조율할줄 알게 되었다.
리제동지는 낯가림이 류달리 심한 성원이였다. 데뷰 첫해에는 합방 자리에서 말 한마디를 붙이는데도 한참을 머뭇거렸다고 다른 성원들이 전한다. 그러던 리제동지가 이무렵에는 스텔라이브를 두고 《가족 같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입에 올렸다.
나는 그 말을 전해듣고 잠시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낯가리던 딸이 가족이라는 말을 스스로 꺼낸다는것, 그것이야말로 회사를 하는 사람이 바랄수 있는 가장 큰 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청초 담당》을 자처하면서 매운 롱담도 서슴지 않는 그 종잡을수 없는 성미조차, 이제 와 보면 낯을 다 푼 사람만이 부릴수 있는 여유였다.
2기 유니버스 넷은 그렇게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자라났지만 한가지는 같았다. 처음 데뷰하던 해에는 서로 조심스레 존대를 섞어 쓰던 사이가 이무렵에는 허물없이 서로를 놀리는 사이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한 유닛이 진짜 유닛이 되는데는 노래를 몇곡 맞추는것보다 서로를 놀릴수 있게 되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것을 새삼 깨달았다.
새로 온 클리셰 네 성원의 자라남은 또 다른 결이였다. 시부키동지, 린동지, 나나동지, 리코동지는 5월에 데뷰한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낯선 자리에 던져진 셈이였다. 애초 다섯이어야 할 자리가 넷으로 줄어든 사연은 지금도 나 자신조차 여기서 다 밝히지 못한다.
데뷰 예정 인원이 다섯에서 넷으로 바뀐 사정을 두고 성원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말이 오갔지만, 나는 그 자리에 있지 못한 다섯째 성원의 몫까지 넷이서 짊어지고 갈 필요는 없다고 못박았다. 넷이면 넷의 걸음으로 가면 되는것이다.
시부키동지는 신사에서 오래 산 여우신이라는 설정 그대로 어딘가 아이 같은 말투를 지녔으면서도 대화창의 분위기를 읽는 눈만은 신중하고 배려깊었다. 나는 그 낙차가 재미있어 방송 중 종종 《1000살입니다, 할머니에요》 하고 놀렸다. 그러면 시부키동지는 정색하며 《저 할머니 아니예요, 여우신이에요》 하고 받아쳤다.
노래는 입사한 뒤에야 처음 제대로 배웠다는 시부키동지가 그해 여름 련습실에서 밤늦도록 음정을 잡아가는 모습을 나는 여러번 지나쳐 보았다. 처음에는 음이 자꾸 흔들리더니 몇주가 지나자 제법 안정된 소리가 났다. 사람이 자라는 소리를 실제로 들을수 있다면 아마 그런 소리일것이다.
린동지는 클리셰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스텔라이브 성원 가운데 유일하게 외자 이름을 쓰는데다, 경상도 사투리에 영어 발음이 얼기설기 섞인 억양으로 말할 때마다 대화창이 웃음으로 뒤집혔다. 오락을 할 때는 앞뒤 재지 않고 들이받는 성미라 성원들이 《박치기 공룡》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데뷰 초 린동지는 좁은 통로만 나오면 방향을 잃고 헤매기 일쑤였고 운전하는 오락에서는 벽만 보면 그대로 들이박곤 하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였다. 그러나 몇달이 지나자 린동지의 조준도 판단도 눈에 띄게 나아졌고, 나는 사람이 못하던 일을 조금씩 해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이렇게 흐뭇한 일인줄 새삼 깨달았다.
나나동지는 클리셰 중 신장이 가장 작은 성원이였다. 전에 비밀요원 노릇을 하다가 실수로 정보실을 뒤집어 신분이 드러나는 바람에 스텔라이브로 숨어들었다는 설정을 가진 나나동지는, 정작 데뷰 전 수습 시절에는 내 앞에서 몹시 긴장하여 말끝을 흐리곤 하였다.
조선어, 일본어, 영어 세나라 말을 두루 구사하고 경상도 사투리까지 능한 나나동지가 그 재주를 자유로이 펼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여름이 지날무렵에는 오후 정규방송 시간이면 어느새 세 나라 말을 오가며 시청자들과 스스럼없이 농을 주고받고 있었다. 긴장하던 신입이 언제 그랬냐는듯 능청스러워진 모습에 나는 몇번이나 놀랐다.
리코동지는 넷 중에서도 류달리 밝은 성격을 타고났다. 이세계에서 마왕을 무찌른 용사라는 설정에 걸맞게 흥이 높고 청량한 음색을 지녔으나, 오락만 하면 웬일인지 용암에 자꾸 빠져 성원들 사이에서 《양배추용사》라는 놀림섞인 별명을 얻었다.
나는 리코동지에게 한번 《용암이 그렇게 좋으냐》 물은 적이 있는데, 리코동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저도 모르게 발이 그리로 가요》라 천연덕스레 답하여 사무실 사람들을 다 웃긴 일이 있다. 실수를 부끄러워하기보다 웃음거리로 삼을줄 아는 그 배포야말로, 자라남이 꼭 능숙해지는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넷은 서로 부족한 자리를 채워주며 자라났다. 린동지가 나나동지에게 오락을 가르쳐주고, 시부키동지가 린동지의 서투른 조준을 도와주는 모습을 나는 여러번 보았다. 클리셰라는 이름 그대로, 진부한 클리셰조차 함께 겪으면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법이다.
넷이 나란히 앉아 서로의 방송 실수를 흉내내며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이들이 어느새 한 유닛으로 뭉쳐가고있음을 느꼈다. 처음 데뷰방송에서 서로 눈치만 보던 넷이 몇달 사이 한통속이 되어 나를 놀리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것도 어찌 보면 자라남의 한 증거일것이다.
1기와 2기와 3기, 이렇게 세 세대가 한 회사안에 나란히 있는 모습을 지켜볼 때면 나는 종종 마치 한 왕조의 세대가 갈마드는 큰 사변을 지켜보는 사관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하였다. 실은 방송국 대화창의 후원 알림신호이나 세고 있으면서 짐짓 이런 무게를 잡아보는 버릇이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노릇이지만 그때는 자못 진지하였다.
나는 이무렵 지난해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하였던 말을 종종 떠올렸다. 유니동지를 두고 나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밝게 웃으며 포기하지 않는 친구》라 말한 적이 있고, 칸나동지를 두고는 《항상 밝은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는 친구》라 말한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 말은 조금도 고쳐 쓸 대목이 없다.
그때 나는 또 이런 말도 하였다. 《오히려 내게 힘이 돼주는 친구들》이라고.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 도리어 성원들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말이 어떤이에게는 엄살처럼 들릴지 모르나, 나는 그것이 조금도 과장이 아니였음을 리해 여름 새삼 깨달았다.
같은 인터뷰에서 나는 앞으로 빠른속도로 음악 내용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겠다고, 우리가 잘할수 있고 좋아하는것을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해 여름 성원들이 저마다 무대우에서, 련습실에서, 오락 화면앞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 말이 헛말이 아니였음을 눈으로 확인하고있었다.
사무실의 하루는 겉보기엔 평범하였다. 미기는 여전히 내 오른팔 노릇을 하며 정산서와 일정표를 양손에 들고 뛰어다녔고, 나는 곽밥을 반쯤 먹다 말고 성원들의 방송 시청자 수 그라프를 들여다보는 날이 많았다. 콤퓨터 화면 여러개를 켜두고 방송 하나하나를 번갈아 보는 밤도 적지 않았다.
어느 늦은 밤 미기가 야근하는 나를 보고 《사장님도 좀 자라야죠》라 농을 던진 일이 있다. 나는 웃으며 《나는 이미 다 컸다》고 받아쳤지만, 속으로는 이 회사를 꾸리는 사람 역시 딸들과 함께 자라고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평범한 하루하루속에서 딸들은 분명히 자라고있었다. 자란다는것은 화려한 훈장을 다는 일이 아니다. 겁 많던 성원이 비명속에서도 노래를 잇는 일, 목이 아픈 성원이 아침마다 배로 숨을 쉬는 련습을 거르지 않는 일, 낯가리던 성원이 가족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는 일, 갓 데뷰한 성원이 밤늦도록 음정을 잡는 일, 그런 사소한 일들의 축적이다.
장마가 지나가고 매미소리가 잦아들무렵, 나는 성원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놓고 그 옆에 짤막한 메모를 남기는 버릇이 생기였다. 유니는 무대에서 자기 몫을 다한다, 칸나는 언제나처럼 밝다, 히나는 겁을 이겨간다, 마시로는 완급을 안다, 리제는 가족을 안다, 타비는 애쓴다, 시부키는 음을 잡는다, 린은 부딪히며 나아간다, 나나는 말문이 트인다, 리코는 웃음으로 넘긴다, 이런 식이였다.
그 메모를 다시 펼쳐볼 때마다 나는 열 줄 남짓한 그 짧은 문장들이 실은 열명 성원 저마다의 한해치 력사임을 새삼 느꼈다. 력사란 반드시 큰 사변으로만 쓰여지는것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문장들이 쌓여 이루어지는것이라는 생각도 그때 들었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들며 나는 성원들과 함께 저녁 합방을 자주 열었다. 후챗 시간이면 딸들은 저마다 그날 있었던 자잘한 일들을 늘어놓았다. 어느날은 리제동지가 오락에서 자꾸 전략을 잘못 짜서 다른 성원들에게 놀림을 받았고, 어느날은 나나동지가 방송 도중 이름을 잘못 불러 대화창이 한바탕 뒤집혔다.
그런 자리에서 나는 되도록 말을 아끼고 듣는 편에 섰다. 엄마 노릇이란 대개 많이 말하는것이 아니라 많이 들어주는것임을 나는 그해 가을 새삼 배웠다. 딸들은 내가 굳이 캐묻지 않아도 저희들끼리 이미 서로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는 그무렵 유독 한 딸의 웃음을 조금 더 유심히 보았어야 하였다. 칸나동지는 그해 여름에도 가을에도 여전히 밝았고 여전히 애교가 많았으며 여전히 흥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렸다. 나는 그 밝음을 늘 있던 그대로 받아들였을뿐, 그 이면을 헤아려볼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사람은 밝게 웃는 얼굴 뒤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늘 밝은 사람이라면 주위 사람들은 그 밝음을 당연한것으로 여기고 지나치기 쉽다. 나 역시 그러하였다.
가을바람이 완연해지고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어갈 즈음, 나는 여느 때처럼 딸들의 방송을 하나씩 챙겨보며 사무실 창가에 앉아있었다. 성원 하나하나가 제자리에서 자라나는것을 지켜보는 일은 더없이 흐뭇한 일이였고, 나는 그 가을이 이대로 무사히 흘러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무렵 나는 딸들이 저마다의속도로 자라나는것을 보며 이런 생각도 하였다. 사람이란 한꺼번에 크는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계절에, 저마다 다른속도로 자라는 법이라고. 어떤 딸은 봄에 자라고 어떤 딸은 여름에 자라며, 또 어떤 딸은 겉으로는 늘 같은 얼굴을 하고있으면서 속으로만 조용히 자라기도 하는것이라고.
지금 이 글을 쓰며 그해 가을을 되짚어보면, 나는 그때 몰랐던 것이 너무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라나는 동안, 그 자라남의 그늘에서 홀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던 딸이 있었다는것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하였다.
그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다시 하지 않을수 없다. 다섯이 넷이 되고 신곡이 하나둘 세상에 나오고 딸들이 저마다 자라나던 이 조용한 나날들 뒤에, 회사의 력사에서 가장 슬픈 장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나는 아직 짐작조차 못하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