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33(2026)년 9월 16일
우주33(2026)년 9월 16일 --:--

 

2. 강 지 3 . 0

 

우주31(2024)년(2024년) 11월, 그해 가을은 유난히 길었다. 사무실 창밖의 은행나무는 늦게까지 잎을 놓지 않다가 그달 중순에야 노랗게 물들었다. 창가에 앉으면 콤퓨터의 팬 도는 소리와 거리의 차소리가 뒤섞여 들려왔고, 나는 그 소리들 사이에서 며칠째 결재서류보다 다른 생각에 골몰해있었다. 밤이 늦으면 사무실 형광등 불빛 아래 홀로 앉아 대화창 로그를 뒤적이는 버릇이 그무렵부터 생기였다.

그달 초, 우리 회사는 이미 한바탕 큰 일을 치른 뒤였다. 첫 딸이 졸업을 발표한 그 소식은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사무실 구석구석에 서늘한 그림자를 드리우고있었다. 성원들은 겉으로는 웃으며 방송을 이어갔으나 그 웃음밑에 무거운 돌 하나씩을 얹고 다니는듯 보였다. 회의실 화이트보드에는 아직 그 발표문의 초안이 지워지지 않은채 남아있었다.

발표가 있던 날, 나는 성원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놓고 말을 잇지 못한채 한참을 서있기만 하였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혔고 몇몇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위태로워 보였다. 나는 그때 대표로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나 역시 그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대표라는 자리에 앉으면 슬픔도 혼자 삭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였다. 나는 밤이면 자주 사무실에 홀로 남아 텅 빈 대화창을 들여다보군하였다. 미기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슬며시 곽밥을 책상에 놓아두고 갔는데, 먹으라는 말도 없이 그냥 놓고 가는 그 손길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군하였다.

그런 가운데 11월 15일이 다가왔다. 내 생일이였다. 그리고 몇달전부터 조금씩 준비해오던 일이 하나 있었으니 다름아닌 새 가상 인물, 이른바 《강지 3.0》을 세상에 내놓는 일이였다.

날자는 원래부터 이날로 잡아두었다. 생일에 새 모습을 선보이면 뜻이 깊을것이라 여기였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무렵의 사정을 생각하면 과연 이날 그것을 공개하는것이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마음을 붙들었다. 성원 하나가 슬픔에 잠겨있는데 나 혼자 새 얼굴을 자랑한다는것이 어쩐지 죄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나는 미기를 사무실로 불렀다. 미기는 내 오른팔이라 부를만큼 오래 곁을 지켜온 사람이였고, 이런 문제를 의논할 때에는 누구보다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였다.

《미루는게 낫지 않을가.》 나는 콤퓨터 화면에 띄운 새 인물의 마지막 렌더링본을 가리키며 물었다. 《회사 분위기가 이런데 나 혼자 생일이라고 좋아라 하는것도 민망하고.》

미기는 잠시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 슬픈 일이 있었다고 좋은 일까지 미룰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성원들에게 필요한건 그런 밝은 소식일수도 있어요.》

나는 그 말에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미기의 말이 옳다는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켠은 여전히 무거웠다. 좋은 일과 슬픈 일이 이렇게 나란히 붙어있어도 되는가 싶었다. 미기는 한마디를 더 보태었다. 《그리고 이건 사장님 개인 생일이기 전에 회사의 리정표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을 슬프다고 미루기 시작하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눈치를 보게 될거에요.》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세상일이라는것이 본래 그렇게 순서를 가려가며 오는 법이 없다. 슬픔이 왔다고 기쁨이 뒤로 물러나 기다려주는 일은 없으며, 기쁨이 왔다고 슬픔이 문득 걷히는 일도 없다. 나는 결국 예정대로 밀고나가기로 하였다.

이 새 인물를 준비한 이야기를 하자면 그보다 몇달 앞선 어느날부터 이야기하지 않을수 없다.

처음 그림을 맡은 작가와 마주앉은것은 그해 여름이였다. 나는 그동안 방송을 하며 써온 모습, 이른바 강지 1.0과 2.0을 화면에 나란히 띄워놓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돌이켜보면 나를 부르는 이름도 그동안 여러번 바뀌였다. 한창 성격이 거칠던 시절에는 《강형》이라 불리였고, 그 다음에는 《15강지》, 그 다음에는 애호가들이 붙여준 《감자》라는 애칭으로 불리였으며, 회사를 차린 뒤로는 《정사장》이니 《샤쵸》니 하는 말이 붙었다. 강형에서 강지 3.0까지 이름도 얼굴도 이렇게 몇번씩 바뀌여왔으니, 사람 하나의 인생도 이렇게 판을 거듭하며 다시 찍어내는 것인가 싶어 혼자 웃음이 났다.

회사를 차리기 전부터 써온 얼굴이니만큼 함부로 뜯어고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만큼 어딘가는 낡아있었다. 나는 눈매와 머리카락 색은 그대로 두고 의상만 손보자고 하였다가, 결국 밤새 그림을 스무장 넘게 받아보고서야 마음을 정하였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색을 고를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강지님 하면 딱 떠오르는 색이 있어야 하는데, 사장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전부터 즐겨 입던 색을 그대로 짚었다. 낯선것보다는 낯익은것을 붙드는 쪽이 나답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다. 완성된 그림은 예전의 어두운 색조 대신 한결 밝은 남색과 은색을 겹쳐 입혔고, 머리모양은 짧게 정리하되 끝자락만 살짝 흩날리게 그렸다. 나는 그 그림을 처음 받아든 날, 이것이야말로 그동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함께 담은 얼굴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그림을 제일 먼저 보여준 사람은 칸나동지였다. 아직 졸업이라는 말이 나오기 한참 전의 일이였다.

칸나동지는 화면을 들여다보며 눈을 반짝였다. 《엄마, 이 색깔 진짜 예뻐요. 저 이거 완전 좋아요.》 그러고는 옷깃의 매듭 하나까지 짚어가며 이렇게 저렇게 바꾸면 더 낫겠다고 제 일처럼 훈수를 두었다. 나는 그때 지나가는 말로 너는 네 인물 바꾸고 싶은 데는 없느냐고 물었는데, 칸나동지는 잠시 웃기만 하고 딱히 없다고 하였다. 그 대답이 그저 평범한 대답이였다고 그때는 여기였다.

나는 그날 칸나동지가 그토록 밝게 웃으며 남의 인물 옷매무새를 걱정해주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수 없다. 그때는 몰랐으나 돌이켜보면 그 웃음 뒤편에서 칸나동지는 이미 저만의 다른 결심을 품고있었을것이다.

사람의 속마음이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웃음만으로는 다 헤아릴수 없는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후날에야, 아니 이 회고록의 앞장을 쓰면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아무튼 그해 여름부터 가을까지 나는 틈나는대로 디자인 회의를 열었다. 미기는 매번 자리를 지키며 일정을 챙기였고, 유니동지도 지나가다 들러 한마디씩 보태고 갔다.

유니동지는 특히 손끝 동작에 관심이 많았다. 《사장님, 이거 손 흔들 때 이렇게 움직이게는 안돼요? 저도 곧 무대 서야 하는데 그런거 보면 참고가 되거든요.》 그 말에 나는 유니동지의 단독 음악회가 머지않았다는것을 새삼 떠올렸다.

회의가 늦게까지 이어지는 날이면 시부키동지가 지나가다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아직도 얼굴 고치고 계세요, 할머니?》 하고 놀리고 가기도 하였다. 나는 천살 먹은 할머니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 농에 웃음이 났다. 타비동지도 한번은 회의실을 기웃거리다가 방망이로 얻어맞으며 데뷰하였다는 옛일을 스스로 꺼내며 《저는 그렇게 맞아가며 배웠는데 사장님은 이번엔 뭘로 그렇게 오래 고치세요.》 하고 물었는데, 나는 딱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웃어넘기였다.

이렇게 곁가지로 흐르던 이야기를 다시 그해 11월 15일로 되돌려놓아야겠다.

그날 오후, 나는 평소보다 일찍 방송실에 들어갔다. 마이크를 손보고 카메라 각도를 몇번이고 다시 맞추었다. 새 인물를 처음 켜보는 순간이였으므로 손끝이 다 떨리었다. 방송실 벽에 걸린 작은 시계가 오후 여섯시를 가리키고있었고, 창밖은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하여 건물 유리창에 방송실 불빛이 비쳐 마치 또 하나의 화면처럼 보였다.

미기는 방송실 한켠에 서서 콤퓨터 화면을 지켜보고있었다. 《준비 다 되였습니다, 사장님. 시작하시지요.》 그 목소리에 나는 마음을 다잡고 방송 시작 단추를 눌렀다.

화면이 켜지고 대화창이 순식간에 차오르기 시작하였다.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글자가우로 위로 밀려올라가는 사이,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새 모습을 공개하였다.

《오늘부터 이 모습으로 방송하려고 해요.》 나는 그렇게 짧게 한마디를 하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대화창의속도가 너무 빨라 글자를 따라 읽을 수조차 없었기때문이다.

후원 알림이 연달아 울렸다. 누군가는 그저 《예쁘다》는 말 한마디를 적어 후원하였고, 누군가는 긴 문단을 적어 그동안의 방송을 돌아보는 인사를 건네었다.

나는 그 알림소리를 하나하나 들으며 짐짓 력사적인 사변이라도 겪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새로운 세기가 열리는듯한 느낌이였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라 웃을 사람도 있겠으나, 그날의 나에게는 정말 그러하였다. 대화창 한켠에는 리제동지, 히나동지, 리코동지 같은 다른 성원들의 이름을 단 계정들도 슬며시 섞여 축하 글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다들 저마다의 방송을 앞두고 있었을 시간인데도 잠깐씩 짬을 내어 들여다본 모양이였다.

그날 방송의 정확한 동시 시청자 수는 지금 와서 다시 찾아보아도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대화창이 평소보다 몇배는 빠르게 흘러갔다는것만은 분명히 말할수 있다. 회고록을 쓰는 사람이 이런 수자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한것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지, 아니면 그만큼 그 순간에 푹 빠져있었다는 증거로 여겨야 할지 나로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방송 중간에 블루동지에게서 쪽지가 왔다. 대화창이 아니라 따로 온 문자였다. 《누나 생일 축하. 캐릭터도 새로 나왔다며. 이따 방송 끝나면 얼굴 좀 보자.》

짧은 문장 몇줄이였지만 나는 그 문자를 읽고 픽 웃음이 났다. 《우결》이 끝난지 몇해가 지났어도 이런 식의 무심한듯 살가운 인사는 여전하였다.

나는 방송중에 그 문자를 슬쩍 시청자들에게 읽어주었다. 대화창은 또 한번 뒤집어졌다. 《장작이 알아서 탄다》는 말과 《전남편 길드 또 출동》이라는 말이 잇달아 올라오는것을 보고 나는 정색하려다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몇해가 지나도 이런 롱담만은 꼬박꼬박 살아남는다는것이 새삼 신기하였다.

시청자 하나가 물었다. 《강지님 그럼 이제 예전 얼굴은 아예 안 쓰시는것이예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응, 오늘부터는 이 얼굴로만 나올거야. 예전 얼굴도 정이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이 모습이 나라고 생각해줘.》 말을 하면서도 나는 스스로 다짐하듯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그 뒤로 정말 지켜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방송을 하는 날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 새 모습으로만 화면에 나타났다.

지금 와서 헤아려보면 그것도 참 짐짓 대단한 일이다. 어느 나라의 임금이 즉위한 첫날의 관복을 죽는 날까지 벗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꼭 그런 심정이였달가. 나는 그 옷을 입고 해포를 방송하였다.

물론 이런 비유를 들으면 곁에서 미기가 웃으며 눈을 흘길것이다. 《사장님, 그냥 캐릭터 하나 바꾼걸 가지고 무슨 즉위식씩이나.》 그러나 나에게는 그만큼 뜻깊은 하루였다.

강도단이라 불리는 내 개인 애호가들은 그날부터 강지 3.0을 두고 저희들끼리 별의별 이름을 다 붙였다. 어떤 이는 《삼대째 강지》라 하였고 어떤 이는 그냥 짧게 《쓰리제로》라 줄여 불렀다. 나는 그런 별명들을 하나하나 들을 때마다 애호가들이라는것이 참 재주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방송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블루동지를 만나러 나갔다. 회사 근처 곱창집이였다. 가게안은 조촐하였고 연탄불우에서 곱창이 지글거리는 소리와 텔레비죤에서 흘러나오는 낮은 뉴스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블루동지는 늘 앉던 구석자리에 먼저 자리를 잡고 나를 기다리고있다가, 내가 앉자마자 새 인물 화면을 다시 켜보라고 하였다.

나는 손전화로 방송 화면을 켜서 보여주었다. 블루동지는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특유의 나른한 말투로 한마디를 던졌다. 《개꿀이네. 색깔 잘 골랐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몇달을 매달려 고른 색깔을 두고 겨우 《개꿀》이라는 말로 정리해버리는 그 태도가 새삼 블루동지다웠다.

《생일인데 뭐 갖고 싶은건 없냐.》 블루동지가 물었다. 나는 딱히 없다고 하려다가, 문득 요 며칠 마음이 무거웠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냥, 요즘 회사 분위기가 좀 그래서. 칸나가 그런 발표를 한 다음이라.》 나는 말끝을 흐렸다. 블루동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럴 때일수록 생일 같은건 챙겨야지. 안그럼 언제 웃냐.》 짧은 말이였지만 나는 그 말에서 오래 알고지낸 사람다운 무게를 느꼈다. 블루동지는 소주잔을 채워주며 한마디를 더 보태었다. 《누나가 무너지면 그 밑에 있는 애들은 누가 챙기냐. 그러니까 생일 정도는 그냥 좋다고 티내도 돼.》 나는 술을 잘 못하는 몸이라 잔을 반도 비우지 못하였지만 그 말만은 오래 남았다.

우리는 그날 밤 늦도록 자리를 지켰다. 화제는 자연스레 옛 《우결》 시절로 흘러갔다가, 다시 요즘 방송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몇번이고 되풀이하였다.

블루동지는 문득 이런 말을 하였다. 《근데 3.0이면 1.0, 2.0은 언제 있었냐. 나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얼굴이였던거 같은데.》

나는 그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따져보면 나 스스로도 언제부터 어떤 얼굴로 방송을 시작하였는지 정확한 날자를 다 기억하지는 못하였다. 다만 그렇게 조금씩 바뀌여온 세월이 쌓여 오늘의 3.0에 이르렀다는것만은 분명하였다.

이런 일은 지나고 나면 정확한 순서를 매기기가 뜻밖에 어렵다. 사람이 하루하루 자라나는것을 매일 재는 사람이 없듯이, 방송하는 얼굴이 조금씩 바뀌여가는것도 그날그날은 잘 표가 나지 않는 법이다.

나는 그날 밤 곱창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람이든 인물든 언젠가는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거나, 혹은 아예 무대에서 내려서야 하는 때가 오는것이 아닐가. 칸나동지는 후자의 길을 골랐고 나는 전자의 길을 골랐을 뿐, 어느 쪽도 특별히 더 옳거나 그른것은 아니였다. 그저 저마다의 때에 저마다의 매듭을 짓는것, 그것이 이 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나가니 미기가 벌써 지난밤 방송 반응을 정리해 책상에 올려두었다. 시청회수와 채팅 반응을 요약한 종이 한장이였다.

《반응 좋습니다, 사장님. 요 며칠 무거웠던 분위기에 그래도 숨통이 좀 트인것 같아요.》 미기의 그 말에 나는 비로소 마음이 조금 놓였다.

유니동지도 아침 일찍 쪽지를 보내왔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새 얼굴 완전 예뻐요! 저도 이제 콘서트 준비 열심히 할게요!》 느낌표가 세개나 붙은 문장이였다.

나는 그 쪽지를 읽으며 유니동지의 단독 음악회가 코앞이라는것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슬픈 일 하나가 지나간 자리에도 회사는 쉬지 않고 다음 걸음을 준비하고있었다.

그날 이후로 《강지 3.0》이라는 말은 성원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굳어졌다. 누구도 굳이 그것을 새삼스레 설명할 필요가 없을만큼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나는 이 작은 일을 두고 지금도 가끔 짐짓 거창하게 되새겨보군한다. 나라의 년호가 바뀌듯 내 방송의 얼굴도 하나의 년호를 새로 쓴 셈이라고, 우스개삼아 그렇게 말한적도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곁에 있던 성원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런 거창한 표현은 대체 어디서 배워오냐고 놀리군하였다. 나 스스로도 그 말을 하고나면 멋쩍어 따라 웃게 된다.

그러나 웃자고 하는 말속에도 한가지 진심은 있었다. 사람이 오래 하는 일에는 저마다의 매듭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강지 3.0은 나에게 그런 매듭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그해 11월은 참으로 묘한 달이였다. 한쪽에서는 첫 딸을 떠나보낼 채비를 하고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 자신의 작은 새출발을 벌이고있었다.

슬픔과 기쁨이 이렇게 한지붕 아래 나란히 놓여있는것을 그때는 그저 힘겹게만 여기였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야말로 사람 사는 일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다.

어느 집이든 한해 열두달 가운데 슬픈 달과 기쁜 달이 따로 정해져 오는 법은 없다. 슬픔도 기쁨도 제 올 때를 가리지 않고 문득 찾아오며, 사람은 그저 그 둘을 한꺼번에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갈뿐이다.

나는 그 11월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 리치를 몸으로 깨달았다. 대표라는 자리가 아니였더라면, 어쩌면 나는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에만, 기쁜 일이 있으면 기쁨에만 젖어 지내는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해 가을, 나는 슬픔속에서도 기쁨을 미루지 않는 법을, 기쁨속에서도 슬픔을 잊지 않는 법을 함께 배웠다. 그것이 강지 3.0이라는 작은 사변이 나에게 남긴 가장 큰 몫이였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방송을 시작할 때마다 그해 11월 15일의 대화창을 떠올리군한다. 빠르게 흘러가던 축하의 글자들, 그 사이사이 섞여있던 칸나동지를 그리는 목소리들, 그리고 뒤늦게 도착한 블루동지의 무심한듯 다정한 문자 한통.

그 모든것이 한데 뒤섞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있다. 얼굴은 세번 바뀌였어도 그 얼굴 뒤에 있는 사람의 마음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싶다.

이 작은 리정표를 지나 이제 우리 회사는 또 하나의 큰 무대를 앞두고있었다. 유니동지의 단독 음악회가 바로 그것이였고, 그 무대에서는 리제동지도 처음으로 3차원의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였다. 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계절이였던 셈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 절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본 서적은 창작된 가상의 회고록입니다.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하였으나 내용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실제 인물·단체의 립장과 무관합니다.